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제 2 장

원인없는 우연이란 있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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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연은 야간근무에 나오자바람으로 이미전부터 생각하고있던대로 문을 고칠 생각으로 작업도구들을 꺼내놓고 웃옷을 벗었다. 때없이 사람들이 나타나서 여닫고다니는 온실문은 거의나 놀고있을 때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한쪽 접철이 떨어져나가고 거들거리는게 여지없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언제건 수리해서 번듯한 문을 달아놓으리라고 생각하던중이였다. 새 문으로 교체할 생각으로 가지고온 널판자를 톱질하던 그는 누군가 널판자 한끝을 잡아주는바람에 고개를 들었다. 뜻밖에도 신형일이였다.

《엉?》

강시연은 소리도 없이 나타난 신형일이가 놀라와 한동안 눈을 끔쩍이기만 했다.

《이런 일을 왜 혼자 하십니까?》

물음조도 나무람조도 아닌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강시연은 덤덤했다.

남이 안보는 때 혼자서 조용히 하자던 노릇이 그만 드러나고말았다. 그것도 다름아닌 신형일이한테.

그는 지금 자기가 두드려댄 망치소리가 깊은 밤의 고요를 깨뜨리며 누구든 불러들였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보수반에 맡깁시다.》 신형일의 그 말에 강시연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슨 이만한걸 가지고 보수반에 다 찾아다니겠습니까, 조금만 하면 되는데…》

강시연은 일어서지 않았다. 끝내 마지막접철까지 달고야 허리를 폈다. 손이 비단이라더니 새하얗게 대패질을 하고 품을 들여 단 새 문짝이 어둑시근한 온실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대번에 새맛이 났다.

《고맙습니다.》

강시연은 신형일의 이 말에 어지간히 놀랐지만 그와 말을 주고받기 싫어 덤덤해서 담배갑을 꺼내놓았다. 이젠 담배피우기에 꽤 숙련된 강시연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떨구지 않았다.

《애국주의가 별게입니까. 자기가 하는 이런 일에 대한 애착과 관리에서 나타나는것이지요.》

《거 너무 요란하게 올리추지 마십시오. 거들거리는 문짝 하나 교체한걸 가지고 뭘…》

강시연은 계속되려는 신형일의 말을 이렇게 꾹 눌러놓았다. 그와 마주있는것도 어색한데 칭찬까지 하니 오히려 짜증이 났다. 11년이나 지난 묵은 상처를 들추어낸 신형일이때문에 여기 오리공장에 내려온걸 생각하면 입안이 다 쓰거웠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의 심정은 알바 아니라는듯 집에도 찾아오고 이렇게 작업장에까지 찾아왔다.

강시연은 어쩔수없이 공장에 내려왔으니 로동자의 직분에 맞게 일을 하지만 요즘은 농장원이 된듯 얼굴이 까맣게 타서 돌아갔다.

원래 여기 농산직장에서의 작업은 헐치 않은 농사일이였다. 게다가 요즘은 공장의 현대화에 로력이 돌려지다나니 지원로력이 붙지 못했다. 할수없이 농산직장자체인원으로 작업을 해야 했다. 직장장이나 통계원도 두몫세몫 닥치는대로 현장에서 일을 했다.

농산직장은 종업원들의 후방사업과 함께 오리먹이를 담당하느라 그야말로 허리펼새 없었다. 더우기 봄철에는 숱한 남새들의 파종기여서 모두 부지런히 뛰여도 자리가 나지 않았다.

강시연도 낮에는 포전에서 돌아갔지만 저녁엔 또 밤근무에 나오군 했다. 지금 신형일이가 고맙다고 하는게 바로 이렇게 실정에 맞게 일을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했지만 강시연은 이렇다저렇다 말하고싶지 않았다.

강시연은 동네에 자리잡은 이튿날로 전 기사장네를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자기 집에서 멀지 않은 같은 사택마을에서 산다고 한다. 운명은 피할길 없었다. 부디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다행히 농산직장에서 하는 일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뭇사람들의 시선이 덜 미치는 곳이여서 그런대로 마음이 편안했다. 낮에 일을 하고 밤근무를 나온다 해도 누구의 눈에 띄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남의 눈에 덜 띄우는것이라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작업도구를 주섬주섬 거두어놓고 널다란 나무걸상에 벗어놓았던 웃옷을 집으려던 강시연은 무춤했다. 수수한 작업복을 입고 마주앉은 신형일과 자기의 옷차림이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확실히 현장에선 작업복이 그저그만이였다. 수려가 가져온걸 한번 입어라도 봤을걸.

밤은 소리없이 깊어가고있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신형일이가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일없습니다. 밥맛이 납니다.》

강시연은 간단히 대답했다.

《거참 반가운 말씀입니다. 제가 말한대로 오리곰을 했겠지요?》

《오리곰?》

강시연은 입귀를 실그리였다. 신형일은 처음 집에 찾아와서 바로 오리곰강의를 했던것이다.

《하여튼 좋은 일입니다.》

신형일은 서글서글한 낯빛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야 입직년한이 다 같은데 공장과 종업원들에 대한 문제를 놓고 강동지의 견해를 알고싶습니다.》

《내게 무슨 견해가…》 강시연은 시답지 않게 잘라버렸다.

《그러지 마십시오. 강동지야 무슨 일에서든지 명확하고 랭철한 견해를 가지고있지 않습니까. 저에 대한 비판의 말씀도 다 좋습니다.》

《아, 무슨 그런 말을…》

강시연이 아닌보살을 할수록 신형일은 여유있게 접근해왔다. 주근주근 제 할 말은 다 하면서도 손쉽게 김을 잘 매는 실농군처럼 강시연을 꼼짝못하게 했다. 그쯤되고보니 강시연이도 자기가 본 견해를 털어놓을수밖에 없었다.

본래 일에 들어서서는 빈틈이 없는 강시연은 그동안 보고 들은것이 적지 않았다. 그가 말하고싶은건 현대화를 한다면서 생산을 차요시하는거며 기술자들을 잘 발동시키지 않는것이였다.

《내보기엔 지배인은 비록 나이가 있어도 침착하게 공장 전반사업을 잘 끌고가는것같습니다. 그러나 기사장은 빈틈이 있는것같습니다. 늘 웃는 얼굴이여서 인상이 좋지만 일군이 어디 인상으로 일을 제낍니까? 기술일군이야 더하지 않습니까?!》

일단 입을 여니 눈에 거슬리던 문제들을 말하지 않을수 없어 강시연은 자기의 말에 방점을 찍으며 이것저것 꼽았다.

《정확히 보았습니다. 당비서라면 이런 문제를 바로잡아 그들이 자기 일을 잘하게 해주어야지요. 이 문제는 상급기관에서도 방조를 받고 모색하는데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있지요.》

신형일이가 수첩에 적기까지 하는데 손전화종소리가 났다.

《아, 마침이군요. 잠간.》

신형일이가 량해를 구하며 반쯤 몸을 돌리고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하던 신형일이가 간단히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오. 그런데 기사장동무, 천호동무의 설계를 기술자들속에 돌리고있습니까?… 그만하면 가치가 있는것같습니다. 기술자들의 반영을 더 종합해서 완성시키시오.… 예, 시급합니다. 그것보다 바쁜 일이 없지요.… 빨리 수습해야겠습니다.… 예.》

전화는 간단히 했지만 신형일은 요점을 박아 과업을 주는것같았다.

신형일은 역시 자기가 알고있는것처럼 긴 설명이 없으면서도 중심을 놓치지 않았다.

전화를 끝낸 신형일이가 다시 본래의 문제로 돌아갔다.

《그런데 공장의 현대화에서 제일 중요한게 무엇이라고 봅니까?》

《중요한것?》

강시연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자기 문제에만 몰두하다나니 현대화생각을 하지 못한것같았다.

《아직 그런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화제를 돌려 대학에 온 연구사들을 만나본 이야기를 하면서 딸이 생명과학을 전공한데 대해서 극구 찬양했다.

《우리 공장 현대화에서 절실한 학문이 아닙니까.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그 소리를 듣는 강시연은 가슴이 뜨끔했다. 딸이 현실체험지를 정하는 일을 다 알고 슬슬 접근해오고있는게 틀림없었다. 누가 당비서에게 제기한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손바닥의 손금보듯 빤하게 알수 있나.

《그래, 딸은 현실체험지를 공장에 정하기로 결심했습니까?》

《딸이 그런 의향을 비쳤지만 내가 그만 대답을 못했습니다.》

강시연은 결백한 자기 마음처럼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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