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 회)
제 3 장
사랑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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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묵진 곳마다 물이 흐르고 질적거리던 곳이 언제 있었더냐싶게 어디서나 산들바람이 불고 생신한 기운이 넘쳤다.
그런 속에서 진창투성이던 정문앞이 깨끗이 정리되고 한켠에선 배수로공사가 벌어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박순배의 입에서도 숨이 나갔다. 방금전까지 다른 기업소에서 먹이로 할 강냉이를 한방통 돌리기로 하고 돌아온 그였다. 봄철이 지나가고 초여름에 들어가는 이 시기 공장에서는 먹이문제가 제일 급했다. 작년에 제량대로 강냉이를 끌어오지 못한 탓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오리먹이로 들어가는 강냉이를 가을에 물어주기로 하고 돌리여 일단 급한 고비는 넘겼지만 박순배는 또 다른 생각에 빠져들어갔다.
강냉이를 준 값으로 때없이 고기를 내라, 새끼오리를 달라는 성화를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골이 아팠던것이다.
사실 지배인이 된 다음부터 박순배에게 있어서 제일 큰 문제는 오리고기였다.
무슨 일이 제기되건 구멍을 막는데는 오리고기이상 없었다. 보이는게 오리고 쌓인게 오리고기같지만 엄연한 생산계획이 있다. 종업원들의 대사에도 고기와 알을 얼마씩 주게 되는 정량이 있었다.
박순배는 자연히 판매과의 전표에 수표를 하는 때에도 너무 많지 않소? 하는 말을 하고야 수표를 해주는것이 습관으로 되여 깍쟁이지배인이라는 평판이 돌아간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말을 열두번 들어도 고기내는 일이 없어지면 얼마나 좋으랴. 제일 딱한건 면식이나 있는 사람들이 차까지 끌고와서 강짜를 부릴 때였다. 안줄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심좋은 에미네 쌀퍼주듯 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도가 자기 집에서 오리를 기르기 시작한것이였다. 다른 사람이 요구해도 나만이라도 공장걸 축내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고 처까지 발동되여 그의 집에서는 수십마리의 오리를 길렀다. 자기만이래도 공장에 일체 손을 내밀지 않자는것이였다. 종업원들의 대사때에도 자기네 오리로 부조하는것은 물론이고 거절하지 못할 사람이 정 요구할 때는 자기 집에 보내군 했다.
이번에 강냉이를 내준 기관과의 거래도 달리 할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사무실로 향했다.
공장을 떴던 한주일사이에 차천호의 설계론의가 어느 정도 추진되였는지 궁금했다.
사실 박순배는 당비서로부터 차천호의 의견서와 설계서를 받은 그날 그걸 보느라 밤을 밝혔다. 자기가 작성한 배치도는 천호가 제기한것을 실현하기 위한 생산공정이였다. 무엇보다 착상이 좋았고 어느것은 엉뚱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천호의 의견서와 설계는 아주 진취적이고 혁신적이였다. 후에 다시 보충한것을 보고 훌륭한 론의거리가 될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더니 당비서도 찬성했다.
차천호의 의견서와 설계는 집행위원회에서 론의되였다.
우선 공장의 전체 기술자들에게 그것을 돌리여 토론에 붙이고 종합하여 새 안을 내놓을 과업이 기사장에게 맡겨졌다.
몇걸음 못가서 박순배는 마주오는 당비서를 알아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껏 단백반서식장을 정리하는 작업장에 있은 모양인듯 그의 작업복어깨에 먼지가 뽀얗게 올라있었다.
《방금 들어서는 길입니다.》 박순배는 마주걸어나가 보고나 하듯 그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수고많았습니다. 그 기관에서는 강냉이를 실어다주겠다고까지 했다면서요? 큰일을 했습니다.》
《허, 비서동무가 만났던 그 동무가 어찌나 깐깐하고 책임성있는지 난 그저 먹었습니다.》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미는 한마디 말속에서 모든것을 알아본듯 당비서는 느슨한 웃음을 짓고 바라보았다.
《이젠 한시름 놓을수 있습니다. 우리 이번에 대담하게 야적장건설을 동시에 내밉시다.》
《야적장이요?》
박순배는 어지간히 놀라 눈을 흡떴다.
《지금 공장형편에서 언제 야적장까지 생각할수 있습니까?》
《왜요, 마음먹기탓이지요. 작년에 강냉이를 확보하지 못한 원인중의 하나가 야적장이 없었기때문이라면서요?》
《그렇긴한데…》
박순배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하도 엄청난지라 선뜻 찬성하게 되지 않았다. 당비서가 공장에 오자마자 일을 제끼는것을 보고 은근히 탄복하면서도 야적장을 짓자고 하는데는 선뜻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원, 지배인동지두. 이번같이 엄청난 일감두 순조롭게 푼 큰 공장의 지배인동지가 그만한 일에 그렇게 놀래다니요. 앞장에서 조직사업만 잘하십시오. 당위원회에서 적극 밀겠습니다.》
《허.》 박순배는 한시름을 놓으면서도 록화물을 보면서 가책되던 때를 잊지 않고 덧붙였다.
《이번에 들여온거로는 발효제를 섞어서 될수록 먹이단위를 낮추어야 되겠는데요.》
《그렇지요. 뭐니뭐니해도 빨리 그 공정을 선행시켜야 합니다.》 당비서가 두말않고 지지했다.
《기사장동무가 얼마만큼 추진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 》
《아직 종합설계안을 완성시키지 않은것같던데…》
생각에 잠긴듯한 당비서의 말에 박순배는 아연했다.
일주일이면 짧지 않은 기간인데 그동안 뭘했단 말인가?
물론 기사장은 바빴다. 그는 무슨 일이든 자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어려운 일이 제기되면 주저없이 일어나서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고 실제로 앞장에서 제끼였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호방한 웃음소리와 종업원들을 다모는 그의 특징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군 했다.
박순배는 젊은 그 혈기가 부러운중에도 기술문제에 대해서는 어쩐지 그리 열성이 높지 않은것같아 마음에 싸지 않았다. 책임기사시절엔 그렇지 않았는데.
《지배인동지, 기사장에게 너무 부담이 가는게 아닙니까?》
당비서가 생각깊은 얼굴로 바라보며 물었다.
부담을 준다? 아니, 그것보다 자기가 해야 할 기본임무를 놓치는게 아닐가. 그러나 박순배는 그런 생각을 그대로 묻어두고 자기의 의견을 털어놓았다.
《하여튼 오늘 주간총화는 좀 따끔하게 진행해보겠습니다. 주로는 록화물에 대한 반영종합과 공장현대화에 도입하는 문제가 기본으로 되게 할 생각입니다. 기사장동무에게 자극도 주면서 말입니다.》
당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앞섰다.
《오늘 주간총화에는 나도 참가하겠습니다.》
《예?!》
생각지 않던 당비서의 반응에 박순배는 말문이 막혔다.
(허, 준비를 잘해야 했을걸.)
회의시간이 되자 지배인실로는 직장장들이며 반장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