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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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회의가 열리였다. 오늘 회의는 이번 비상사고에 대한 총화이기도 했고 또 앞으로의 대책을 토의하는 회의이기도 했다.
오리가공에서 중요한 고리인 열수기부분 설치에서 제기되는것을 처리하느라 늦은 조현숙은 구석쪽에 앉은 두연원책임자인 황춘영이옆에 끼워앉았다. 하마트면 지각할번 해서 가슴이 활랑거렸다. 그가 앉기 바쁘게 회의가 시작되였다.
조현숙은 부기사장이 보고를 하는 바람에 의아해서 고개를 들었다. 하긴 지배인이 없는 조건에서 기사장이 해야 하지만 이번 비상사고가 기사장으로 하여 생긴 사고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 얼른 사업수첩을 펼쳤다.
부기사장의 보고는 꽤 길면서도 구체적이였다. 그는 이번 비상사태가 일어나게 된 동기와 그 원인에 대하여 분석하였는데 그것은 사실상 기사장에 대한 비판이였다.
이번 기회에 기사장에 대하여 더 감쌀 필요가 없다는것이 누구에게나 알렸다. 사고가 일어나게 된 기사장의 무책임성이 먼저 지적되였고 사고가 일어난 후의 그의 조직사업도 떨떨하게 했다는것으로 신랄하게 비판되였다.
조현숙은 조심히 고개를 뽑고 기사장을 바라보았다.
앞탁 첫머리에 앉아있는 기사장의 목덜미에 지질지질 내돋친 땀이 샤쯔깃과 등판을 질펀히 적시고있었다.
숨소리 하나 없는듯하던 장내에서는 보고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일어나 토론들을 하였다.
맨 마지막으로는 지도소조로 나와있는 시당부원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제 보고를 들어보니 각 대학의 종합시험에서도 전진이 없다지, 기술안도 제출하지 않았다지, 그럼 도대체 어디 가서 무엇을 했단 말이요? 공장에서 보면 기사장 혼자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오. 말도 길게 할수가 없는 정도요. 늘 바빠서 허둥거리고 어딘가 분주해서 돌아가고. 이제 보니 이게 모두 겉발림이 아니였는가. 저 혼자 다 일하고있는것같지만 아무것도 없단 말이요, 아무것도. 내 요전날 사고당일날에도 보니 속수무책이요. 알아보길 하나, 대책을 세우나. 오늘은 좀 빠캡시다. 이게 그래 그저 지나갈 일이요? 난 기사장동무의 과오를 그냥 묵인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의 저력있는 목소리에서는 격분이 끓고있었다. 이때까지 기사장에 대한 의견이 있었지만 말을 할 기회를 찾지 못하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일어나서 자기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회의 전 기간 당비서는 무엇인가 쓰기도 했지만 심중한 기색으로 침묵을 지켰다.
이어 두번째 안건이 토의되였다.
두번째는 오수장을 보수하는 조직사업을 했다. 이 문제 역시 첫번째안건에 못지 않았다. 호동에 오리를 대량적으로 몰아넣었던 후과로 하여 빚어진 이번 사고는 공장에 심각한 교훈을 주었다. 일군들의 무책임성으로 규탄된 이 책임은 종금직장과 비육직장의 직장장들이 땀을 흘리며 비판을 받았다. 조현숙이도 련대적으로 가공에서 적지 않은 부산물처리를 잘하지 못한 책임을 회피할수 없어 토론에 참가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토론은 더 계속되지 않았다. 야적장건설에 동원되였던 돌격대원들이 오수장보수를 하도록 조치를 취하면서 일부 성원들을 교체하는 문제가 론의되였다.
회의에서는 또한 고기생산문제가 심각히 론의되였다. 이번 사고로 해서 고기생산지표로 되였던 숱한 오리들이 대량적으로 죽어나갔기때문에 사실상 이것이 제일 심각한 문제였다. 이제 고기생산계획을 어떻게 보장할것인가.
방금까지 열렬하게 토론에 참가하였던 많은 사람들은 갑자기 입이 얼어붙기라도 한듯 굳어졌다.
이 일을 어떻게 할것인가.
이 문제토의가 시작되자 저마끔 일어서던 사람들이 침묵을 지켰다.
모두 고개를 떨구고 일어나길 주저했다.
가금생산국에서 파견된 지도소조가 앉은 자리에서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시민들에게 공급될 고기생산은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 그것을 보장하지 못하면 공장이 체면이 서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기계획은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슨 수라는건 도대체 무엇인가?
회의참가자들은 그의 토론을 들으며 은근히 긴장해졌다. 실상 그가 도살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뿐이지 그것은 후보오리의 도살을 의미하는것이다.
그만큼 시민들에게 공급될 고기보장문제는 심각했다. 그것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공장에 당원이 살아있다고 말할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종금오리의 후보오리도살은 공장의 파산을 의미한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의장엔 이윽토록 짓누르는듯한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침묵을 깨뜨리며 당비서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였다.
《시민들에게 공급되는 고기생산의 주인은 우리 공장종업원 누구나 다 생각하고있는 문제입니다. 아마도 눈앞의 일만 생각하면서 종금후보오리를 도살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것같은데 공장은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종자를 먹는 농사군은 없듯이 우리 역시 종자오리후보를 다칠수 없다는겁니다. 의견이 있는 동무들은 제기하십시오.》
그가 좌중을 침착하게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을가봐 서둘러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태반이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을 보며 사람들은 무엇인가 기대했다. 제발 기발한 착상이라도 나왔으면, 조현숙이도 이런 생각으로 당비서를 바라보았다.
다음순간 조현숙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당비서가 예나 다름없이 조용하면서도 침착한 목소리로 휴회를 선포했다.
조현숙은 의아해서 인차 일어날념을 못했다. 옆에 앉은 황춘영이가 툭 치는 바람에 일어나고서도 나갈 생각을 못하고있는데 대기실에 있던 중앙수의방역소일군들이 들어왔다. 키가 큰 방역처장이 다가왔다.
《비서동지, 우린 돌아가려고 합니다. 아, 기사장동지도 여기 계시는구만요.》
방역처장이 쏘파에 소심하게 앉아있는 기사장을 알아보았다.
《우린 기사장동지의 전화를 받고 급했댔습니다. 사실 전염병이라면 두연오리공장도 그렇지만 이건 한 공장의 문제에 한한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
중앙방역소의 방역처장의 말은 분명 힐난조였다. 기사장은 어색한 웃음을 띄운채 말한마디 못하고있었다.
《그동안 방역소일군들이 수고가 많았습니다.》
당비서가 온화하게 그들과 마주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장에서 내린 진단이 정확했습니다. 그 젊은 기사 말입니다.》
당비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우덕진은 여전히 입을 열념을 못했다. 조현숙의 눈으로 봐도 기사장의 일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무슨 위로의 말도 나오지 않아 슬며시 외면했다.
온 공장과 수의일군들앞에서 그의 무식과 무능력이 폭로되였으니 이제 그가 어떻게 기사장일을 계속할수 있겠는지.
다시 열린 회의는 밤이 퍽 깊어서야 끝났다. 그러나 의외로 참가했던 사람들의 얼굴은 지쳐보이지 않았다. 회의장이 아니라 희한한 구경이라도 하고 극장에서 나오는듯한 밝은 표정이였다. 회의실에서 나오는 조현숙이 역시 그랬다. 그는 층계에서 자기를 기다리며 서있는 남편에게 조용히 소곤거렸다.
《혼자 가요. 난 직장에 좀 가야겠어요.》
조현숙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밤길을 걸었다. 휴회시간에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한것만큼 구태여 집에 갈 필요는 없었다. 잠이나 자겠다고 코앞에 있는 집에 갈 생각은 없었다. 그만큼 회의에서 받은 충격이 컸다.
조현숙은 지금 뻐근해오는 가슴을 안고 직장으로 향했다. 가공직장은 회의실을 벗어나 뒤길로 조금만 가면 된다. 은행나무들이 늘어선 구내길을 얼마간 걷는데 코를 찌르는 정향나무향기가 들이켜졌다. 벌써 가공직장어구에 들어선것이다. 이젠 사무실건물도 완공되고 직장사무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공원을 꾸리는중인데 지휘봉을 든 새끼곰륜곽이 휘붐하게 비쳐드는 달빛속에서 드러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정향나무향기가 먼저 실려왔다.
조현숙은 잠시 정향나무밑에서 숨을 돌리였다. 그는 특별히 정향나무향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귀여운 손녀가 태여나자 그의 이름을 정향이라고 짓자고 우겼다.
그는 가공직장뒤로 즐비하게 늘어선 오리사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새로 꾸려진 오리사들은 살림집 못지 않았다. 불빛이 환한 오리사들에서는 지금 한창 비육오리들이 자라고있었다. 구내포장도 완공되여 비오는 날이면 신발을 벗어들고 엉기엉기 걸어들어오던 때가 언제 있었더냐싶었다. 이 모든것은 공장에 온지 얼마 안되는 당비서를 떼놓고 생각할수 없었다. 나이가 있는 지배인이 생기를 띠고 척척 일을 제끼는 모습도 근래에 와서 새롭게 보게 되는 모습이다. 현숙은 오늘밤에 겪은 자기의 감정을 쓰고싶은 생각이 더 앞섰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와 일기장을 펼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