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9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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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차 방송에서 12시를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자 중대방송이 시작되였다. 담배를 어디에 건사했는지 몰라 바지주머니며 솜옷 여기저기를 더듬던 김중건은 손짓을 그만두었다. 왜 그런지 방송원의 목소리가 전과는 달리 아주 침중하였기때문이였다. 깊고깊은 심연에서 울려나오는듯한 그 목소리는 그 어떤 이름할수 없는 크나큰 비애에 젖어있었다.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
우리의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시였으며 사회주의조국의 강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나라의 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불철주야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던 우리의
…》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왔다.
(이게 무슨 소린가?!)
중건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내가 잘못 들었는가. 아니, 아니다. 내 머리가 잘못되지 않았을가.)
한참만에야 정신을 수습한 그는 천천히 발을 옮겨디디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시뿌연 눈발속에 북문정문이며 그너머로 보이는 행정청사, 그옆의 련합당위원회청사 그리고 행정청사며 청년선제직장앞에 드러누워있는 대동강도, 그우에 떠있는 짐배들, 모든것이 무정할 정도로 있는 그대로였고 무정할 정도로 평온한 분위기였다.
(아니, 내가 잘못 듣고있어. 그러나 방송원의 목소리는 계속 울리고있지 않는가.)
《
…》
(아니야, 아니야. 그럴수 없어.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수 없어.)
김중건은 고집스럽게 완강하게 부정하였다. 그러나 방송원의 비통하고 처절한 목소리는 계속되고있었다.
《…
그다음 울리는 추도가의 선률. 그다음 공훈국가합창단이 부르는 비장한 노래 《적기가》 …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기발을
그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
순간 고요하던 기업소구내며 북문밖은 사처에서 불시에 터져나온 곡성으로 차고넘쳤다. 참모부청사, 당위원회청사, 정양소, 구내의 행정청사,
직장들, 곳곳에서 사람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쏟아져나오고있었던것이다. 기업소로 들어오는 굽이의 나지막한 둔덕에 모셔진 모자이크벽화, 전후 기업소에
찾아오시여 황철의 로동계급과 함께 복구건설의 설계도를 그려주시는
그처럼 규률있고 전투력이 있던 황철의 로동계급이였다. 그처럼 듬직하고 억세였던 황철사람들이였다. 했으나 너무도 갑자기 들이닥친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에 이들은 지금 이 시각 넋을 송두리채 잃고 몸부림치고있었다. 온 기업소가 사품치는 슬픔의 바다에 잠겨 태질하며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지배인동지! 이건… 이건 뭐나요?!-》
눈물범벅이 되여 이지러진 함승일의 안해의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중건은 그 녀자가 옷깃을 마구 잡아흔드는대로 몸을 맡긴채 망연자실하여 서있기만 하였다.
《이보우, 지배인!》
이번에는 성남아바이의 격하디 격한 음성, 울음을 씹어삼키며 부르짖는 목소리가 귀전을 친다.
《이게 무슨,
얇아질대로 얇아진 야전솜옷, 보풀이 인 장갑, 환히 웃으시는
…
《난 요즘 황철이 구실을 한다는걸 들으니 기분이 좋아. 날 만나 기쁘겠는데 눈물은 무슨. 동무의 심정을 알겠소. 념려해주어 고맙소.》
《지배인이
《사고로 의기소침해진 사람들을 들어일구자면 동무부터 먼저 일어나야 돼. 지배인부터 서슬푸른 각오를 품고 일에 접어들어야 사람들이 따라서오. 알겠나?》
《출장길에서 신발을 잃어버렸다지. 급히 가져왔는데 맞는지 모르겠소. 한번 신어보라구.》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지배인이 무쇠같이 강한 사람으로 알고있었는데 무슨 눈물이 많은가. 하긴 쎈 사람들이 눈물이 많지.》
(그러니까 우리
불덩이같은것이 꿈틀꿈틀 계속 치밀어오른다.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무치는 억울함과 비통한 심정에 가슴이 미여진다. 온몸이 와들와들 떨린다.
《
김중건은 몇발자국 떼다가 멈춰섰다. 그리고는 얼이 나간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와- 울음을 터뜨리였다. 두손을 마구 내저으며 벽력같이 소리소리 웨쳐불렀다.
《못가십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슬픔의 바다가 일으키는 대성호곡의 격랑속에 빠져들어 가뭇없이 사라져버리였다.
구내며 북문밖은 여전히 황철의 로동계급 아니, 이 나라 인민이 피를 뿜어 터뜨리는 비통한 울부짖음의 격류가 사품치고있었다. 무심한 12월의 하늘도 그 정상이 눈물에 겨워서인지 눈발을 삼가 정히 드리우는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