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3 장
사랑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흐르는가
2
우덕진은 사무실로 들어오자바람으로 책상빼람에서 차천호의 설계와 의견서를 꺼냈다. 그는 이것을 받은지 퍼그나 되였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다. 사방에서 제기되는 숱한 일감들을 참견하느라 언제 이것을 놓고 집중할수가 없었다.
천호의 설계를 부랴부랴 펼치는데 누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섰다. 비육직장의 기술부원이였다.
《기사장동지…》
그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우덕진은 손을 저으며 어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한초가 새로운데 누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할 시간이 없었다. 그가 나간지 몇분도 안되여 이번엔 전화종소리가 찌릉찌릉 울렸다. 우덕진은 누구라는걸 확인할 사이도 없이 《없다고 하오.》하고는 절컥 송수화기를 놓고말았다. 그런데 얼마를 못가서 또다시 전화종소리가 울려왔다.
《에이.》
그만에야 자제력을 잃은 우덕진은 천호의 의견서와 설계를 책표지안에 넣고 복도에 나섰다. 그러던중 얼핏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생산과의 한미순이였다. 그는 기술적인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그들남매를 생각하는것이 상례로 되여있었다.
우덕진은 그길로 곧장 한미순에게로 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각 직장의 기술부원들이 한미순의 주위에 모아붙어서 무엇인가 맞추느라 누구도 고개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가끔 자기들이 보낸 일보가 맞지 않거나 지령을 알고싶어 이렇게 생산과를 찾는 때가 있는데 그때가 제일 분주했다.
일은 맹랑하게 되였다. 우덕진은 할수없이 도로 나오고말았다.
생각난김에 원걸을 찾으니 그는 지금 발효제탕크조립조에 속해서 올 형편이 못되였다. 탕개가 풀린 우덕진은 맥없이 자기 방의 의자에 앉다가 벌떡 일어났다. 지배인이 생각났던것이였다. 먹이때문에 며칠동안 자리를 떴던 그동안의 피곤도 풀지 못한채 오늘 총화를 집행한 지배인은 십중팔구 자기 방에 있을것이였다. 이미 천호의 설계서를 본 지배인인지라 자기나름의 일가견이 있을것이였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할수 없었다.
우덕진은 나가다말고 굳어졌다. 빈손으로 갈수는 없었다. 무엇을 가지고 갈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행여나해서 사물함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대학동창생이 외국에 갔다온 기념으로 주고간 그 나라 록차가 곽채로 있는것이 눈에 띄웠다. 자기도 아끼고있던것이지만 지금은 그걸 가릴 형편이 못되였다.
우덕진은 흰종이로 포장한 곽을 들고일어나 물 만난 오리마냥 허둥지둥하면서 거침없이 지배인방으로 향했다.
우덕진이 문을 여니 긴쏘파에 기대여앉아있던 지배인이 일어나 앞상으로 마주앉았다.
《지배인동지, 이번에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하며 우덕진은 가지고온 차곽을 상에 올려놓았다.
《그런걸 뭘 다, 기사장동무도 요긴하겠는데…》
《나야 뭘, 일없습니다.》
우덕진은 의자를 끌어다놓고 마주앉았다.
《몸을 좀 돌보면서 일하십시오. 이번 일이 그렇게 오래 걸릴줄 알았으면 제가 나갔을걸, 저야 젊지 않았습니까.》
《기사장동무의 부담이 너무 많지. 비서동무도 기사장동무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것같다고 걱정하던데.》
《비서동지가요?》
우덕진은 눈이 덩실해졌다. 생각지 않게 자기에 대한 당비서의 견해를 알게 되였다. 사실 우덕진은 며칠전 차천호의 설계를 종합하는 문제를 늦추고있다는 질책에 가까운 손전화를 받은 다음 은근히 당비서의 눈치만 보던중이였다. 혹시 나에 대한 불만이 생긴게 아닐가 하고. 그런데 자기에게 너무 부담을 많이 지우는것같다는 말을 했다니 당비서의 눈에 결코 잘못 보인건 아니였다.
우덕진은 사기가 난김에 차곽을 터쳤다. 자기 손으로 직접 차를 대접할 생각으로 원탁에 있는 보온병에서 물을 따라 차를 탔다. 더운김이 몰몰 나면서 차향기가 은은히 감돌았다.
지배인은 입술을 감빨며 차잔을 받았다.
우덕진이도 따끈한 차잔을 받쳐들고 슬슬 김을 날리면서 기회만 보았다. 사실 천호의 의견서를 아직 토론에 붙이지 못한 기본원인은 시간을 내지 못한데도 있지만 자기의 확고한 일가견을 세우지 못해서였다. 천호의 의견서를 보고 용타는 생각과 함께 놀라게 되는 감정은 컸지만 공장의 현대화에 그것을 어떻게 도입해야 할지 선을 세울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배인은 기술에서 무시할수 없는 확고한 자기의 견해가 있었다. 나이로나 경력으로나 기술적인 면에서 자기와 박순배지배인은 중학생과 대학생간의 차이쯤 된다고 생각되였다. 자존심이 상해서 겉으로 인정하지 않을따름이였다.
지배인이 천천히 차물을 한모금씩 마시자 그의 얼굴에 본래대로 온화한 미소가 피여났다. 우덕진은 지금이야말로 제일 좋은 기회라고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지배인동지, 실은 천호의 설계를 보신 지배인동지의 견해를 알고싶어 들렸습니다. 물론 저도 제나름의 견해가 있지만 저야 솔직히 지배인동지한테 대비나 됩니까. 지배인동지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하, 기사장동무가 이제야 자기의 기본임무를 생각하는구만. 난 또 책임기사때를 다 잊었다구?》
지배인이 향기로운 차김을 맡으며 기분좋게 어깨를 젖혔다.
《그 시절을 잊을수가 있습니까. 요즘 공장의 현대화에서 제기되는게 너무 많으니 집중하지 못했을뿐이지요.》
《그렇겠지. 이보우 기사장동무, 천호가 사색을 많이 했다고 보오. 그만한 나이의 세대들이 다 그런 자세로 나온다면 공장은 전망이 확고하지.》
우덕진이가 예견한대로 기술수준이 있고 솔직한 박순배는 자기의 견해를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우덕진은 머리를 팽팽히 긴장시켜 한마디한마디 새겨들었다. 박순배는 차천호의 설계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록화물을 본 자기의 견해도 사심없이 털어놓았다. 차를 다 마신 다음엔 일어나서 자기가 그려보았다는 배치도초안까지 내놓았다.
《이걸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우덕진은 굴러온 호박을 한아름 안은 심정이 되여 지배인을 바라보았다. 벌써 입이 벌어졌다.
《기사장동무가 공장의 기술적문제를 위해서 뛰는데 내가 끼고있어선 뭘하겠소. 가서 준비를 잘해보오.》하고 헌헌히 웃기까지 했다.
우덕진은 흡족했다. 아끼던 차 한통은 그렇게 효력을 냈다.
이젠 생산과의 한미순을 만나지 않아도 되고 조용한데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였다. 자기 방에 가서 박순배가 말한것을 잊을세라 빨리 정리해야 했고 이 초안으로 배치도를 완성해야 했다.
자기 방에 들어온 우덕진은 문을 닫아걸고 안고온 종이퉁구리를 쫙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