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7 장
우리는 젊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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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철은 무슨 일에서나 상대방, 특히 경쟁자로 치부하는 사람에게서 그가 가지고있는 우점에 대해 무시하거나 결함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될수록 우점을 찾고 그것을 몇배로 확대하여 받아들이는 사람이였다.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그는 상대방을 실제보다 더 위력한 존재로 보기가 일쑤였다. 이것은 그의 겸손한 성품에서 출발되는것이기도 했으나 보다는 그만큼 경쟁자를 눌러놓고 앞서야 한다는 자기에 대한 요구성때문이였다.
《어째서 공정도입이 어렵다는겁니까?》
기철은 의아한 눈길로 명식이를 쳐다보았다.
《이걸 보게, 만약 새 연료를 취입한다고 가정하세. 그러나 연료의 가공으로부터 예열, 첨가제의 배합, 이런 설비가 빈틈없이 갖추어진 조건에서도 한순간의 변화도 없이 균등한 량의 연료가 매개 로에 쉼없이 공급되여야만 하네. 이런 설비를 꾸리자면 한개 직장의 부대설비가 있어야 할거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설비를 따로가 아니라 현장에 꾸려놓되 정밀한 기계나 전기장치로 해서는 안된다는데 있거던. 진동이 심한 용해장에 정밀기계가 통할리 없고 온통 쇠붙이로 된 곳에 전기가설을 할수야 없지 않나! 그래 이런 불합리한 점을 타개한 취입공정을 설계한다는것이 가능할것같나? 어림도 없는 일이지! 만약 그걸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야금계의 콜롬부스지.》
(확실히 그 취입공정이 문제야. 이젠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로 나서지 않을수 없지. 만약 그것만 완성해놓는다면 새 연료안 성과의 절반은 저절로 차지하는셈이 아닌가! 야금계의 콜롬부스? 하긴 일리가 있는 말이야.)
그때부터 기철이의 머리속에는 오직 취입공정에 대한 생각만 맴돌이칠뿐이였다. 그런데는 틀림없이 취입시험이 성공하리라는 예감으로부터 앞으로는 부득불 취입공정문제가 제기되지 않을수 없으리라는 확신때문이였고 더우기는 이번 출장에서 이렇다할 성과가 없기때문에 더 강한 의욕을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새로운 산소강욕취입안을 추진하는 과정에 한가지 난문제에 부딪쳤는데 그것으로 하여 해당 부문과 몇가지 기술합의를 해야 했고 그것도 결과가 좋기 전에는 다시 시작할수가 없게 되였던것이다. 그러고보면 자기의 처지란 진호에 비해선 너무나도 뒤떨어진것이 아닐수 없었다. 바로 그 모멸감이 그를 참을수 없게 했다.
(취입공정이라…)
어느새 담배불은 꺼져있었다.
새 가치에 불을 갈아댄 그는 캄캄한 창밖으로 연기를 내뿜으면서 파란 연기가 자취를 감추는 모양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어떤 장치래야 가장 적합하고 간편한 장치겠는가? 류전현상을 방지할수 있으면서도 구조가 복잡하지 않은 설비! 과연 그런걸 착안할수 없단 말인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언제나처럼 말쑥한 차림을 하고있는 동생이 방안으로 들어서고있었다.
《아니, 형 언제 왔수?》
오늘따라 무엇때문인지 그의 얼굴에는 퍽 흡족해하는, 그것도 세상에 자기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없을거라고 자부하는 사람만이 짓는 그런 미소가 어려있었다.
《넌 늘 밤늦게까지 어딜 싸다니니?》
기철은 동생이 늦게 돌아와서라기보다 사색을 분산시킨것이 언짢아 한마디 했다.
《나야 뻔하지요. 뭐, 몰라서 물어요?》
아닌게아니라 기철은 동생의 몸에서 여느때없이 어떤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것을 감촉하지 않을수 없었다. 무슨 각별히 좋은 일이 있었던게 분명했다.
제대돼와서 얼마까지는 그래도 늦게 돌아올 때면 자기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해하기도 하고 딴전을 피우던 동생이였으나 이젠 처녀와 다닌다는것을 드러내놓고 말하는것은 물론 어떨 땐 일부러 지싯지싯 비위까지 건드리는것이였다.
《형이 장가 안가는건 좋지만 제발 날 홀애비로 늙게 하진 말아주우.》
이런 불평쯤은 여반장이였다.
《가고프면 갈게지 내가 무슨 상관이냐!》
《어디 아버지가 말을 들어요? 아버지야 장가가는것도 곶감꼭지따듯 순서대로 가야 한다는건데…》
형제간이라고는 하지만 성격은 물론 모색까지도 판 다른 이들이였다. 심중하고 집념이 강한 기철이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면 아무 일이나 대범하게 대하고 또 척척 수월하게 해제끼는 인철이는 아버지편이였다. 노래 한곡 변변히 부르지 못하는 기철이였으나 인철이는 기타를 두드리며 휘파람을 멋지게 불어넘겼고 운동장에 나서면 인기를 독차지하는 직장축구팀 문지기이기도 했다.
《일은 성실하게, 생활은 보람차게! 생활을 위해 일을 희생시켜선 안되지만 일때문에 생활을 즐기지 못하는것도 우둔한노릇이다!》
이런 생활구호를 부르짖는 그는 줄곧 도면과 기술서적에만 파묻혀있는 형을 서글픈 눈길로 바라보는것이였다. 기어이 제일 힘든데서 일을 하겠다고 해서 해탄로 로체공이 되였는데 어떻게 극성을 부렸던지 1년 남짓한 기간에 벌써 작업반장이 되였는가 하면 신문에는 물론 화보에도 곧잘 소개되군 했다. 그의 책상앞에는 화보에서 오려낸 자기의 사진이 벌써 몇장 잘 붙어있었다.
쇠장대를 거머쥐고 탄화실앞에서 일할 땐 갈범처럼 날치는 그였지만 목욕을 하고 옷을 척 갈아입고 나서면 마치 외국출장을 업으로 하는 1등외교관을 련상시키는것이였다. 바로 이런 대조되는 생활의 률조와 랑만을 사랑하는 그였다.
모든 생활이 그에겐 하나같이 즐겁고 보람찼으나 한가지만은 고민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형이 장가갈념을 않는것으로 하여 자기에게 미치는 피해였다. 한번은 아버지한테 이런 불평까지 부렸다.
《확실히 우리 집엔 뭔가 잘못된게 있어요. 공평하지 못하단 말입니다.》
《뭐가 공평치 못해?》
《우리 사회에서는 어딜 가나 혁명에 이바지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우대해주지 않습니까, 영예군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그런 원칙이 무시되고있거던요. 형이야 고스란히 공부를 했지만 저야 그래도 다년간 총을 메고 혁명을 보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우리 집에도 제대군인우선권제도만이라도 있어야겠다는겁니다.》
《하긴 그 말도 비슷해!》
이런 아버지의 훈수가 청승맞은 수절과부처럼 장가갈 꿈도 안꾸는 자기가 밉살스럽기때문이라는것을 기철이
《형, 날 좀 보우!》
옷을 벗어던지고 이불단을 내려놓던 인철이가 갑자기 기철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는것이였다.
《여드름이 난게 아니요? 아니, 그것도 아래턱에 났구려.》
무릎을 철썩 갈기며 좋아하는 동생을 기철은 얼떠름해서 바라보았다.
《그 여드름이 뭘 의미하는지 아우? 사랑을 의미한단 말이요. 그런데 나처럼 이렇게 이마빡에 나는건 틀렸소. 왜냐하면 그건 자기가 처녀를 생각할 때 나는거니까. 그러나 형처럼 아래턱에 나는건 반대로 어떤 처녀가 형을 사랑하고있다는 증거란 말이요. 알겠소? 어디 봅시다. 음― 탱탱하니 약이 오른걸 보니 그 처녀가 형을 몹시 사랑하고있는게 틀림없구려. 하― 이거 정말!》
마치 자기가 당장 어떤 처녀와 선을 보고 혼약이라도 한것처럼 기뻐하는 동생을 기철은 어이없는 눈길로 바라보지 않을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처녀요?》
《잘은 놀구있다!》
《한직장에 있수?》
기철은 더는 대상하기 싫다는듯 돌아앉았다.
《한데 어떤 처녀를 택해야 하는지 아우? 아니, 돌아앉지 말고 한마디만 듣구려. 내 경험에 의하면 말이요…》
어느쪽이 형이고 어느쪽이 동생인지 분간할수 없게 된것으로 하여 기철은 또다시 실소가 샜다.
《처녀가 훌륭한 남자를 택하려면 처녀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라 남자들이 좋아하는 그런 남자를 골라야 하고 또 남자가 좋은 처녀를 택하려면 남자들한테 인기가 있는 처녀가 아니라 처녀들속에서 인기가 있는 그런 처녀를 택해야 한다는거요. 알만하우?》
《원, 복잡하기란…》
《복잡할게 없어요. 양극과 음극은 서로 끌어당기지만 거기에 자극되지 않는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진짜라는거지요.》
(어떤 취입장치래야 가장 적합할것인가!)
기철은 방금 하던 생각으로 사색을 몰아갔다.
사색을 집중시킬 때마다 그런것처럼 그는 책상우에 펴놓은 백지에 어느 경우에나 가장 적합한 공리인 원을 끝없이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복잡한 현장조건에서 기계설비나 전기장치로는 안전성을 담보할수 없어, 정밀성 역시. 그렇다면…)
문득 시료송달기를 창안하던 때의 일이 생각났다. 출강을 앞둔 정련기부터는 쇠물의 성분을 알기 위해 15분에 한번씩 시료를 분석실에 보내야 하고 또 이미의 분석수치를 받아와야 했는데 그건 무척 시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는 이 시료를 송달하는 장치를 기계화하려고 맘먹었다. 그가 생각해낸것은 매 로들과 분석실을 관으로 련결시키고 그안에 시료를 넣고는 압축공기로 쏘게 하는 원리였다. 그것은 쉽사리 도입되였고 아직까지 한번의 고장도 없이 쓰이고있었다.
(만약 그런 원리대로 연료를 쏜다면?)
그는 흠칫했다. 무질서한 환영들이 불시에 떠오르는가 하면 어떤것에 부딪쳐 부서지기도 하고 또다시 눈앞을 어지럽히는것이였다. 점점 숨이 가빠지면서 두눈이 황황 불타올랐다.
연필을 찾아쥔 손은 번개치듯 하였다. 어느새 종이우에는 이러저러한 선들과 몇개의 계산수자가 나왔다.
그는 자기의 모든 사색과 열정이 비상한 힘으로 한곳에 집중되는것을 느꼈다. 오매에도 바라마지 않던 열망, 천추에도 잊을수 없던 간절한 소원이 당장 자기 손에 쥐여질수도 있을것같은 흥분으로 하여 그의 가슴은 걷잡을수없이 활랑거렸다.
기류식취입공정! 모르긴 해도 이것이야말로 자기가 여태껏 꿈꿔오던 그렇듯 거대한 위훈, 만사람을 놀래울 그런 대단한 혁신안이 아닐수 없는것같았다.
(야금계의 콜롬부스!)
명식이가 하던 말이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났다.
그는 자기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결정적인 일이 일어나고있다는것을 감득했는데 그것은 이제껏 바라오던 목적을 달성할수도 있으리라는 기대였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무엇인가 온당치 못한 생각을 하고있지나 않나 하는 의혹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 의혹이 좋지 않은 생각이라는데서 오는 량심의 목소리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니, 가슴속에 끓어번지는 세찬 흥분이 그런 의혹을 일축해버렸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