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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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강철민은 기사장방으로 갔다. 한참동안을 망설이다가야 문을 두드리고 들어섰다. 무슨 문건인가를 들여다보던 김세천이 웬일이냐는듯 그를 바라보았다. 강철민은 직장의 관록있는 기능공들이 지배인이나 기사장을 만날 때 쓰는 말투를 떠올리려고 무진 애를 쓰며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버릇처럼 새로 해넣은 이발에 자꾸 혀가 가붙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멀리 작업동원을 나가있는 부모없는 동무의 생일을 차려준다고 밤새 300리길을 달려갔다 오다가 아차 실수로 오토바이에서 나떨어져 그렇게 되였다. 아버지가 알가봐 집에도 못들어가고 공장합숙에 들이박혀 《부랴부랴》 앓으면서 해넣은 이발이 이즈음에 와서는 걸핏하면 빠져나오군 한다. 그래서 중요한 모퉁이에 나설 때면 저도 모르게 이발에 혀끝을 올려대는 버릇이 붙었다. 그렇게 진땀이 나는듯한 심정으로 더듬거려가며 책상우에 접은 종이를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김세천은 덤덤한 얼굴로 종이장을 끌어당겨 펼쳐들었다. 하지만 읽어보다가 쓴 약이라도 먹은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강철민은 일이 심상치 않아지는감을 느끼며 긴장해서 기사장의 두눈을 마주보았다. 기사장이 어금이에 무엇이 끼인듯한 어조로 물었다.
《이걸 분명 지배인동무가 보냈소?》
강철민은 의젓한 얼굴을 지으려고 애쓰며 천천히 말했다.
《예. 진동진단체계를 개발할수 있다는 말에 지배인동지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기사장동지가 그걸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절 도와주기 바란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기사장동지, 절 믿고 해결해주십시오.》
《허참!》
기사장은 허거프게 웃었다. 종이장을 책상우에다 훌 내던져놓았다. 강철민은 불끈했지만 자기를 다잡았다.
《기사장동지, 난 아무렇게나 대해도 일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녀자이기는 해도 지배인이야 어쨌든 지배인이 아닙니까? 전 기사장동지가 아래일군의 도리를 지켜 지배인동지의 지시를 존중해주었으면 합니다.》
김세천은 이것 봐라 하는듯한 눈길로 강철민을 바라보았다. 강철민은 자기가 의젓하고 경우가 쪽 째지게 말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기사장은 종이장을 내려다보고 강철민을 바라보더니 어이없다는듯 허허 웃었다. 이어 고개를 젖히고 소리내여 껄껄 웃었다. 강철민도 싱그레 웃었다. 하지만 다음순간 김세천은 눈빛을 번뜩거리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책상우에 놓은 종이장을 찌르듯이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 이게 콤퓨터와 부속명세라는거야? 예쁜이, 예쁜이! 예쁜 처녀가 생각나더냐? 철부지같은 녀석!》
얼떠름해서 종이장을 들어 살펴본 강철민의 얼굴색이 단박에 시커매졌다. 그제야 자기의 실수를 알아차린것이였다. 하도 좋은 노래이길래 옥림이를 생각하면서 적어본 노래인데 그만 종이가 바뀌여진것이였다. 노래로 안되면 춤으로 하라고 하던 지배인의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아이쿠!》
강철민은 이마를 쳤다. 기사장이 소리를 쳤다.
《한심해! 동문 그 덤비는 버릇을 종시 못고치는구만. 생활에선 그게 리해될지 몰라두 사업에선 그게 사고를 낼수 있는 엄중한 결함이라는걸 그렇게도 모르겠소? 동무가 맡은 일에서 사고를 낸다는게 뭘 의미해? 그건 사람의 생명을 해칠수도 있다는걸 의미한단 말이야.》
《기사장동지!》
강철민은 사연을 설명하고 사죄를 하고싶어 급하게 숨을 들이그으며 다가섰다. 하지만 그 순간 얄궂게도 이발이 빠지며 흥분한 입김을 타고 목구멍으로 날아들었다. 강철민은 이발에 개키여 캑캑거렸다. 이발이 튀여나와 기사장의 책상에 땍데구루루 굴렀다. 기사장은 흠칫 놀라더니 얼굴을 찌프렸다. 강철민의 얼굴은 참혹함으로 검붉어졌다. 손을 내뻗쳐 떨어진 이발을 주어들며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히… 사… 장… 동지!》
앞이발이 빠져 그 소리는 우습강스럽게 들렸다. 기사장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손바닥으로 책상을 쾅 쳤다.
《당장 나가오!》
강철민은 얼굴이 이지러진채 뒤걸음을 치다가 황망히 방을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