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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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시각.
합영투자위원회의 부
낮에 그는 며칠을 고심하여 작성한 문건을 들고 합영투자위원회의 사업을 맡아보는 고위간부(후에 판명된바에 의하면 그자는 현대판종파분자로서 정체가 폭로되여 우리 당대렬에서 제거되였다.)에게로 갔다.
문건의 내용을 간략해보면 새 용광로를 건설하자면 시간이 모자라므로 수입해야 한다는것, 용광로설비를 수입하기 위한 자금은 정광과 석탄으로 충당하자는것인데 여기에는 황해제철련합기업소가 받게 될 연료, 원료폰드까지 들어있었다.
석진에게서 문건을 받아본 그는 용광로복구자금보장용수출을 승인받는 계기에 송림항, 남포항들에 체류하고있는 석탄들도 뽑을수 있도록 승인을 받고 무산교두를 통한 정광수출도 허가받자고 《통이 큰》 수출안을 내놓는것이였다. 그는 주영호부부장에게는 형식상 문건을 보이되 그가 동의하면 좋은거고 반대해도 일없다고 하면서 아마 영호부부장은 고루한 사람이여서 이 안에 찬성하지 않을거라고 하면서 문건을 다시 수정해오라는것이였다.
위원회로 돌아온 석진은 신속히 문건을 수정작성하는데 달라붙었다.
사실 그도 황철에서의 로폭파사고를 듣고 몹시 가슴이 아팠다. 얼마전 석탄문제때문에 함승일이나 김중건이와 한바탕 맞불질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황철은 그가 나서자란 곳이고 또 사회생활의 첫걸음도 그곳에서 뗐다. 친구들과의 사이도 그닥 좋은 편은 아니였지만 그는 여직껏 제나름대로 그들을 도와주려고 했고 또 지금에 와서는 몹시 걱정되기까지 하였다. 함승일은 병원에 입원했다는데 심하게 다치지나 않았는지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는 황철일을 도울 방도가 없는가 하는데 더 왼심을 썼다. 황철의 후원단체로서 합영투자위원회에서 이런 때 조금이라도 뭘 좀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그런 찰나에 《우》에서 지시가 내려왔는데 황철의 용광로설비를 수입하기 위한 안을 세우라는것이였다.
석진은 다행스러운 숨을 내쉬고 수입안을 작성했고 그것을 가지고 그 고
문건을 재완성한 신석진은 한통은 올려보내고 다른 한통은 가방에 넣은 다음 위원회의 부서들에 임무를 주어 승인이 내려오는 즉시로 일판을 벌릴수 있게 빈틈없이 조직사업을 해놓았다.
모든 준비가 끝났지만 어쩐지 마음속에는 껄끄럼한것이 남아서 그를 괴롭혔다. 그래 그는 지금 그게 무엇일가 생각하는중이였다. 주영호에게 보여줄 문건은 옆구리에 끼고있는 가방에 들어있으며 청사마당에는 사경에 처한 함승일이며 입원환자들에게 가져갈 면회품이 그득히 실려있는 소형뻐스가 발동을 걸고 그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신석진은 옆구리의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고 떠나기에 앞서 담배 한대를 피워물었다. 담배연기가 그물그물 피여오르는 가운데 생사를 다툰다는 함승일이며 지배인권리정지처분을 받고 법앞에 서게 되였다는 김중건이 그리고 황철의 산소열법에 무관심한 아버지에게 불만을 터뜨리던 사랑하는 딸 신정이와 주영호의 얼굴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주영호부부장이 이 문건을 보면 뭐라고 하겠는가. 지난해엔가 주영호가 인솔하는 대표단에 망라되여 외국출장걸음을 했을 때 회담이 파기된 원인을 그의 능력으로 몰아붙이며 칭원하자 대꾸없이 자기를 한참이나 주시하던 그의 엄한 눈길이 생각나 등골이 서늘하였다. 분명히 노성을 터뜨릴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하게 나를 타매할것이다. 잘만하면 성사될수 있는 회담도 원칙을 내세우며 단호히 파기시킨 주영호부부장이고보면 그의 손에 쥐여질 이 두페지반짜리 문건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황철에 내려가 김중건이를 만나고 병원에 가본다는것도 께름직해보이였다. 해를 넘긴 산더미같은 석탄에서 고작해야 몇지대 쓴걸 가지고 그것도 현지일군과 합의를 보고 가져다쓴것을 가지고 문제시하며 여기저기 송사한것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몹쓸짓을 한것처럼 여겨지였다.
신정이 그애는 나의 황철걸음을 어떻게 생각할가? 산소열법에 수동적인 내게 상당한 불만을 품고있었지.
석진은 몇달전에 집에서 있었던 일을 뇌리에 떠올렸다. 로력영웅칭호를 받은 딸을 위하여 간소하게 차린 축하연뒤끝에 있은 일이였다. 누가 먼저 화제를 꺼냈는지는 기억이 되지 않으나 그날 부녀간에는 이런 이야기가 오고갔다.
《아버지, 한가지 물어봐도 좋은가요?》
《물어보렴.》
《아버진 중유를 밀어낸 우리를 그처럼 대견해하시는데 중건아저씨네 하는 일엔 왜 강건너 불보듯 하는가요? 사실 우리나 중건아저씨네가 하는 일은 같지 않는가요. 중건아저씨랑 승일아저씨들과의 옛 우정을 봐서라도 아버진 황철의 산소열법을 도와나서야 해요.》
《됐다. 그건 아버지일이니 상관하지 말아라. 좋은 날엔 유쾌한 얘기만 해야 한다.》
그랬다. 정작 황철에 내려가자니 참으로 급하였다. 빠개놓고보면 황철에는 위로나 면회가 아니라 그들이 절치부심하는 수입안을 들고 내려가지 않는가. 존경이며 부성애, 우정으로 련결되여있는 그들이 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일하는 바로 그것을 부정하려고 가는 걸음이 아니겠는가. 그럼 내가 하는 일이 옳지 못한것이였는가.
아니, 나도 황철의 사고를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다. 신석진은 황황히 분석의 키를 돌려 자기를 변호하였다. 오늘 매 사람들은
차지한 위치와 나름의 방식대로 강국건설에 이바지해야 한다. 나도 딸과 김중건이네들처럼 조국의 부강에 무엇이든 기여하려는 사람이며 합영투자위원회
부
문기척이 나며 송림항에 주재시키였던 젊은 국장이 들어선다. 소형뻐스에서 기다리다못해 무슨 일인가 하여 걸음을 한 모양이였다.
신석진은 그답지 않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자기의 결심을 알려주었다.
《황철엔… 후에 가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