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 회)

제 4 장

꽃은 꽃밭에서만 피는것이 아니다

7

(1)

 

공장은 하루하루 면모를 일신해갔다. 이젠 건물들이 자기 자태를 거의 드러내고있었다. 차천호는 공장의 현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최종사업으로 촬영기를 설치하는 작업에 동원되였다. 이것이 완성되면 사무실을 제외한 일체 작업현장들과 호동은 물론 정문에 이르기까지 촬영기가 설치되고 종합조종소의 감시와 지령에 따라 생산지휘를 하게 된다. 그 작업을 위한 케블선을 늘이는 일이 오늘까지 결속되였다. 오수가 흐르는 지하에서 케블선을 늘이는 작업은 간단치 않았다. 그래도 끝내고나니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듯 거뜬했다.

《빨리 두연원에 가자구, 빨리.》

천호는 허접스런 자기 몸을 내려다보며 옆에 있는 원걸을 재촉했다.

두연원책임자인 황춘영이 이악을 떨더니 두연원은 시내의 종합편의 부럽지 않게 꾸려졌다. 목욕탕, 리발실, 미용실에 탁구장까지 갖추었는데 앞으로 수영장까지 계획한다고 한다. 게다가 시내에서 맥주를 가져다 정상운영하게 된다니 벌써부터 마음이 흥그러웠다.

《천호동지, 기술창안건 말이야요?》

원걸이가 별로 꾸물거리더니 느닷없이 볼부은 소리를 했다. 천호는 기술창안건이라는 말을 듣자 인차 손소독기가 생각났다.

《참, 그 손소독기문젠 어떻게 됐어? 하고있나?》

원걸은 대답대신 한숨을 내쉬였다. 목욕하는것도 다 귀찮은듯 걸음도 기운이 다 빠진 늙은 황소걸음이였다.

《원걸이,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소?》

원걸은 한풀 죽은 목소리로 이렇게 털어놓았다.

어제였다. 기사장이 부르길래 바쁜 일손을 놓고 찾아갔다. 약전기술자인 원걸은 언제나 일감속에 묻혀있었다. 숱한 사람들이 고장난것들을 가지고 와서 그의 도움을 청해서 항상 시간이 딸렸다. 지금은 발효반의 배양탕크조립이 한창이기때문에 우덕진이가 찾을 때마다 화가 났지만 할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제쳐놓고 그가 해달라고 하는 일부터 먼저 해야 했다. 그가 주는 과업이란 언제나 별치않은것이지만 우선권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과업은 주지 않고 당위원회에서 포치한 기술혁신건을 다 했는가고, 어디 보자고 하는것이였다.

원걸은 아직 못했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아직두 못하다니, 이제껏 무얼 하고있었소?》 대뜸 기사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원걸은 힐끔 기사장을 쳐다보았다. 그 눈길속에 내가 언제 시간을 낼수 있었는가 하는 불만이 가득했다.

《원걸이만 일하는게 아니야. 모두 두몫 세몫 하고있지 않나. 빨리하라구.》

기사장의 어조는 한결 죽은듯하면서도 이번엔 그루를 박아 두건을 하라고 했다.

《예? 두건이요? 아니, 그걸…》

원걸은 입을 딱 벌렸다.

《하라면 하라구. 다 원걸이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그리고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분주하게 빼람을 여닫고 무엇인가 뒤지면서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원걸을 돌아보며 당장 그것부터 하라고 했다.

《남들은 다 제출했는데 아직도 못하다니, 빨리 하라구. 그리고 어떡하든지 여가시간을 내서 한건을 또 해야 돼.》

원걸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무엇때문에 두건을 하라는걸가. 이번 기회에 실력과시를 하라는걸가. 그건 고마운 일이지만 시간을 낼수 없었다. 아무렴 자기의것까지 하라는거야 아니겠지. 도리질을 하는데도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원래 마음이 용한데다 기사장이고 은희의 삼촌이라는 점에서 원걸은 항상 우덕진의 요구를 공손히 받아들이군 했다. 그러나 이번엔 문제가 달랐다. 당위원회에서 직접 포치한 이번 기술혁신건을 하는데는 자기의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야 했다. 시작을 해놓은 손소독기는 련관단위 공장에 가서 해결할것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두건을 하라니 기가 막힌다는 소리를 했다. …

천호는 원걸이가 가슴속에 차있는 고민거리를 털어놓자 모를 일이라는듯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번 기회에 원걸이를 한껏 높여주려고 그러겠지. 있는 힘껏 용을 쓰라구. 알겠어, 이번에 손소독기며 기술건창안에서 두각을 내면 대학문제가 해결될지?》

《그럴가요?》

《그럼.》 천호는 자신있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손소독기 생각을 해보았소?》

《될것같아요. 자외선은 세균이나 비루스, 효모, 원충 등에 강한 살균작용을 하지 않는가요.》

《그렇지.》

자외선이 미생물에 작용하면 여러가지 조직화학적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때 생기는 여러가지 활성물질들이 세포단백질을 응고시켜 균을 죽이게 된다.

《균을 죽이는 파장이 제일 세게 나타나는것이 얼마더라?》

천호가 타진이나 하듯 원걸이를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파장 254mm일 때 제일 세게 나타나지요.》

《맞지, 자외선으로 식료공장에서 그릇세척을 하고 병원에서도 다 자외선으로 소독을 그렇게 하고있소. 원걸이, 동무 혼자 잘해보라구. 난 아무래도 소독기에 손을 댈 형편이 못돼. 나야 발효제문제를 가지고 내놓아야지.》

《나혼자요? 그런데 걸린게 한두가지가 아니야요.》 원걸의 눈이 둥그래져서 겁먹은 소리를 했다.

《그런건 함께 풀어나가자구, 기사장동지가 입을 딱 벌리게 말이야. 지배인동지두 그걸 성공하면 대학문제를 생각할수 있어. 자, 지금은 두연원에 가자구, 난 막 끈끈해서 못견디겠다니까.》

그들은 곧장 두연원으로 향했다.

잠시후에 천호는 원걸이와 함께 두연원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시원한 맥주를 한고뿌 마시는 사이 그들앞에 있던 황춘영이가 어서 양복을 벗으라고 했다. 웬일인가 했더니 그가 어느새 실을 꿴 바늘과 흰 목달개를 들고오는것이였다. 그리고보니 한옆에 설치한 빨래줄엔 하얗게 빤 새 목달개가 주런했다. 황춘영은 누구라할것없이 제손으로 반듯하게 손질한 목달개를 어느때나 준비해놓고 달아주군 했다.

《두연원책임자동지의 손은 보배손이군요. 어떻게 두연원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목달개까지 다 달아줍니까?》

《우리야 봉사단위가 아닌가요. 여기 두연원을 통해 공장의 문명을 앞당기려는것이 내 마음이예요. 그래야 현대화가 빨리 되지요.》

어디서나, 누구의 입에서나 현대화란 말이 흐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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