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 회)
제 3 장
사랑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흐르는가
13
오늘 신형일은 자기가 계획한대로 시외에 있는 타조목장으로 떠났다. 타조목장에서 단백곤충을 잘 리용하는 경험을 보러 가는 길이였다. 가는 길에 차천호를 데리고 떠났다.
신형일은 무엇이나 좋다는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보러 갔고 공장에 도입하는 일을 철칙으로 삼았다.
얼마전에
아닐세라 빨리 시당에 오라는것이였다.
신형일은 차를 급히 되돌려세워 시당으로 향하게 했다.
시당책임비서의 방으로 가는 그의 마음은 초조해났다.
《어서 오오.》 시당책임비서가 반갑게 맞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동무가 제기한 문제가 론의되였소. 기사장시기 한 일들을 다 검토했다오.》
《그렇습니까. 빨리 결속해주십시오.》
신형일은 눈앞에서 그 문제가 부결이나 된것처럼 책상앞으로 바싹바싹 다가들었다.
《우리는 그를 다시 공장에 정식 받아들여 기술고문으로 임명하려고하는데 그가 한 일들을 검토로만 끝나면 곤난합니다. 그는 지금 공장에서 년로보장자들로 조직된 집필조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시험사업을 하고있단 말입니다. 》
신형일은 이렇게 선코를 떼고 처음 그를 만나던 이야기를 했다.
《전 그때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나오는걸 가까스로 참았습니다.
누가 시키면 그렇게 극성이겠습니까. 지금 그의 나이가 몇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신형일은 정말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것같아 연방 눈을 슴벅이며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강가에서 물풀을 건져내던 얘기며 방안에 오리들을 들여놓고 시험사업을 하고있는 사실을 빠짐없이 렬거했다.
《허 동무두, 꼭 자식같구만.》
《전 정말 남처럼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래, 아버지처럼 생각된단 말이지?! 그게 중요하지, 그게 중요하구말구.》
무엇인가 생각하는가싶은 시당책임비서의 말에 신형일은 가슴이 찌르르해나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 자료를 다 종합해서 올려보내오, 빨리. 그의 경력과 지금 하고있는 일들을 더 구체적으로 써서 보내오.》
《알았습니다.》
마음이 개운해진 신형일은 이렇게 대답하며 가방을 집어들었다.
《음, 이렇게 선자리에서 보내누만. 이젠 독판친다는 말은 안듣겠지?》
시당책임비서가 이번엔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았다.
신형일은 그 말에 아무 대답을 못하고 면구해서 머리칼을 올려쓸기만 했다. 물론 그 문제에 각별한 주의를 돌려 지배인을 비롯한 행정일군들을 내세우느라 하지만 아직도 자기의 사업에서는 부족점이 많다는것을 인정하고있기때문이였다.
시당책임비서와 헤여져나오니 그사이 내리던 눈은 멎고 어느새 가는 비발로 이어지고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왔는지 시당청사앞은 온통 물천지였다. 그런데도 천호가 차안에 앉아있지 않고 밖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무엇인가를 예감한 천호의 표정이였다. 그의 솜옷어깨와 잔등이 축축히 젖어있었다.
《비를 맞으며 왜 이렇게 서있소?》 하고는 그앞에 다가갔다.
할 말을 가득 입에 문채 올려다보는 천호의 눈가에는 간절한 기대가 어려있었다. 그가 바짝 마른 입술을 감빨며 조심스레 비쳤다.
《저, 우리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음, 아버지문제를 얘기하느라 좀 늦었소.》
신형일은 그의 잔등을 어루쓸어주었다.
《비서동지!》 격정을 터치는 천호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그 말을 듣자고 가슴을 조이며 솜옷이 젖어들도록 밖에 있었구나. 신형일은 자기의 가슴도 젖어드는듯했다.
《이제 좋은 소식이 있을게요, 자.》 그러며 그의 손을 잡고 차에 올랐다.
차는 시당정문을 빠져나왔다. 비발은 점점 굵어졌다. 내린 눈까지 녹아버려 시내길은 온통 물기로 번들거렸다. 속도를 내는 차바퀴에서 휘뿌려지는 물보라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참으로 변덕스런 날이였다. 소담하게 눈이 내리던 때가 언제인가싶게 거리는 장마때처럼 질척거렸다.
신형일은 뿌옇게 흐려진 거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일은 하나하나 풀려져간다. 차학선의 문제, 그다음 강시연이도 공장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자기를 되찾을것이다. 그런데, 신형일의 생각은 거기서 멎었다. 지금 제일 걸려있는건 강시연이가 아니라 그의 딸인 강수려였다.
그가 떠나간 후 천호네 시험조에서는 전진하지 못한채 이제껏 공회전만 하고있었다. 수려가 실험하는 수치를 인편으로 쪽지를 써서 보내온다는것을 알고 신형일은 처음 대단히 기뻐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연구방법으로는 성공이 묘연했다.
무슨 대책이 있어야 했다.
생각에 잠겨 창밖을 바라보는 신형일의 시선속에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걷고있는 한 처녀가 들어왔다. 비를 맞지 않으려고 뛰지도 않고 무슨 생각엔가 잠겨서 걷고있는 그의 모습은 유표했다.
멀지 않은곳에 보이는 뻐스정류소에라도 빨리 들어서면 비를 맞지 않으련만 그는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의 류다른 행동이 이상하게 차안에 앉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드디여 넓은 채광이 드리운 정류소에 들어서자 그가 얼굴에 떨어진 비방울을 털면서 고개를 들었다.
《비서동지, 저기 수려동무가…》
천호의 입에서 먼저 이런 탄성이 튀여나왔다.
《나도 알아보았소. 이제 저기 차를 세운 다음 그를 데려오기요.》 차가 멎은 후 신형일은 뻐스정류소로 달려가는 천호를 바라보며 수려와 함께 곧장 타조목장에 나갈 생각을 했다.
오늘 일이 시작부터 좋더니 수려도 만나게 되였다는 생각에 절로 마음이 들떠났다. 그러고보니 자기의 마음을 하늘도 알아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하늘에서 눈이 아니라 동지달에 비가 오는가고 언짢게 생각했더랬는데 그게 다 일이 잘되는 징조였다. 오늘 점심엔 수려와 함께 공장에서 운영하는 오리고기전문식당에 갈 생각까지 했다.
그러던 신형일은 눈을 흡떴다. 수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몸을 돌리고 지나온 정류소를 바라보니 방금 떠나는 뻐스를 망연히 바라보는 천호만 있을뿐이였다.
천호는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멀어지는 뻐스를 지켜보기만 했다. 방금전의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정류소로 달려간 천호는 《수려동무!》하고 반갑게 웨쳤다.
《어마나, 천호동무. 어디서 나타났어요?!》하고 터칠 탄성을 눈앞에 떠올리며.
허나 눈이 둥그래진 수려는 주춤주춤 뒤걸음쳤다.
《수려동물 여기서 만나다니, 자, 어서 갑시다.》
천호가 제잡담 팔을 잡을것처럼 다가갔다.
《어디 말인가요?》 그러면서도 수려는 뒤걸음질을 멈추지 않았다.
《저기 우리 공장차가 있소. 당비서동지가 기다리오.》
여전히 천호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예?!》 이번엔 정말로 기급해서 뒤걸음쳤다. 천호가 주저하지 않고 육박하듯 다가왔다.
《아니, 그러지 말아요.》 그제야 수려는 그자리에 딱 붙어섰다.
어리둥절해진 천호도 굳어졌다.
그의 곁에 뻐스가 멎어서자 그는 다시 수려앞으로 다가갔다. 손님들이 뻐스에 오르고있었다. 천호는 조바심이 앞섰다.
《수려동무, 지금 차안에서 비서동지가 기다린다는데!…》
《글쎄 안돼요.》 갑자기 수려가 오연하게 머리를 쳐들고 날카롭게 내쏘는 바람에 천호는 아연해졌다. 수려는 자기의 출현을 절대로 반기지 않았다. 실망의 그늘이 얼굴에보다 가슴속에 먼저 가득 들어찼다.
《수려동무.》
《더 강요하지 마세요, 그럼.》
수려가 돌아서더니 마지막으로 뻐스에 올랐다. 분명 잔등에 박힌 천호의 시선을 느꼈을테지만 그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천호는 그제야 수려와 자기사이엔 넘어설수 없는 경계가 진하게 그어있음을 뼈아프게 느꼈다. 수려가 자기를 만나지 않으려고 시험자료도 태인을 통해 쪽지놀음을 했다는것을 상기하자 가슴이 터질듯했다.
새 손님들이 정류소에 늘어서며 그의 옆을 스쳐서야 천호는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비내리는 거리를 보며 혼자 오리알낟가리를 쌓던 신형일은 천호가 혼자서, 그것도 힘이 빠져 허청거리며 걸어오는것을 보고서야 자기가 오산했음을 느꼈다. 수려는 결코 호락호락 천호를 따라설 처녀가 아니였다.
그들의 관계가 파탄된다는것은 연구사업의 성공과 공장현대화의 지연이였다. 이것을 과연 수려가 모른단 말인가. 차학선의 문제가 풀려나가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그보다 더 큰 수려의 문제가 둔중한 쇠뭉치가 되여 딩굴딩굴 굴러오고있었다.
신형일의 입에서는 나직한 한숨이 새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