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제 3 장

사랑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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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일이 생각났다. 그날 신형일은 현장을 돌다가 가공직장으로 방향을 꺾었다.

조현숙은 양어장문제를 제기하면서 온실문제까지 꺼냈다.

무슨 온실인가고 했더니 이제부터 공장에서 꽃이 필요하면 자기네 직장에서 보장하려고 화초온실을 꾸린다는것이였다. 그런 좋은 일을 왜 직장에서만 하겠는가고 했더니 어느새 기초를 다하고 한쪽벽을 다 올렸다는게 아닌가. 이제 웃설미를 하고 비닐박막만 치면 순수 태양열을 리용하는 온실이 완성된다고 했었다.

이제라도 도울 일이 없는가 해서 온실을 찾던 신형일은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그만.》 하는 소리에 노래가 끊어지자 《감정을 잡아서 절절하게 해야지, 다시.》하는 목소리의 임자는 뜻밖에 조현숙이였다.

아니, 온실을 짓는다면서 노래련습을 하다니, 신형일은 솟구치는 호기심에 소리나는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노래는 건설중인 온실안에서 들려오고있었다. 기웃해보니 손풍금을 멘 조현숙의 지도밑에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아니, 갑자기 노래련습은 왜 하오?》 신형일은 이렇게 물으면서 온실안으로 들어갔다.

《비서동지,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정식 제기합니다.》 조현숙이가 기다리기나 한듯 반색하며 일어섰다. 방금전까지 일하던 차림인지 머리엔 수건을 쓰고 작업복을 입은채였다.

《아니 글쎄 이 동무가…》 하며 그가 앞에 서있는 처녀를 가리켰다. 노래부르던 처녀가 나부시 인사를 하며 슬그머니 뒤걸음질을 했다.

《우리 직장의 독창가수인데 기동대에 뽑혀가서는 몇십명되는 합창대에서 한마디만 한다는게 아닙니까. 그런 <옳소배우> 나 하라고 이렇게 바쁜 때 기동대에 추천한줄 압니까?》 조현숙의 항의였다.

《<옳소배우>란건 또 뭐요?》

신형일은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물었다.

《영화에 출연해도 주역은 못하고 그저 호응하는 의미로 옳소, 옳소 한마디만 하는 그런 배우 말입니다.》

허 하고 웃음이 터질 일이지만 조현숙의 표정이 하도 심각해서 웃음이 쑥 들어갔다.

《그래서 본때를 보이려고 련습을 하고있습니다. 비서동지가 한번 들어보십시오.》

신형일은 난처했다. 온실건설정형을 알아보러왔는데 왕청같이 노래 심판관이 되는셈이였다.

《자, 잘 불러봐요, 진짜 무대에 나온것처럼. 감정을 잡아서, 그렇지, 나온다. 인사를 하고…》

조현숙이가 진지하게 손세를 써가는대로 처녀가 사뿐사뿐 걸어나와 얌전히 인사까지 했다. 손풍금반주소리가 시작되면서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얀 돌우로 구슬같은 물이 흐르는듯한 목소리였다. 감정을 잡아서 절절하게 부르는 바람에 신형일은 저도 모르게 끌려들었다.

우리 공장에 저런 명창도 있었는가 하는 놀라움속에서 신형일은 3절이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고 음악세계에 잠겨들어갔다.

그 이후 정말 부비서와 기동대대장까지 감복시킨 그 처녀는 독창을 해서 재청까지 받았다. 그가 독창가수로 소문을 낸데는 조현숙의 정열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었다.

갑자기 《자, 어서들 들어요. 지금같은 삼복철엔 단고기이상 없어요.》 하는 조현숙의 목소리에 신형일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그는 한옆으로 조현숙을 불러냈다.

《동무넨 양어장건설은 어떻게 하고 여기 지원까지 다 왔소?》

《건설두 하고 지원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선선했다.

《직장장동무, 양어장건설을 다그칩시다. 석축하는데 필요한 돌문제는 지배인동지가 다 맡겠다오.》

《그렇습니까?》

《그런데 말이요, 양어장을 운영하는데서 양어기사까지 있으면 얼마나 좋겠소.》

《거야 더 말할게 있습니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조현숙이가 기대어린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직장장동무, 춘영동무를 따라다니는 사람 말이요, 그가 양어기사 아니요?》

《정말이네.》 그제야 조현숙이 생각을 하고 눈을 반짝 빛냈다.

《참, 지금 그들 관계가 어떻소?》

《춘영동무가 여전히 택택거립니다.》

《그렇다? 거 무슨 방법이 있어야겠는데. 이왕이면 양어두 하고 그들의 마음두 맞게 하구, 양어기사가 우리 공장에 있으면 양어장이 정말로 은이 날거란 말이요.》

《비서동지, 제가 좀 만나보겠습니다.》

아닐세라 조현숙이 선뜻 나섰다.

《난 직장장동무를 믿소.》

조현숙은 념려말라는듯 웃어보이며 한창 배식을 하고있는 직장의 녀성들에게로 뛰여갔다. 행동도 한창나이의 젊은이들같았다.

신형일은 작업장을 돌았다. 그때마다 설혹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어도 일일이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보조작업이 끝나자 신형일은 긴장해졌다.

이제부터는 액체배양탕크조립을 하기때문이였다. 그는 기계조립의 마지막작업을 눈여겨보다가 가까운 곳에 있는 공무직장장을 불렀다. 신형일은 그에게 곡관이며 후란지는 넉넉한가를 물었다. 여느때는 슬슬 능글맞게 놀기 잘하는 직장장은 그 말에 정신이 들어 창고로 간다면서 바람새듯 작업장을 빠져갔다.

신형일은 걸죽한 로동자들의 롱담은 못들은척 지나치기도 했지만 작업공정만은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잠시후에 직장장과 기사장이 자재창고장과 함께 나타났다. 발효제작업장에서 제기된 일을 처리하고 나오던 기사장은 직장장을 만나 같이 왔다면서 또다시 작업장을 돌았다.

조립작업을 하는 동안 신형일은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고 제관공들과 같이 있었다. 그러는중에도 준비작업을 하던 지원자들을 다 돌려보냈다.

마침내 조립작업이 끝났다. 이젠 용접을 할 일만 남았다.

공무직장장이 용접공들을 깨우러 가려는것을 알아본 신형일은 《가만, 아직 그들을 깨우지 말고 미흡한것이 없는가를 확인해보오.》 하고 멈춰세웠다.

공무직장장이 탕크의 여기저기를 다시 확인하느라 돌아갔다.

《기사장동무, 한번 더 확인합시다. 이제 용접을 하고나면 발효제탕크조립은 완성이요. 그러나 조립이 제대로 됐는지 시험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심할수 없소. 미세한 틈이라도 있어서 새는 부위가 있으면 다시 해체하고 조립해야 하잖소.》

신형일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하는데 기사장은 뻔히 보고만 있었다. 자기 말을 알아듣기는 했지만 그 방도를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 신형일이 이번엔 자재창고장을 불렀다.

《창고에 뼁끼가 있소?》

《어떤 색 말입니까?》

《색은 관계없소.》

《회색뼁끼가 있습니다. 》

《역삼은 있소?》

《역삼 말입니까?》

창고장이 어리둥절해서 바라보기만 했다. 창고장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기사장도 무슨 영문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사이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일도 아니였다. 결속한 일은 두번다시 손을 대지 않게 맵시나고 깨끗하게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신형일은 머리속으로 다시한번 최종시험작업을 할것을 생각했다.

문득 언제인가 안해가 하던 말을 상기한 신형일은 뒤켠으로 비켜서며 손전화기를 꺼냈다.

오늘따라 별로 늦게 퇴근하여 바삐 돌아가던 성심은 남편이 걸어오는 손전화기소리에 의아해졌다. 분명 현장에서 거는 전화인데 이 시간에 손전화를 걸어오는 때는 없었던것이다.

전화를 받으니 남편은 역삼소리를 했다. 역삼이라니 무슨 역삼인가고 물으려는데 이제 차를 보낸다는 말을 남편이 먼저 했다.

성심은 얼떨떨해졌다. 그러나 무엇때문에 차를 보낸다는것인지 생각할 사이도 없이 앞치마를 벗고 급히 층계를 내려갔다. 정말 큰거리에 낯익은 승용차가 보였다. 다가가자 문이 열리며 처음보는 우둥퉁한 사람이 내렸다. 공무직장장이라고 했다.

성심은 한껏 당황해졌다. 남편이 안오는줄 알았으면 옷이라도 바꿔입었을걸. 그는 머리수건을 황황히 벗어 뭉그리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어서 타십시오.》

《?!》

성심은 어리둥절해졌다. 타라니, 어디 가려는가?

《아니, 비서동지가 무슨 말씀 없었습니까?》

《아니, 그저 이제 차가 간다는 말…》

《허참, 그렇다니까. 자, 어서 타십시오.》

성심은 영문도 모르고 뒤좌석에 올랐다. 차는 인차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비서동진 역삼을 가지고 운영하는 한증탕이 있다면서…》

《예?》 성심은 여전히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제야 직장장이 루루이 설명했다.

《공장에서 역삼을 써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비서동지는 자리를 뜰 형편이 못되고 그래서… 이거 바쁘시겠는데 안됐습니다.》

그제야 성심은 언제인가 자기가 역삼을 리용해서 한증탕을 운영하는 동무이야기를 한걸 상기했다. 그는 이마로 내리드리워진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곧추 가자요.》하고는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처음보는 직장장이라는 사람앞에서 허둥거린 자기의 모습을 보인것이 부끄러워났다. 자기에게 구체적인 사연을 말하지 않은 남편이 이 순간처럼 야속해난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앉은자리가 편안치 않았다.

《이거 바쁘시겠는데 안됐습니다. 참, 아버님건강은 어떻습니까?》 앞좌석에 앉은 직장장이 바쁘겠다는 말을 곱씹으며 이렇게 물었다.

《일없습니다. 요즘은 식사도 잘하십니다.》

성심은 머리를 숙인채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그것으로 대화가 끊어지고 차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직장장이라는 사람도 언변이 능하지 못한편인지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차창밖을 내다보기만 했다. 이럴 때는 자기라도 무슨 말이든 해야겠는데 도무지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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