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 회)
제 3 장
사랑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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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달동안의 전투끝에 오리먹이수송은 끝났다. 드디여 공장에서의 큰 공정이 마무리되였다.
며칠후 회관에서는 총화모임이 크게 벌어졌다. 계획한대로 노래경연과 수송전투를 함께 총화지었다.
조현숙이가 책임진 조가 단연 일등이였다. 이런 이악쟁이기때문에 그와 한조가 되려고 했고 다른 직장들에서는 은밀히 뒤공작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가공직장과 늘 한조가 되기는 힘든 일이였다.
공장에서는 1등에는 텔레비죤과 후방공급표를, 2등에는 록화기와 후방공급표를, 3등에는 마안산담요와 후방공급표를 각각 나눠주었다.
후방공급표에는 창고에 랭동했던 오리고기와 알을 등수별로 차이나게 공급하게 되여있었다.
공장구내는 명절분위기에 싸여있었다. 집체적으로 텔레비죤수상기를 싣고가는 가공직장이 제일 볼만했다. 소형운반차에 텔레비죤수상기며 상품들을 싣고 직장종업원들이 줄레줄레 따르며 웃어대고있었다.
당사자들은 물론이겠지만 그것을 보는 박순배의 마음도 제일처럼 기뻤다. 새로 온 당비서에게 조현숙을 직장장으로 추천하고서도 그가 구실을 못할가봐 은근히 가슴을 조였던 그였다. 물론 조현숙이가 이 고장으로 선뜻 발을 짚게 된것이 자기탓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조현숙이가 이 영광의 고장에 자리잡고 직장장사업을 훌륭히 제끼는것을 보니 자기 일처럼 기뻤다.
무슨 일이든지 선뜻 나서서 해제끼는 정열과 지칠줄 모르는 투신력은 녀성들이 태반인 공장의 실정에서 누구나 비춰보는 거울이 되군 했다.
박순배는 천천히 구내를 지나 야적장으로 향했다.
새파란 지붕을 인 번듯한 야적장은 멀리서부터 눈에 잘 띄웠다. 그전날의 이곳은 널려있는 오리먹이와 정선하는 먼지가 쌓여 꼭 어스크레한 창고같았는데 지금은 깨끗이 쓸어놓은 아침마당처럼 정갈했다. 마침 어디에 갔댔는지 후문으로 당비서가 들어서고있었다. 그를 보니 야적장건설을 제기할 때 놀라던 일이 생각났다. 이제라도 자기반성을 해야 마음이 깨끗할것같았다.
《야적장을 보니 꼭 미끈한 미남자를 보는것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미남자?! 허, 멋진 표현이구만요.》
당비서도 따라웃었다. 사뭇 만족한 표정이였다.
《난 솔직히 야적장건설문제를 제기할 때 놀랐습니다. 아니, 어쩌자고 저런 결심을 하나, 저러다 못하면 큰일인데 하고 걱정했다니까요. 공연한 로파심이였지요. 이렇게 야적장에 그득히 쌓아놓으니 농사군이 한해농사를 지어놓은것과 같이 흐뭇합니다.》
박순배는 진정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우린 아직 기술적전진은 못하고있습니다.》
당비서가 부정이나 하듯 가늘게 한숨을 내쉬였다.
《지금 발효반에서 한창 전투를 하고있지 않는가요?》
《기사장동무가 힘을 좀더 내야 하겠는데, 아직도 기사장에게 너무 부담이 많은게 아닐가요?》
《부담이라구요? 건설담당에서 떼고 전문 기술자들과의 사업, 기술문제만 하게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가요. 솔직히 기사장동문 이번 수송전투에서도 제외시키지 않았는가요.》
《…》
당비서는 잠시 말이 없이 저 멀리 정문쪽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요전날 기술총화이후 별로 전진이 없어서 그럽니다. 그 준비는 잘했는데 어째서 그러고있는지.》
당비서가 납득이 안가는지 머리를 기웃거렸다.
박순배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 당비서는 요전날의 기술협의회를 두고 기사장을 기대하고있다. 그러나 엄연히 그 준비의 기초는 다 자기의 기술자료가 전적이였다고 말할수 있다.
우덕진은 그것을 천호의것과 합해서 자기의것으로 만들었다. 박순배는 이것을 나쁘게 생각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기사장이 발동이 걸리기를 바랄뿐이다. 종당에는 공장의 현대화를 위한것이고 다 합해져서 공장의 현대화에 이바지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저 마음속으로 그전날의 책임기사시절처럼 머리를 쓰고 자기 사업에 투신하면 더 바랄게 없었다. 그런데 가만보니 당비서는 우덕진의 전번 기술배치도를 다 그의 착안처럼 여기고 그를 너무 믿는것같았다.
이제 와서 그런게 아니라고, 그것은 자기의 기술착안의 복사라고 말하는게 너무 유치한것같아 어물거리기만 했다. 어느때든 자기가 한번 따끔하게 말해줄 생각을 하면서.
《너무 걱정마십시오. 이제 일이 다 잘될겁니다. 조직사업을 했으니 각 조들에서 마력을 낼겁니다.》
《제일 걱정은 천호네 조입니다. 기대가 컸는데…》
박순배는 말끝을 흐리는 당비서의 목소리에 그만 난감하여 마른침을 삼켰다.
자기의 마음 역시 당비서와 다를바 없었다. 그 강수려라는 처녀연구사가 사라지자 그 조는 김빠진 공처럼 후줄근해졌다.
박순배는 가끔 강시연을 보군 했다. 그러나 별로 할 말은 없었다. 이미전부터 면식은 있었지만 공장에 내려온 다음부터는 거리가 가까와진 대신 관계는 오히려 멀어진것같았다. 그가 기가 죽지 않고 여전히 고개를 쳐들고다니니 마음이라도 편안했다. 그러나 그의 딸을 보고난 다음부터는 마음이 달라졌다.
그를 보면 소리없이 스며드는 향내를 맡은듯 기분이 뜨군 했다.
차림새도 치장도 특별하게 하지 않는데 그에게서는 연연한 향기가 풍기였다. 종종걸음치는 바쁜 걸음, 침착하면서도 사색적인 자세와 탐구가 어려있는 그의 행동거지를 보면 자연 무엇인가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이 앞서군 했다. 실제로 천호와 진지하게 토의하고 실험작업을 같이하는 그들의 모습은 물우에 둥둥 뜬 한쌍의 물오리를 보는것처럼 박순배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런데 졸지에 천호가 외오리신세가 되였다. 박순배는 처음 차학선건을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강시연이라는 소리에 그만 아연했다.
어쩌면 공교롭게도 눈앞에서 진귀하고 무늬령롱한 도자기가 깨여져나간것처럼 그지없이 아쉬워났다.
《아니, 이게 눈이 아닌가요?》 갑자기 당비서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흰눈을 받으며 돌아섰다. 마치 눈을 처음 보기나 한것처럼 신기해하는것을 본 박순배도 들떠나 손바닥에 눈을 받았다.
《맞습니다. 첫눈입니다.》
《첫눈을 맞으니 마음이 이상해지는군요. 한해를 총화짓게 되고 또 이 겨울에 할 일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하고.》
그들은 잠시 말없이, 소리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제나름의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