(제 34 회)

제 2 장

원인없는 우연이란 있을수 없다

6

 

배합먹이공장에 갔던 첫 차가 공장으로 들어섰다. 운전칸문이 열리고 덧옷을 펄럭이며 우덕진이가 내렸다. 그는 곧바로 대저울에 올라서는 자동차를 바라보면서 기세좋게 걱석걱석 계량실안으로 들어섰다. 콤퓨터 현시판에 예견대로의 수자가 나오자 그의 넙적한 얼굴에 만족한 웃음이 어렸다. 그는 은희의 볼을 슬쩍 건드렸다. 그것은 지금 우덕진의 기분이 더없이 좋다는것을 의미했다. 언제건 정확히 인수해왔어도 이 대저울은 주인들의 마음을 만족하게 해줄줄 모르고 린색한 수자를 내보이군 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 현시판을 들여다볼 때면 긴장해지군하는것이 상례인데 우덕진의 결패있는 성미가 두렵기라도 한듯 예상했던 수자가 나타난것이다.

그럼 그럴테지, 우덕진은 속으로 쾌재를 올리고는 그길로 호기있게 구내길에 나섰다. 후문에서부터 사무실까지의 거리는 공장가운데를 횡단하는 긴 구간이다.

바쁜 때는 어지간히 역증이 나는 길이지만 지금 우덕진은 사뭇 마음이 들뜨기만 했다.

이번 길이 당비서의 각별한 관심과 바래움을 받으며 떠나서인지 떠날 때부터 배합먹이공장에서 체류하는 전기간 일이 다 잘되였다. 공장이 의뢰하는 전량을 다 계약했고 나머지 차들은 이번 주일내로 생산되는 족족 들여오기로 합의를 보았다. 점심식사도 만족했다. 그곳 기사장과 동석한 자리에 내놓았던 공장제품인 오리훈제도 좋았지만 그 공장에서 한 국수맛이 옥류관 못지 않게 구미가 동해서 두그릇을 제꼈더니 지금도 배가 든든했다.

우덕진은 구내를 오가는 바람을 맞받으며 활개짓을 했다. 지금은 출퇴근시간이 아니여서 오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왕래는 없지 않아 우덕진은 마주치는 사람들의 인사에 답례를 하느라 심심치 않게 고개를 끄덕거리군 했다.

오늘도 그는 버릇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마디씩 건네며 싱긋거리였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원걸이가 큰 키를 좌우로 흔들며 오는게 보이자 우덕진은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공장의 약전계통과 설비상태는 바로 저 한원걸이가 다 조절했다. 원걸이가 말없고 책임성이 높기때문에 우덕진은 마음을 놓고있었다. 단지 하나밖에 없는 조카인 은희와 가까와지는것만은 질색이였다.

말하자면 기술은 기술이고 어딘가 맺히지 못하고 싱거워보이는 그의 됨됨은 마음에 없었다. 설비검사때문에 계량실에 나타나서 은희의 곁에 서있는걸 보기만 해도 우덕진은 눈을 흘겼다. 자연히 원걸이도 우덕진이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고 슬슬 피하군 했다.

《지금 오십니까?》

원걸이가 굽석하며 인사를 하자 우덕진은 고개를 끄덕했다.

《요전날 과업준거 어떻게 됐나?》

어딘가 친근한 말투같지만 원걸이를 그렇게 대하는것으로 습관된 우덕진이다. 우덕진이가 준 과업이란 배합먹이직장에 설치할 정선기였다.

《시작은 했는데 아직 결속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언제 준 과업이게?!》

대뜸 눈이 세모졌다. 우덕진은 둥글넙적한 얼굴에 항상 싱글싱글 웃음이 어려있는것같지만 이럴 때는 다른 사람이나 된듯 사나와져서 마주선 사람이 굳어지군 했다. 우덕진은 한동안 아무 말을 안하고 그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상대방의 마음을 조였다는 생각이 든 다음에야 다음말을 하군 했다. 지금 원걸이의 경우가 그랬다.

《실은 자석을 설치할 생각인데…》

《자석?》 되묻는 우덕진의 입술이 벌어졌다. 원걸이가 신통한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정선기에 자석을 설치하면 마지막잔철물까지도 다 제거할수 있었다. 확실히 원걸인 베아링골이거던.

《고정시키는 문제를 좀더 생각하고 설치하려는데 사무실에 있는 콤퓨터를 좀 봐주라는 지령이 있어서 갔댔습니다.》

《음, 잘해보라구.》

우덕진은 원걸의 수더분한 얼굴을 바라보고는 마음을 늦추었다. 얼마간 풀어진 목소리로 다시 자기가 준 과업의 날자를 상기시키였다.

그앞을 지나치려는데 원걸이가 《기사장동지, 저… 제 문제는…》 하고 쳐다보았다.

《일이나 잘하라구.》

우덕진은 두말도 못하게 하고는 그의 앞을 지나쳤다.

원걸이가 말하는 자기 문제란 김책공업종합대학이라는 소리다.

원걸의 최대희망은 김책공업종합대학에 가는것이다.

사실 우덕진은 그것이 골치거리였다. 그가 막상 공장을 떠서 대학에 간다면 제기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더우기 지금은 현대화를 하는 기간이라 원걸의 손은 열손백손을 대신하고있었다. 그래서 원걸이의 대학추천말이 나올 때마다 앞질러가며 막는중인데 아마 그도 눈치를 챈 모양이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끌 문제가 아니여서 오늘은 이렇게 슬쩍 지나치는것이였다.

무릎까지 오는 덧옷자락이 바람소리를 내며 날리도록 씽씽 걷던 우덕진은 자기를 향해 마주오는 차학선을 알아보았다.

저 령감이 또 들어왔나. 저도 모르게 눈섭이 쫑깃 올라갔으나 전날처럼 정문으로 달려가고싶지는 않았다. 그날 지배인의 눈에 띄운 다음 자기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남을 걸고들기에는 지금 그의 기분이 너무 떠있었다. 어쩔수없이 그앞에 멈춰섰다.

《이보게, 잘 만났네. 우리 천호랑 모두 어디 갔다는데 기사장은 모르나?》

《예?!》 그야말로 아닌밤중에 홍두깨였다. 천호가 어디 간걸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러나 모른다고 말하기 싫었다. 기사장이 공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르면 되나.

《그런걸 일일이 알려고 하지 말고 가만 계시우. 어련히 오지 않으리요. 자, 그럼 난 바빠서…》

우덕진은 기사장이라는 사람은 바빠서 령감하고 흥야붕야할 사이가 없다는식으로 그앞을 훌 지나쳤다.

그의 걸음은 사무실청사의 첫 방인 생산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지령전화와 콤퓨터가 놓인 책상앞에서 무엇인가 하고있던 한미순이가 피로한 얼굴을 들며 바라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드리운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그의 눈매가 신통히도 동생인 원걸이와 같았다.

그들남매는 그 눈처럼 마음이 깨끗했고 유순했다.

한미순은 농업대학졸업생으로서 가금과 첫 졸업생이다. 게다가 지금도 수재로 이름을 날리던 대학시절처럼 자기 분야에 정통하기 위해 늘 사색하고 현장에 침투하기때문에 기술적문제에서 막힘이 없었다.

《오늘 지령서입니다. 먹이가 딸리기때문에 규정대로 종금에만 겨우 넣고 비육호동엔 절반밖에 넣지 못했습니다.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비육오리는 물론 종금오리도 위험합니다.》

그는 우덕진에게 지령서를 보이며 이제 미치게 될 후과에 대하여 설명했다.

새끼오리, 살찌우기오리, 종금오리, 후보오리에 맞는 먹이단위와 성분요소는 구체적이면서도 각이했다. 공장에는 당일 실험실에서 분석한 수치에 기준해서 먹이를 정확히 타산하여 생산과에서 지령을 떨구는 체계가 서있다.

배합먹이직장이 아직은 없기때문에 이 모든 일들을 직접 미순이가 작성하군 했다. 지금 미순이가 말하는것은 후보오리들에게 줄 3호먹이가 제 성분대로 들어가지 못한다는것을 의미한다. 3호란 지령으로 떨구는 먹이를 수자로 표시한것이였다.

한미순의 말을 듣고있던 우덕진은 넌지시 물었다.

《가령 후과라면 어떤것을 말하오?》

《각 단위에서 다 나타날수 있지만 제일 위험한건 종금이지요. 알을 낳아도 종자로 쓸수 없고 후보오리기간이 길어지고 그러다가 털갈이에 들어가면 수습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우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제량대로 다 들어오니 마음놓고 지령표를 작성하오.》

《어마나, 다 해결됐어요?》

그제야 미순의 그 유순한 눈가에 경탄의 빛이 어리고 방싯이 열려진 입술에서는 아낌없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저 기사장동지가 걸음하니 단번에 풀리는군요. 정말 숨이 나가게 됐어요. 오늘까지 겨우 맞췄는데 정말 고마워요.》

미순은 방긋이 웃으며 인사를 했다. 꼭 자기 일을 풀어주기나 한것처럼 기뻐하는 그의 말에 저으기 감동된 우덕진은 너그럽게 웃어보이며 다시 물었다.

《그다음 제기된건 뭐가 또 있소?》

《오늘 현재 부화률이 어제보다 떨어지고있습니다. 종금 하나에서는 일없지만 다른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험실에서 아직까지 분석표를 가지고오지 않았어요. 요즘 분석시간이 늦어지는데 그렇게 되니 자연히 지령표작성이 늦어집니다. 그전에 토론된대로 하루씩 선행하자던 문제가 왜 집행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알겠소. 당장 대책을 취합시다. 다른건 제기된건 없소?》

《저, 우리 동생 대학문젠 잊지 않고계시지요?》

《아, 그럼. 내 잊지 않고있소.》하고 결패있게 자기의 말을 끝내고는 돌아섰다. 자기가 자리를 떴던 사이에 공장에서 벌어졌던 실태를 원만히 알게 해준 미순이를 실망하게 할수는 없었다. 실지로 기회를 봐서 이 문제는 해결해주어야 했다.

우덕진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당위원회에서 포치한 회의시간이 다되여갔다. 회의가 열리기 전에 당비서에게 도착보고를 해야 했다.

우덕진은 서두르며 문을 나서 당비서방으로 향했다. 당비서방은 걸려있었다.

우덕진은 고개를 기웃거리였다. 당비서와 사업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는 회의시간을 철저히 지키는것을 비롯해서 절제가 매우 강했다. 만약 현장에 나갔다 해도 여유있게 들어오군 했다.

우덕진은 할수없이 교환수를 찾았다. 공장에 갑자기 급한 일이 제기되였을 때는 교환수에게 알려주는 체계가 서있는것이다.

아닐세라 교환수는 당비서와 지배인은 물론 현장의 기술자들도 많이 시당에 갔다는것을 알려주었다.

빤히 내다보이는 정문에서 웬 처녀를 붙들고있는 차학선이가 보였다. 그러니 천호도 시당에 간 모양이였다. 그런데도 기사장인 자기는 알지도 못하고있는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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