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 회)
제 4 장
꽃은 꽃밭에서만 피는것이 아니다
6
신형일은 어떻게 지배인의 집대문을 열었는지 알지 못하고 성큼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에서 서성거리던 운전사가 얼른 맞받아나왔다.
이제껏 지배인차를 몰아온 운전사는 나이가 지숙했고 행동거지가 진중했다. 운전기술이 높았고 웬만한 정황앞에서는 당황하는적이 없던 그가 어쩔줄을 몰라서 허둥거렸다. 현장에서 쓰러진 지배인을 여기까지 데리고오는 길에 그만 한절반 얼이 나간것같았다.
신형일은 이마에 번지르르 내돋는 땀을 닦으며 물었다.
《어떻게 다쳤다구?》
《광산현장을 돌아보던중에 굴러난 돌이 깨여져나갔는데 그 한쪼각이 면바로 허리를 치는 바람에…》
《저런!》 면바로 허리를 맞았다면 혹시 척추가?
신형일은 마음이 급해서 얼른 방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우에 누웠던 지배인이 인기척에 눈을 떴다. 그를 알아본 지배인이 《안됐습니다.》하고 꺼져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습니까? 아니, 광산에 갔으면 책임일군을 만나 해결을 받아야지 현장엔 왜 나가신단 말입니까?》
지배인이 말을 못했다. 그는 말을 하는것도 힘들어했다. 조금도 몸을 움직일념을 못했다. 잠간사이에 그의 이마에 진땀이 빠질빠질 돋쳤다.
신형일은 그만 기가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나이가 있어도 늘 현장에서 돌아가던 그가 이렇게 꼼짝 못하니 모든것이 자기의 책임같이 느껴져 입을 열수가 없었다. 애써 표현하지 않고 그에게 공장일은 걱정말라고 하는 신형일의 가슴은 터질듯했다.
이제 공장적으로 제기되는 그 숱한 일감들과 기술적인 문제들이 지배인없이도 꽤 처리되겠는지.
한동안 이말저말로 지배인을 위로하고난 신형일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곧장 대문밖으로 나갔다. 그는 생각에 잠겨 내처 걸었다. 어느새 슬밋슬밋 땅거미가 찾아드는것도 느끼지 못했다.
지배인의 집은 공장후문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후문을 지나서 곧추 걸으니 갑자기 깊은 골안처럼 우중충해졌다. 그제야 신형일은 그 자리에 멎어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공장주변에서 제일 구석진 농산직장 근처였다. 이곳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지고 여기저기에 늪이 있어서 으슥했다. 운전사가 조용히 뒤에 섰다.
《가서 가공직장장을 좀 데리고 오오.》
신형일은 그제야 그의 존재를 느끼고 입을 열었다.
가공직장장을 기다리는 사이 신형일의 머리에서 제일먼저 떠오른 생각은 지배인이 척추가 상했다는 확신이였다. 척추가 상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눈앞이 아뜩했다. 60이 다된 지배인이여서 더욱 그랬다.
신형일은 조바심이 들어 늪주변을 오갔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갑자기 투덕거리는 발자국소리가 나며 조현숙이가 곁으로 다가왔다.
《운전사동무한테서 들었소?》
《예.》
《지배인동지는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오.》
《수술이라면 척추수술을 말입니까?》
조현숙이가 깜짝 놀라 소리치다싶이 되받았다.
수술을 한다는것이 새로운 말이 아니지만 굴속에서 울리는것같은 침울한 목소리에 퍼그나 놀란 모양이였다.
《요전날 아버지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그 병원 외과과장을 만나 상담한적이 있소. 척추수술은 의학대학병원의 조현호과장선생이상 없다는거요.》
《아니, 그럼?》
조현숙의 눈은 동그랗게 치떠졌다.
《맞소, 직장장동무의 오빠요.》
조현숙이가 아무런 응대도 못하고 마른침만 꿀꺽삼켰다.
《직장장동무, 지배인동진 꼭 수술을 받아야 하오. 그것도 유능한 외과의사가 수술해야 하오. 조현호외과과장 같은분이 말이요.》
《…》
조현숙이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늪가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디선가에서 부그그 괴여올리는 물방울소리까지 났다.
조현숙의 오빠인 조현호는 의학대학병원의 이름있는 외과의사였다. 나이가 많지만 아직도 기술이 높아서 젊은 의사들을 양성하는 일이며 대학종합강의에 출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가 집필에 많은 시간을 돌리고있었다. 혹간 중요한 수술을 하느라 집도하는 때도 있지만 이즈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조현숙은 선뜻 대답을 못하고 늪가의 물면만 바라보고있었다.
침묵만 지키는 그를 보니 가슴이 타들어 진정하기 힘들었다.
《직장장동무, 지배인동진 어떤 일이 있어도 허리를 펴고 일어나서 현대화가 된 공장에 오시는
《…》
조현숙이 말없이 입술을 감빨았다.
《난 직장장동무를 믿소. 자, 어서 이 길로 오빠를 만나러 갑시다.》
신형일은 그 자리에서 당장 차를 불렀다. 그들은 차에 올랐다.
현숙은 오빠를 납득시킬 생각에 골몰하느라 그러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신형일은 그가 충분히 생각할수 있게 창밖을 내다보기만 했다.
조현숙은 유복녀였다. 아버지를 잃은 후 석달후에 그가 태여났다.
그가 태여난 때는 전쟁의 상처가 아직 가시여지지 않은 매우 어려운 때였다. 더우기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가 몇달전에 세상을 떠난터여서 새 생명을 낳은 어머니를 축하해줄 사람도 없었다. 장난꾸러기들만 터울로 자라는 집안에서 태여난 딸이 바로 조현숙이였다. 그의 출생을 놓고 많은 론의가 있었다고 한다. 남의 집에 보내야 집도 유지되고 그의 생명도 담보되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론의를 물리치고 그 어려운 속에서 오늘과 같이 자랄수 있은것은 맏오빠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었다.
그래서 맏오빠를 끔찍이 따르는 조현숙이였고 녀동생의 말이라면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는 오빠였다.
드디여 차가 의학대학병원에 도착했을 때 신형일은 그를 떠밀었다.
《혼자 들어가보오.》
《같이 들어갑시다. 오빠도 만나실겸.》
《아니, 후날 만나겠소. 자, 어서 들어가보오. 여기서 기다리겠소.》
《안심하십시오, 오빠에게 비서동지의 심정을 전하겠습니다.》
조현숙은 허리를 곧게 펴고 층계를 뛰여올랐다.
며칠후 박순배는 병원으로 떠났다. 끝내 현숙이가 오빠를 납득시켰고 사전진단을 구체적으로 하고 척추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던것이다. 번듯하게 누운채로 위생차에 오르던 지배인이 고개를 들었다. 척추수술이라는 쉽지 않은 결심을 한 마음이 그의 얼굴에 착잡하게 어리였다. 그가 눈길을 돌리며 집을 돌아보았다. 신형일은 가슴이 저렸다. 혹시 지배인동지는 정든 이 집안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게 아닌지. 꼭 마지막길을 가는 눈길로 따라나온 안해와 자식들을 차례로 보더니 슬며시 눈을 감았다.
신형일은 더 보고만 있을수가 없어서 지배인앞으로 다가갔다.
《지배인동지, 힘을 내십시오.》
눈을 뜬 지배인이 손더듬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난 각오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면 무서운게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은 유지될수 있겠지요. 그러나 공장을
찾아오신
《지배인동지!》
신형일은 지배인의 손을 꽉 그러잡았다.
《미결건은 별로 없는데 내가 정문에 설치할 손소독기 과업을 주면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지요. 그 과업을 천호와 원걸동무에게… 그리고 양어장을 끝내려고 세멘트를 가지러 가려 했댔는데…》
《별걱정을 다하십니다. 병원에 가신다고 지배인동지의 몫이 어디로 사라지겠습니까. 그건 다 지배인동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다 나아서 말입니다. 자, 이젠 갑시다.》
신형일이가 흔연하게 재촉하자 지배인이 누운채로 차에 오르고 그의 처와 조현숙이가 따라 올랐다.
지배인은 겉으로는 평온한듯했지만 비장한 결심을 한터였다. 이미 지배인은 최후를 각오한듯싶었다.
신형일은 그 순간 자기의 임무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절대로 그럴수 없다. 내가 있는 한 다른 일은 있을수 없다.
나는 지배인을 비롯한 우리 공장종업원들의 정치적생명뿐 아니라 운명을 책임진 당일군이다. 그는 서두르며 차에 올라 시종 병원차를 뒤따라갔다.
병원구내로 차가 들어서자마자 신형일은 밀차에 실린채 호실로 가는 지배인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부지런히 층계를 올라 외과과장실 문을 열었다.
《과장선생님, 제 오리공장 당비서입니다.》
《아!》 희끗희끗한 머리칼 몇오리가 성글게 보이는 조현호과장은 나이에 비해 퍽 젊어보이였다. 동생인 현숙과 달리 갸름한 얼굴엔 지성미가 흐르고있었다.
《지배인동지가 도착했습니까?》
《예, 방금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까? 가족측에서 누가 립회를 섭니까?》
《과장선생님, 수술립회는 제가 설 각오를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조현호과장이 놀라면서도 이윽토록 바라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나도 찬성입니다.》
한시간이 지난 후 지배인이 수술장으로 인도되였다.
신형일은 소리없이 지배인옆으로 다가섰다.
《지배인동지, 내가 수술립회를 서겠습니다.》
《예?!》
당비서를 알아본 지배인이 자기 몸상태를 잊고 움직이려고 했다.
신형일은 그를 조심히 눌러눕히며 다정히 힘을 주었다.
《기운을 내여 수술을 이겨냅시다. 집도도 조현호과장선생이 하니 잘될겝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지배인은 이윽토록 당비서를 바라보더니 슬며시 눈을 감았다. 눈귀로 슴배여나온 축축한것이 속눈섭을 소리없이 적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