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2 장
원인없는 우연이란 있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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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온 태인은 사기나면 하는 버릇대로 그 자리에서 빙그르르 한바퀴 돌았다. 아까 말한대로 그들의 상봉은 정말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금 같이 걸어가는 천호의 심정도 다를바 없었다.
수려를 처음 볼 때 새침하게 눈을 내리까는통에 말을 걸념을 못했었다. 지금도 1등의 영예를 지니고 마이크앞에 있던 대학생시절의 수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5년기간에 수려는 정말 빈땅에서 푸른 잎 설레이는 나무가 불쑥 솟아나기라도 한듯 몰라보게 변모되였다. 귀밑에서 찰랑거리던 단발머리대신 굽슬굽슬한 파마머리도 그에게 더할나위없이 어울렸다.
요란한 치장도 없고 특별하게 뛰여난 얼굴도 아닌데 왜서인지 그의 모습은 눈을 시그럽게 했다. 게다가 이젠 연구사라니 놀랍기만 했다.
그가 생명과학을 전공했다니 놀라운중에도 반가움이 더 앞섰다. 자연히 요즘 론의되는 록화물에 대한 이야기가 저절로 나왔다.
《수려동무는 생명과학을 전공했다니 잘 알겁니다. 우린 얼마전에
《어떤것이였어요?》
수려가 흥미있는듯 천호를 바라보았다.
《미생물발효먹이의 생산과정이였습니다. 먼저 단백질을 비롯한 영양물질을 합성하는 균과 오리가 빨리 자라게 하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균, 대장균을 비롯한 해로운 미생물을 제거하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균들을 일정한 비률로 섞는 과정이 상세하게 나오더군요. 다음엔 여러 단계의 배양공정을 거쳐 복합균을 확대발효시키는 공정들이였고.》
《맞아요. 그렇게 만든 미생물발효먹이는 영양강화제, 항생제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수 있어요.》
수려가 천호의 설명을 알아듣고 하는 말이였다. 구내의 환한 불빛에서 상기된 수려의 얼굴이 두드러졌다. 천호는 인차 자기들의 언어가 통하는듯한감을 느끼며 줄을 달았다.
《그런 발효제를 배합먹이에 넣어서 오리를 기르게 되면 이제껏 주던 먹이를 절약하면서도 오리의 증체률을 얼마든지 높일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쉽지만 아직 우리 공장실정에서는 먼 미래이거던요.》
《아니, 미래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요. 그건 얼마든지 할수 있어요. 단지 실험실적방법이 아니라 공업적인 방법으로 전환시켜야 해서 아름찰뿐이지요.》
차분한것같은 어조지만 그의 목소리는 확정적이였다. 천호는 이런 때는 쓸데없는 자존심이 필요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려는 전문가이다. 그전에도 그의 실력을 인정한것이지만 지금도 그의 실력에서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 천호는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같은 실정에서 동무같은 연구사가 도와준다면 얼마든지 실현할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록화물을 본 다음에 설비와 직장을 꾸리는 문제를 비롯해서 생산공정을 하나하나 내나름으로 그려보았지만 나야 가금이 기본이니 많은 문제가 걸립니다. 그런데 수려동문 생명과학이 전공이니 우리 공장의 현대화에 많은 도움을 줄수 있지요. 어떻습니까?》
수려가 그 자리에 멈추어서며 말을 받았다.
《여기 오리공장에 체험지를 정했으면 좋겠는데 아버지가 승인을 안하셔요.》
《아버지가요? 수려동무, 일을 하느라면 실수도 할수 있지요. 더우기 일군들이야 더 그렇지 않습니까. 동무가 옆에서 힘을 주십시오. 그만한 일에 물러서서야 되겠습니까.》 천호는 그만 기회를 놓칠것같은 조급증에 사로잡혀 열심히 수려를 설복했다.
《딱한건 당비서동지와 잘 아는 사이라는거예요, 상하급관계에서. 아버지가 물론 상급이였지요. 그밑에서 일하려니 아마 마음이 좋지 않은가봐요.》
천호는 당비서의 모습을 상기했다. 태인의 설계도면을 보며 얼마나 적극적이였던가. 이번엔 사무실에 찾아가 만났던 생각이 나며 힘이 났다. 얼마나 기술자들을 존중해주며 기뻐했던가. 보기엔 조용한것같은데 일단 사업토의에 들어가거나 기술적인 문제를 론의할 때엔 눈빛이 번쩍이고 열정적이여서 다른 사람을 보는것같았다.
천호는 그때 얘기를 간단히 하고는 말을 이었다.
《거기에 반해서 난 이틀내로 보충해서 다 완성했습니다. 그저 막 힘이 납니다. 난 이번에 비서동지를 직접 만난 다음부터 전적으로 믿게 됩니다. 이번에 우린 새집을 배정받았습니다. 아버진 이미 년로보장으로 들어갔는데도 말입니다. 당비서동진 매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심중하지요. 아버지에게 신심을 주십시오.》 천호는 먼저 걸음을 뗀 수려를 따르며 강조했다.
《그렇군요, 사실 우리 아버지는 참 좋은분이랍니다.》 이 말을 하며 수려가 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가 좋은분이라는건 태인선생에게서 다 들어서 알고있습니다.》
그사이 구내길은 벌써 끝이 났다.
《어서 들어가보세요. 오늘 참 힘을 주는 말을 해주어 고마워요.》 수려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 총총히 걸어갔다. 천호는 어둠속에 사라지는 그를 보며 못박힌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공장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바로 저런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태인을 통해서라도 수려를 공장에 끌어와야 한다. 아니, 보충한 록화물반영자료를 제출하는 기회에 당비서에게 직접 제기하게 하면 어떨가? 좋은 생각이 든 천호는 혼자서 벙싯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