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 회)

제 4 장

꽃은 꽃밭에서만 피는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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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는 기진하여 해빛이 호듯이 내려쪼이는 호동밖에 나가 한가하게 노니는 오리들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저 오리들은 얼마나 태평스러운가. 나도 저렇게 근심걱정이 하나도 없다면 얼마나 좋으랴. 놀이장을 둘러막은 나지막한 칸막이밖으로는 새파란 먹이풀이 자라고있었다. 그것은 오리공장에서 재배하고있는 단백풀이다. 그 단백풀우에 오리털이 소복이 덮여있었다. 하늘거리는 하얀 오리털을 보니 수려 생각이 또 났다.

천호가 지금 제일 고충으로 느끼고있는건 여러가지 시험을 해도 오리증체률에서는 이렇다할 변화가 없는것이다. 조금이라도 증체가 올라가면 사름률이 떨어지고 사름률을 올리면 다시 증체률이 떨어지는것이였다. 이런 공회전은 마치 법칙처럼 맞물려 반복됐다.

사름률이나 증체에서 다같이 전진이 있어야 시험사업에서 성과가 있는것이다. 이것은 여간한 골치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그 무슨 새로운 방법이 있어야 했다. 그 방법이란 무엇이겠는가.

슬그머니 기사장을 만나볼 생각이 들었다. 천호가 기사장을 생각한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어느날 천호는 분주하게 걸어가는 기사장을 보고 무작정 달려가 시험사업에서 제기되는 안타까운 사정을 다 털어놓았다.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 기사장은 선자리에서 두번이나 손목시계를 보았고 걸려오는 손전화를 받았다. 그래도 천호가 제기하는 의견을 다들었다.

우람한 몸집에 뒤짐을 진채 자기의 제기를 듣는 기사장의 얼굴을 보니 초조해나던 가슴이 다소 진정되였다. 기술협의회를 할 때 받아안았던 기사장에 대한 신뢰감이 다시 살아올랐다.

이틀후 기사장을 다시 만나니 조직사업을 다 했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건 없었다.

점차 한가득 어렸던 기사장에 대한 경탄이 사위여가는 모닥불처럼 스러져버렸다. 기사장은 만나보나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려의 쪽지에 적힌대로 털단백먹이연구사업을 하는것이 한가닥의 방도로 되지만 기대와는 어긋나는 랭담한 글쪽지에 그만 맥이 빠졌다. 이제 태인이가 털단백시험자료를 가져온대도 기운이 생길것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대로 있어야 하는가? 천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려는 지금 아버지문제로 해서 버젓이 머리를 들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그러나 현대화문제에서 아버지들의 문제는 개인적문제였다. 지금은 이런 개인적문제에 싸여 고민만 할 때가 아니였다. 수려는 왜 이런걸 생각 못하는가. 종업원이 아니여서 공장의 현대화에 대하여 생각 못하는가? 그렇게도 지향이 높고 이악한 그가?

용기를 내여 공장에 다시 왔으면 오직 시험생각을 해야지 자기를 드러내놓지 않고 이런 쪽지놀음을 해서야 어떻게 연구목표를 달성할수 있겠는가. 너무 안타까와서 가슴에서 피가 끓었다.

이 시각 신형일은 병원에서 돌아오고있었다.

지배인의 척추수술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신형일은 이마에 내돋친 땀을 닦으며 긴숨을 내쉬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마음을 놓을 형편이 못되였다.

이제부터 지배인이 없는 상태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하게 솟은 산정앞에 선듯 숨이 막혀왔다. 이럴 때 기사장이 한몫 든든히 해야겠는데 그는 자기앞에 닥친 일도 처리하지 못하고 무사분주하게 돌아치기만 했다.

계획했던 숱한 일감들을 절반도 제끼지 못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중에서 제일 난문제는 발효제생산이였다. 신형일은 수려가 공장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천호와는 쪽지놀음으로 일방적인 실험을 하고있다는걸 어제야 알게 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어쩔수 없어 공장에 오긴했지만 마음은 그전이나 다름없다는걸 의미한다. 아직도 현대화라는 거창한 사업의 의미를 다 깨닫지 못한것이다.

신형일은 그들을 당장 만날 생각으로 실험실로 향했다.

구내를 횡단하여 실험실로 향하는데 오리호동사이로 난 구내길로 덜거덕거리며 굴러가는 무슨 소리가 났다.

강시연이가 구내에서 쓰는 커다란 손달구지를 힘겹게 끌고가는것이 보였다. 발효반에서 일하겠다고 하더니 그는 제일 구질구질한 일을 맡았다. 그 일이란 단백곤충과 발효제에 쓰이는 기질과 죽은 오리들따위 운반을 담당한것이다.

신형일은 그를 향해 걸음을 빨리 했다. 그리고는 제잡담 손잡이를 틀어잡았다.

《아, 아니, 비서동무.》

신형일은 한껏 당황하여 손을 내젓는 강시연을 말없이 밀어내고 자기가 대신 잡았다.

사실 이런 먹이운반은 소형운반차가 하군 했다. 그러나 강시연은 자진한 이상 날라다주기만을 바라지 않는 모양이였다.

신형일은 입을 꾹 다물고 팔에 힘을 주어 밀기만 했다. 페사된 오리며 내장들에서는 역한 냄새가 났다. 한다하는 부장이던 그가 험한것을 마다치 않고 맡아나섰다는자체가 고마왔다.

원래 강시연은 발효제생산에서 제일 중요한 온도보장을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으나 이 중요한 공정을 전기보이라를 설치하는것으로 해결했다.

그러자 강시연은 물러서지 않고 이번에는 단백곤충에 관심을 돌렸다.

단백곤충은 세계적으로 3세대곤충산업중의 하나로 불리운다. 1세대곤충산업은 잠업, 2세대곤충산업은 양봉업, 3세대곤충산업이 바로 단백곤충이다. 단백곤충은 먹이에 대한 요구성이 비교적 단순하지만 단백함량이 높은 배합먹이는 충분히 주어야 했다. 그 먹이를 보장하자면 항상 부지런해야 하며 이런것들을 운반하고 손질하는 일도 가리지 말아야 하는것이다.

《비서동무, 우리 수려가 왔는데 어떻게 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에두 안들어오다싶이 하고 어쩌다 만나도 일체 말이 없어 벙어리가 됐나 할 정도입니다. 이 아버지에 대한 재인식과정이니 어려운 시련기라고 말할수 있지만 그건 개인의 일이고 공장에서 중요공정을 맡았는데 그 일이야 잘하리라고 봅니다. 아무때 봐도, 무슨 일을 해도 제앞처리는 하군 했습니다.》

신형일은 입을 열지 못했다. 긍정할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딸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를 허무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일에 예민한 강시연이가 눈치채지 못할수 없었다.

《비서동무, 왜 말이 없습니까? 혹시 우리 수려가…》

신형일은 여전히 입을 열지 못하고 눈길을 떨구었다.

갑자기 강시연이 신형일의 앞을 떡 막아섰다.

《말해주십시오. 나만이 아니라 우리 집은 다시는 지난날처럼 살아서는 안되는 집이 아닙니까.》

신형일은 멎어선채 큰숨을 내쉬였다. 입을 열지 않을수 없었다. 강시연이 앞에서는 숨길수도 없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는 수려의 일방적인 실험방식과 그로 해서 발효제연구사업이 전진하지 못하고있는 난점을 간단히 말했다. 차마 천호의 고민까지 털어놓을수 없었다.

《그랬댔군. 내 과오가 집안까지 곪게 했소.》

그 자리에 푹 주저앉을것만 같은 목소리였지만 강시연은 손달구지의 손잡이를 잡고 꿋꿋이 걸어갔다. 힘을 준 손아귀에 피줄이 살아났다.

손달구지는 잘 굴러갔다.

《너무 걱정마십시오. 이제 일이 잘될겝니다.》

강시연은 아무말이 없었다. 신형일이가 미처 힘을 줄 사이도 없이 그 무거운 손달구지를 잘 끌고가기만 했다.

발효반까지 가는동안 강시연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신형일은 다시 그를 위로하고는 실험실로 향했다.

고요한 정적이 깃든 실험실에서는 천호가 혼자 무엇인가에 열중해서 신형일이가 들어오는것도 모르고있었다. 수려가 보이지 않아 물으니 대학연구소에 갔다는것이다. 대학연구소에 갈 때 조차 수려는 그저 연구소에 간다고 한마디 할뿐이였다.

《천호동무, 동무는 조장이요. 동무네 조에 인원이 자그만치 일곱명이요. 군대식으로 하면 한개 분대요. 조장이자 분대장이나 같은데 제대군인인 동무가 자기 소속의 인원을 그렇게밖에 통제하지 못하겠소?》

《…》

《안되겠소. 그렇게 해서는 실험에서 성과를 기대할수 없소. 그 동무가 어색해서 그럴수도 있고 또 자기나름의 생각이 있지 않겠소. 속을 털어놓게 하오, 무조건. 남자가 속을 풀어주어야지 피동에 빠져 말을 안해도 그만, 성과가 없어도 그만해서 있으면 어떡하겠소?》

《알았습니다.》

《그래 언제 오겠다고 했소?》

《그건…》

《그러니 모른다는 소리겠소? 언제 오는줄도 몰라, 그러다가 안오기라도 하면 어쩔셈이요?》

천호는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

신형일은 빈의자에 앉았다. 천호를 자꾸 다궂기만 하지 말고 실험에서 걸린게 무엇인지 알고 풀어주어야 했다. 알고보니 발효제실험은 천호와 수려한테만 걸린게 아니였다. 처음엔 잘 보장되던 실험용기질조차도 떨어져서 천호가 여기저기 뛰여다녀야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는것이다. 이렇게 되도록 기사장은 무엇을 하고있는가. 지배인이 없는 조건에서 공장에서의 총지휘를 기사장이 하는건 사실이다. 그래서인가?

모든 일은 지휘관이 어떻게 결심하고 작전하고 앞채를 메고나가는가 하는데 달려있다.

그날 신형일은 실험실성원들을 만나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바쳤다. 그때까지 수려는 오지 않았다.

신형일은 할수 없이 일어났다. 수려만을 기다릴수 없는 당비서의 일과였고 공장형편이였다.

과연 이밤으로 그가 오기나 하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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