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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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경철은 류성신발공장로동자가 되였다. 수속을 채 하지 못한채 한경철은 아버지의 묘를 찾아왔다. 노란 금잔디가 덮인 봉분은 정결하고도 아늑해보였다. 그 봉분우에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이 우렷이 떠오른다. 언젠가 박사원에 함께 다니는 그의 동무가 집에 처음 왔다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가 함께 찍은 콤퓨터 합성사진에서 아버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경철동무 형인가?》

너무도 젊은 나이에 희생된 아버지는 그 시절의 사진밖에 남긴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사진을 오늘날의 어머니와 함께 세워놓으니 남편이 아니라 아들처럼 보였던것이였다. 한경철은 아무말도 못했고 옆에 서있던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언제나 그 시절의 모습으로 살아있는 아버지. 아들이 태여나자 어머니는 갓 낳은 아기를 안고 이 묘소를 찾았다고 했다. 그날 아기는 몹시도 울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지어두었던 이름대로 그의 이름을 경철이라고 지었다.

한경철이 돌이 지났을 때 뜻밖의 일이 생겼다. 어머니가 부엌에 나간 사이 방바닥을 혼자 기여다니던 애기가 우연하게 방구석에 떨어져있는 온도계를 주어든것이였다. 금방 앞이가 뾰조롬하게 돋아나온 애기는 온도계의 끝에 매달려있는 액체에 호기심이 끌려 들여다보다가 입에 넣고 깨물었다. 쓰겁고 자극적인 맛에 그만 그것을 뱉어버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메틸알콜이였다.

방안에 달려들어온 어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애기의 눈시력은 급속히 떨어졌다. 어린시절부터 한경철은 안경을 껴야 했다. 어머니는 그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어린시절 한경철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 안가본 곳이 없었다. 어머니는 의사들에게 자기의 눈을 대신 바치면 아들의 눈을 회복시킬수 있지 않는가고 자주 묻군 했다. 그런 노력으로 어머니는 끝내 경철의 눈에서 안경을 벗겨냈다. 중학교졸업을 한해 앞둔 때였다.

그런데 시력은 회복되였으나 색갈을 잘 가려볼수 없었다. 경철은 조선인민군대로 나가고싶었으나 당에서는 어릴적부터 뛰여나게 공부를 잘한 그를 대학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여 수재교육을 받았으며 박사원기간 외국류학도 하였다. 조국에 돌아와 다시 박사원에서 공부했다. 박사원졸업을 앞두고 그는 학위론문을 준비하였다. 증부가마자동조절 프로그람이였다.

생고무로 만든 고무바닥운동화들은 제화공정을 거친 다음 증부가마에 넣고 높은 온도에서 쪄내야 완성된다. 고무바닥운동화의 질과 량은 이 증부공정에 많이 달려있다.

한경철은 증부시간을 최대로 단축하면서도 고무바닥운동화의 질을 한계단 높일수 있는 새로운 공업조종용프로그람을 개발하였다. 온도와 가스를 자동측정하고 최상값에로 자동조종하는 이 프로그람은 혁신적인것으로 인정되였다. 그러나 리론상으로나 실험실상에서는 좋은 결과를 보여준 이 프로그람이 류성신발공장 생산현장에 도입되여서는 이모저모로 불합리한 점들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증부시간이 터무니없이 길어지기도 했고 오동작을 하여 로동자들의 표현을 빌면 《설거나 지내 익는》 난처한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더 난처한것은 그가 현장을 떠나면 증부가마를 다루는 로동자들이 프로그람이 도입된 콤퓨터가 아니라 자기들의 감각으로 증부가마를 조종한다는 그것이였다. 자기의 프로그람이 미덥지 못하고 리용하기 까다롭다는것이였다. 때로는 그들의 감각이 콤퓨터보다 더 정확하고 훌륭하게 제품을 익혀내군 한다는것을 그는 깨달았다.

한경철은 처음으로 리론과 현실간의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 하지만 어쨌든 리론적으로는 성공하였고 현장에 도입하여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기때문에 현장도입증서에 도장을 찍어달라고 기사장 김세천을 찾아들어갔다. 그는 어머니와의 오랜 사업관계를 가지고있는 이 기사장이 자기를 도와줄것이라고 믿고있었다. 그러나 그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김세천은 그를 처음 보기라도 하는것처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직 완벽성이 증명되지 못했다는걸 알면서도 학위론문으로 제출할 생각을 한단 말이요?》

한경철은 리해와 아량을 바라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쩌겠습니까? 프로그람이야 지적창조물이 아닙니까? 원리와 리론만으로도 리해해줄수 있고 긍정해줄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까?》

《원리와 리론만으로 리해한다고?!》

《기사장동지, 원리와 리론상으로는 제 프로그람에 문제되는게 없습니다. 제기되는건 현실입니다. 그런데 현실이 리론의 수준에 올라서지 못한다고 해서 원리와 리론도 그걸 따라 내려서야 합니까? 그런 기계적사고로는 우리 정보기술전문가들을 리해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천의 눈길에 서운하고도 못마땅한 기운이 흘러갔다. 그는 묵직한 손을 한경철의 현장도입증서에 올려놓고는 무엇을 시인 못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장에서 제기되는 생산기술적문제를 풀지 못하는 책상우의 론문이 누구에게 필요하고 그런 학위학직이 무엇에 필요하오? 우리에게 지금 론문이 부족하고 학위학직소유자가 적소? 그걸 알면서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제 명예부터 따내려는 동무의 처사를 난 리해할수도 없고 도와줄수도 없소.》

《기사장동지,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십시오, 예?!》

김세천의 눈동자속에서 미세한 불꽃이 이는듯했다.

《지금껏 나에게 이렇게까지 공공연하게 옳지 않은걸 눈감아달라고 조른 사람이 없었는데… 혹시 동문 자기 어머니가 국장이기때문에 그러는게 아니요? 내가 그 국장밑에서 일하는 아래사람이여서 그렇구? 그러니 결국 현장도입증서에 기어이 도장을 찍으려는건 관리국국장동지의 의사가 아니요? 말해보오!》

한경철은 모욕감으로 피가 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를 욕되게 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습관적인 거부감을 가지고있었다.

홀로 있는 어머니에게 자꾸만 청혼을 해오며 집에까지 찾아오는 남자들을 지켜 그는 밤이면 자지 않고 출입문을 지켜서있군 했다. 어머니를 지키려는 아들로서의 그리고 사나이로서의 자각은 지금도 어머니를 비난하거나 욕되게 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습관적인 거부감을 가지게 하는것이였다.

그는 천천히 김세천의 모습을 외면했다. 입술을 깨물고 파릿하게 굳어진 얼굴로 김세천의 앞을 물러났다. 그는 자기가 다시는 김세천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지 않으리라는것을 알았다.

결국 그는 학위론문도 없이 박사원을 졸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한경철은 그러한 자기자신을 절대로 용납할수가 없었다. 그러던차에 김윤화가 류성신발공장 지배인으로 임명되였다. 한경철은 김윤화지배인에게 방조를 청하리라 마음먹었다.

김윤화는 늘 일에 바쁘던 어머니가 채 주지 못하는 사랑을 빈자리없이 채워주는 또 한명의 어머니였다. 경철이가 눈시력이 떨어졌을 때 그는 김윤화의 잔등에 업혀서도 숱한 곳을 오갔다. 경철에게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어느날 비가 억수로 퍼붓던 깊은 밤에 김윤화가 우산도 없이 그의 집으로 찾아온적이 있었다. 온몸에서 비물이 줄줄 떨어지건만 까딱 움직이지 않고서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왜서인지 그의 시선을 피했다. 고개를 떨군채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경철이만이 겁먹은 시선으로 김윤화와 어머니를 번갈아보았다.

《봉숙이, 그게 사실이야?》

나직한 목소리로 김윤화가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말해봐, 그게 사실인가 말이야?》

격한 목소리로 김윤화는 부르짖었다.

《뭘 말하라는거니?》

어머니의 목소리는 남의 목소리처럼 차겁고 메마르게 들렸다.

《시집간다는 말!》

오래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들고 김윤화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서는 섬광이 이는듯했다. 어머니의 입에서 휘파람소리같은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울려나왔을 때 겁에 질린 경철은 울고싶었다.

《사실이라면 어쨌다는거니? 어째서 네가 그렇게 흥분하는가 말이야? 내가 시집가는게 그래, 죄가 되니?》

어머니의 목소리는 설분하듯 울렸다. 김윤화는 젖은 얼굴을 천천히 가로저었다.

《아니, 죄가 아니다! 나도 너에게 말할 체면은 없어. 너도 새 생활을 꾸릴 권리가 있어. 나도 그 사람을 잘 알아. 훌륭한 사람이라는걸… 하지만 이 경철이한테는… 경철이한테는… 아버지가 될수 없어. 이 경철이의 아버지는 영원히 한윤걸동지란 말이야!》

어머니는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김윤화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넌 새 가정을 꾸려라. 하지만 이 애는 내가 맡겠어. 그게 너에게두 이 애에게두 좋은거야. 그래서 내가 왔다. 봉숙아, 날 리해해줘.》

김윤화는 경철에게 잔등을 내댔다.

《경철아, 가자!》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것을 느끼며 한경철은 겁에 질려 몸을 흔들었다.

《안갈래! 무서워!》

《아니다. 경철아! 나와 함께 가면 무섭지 않아.》

김윤화는 자기의 옷을 벗어 경철을 감싸안고 일어섰다. 그러다가 멈춰서더니 묻는듯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굳어진듯 움직이지 못했다. 방바닥을 점도록 내려다보며 무엇인가 생각하는듯했다. 어머니의 손끝이 바르르 떨며 방바닥을 허비는것을 경철은 보았다. 말없이 어머니를 지켜보던 김윤화가 경철을 싸안은채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를 걸어 밖으로 향했다. 캄캄했다. 문을 나서니 대줄기같은 비줄기가 그들을 덮쳤다. 경철은 겁이 나서 부르짖었다.

《엄마!-》

《경철아! 내가 네 엄마다!》

귀전에 더운 숨결을 내뿜으며 속삭이듯 울려오던 그 목소리. 김윤화는 한경철을 껴안고 흐득흐득 흐느끼며 걸었다. 그러나 한몸이 되여버린 그들이 쏟아지는 비발속을 세걸음도 채 못걸어서 뒤쪽에서 실성을 한듯한 어머니의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경- 철- 아!-》

어머니는 맨발로 밖으로 달려나왔다. 달려나와서 그대로 김윤화앞에 털썩 무릎을 끓었다. 비물인지 눈물인지 모를것으로 화락하니 젖은 얼굴을 쳐들며 새되게 부르짖었다.

《내가, 내가 잘못했다! 아이를, 아이를 다오!》

《봉숙아!-》

두 녀인은 아이를 한가운데 놓고 서로를 끌어안은채 목놓아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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