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제 3 장
사랑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흐르는가
3
(1)
오늘은 수요일이다. 현대화를 하는 공장에선 이날도 사방에서 차가 부릉거리고 숱한 지원자들이 북적거리였다.
그러나 공장의 한켠에 아담하면서도 현대적인 맛이 살아나게 꾸려지고있는 종합조종소로는 공장의 기술자들이 모여들고있었다.
한미순이도 시간전에 곧장 조종소로 향했다. 사무실을 뜰새없이 자기 일에 바쁜 미순이지만 오늘 기술협의회에는 꼭 참가해야 한다는 련락을 받았기때문이였다.
종합조종소는 한창 색감을 칠하는 바깥과 달리 내부는 깨끗이 정리되여있었다. 하얀 벽에는 도해들이 걸려있고 책상과 의자가 질서있게 놓여있었다.
미순이가 자리를 잡은지 얼마되지 않아 인차 원걸이가 들어왔다. 누이를 알아본 그가 곁에 와서 앉았다.
앉자마자 그의 몸에서 내풍기는 열기가 미순에게까지 미쳐왔다. 얼굴도 온통 땀투성이였다.
미순은 오래간만에 보는 동생에게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손수건을 꺼냈다.
그들은 한공장에 있지만 언제 만나보기도 힘들었고 이렇게 회의실에 나란히 앉기는 처음이였다.
《이젠 여름인데 그렇게 입었으니 땀흘리지. 자, 땀이나 씻어라.》 미순은 누이의 심정으로 다심히 살피는데 원걸은 《손수건은 나도 있는데 뭐.》하고 데퉁스레 대답했다.
《요즘은 왜 한번도 집에 오질 않니. 아이들도 삼촌이 왜 안오느냐고 묻는단다.》 미순은 또 언짢게 동생을 책망하려들었다.
미순은 색다른 음식만 생겨도 합숙생활을 하는 원걸을 찾지만 당자는 귀등으로 흘려들었다.
《밥먹을 짬두 없는걸.》 여전한 말투였다.
《배양기탕크조립에 들어갔니?》
《인차 들어가.》
그러면서 원걸은 샤쯔우에 덧입은 잠바팔소매를 걷어올렸다. 회의실로 정한 조종소안은 천정에 설치한 선풍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는대로 선들바람이 불어왔다.
《참, 오늘 모임은 천호동무의 의견서를 가지고 토론을 한다는데 난 사실 구체적으로 못보았단다. 네 소견은 어떻니?》
《놀라운 정도야요. 확실히 천호동진 탐구심이 높아요. 이번의 설계를 보고 모두 감탄했는걸요.》 원걸은 방금전의 말투와는 판이한 어조로 미순에게 수군거렸다. 자기에 대한 잔소리는 흘려듣지만 이럴 때는 다른 사람이 되기나 한듯 진지해지는 동생이였다.
미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원걸의 말을 새겨들었다. 공장에서 수재골이라고 일러주는 동생이 추어올리는 천호이니 무심하게 들을수 없었다.
열린 문으로 대학의 연구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낯을 익힌 연구사들이여서 눈인사를 하던 미순은 그속에 섞인 낯선 처녀를 보고 놀랐다.
《저기 저 처녀는 누구냐?》
《오, 강수려라는
(강수려?)
미순은 처녀를 주시했다.
생김새도 특이하지 않고 튀여나는 색갈의 옷차림도 아닌데 그의 차림새에 눈길이 끌렸다. 호리호리한 몸매를 살리는 보라색에 가까운 연분홍빛잠바차림이 뒤목을 상큼하게 드러내는 짧은 파도형머리와 조화를 잘 이루어 무척 세련되여보였다.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서로 소곤거리군 했지만 그 처녀는 그저 조용히 눈길을 내리깔고 무슨 책인가를 번졌다. 참한 처녀라기보다 어딘가 도고한 인상이였다. 푸른 잎에 싸여서 독특한 미를 풍기는 흰장미꽃에 비길수 있을지.
《저 연구사를 보고 대학때부터 장미가시라고 했대요.》
미순은 원걸의 속삭임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방금전에 한 자기의 생각과 어쩌면 그리도 신통한가.
《내가 하나 대달라요?》
원걸이가 씩 웃더니 미순의 귀가에 대고 수군거렸다.
《저기 수려연구사와 천호동진 전국대학생학과경연대회에 나가서 알게 되였는데 1등은 저 연구사가 하고 천호동진 2등을 했대요.》
미순은 동생의 말을 들으며 차천호를 찾아보았다. 사선으로 보니 튀여나온듯한 뒤골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날이 선 코날이며 옆얼굴만 보아도 그가 별로 긴장한듯 했다. 오늘 그가 내놓은 의견을 가지고 토론을 하니 그럴만도 했다.
미순의 눈길은 또다시 뒤쪽의 연구사처녀에게로 옮겨졌다. 그사이 그의 앞옆으로 빈자리가 메여져 처녀의 모습은 잘 띄우지 않았으나 미순은 집요하게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천호가 언제나 책을 놓은적이 없이 진지하게 파고들고 현장체험도 잘하고있는것은 미순이도 잘 알고있다. 그런 천호가 저 처녀에게 첫자리를 떼웠다면 그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소리다. 그가 새삼스럽게 높이 보였다. 그래서 별로 눈길을 끌었댔구나.
저런
대학생시절부터 학구열이 높았던 미순은 대학생이거나 갓 졸업한 처녀들을 보면 자기의 대학생시절을 생각하군 했다. 처녀라고 해서 남자들한테 떨어질 리유가 무엇인가. 오히려 앞서야 한다.
남자들 못지 않은 그런 처녀들을 보면 우정 찾아가서 친해지고싶었다.
한미순은 녀자들에 대한 자기나름의 일가견이 있었다. 녀자라면 집안살림이나 하고 아이나 키우면 된다는것은 이미 낡은 관점이라고 생각했다. 녀자로 태여났으면 아무리 과학자거나 특별한 직업을 가졌다 해도 자기의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빨래하는 법을 배워주지 않아도 처녀애들은 자기 옷부터 빨줄 알았고 집안에서 녀성의 위치를 차지하군 했다. 어머니의 모습에서 밥하는 법, 집안거두는 법을 익히고 빨리 습득했다. 오히려 시간이 없는 직업이라고 해도 머리를 쓸줄 알아서 더 맛있고 더 알뜰하게 하군 했다. 먼데서 찾을 필요가 없이 맏딸은 지금 중학생이지만 음식하는 손세며 하는 방식에서 자기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저 연구사처녀가 천호보다 더 두뇌가 좋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미순은 목을 뽑으며 수려라는 연구사를 주시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옆사람과 말을 나누지 않았다. 옆의 사람이 하는 말에는 그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내리깔군 했다. 어딘가 지나치게 쌀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큰 흠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또다시 발자욱소리가 나며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차지했다.
이젠 처녀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장내가 빼곡이 들어찼던것이다.
이어 기사장이 들어와 단위별로 한명한명 인원점검을 했다.
정해진 시간인 오후3시에 지배인이 당비서와 차학선을 앞세우고 들어왔다. 공장에 조직된 집필조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하더니 빳빳한 흰 모시같은 여름샤쯔를 입고 흰머리칼을 잠재워눕힌 차학선의 단정한 차림은 여느때의 모습보다 젊어보였다. 모두 그의 출현을 두고 제나름으로 수군거렸다. 그의 모습이 생소하지는 않아도 집필조에 망라되고 이런 기술모임에도 자연스레 참가하는 모습은 설명없이도 공장에서 노리는 사업의 주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던것이다. 이제부터는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손잡고 같이 풀어나가게 된다는 반가움과 기쁨 그리고 그런 문제를 대담하게 해결해준 당위원회에 대한 고마움이 장내에 소리없이 흘렀다.
가운데 놓인 책상외에 옆으로 심사석같은 책상이 사선으로 놓여있었는데 지배인이 먼저 자리를 잡자 신형일은 그옆의 의자에 차학선이가 앉기를 권했다. 그러나 차학선은 한사코 마다하고 맨앞줄 구석자리에 가서 앉았다. 지배인옆에 자리를 잡은 신형일은 지금 기사장을 주시하며 생각이 많았다. 그전날에는 능력이 있어서 기사장까지 된 그가 그렇게 중요한 록화물을 보고도 아직 종합할 생각도 안하고있는데 오늘은 어떻게든 그에 대한 파악을 똑똑히 할 생각이였다.
신형일이가 제일 중심으로 잡는 사람은 기사장과 젊은 기사인 차천호였다. 그는 좌석을 일별했다.
이번에 새로 꾸리는 종합조종소는 공장의 첨단생산을 종합지휘할수 있는 설비로 꾸려지는 곳이다. 소회의실이라고 할수 있는 장소에 모인 많은 기술자들을 보니 가슴이 그들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