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 회)
제 4 장
37
(1)
산천초목마저 비분에 몸부림치고 하늘마저 슬픔에 잠겨 눈발을 거둘줄 모르던 12월의 그날, 우리 인민은 참으로
그러나 피눈물속에 흘러간 그 나날 우리 인민이 자기를 다시금 억세게 가다듬은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랬다.
미국을 괴수로 하는 반공화국적대세력들의 로골적인 군사적위협과 횡포한 경제적제재를 쳐갈기는 투쟁을 동반하고있는 전인민적인 이 총결사전의 선두에는 황해제철련합기업소의 로동계급도 서있었다.
황철의 로동계급은 2012년부터 2015년어간에 3변전소확장공사, 장천역-주체철직장구간의 전기철도화공사, 송전선건설, 레루용강편련속조괴기설치공사, 강판련속조괴기설치공사, 중량레루완성직장개건공사, 무연탄선별공정건설, 여러기의 가스발생로를 건설하여 청년선제, 조강, 후판압연가열로들에 고온공기연소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공사들을 깨끗이 매듭짓는 성과들을 거두었다.
특히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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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새벽이였다. 집을 나선 김중건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나서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첫새벽이여서 그런지 종업원사택지구마을은 불빛 한점 보이지 않는다. 다만 길건너 부비서네 집창문이 금방 환해진다.
(새벽잠이 없기도 하거니와 독서를 즐기는 령감이니 일어나 손에 책을 든 모양이군.)
김중건은 시뭇이 웃음을 그리며 둔덕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엊그제 만났을 때 마지막시험은 언제 하게 되는가고 물어 아직 준비가 안되여서 새해에 들어가서나 할 작정이라고 말해주자 《낌새를 보니 이달중에 잡도리를 할것같은데.》라고 하며 미심쩍어하던 부비서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기때문이였다.
부비서령감으로서는 직책상으로 보나 황철에서 잔뼈가 굵은 토배기경력으로 보나 이 마지막시험이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닐것이다.
그럴만도 하였다. 며칠전 김중건은 외국출장을 앞두고 련합당책임일군과 마주앉아 장시간 협의를 하였다. 기사장 함승일(적십자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고나서 1년동안 료양치료를 하고 돌아온 그는 한해전부터 기사장으로 사업하고있다.)과 림성남아바이(그 역시 한해전부터 설계연구소 소장으로 사업하고있다.), 리원로장과 한정된 용해공들로 결사대를 조직하며 시험은 비밀에 붙여 조용히 진행하되 당일날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외인은 철저히 불허한다는것이 협의의 골자내용이였다. 종전과 다르게 용광로에 산소취입을 배로 증가해서 시험을 하게 되므로 비록 콤퓨터모의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증명하였다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장담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당책임일군과 지배인의 요구대로 결사대성원들은 기사장의 지휘밑에 시험준비를 착실하게 소리없이 완전히 끝내였다.
주체철용광로직장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은 기업소의 웬만한 사람들은 모를수 있어도 부비서령감과 같은 황철토배기들의 눈은 속일수 없었다. 부비서처럼 이러저러한 기회에 마지막시험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였다.
중건은 불이 환한 그 집창문을 한번 돌아보고는 혼자소리로 뇌이였다.
(시험에 참가하여 생사를 같이하려는 마음은 더없이 고마운 일이지만 나로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한 오분가량 걸어 둔덕을 내린 그는 문화회관앞을 지나 남문으로 향하였다. 앞쪽에서 전조등빛을 내쏘며 여러대의 대형화물차들이 달려와 남문쪽으로 꺾어들어간다. 갈천에서 오는 차들일것이다, 시험에 쓰게 될 석회석을 실었을것이고 아버지도 한생 저렇게 부원료를 실은 차를 끌고 갈천광산에 나들었었지.
불현듯 드는 아버지 생각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지나간 일들이 꼬리를 물며 두서없이 계속 뒤따르는것이였다. 차를 세워놓고 물길으러 집에 들렸다가 아들이 수학공부하는 모습이 너무나 대견스러워 뒤에 서서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아버지, 송림공업대학을 졸업한 날 돋보기에 확대경까지 받쳐들고 졸업증의 과목성적란을 까근하게 읽어보며 기뻐서 어쩔바를 몰라했던 아버지가 아니였던가. 가지가지 추억중에서 깊이 남아있는것은 5평방식산소열법용광로시험에서 성공한 날 《세상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술을 부어주는 례는 없다마는 그러나 오늘은 너에게 내 한잔 붓는다. 네가 우리 가문에서 나라에 제일충신이여서 그런다.》라고 말씀하며 술병을 기울여주던 아버지의 모습이였다.
평소에 술이란 입에 전혀 대지 못하던 아버진 그날 주체철이 성공했다는 기쁨에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넉잔이나 마셨었지. 그리고는 노래 《철의 도시 밤하늘에 붉은 눈이 내리네》를 두번씩이나 불렀고. 그다음엔 차례로 돌아가며 우리 대가정이 모두 노래를 불렀다. 재명이 엄마는 그때 무슨 노래를 불렀던가.
처에게로 생각이 미쳐가자 김중건은 안해에게 못내 미안하였다. 일군의 안주인은 누구나 큰 병을 가지고있다는 말이 있다. 너무 편안해서 앓고 또는 남편 걱정으로 앓는다고 하는데 김중건이네는 두번째 경우에 속한다고 볼수 있었다. 이런 안해에게 결혼생활을 하면서 말이나마 언제한번 따뜻하게 해본적이 있어보았던가.
중건에게 있어서 집은 일종의 출장소나 다를바 없었고 때에 따라서는 기업소를 위한 혹은 동지들을 위하는데 필요한것을 내가는 저금소나 상점매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랬으나 안해는 남편이 언제 들고나는지 알수 없었어도 그것을 습관으로 굳히였으며 애오라지 그의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며 이날이때껏 묵묵히 뒤바라지해온 녀성이였다.
이 새벽에도 외국출장차로 평양에 간다더니 갑자기 마지막시험에 무조건 참가해야 한다면서 문을 나서는 남편을 말없이 그리고 불안에 찬 눈길로 바래우던 안해였다.
김중건은 가슴이 쓰려나 걸음을 멈추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담배 한대를 태우고나니 속이 어느 정도 위안이 되는듯싶었다.
정문경비초소건물우에 설치한 커다란 투광등덕분에 남문주변은 환하였다. 김중건이 막 남문을 통과하려는데 중량레루직장옆도로를 타고 반짐차 한대가 달려오는것이였다. 초소앞에 멈춰선걸 보니 련합기업소 대보수사업소차였고 조수석에는 중키에 어느때 봐야 이마가 반들거리고 두볼에 홍조가 비껴있는 부지배인이 앉아있었다. 가스발생로직장에서 한창 로를 보수하고있는중이였는데 아마 거기서 오는 길인것같았다.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켜던 그가 이쪽을 보더니 황황히 옷거두매를 하며 얼굴에 반색을 짓는것이였다.
《아, 지배인동지십니까? 외국출장 떠난다더니 이 새벽에 어딜 이렇게 가십니까?》
《음, 기업소를 돌아보려구 그러오.》
《저, 지배인동지, 그걸 아십니까?》
김중건은 혹시 주체철시험과 관련된 일이 아닌가 하여 긴장하였다. 부지배인은 기업소일군들속에서 소식통으로 불리우는 사람이였다.
《뭘 말이요?》
《내각회의에서 해임철직된 신석진부
《알고있소.》
《흠- 속이 들여다보이는 제기지요.》
김중건은 사납게 눈을 치떴다.
《그런 억측은 그만하고 밤을 샌것같은데 빨리 가 눈이나 붙이우.》
제 말에 솔깃해할줄 알았던 지배인에게서 뜻밖의 무안을 당하자 그는 얼굴이 벌개가지고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김중건은 곁을 지나는 반짐차를 외면한채 없는 목의 이물을 연신 톺아올리였다. 신석진이 합영투자위원회 부
검열이 끝나 제자리로 돌아오던 보위대원들이 중건이를 알아보고 거수경례를 한다. 첫새벽에 지배인이, 그것도 차도 없이 나타난것이 이상해보였는지 그들은 의아쩍은 기색을 짓고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지배인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지배인동지.》
문을 지나쳐가다가 몸을 돌리니 초소장완장을 낀 보위대원이 그를 부르는것이였다.
《안녕하십니까?》
《너 강기사 아들이구나.》
김중건은 반색을 하며 철호의 인사를 받았다.
《한데 왜?》
《전번에 제기했던 문제 좀 생각해보셨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신 두번인가 사무실에 찾아왔던 생각은 났다.
《뭘 제기했던가?》
《김책공업종합대학에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 그렇지. 이자 생각나는구나. 공부하겠다는거야 좋은거지. 가만, 그때 내 뭐라고 했던가?》
《앞으로 장가도 가야 하고 더우기는 현장에서 입당도 하면 좀 좋은가고 했습니다.》
《응, 그랬더라? 한데 어째서 한사코 대학공부하겠다 그러나?》
《전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겠습니다. 이건 어머니의 뜻이기도 합니다.》
눈앞이 탁 흐려온다. 김중건은 철호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그럼 애초에 그것부터 먼저 이야기해야지. 자식두 참, 알았다, 알았어. 어머니가 바랐고 네 소원이 그거라면 얼마든지 풀어줄수 있다. 그래 공부를 하거라, 내 도와주마.》
《고맙습니다. 지배인동지.》
《고맙긴,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건데. 내가 외려 고맙구나. 강기사두 아마 아들이 자기뒤를 이어 주체철연구에 들어선다는걸 알게 되면 맘을 놓을게다.》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가. 글쎄 대끝에서 다른게 나올수야 없지. 강기사의 아들과 헤여져 걷는 동안 중건은 내내 이런 생각에 잠겨있었다. 강철의로 말하면 몸이 약한데다가 말수더구가 적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 소박한 사람이였다. 그런데 다름아닌 이런 사람이 위기일발의 순간에 우구앞에 서있던 두명의 로동자를 밀쳐내 구원하고 희생되였다.
(방금전의 그 부지배인이라면 그런 시각에 강기사처럼 행동할가. 머리가 좋고 언변이 청산류수이며 리해관계에 눈이 밝은 부지배인, 만일 이 사람을 사고위험이 조성된 그 시각에 용광로앞에 세워놓으면 어떻게 행동할것인가.)
《여보 황철지배인, 같이 일하던 일군 시련겪으면 도와줘야 돼. 도와준다는게 뭔가? 우선 길바닥에서 만나면 모르는체하지 말아야 돼. 내 시련을 겪을 때 보니 딱 세번 인사를 합데. 첫번째는 전직감정을 가지고 두번짼 도덕적감정으로, 담엔 마지못해 하고 네번째는 모르쇠야.》
(누가 그랬던가. 아, 그렇지. 락원기계련합기업소 지배인령감이 한 말이였지.)
중건은 몇년전에 있은 용광로사고직후에 겪은 일이 다시금 회상되였다. 그는 세밤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부지배인과 세번째로 마주쳤다.
한번은 기업소에서 만났는데 모자를 벗으며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배인동지, 신색이 몹시 나쁩니다. 너무 속을 썩이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두번째로 만난것은 로동과에서였는데 저 사람은 아무말없이 눈인사만 하였다. 뭐 세번째는 마지못해 인사를 한다구? 이 사람은 세번째만에 날 아예 외면하지 않았는가. 이런 사람은 절대로 강기사처럼 행동하지 못할것이다.)
김중건은 부지배인을 두고 정의를 내리였다. 표리부동한 인간이란 얼마나 치사하고 무서운 인간인가. 리해관계에 따라 이들은 권세에 아부하고 때에 따라서는 신의같은것은 헌신짝처럼 줴버린다.
중건은 신석진을 놓고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였다. 그가 어떤 사람이였던가. 석진이 처음부터 이런 인간이였던가. 그러자 총각시절에 석진이며 함승일이와 함께 평로에서 일할 때 있었던 하나의 사실이 회상되였다.
신석진이 속증이 있는데다 밤낮 평로앞에서 일하다보니 워낙 약했던 몸이 아예 연필대처럼 되여버리였다. 김중건이와 승일은 보다못해 큰 염소 한마리 잡아서 그에게 엿을 해주기로 약속하였다. 둘이서 헐금씨금 엿을 만들어 커다란 밥국통에 하나가득 담아 정작 앞에 내놔주니 신석진이 왁 하고 빈 구토를 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손을 마구 내저으며 썩 가져가라고 소리치는것이였다. 알아본즉은 염소를 슬라크우에 올려놓고 빙빙 돌려가며 《옷》을 태워버리는 일을 목격했더니 구토감이 나서 입에 대지 못하겠다는것이였다.
이러했던 신석진이였는데 큰 일군이 되더니 비위가 간단치 않게 생겼다. 나라돈, 나라자원이 어떻게 생기는지 모르면서도 척척 돌려쓰고 내주고 하더니 나중엔 엄청난 죄를 짓는데까지 이르렀다.
김중건은 신석진이에게도 조국을 위하여 힘껏 일해보겠다는 나름의 일념이 있다고 보고있었다. 그런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며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인것이다.
석진이 변하게 된것은 다른데 있지 않다. 그가 솔직히 털어놓았듯이 공명과 출세에 눈이 어두워 실적쌓기에 열을 울렸기때문인것이다. 그러다나니 석진은 개별적간부를 우상화하면서 맹종맹동하게 되였고 훌륭한 맏딸앞에 머리를 들수 없는 아버지로 된것이다.
그랬어도 중건은 그 역시 자기들과 한길을 걸어야 할 사람이 분명하므로 그가 선택한 길을 진심으로 환영하고싶었다.
석진이 내려오면 동지로서, 벗으로서 새 출발을 잘 떼도록 할수 있는 힘껏 도와줄 작정이였다.
용광로직장에 도착한 중건은 전처리공정을 돌아본 다음 곧바로 주상에 올라갔다.
《지배인동무 아니요?》
광재길어방에 서서 용광로가
《어떻게 된거요?》
김중건은 다가온 승일의 손을 한번 꾹 잡았다놓았다.
《지금 내가 가있어야 할덴 외국이 아니라 여기야. 됐소, 그래 준비는 다됐나?》
함승일은 감동어린 기색을 지워버리며 본래의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다됐소.》
《련속장입으로 두 차지는 뽑아봐야 돼. 그래야 모든 기술지표들을 확정할수 있소.》
시간이 되여오자 출선을 알리는 랑랑한 종소리가 용광로동음속을 뚫고 현장 여기저기로 퍼져갔다.
종합조종실에 앉아 산소취입상태를 지켜보던 김중건은 승일과 함께 문을 나섰다. 그리고는 현장바닥에 내려가 용해공들과 더불어 쇠장대를 틀어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