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제 7 장

우리는 젊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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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로 하여 진호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의 새 연료안을 료해하기 위해 부에서 부장을 비롯한 심사원들이 제철소에 내려온것이였다. 흔히 심사라면 공장심의를 몇차례 겪어야만, 그래서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될 때라야 부에 제기되는 법인데 이번에는 거꾸로 부에서 직접, 그것도 아무런 통고도 없이 내려온것이였다.

(도대체 지금단계에서 내가 뭘 증명할수 있단 말인가! 아직 과학적으로 론증할만한 확신은 못가지고있는 형편인데!)

심사라면 진절머리부터 느끼는 그여서 혹시 이번 심사를 통해 자기 기술안에 대한 어떤 수습할 길없는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가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심사성원의 한사람으로 내려온 기술국장 문규의 말을 듣고나니 다소 안심이 되기도 했다.

《부에서도 취입과정에 나타나고있는 부족점들을 알고있소. 기술적으로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으로도 복잡하다는것을 알고. 그래서 실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고 방도를 세우자고 내려온거요.》

그의 말에 의하면 이번 심사는 부장자신이 발기했고 또 그가 직접 심사성원들까지 선발했다는것이다. 하긴 이젠 취입공정안까지 확정되였으니 부에서 서두를것도 당연한 일이였다.

그사이 제철소에서는 진호의 요구에 따라 취입공정안에 대한 설계를 현상응모했다. 결과 여러건이 제기되였는데 그중 태수가 제기한 《원판식취입기》와 기철이의 《기류식취입기》 두 안이 부에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원판식취입기》는 기계적복잡성과 설비제작의 불합리성으로 기각되고 구조가 간편하면서도 실용적인 기철이의 《기류식취입기》가 채택되였던것이다. 이로 하여 이젠 새 연료만 담보되면 그것을 취입할 공정은 마련돼있는것이나 다를바 없게 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취입공정안이 제기됨으로 하여 새 연료안의 결정적인 국면이 열린것으로 보기까지 했는데 실상 그렇게 떠들만한 가치가 있는 혁신안이였다. 진호는 불과 한주일사이에 그런 취입공정을 착안해준 기철이를 진심으로 고마와했으나 태수는 반대로 불만을 품고있었고 정아는 정아대로 웬일인지 그에 대한 아무런 견해표명이 없었다.

(과연 내가 어떻게 이 사람들, 이 야금계의 거장들을 만족시킬수 있단 말인가?)

진호는 대충 준비한 자기 기술안에 대한 개요를 뒤적거리면서 지배인실의 커다란 탁자두리에 둘러앉아있는 심사성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머리가 희슥희슥한 로학자들이였다.

분명 이들이 이제 기술안의 착상동기로부터 시험과정의 탐색과 내면적인 심리에 이르기까지 꼬치꼬치 캐고들건 뻔한노릇인데 뭐라고 한단 말인가! 더우기 아직 과학적인 담보가 명백치 않다는것을 알고는 내심 조소와 경멸을 품을수도 있을텐데 그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그는 해놓은 일에 비해 판이 지내 요란해서 걱정스러웠고 그것이 마치도 자기가 성과를 과장한데로부터 이런 사달이 벌어진것같아 두렵기까지 했다.

심사석에는 명식이도 앉아있었다. 그를 대하는 순간 먼저 떠오르는것은 언젠가 그의 사무실에 뛰여들어 기염을 토하던 일과 그때 자기를 랭소를 띤 눈길로 바라보던 그의 모습이였다. 자기가 입원하고있은 사이 투사기를 심사하러 왔다가 새 연료안에 대해 아니, 자기에 대해 내린 그의 가혹한 결론도 상기됐다. 그러면서 때없이 눈앞에 나타나 자기를 괴롭히군 하던 현옥이의 모습도 되새겨졌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어쩐지 그에게 품었던 전날의 고까운 감정이 한갖 유치하고 하찮은것으로만 여겨지는것이였다.

지난날의 온갖 불쾌한 추억을 마음속깊이 억누르고 그저 의견상으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극히 허심하고 천연스런 태도로 그를 대할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간직되여있으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였다. 하지만 이제 와선 확실히 그런 힘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가지만은 궁금했는데 그것은 새 연료의 취입이 승산을 내다보고있는 이제 와서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아직도 부인할가 아니면 긍정할가? 긍정한다면 어떤 근거로 긍정해나설가?)

그렇게 봐서 그런지 명식의 표정이 여느때없이 긴장돼있는것같았다.

《자― 준비됐소?》

방안에 들어선 부장은 딱딱한 분위기를 무시해치우려는듯 미소를 띠운 눈길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몸집은 체소했으나 단단하게 다듬어진 턱이며 안경속에서 반짝이는 두눈은 대뜸 류다른 결패와 강단을 암시하고있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론문심사가 아니니까 목적이요 개요요 하는건 약하기요. 이미 모두 현장에서 취입되는걸 직접 보았으니만치 필요없는 설명도 피하고… 어떻소?》

부장은 량옆에 앉아있는 제철소지배인과 문규를 번갈아보았으나 대답을 바라는 물음은 아니였다.

오늘심사는 극히 필요한 사람들만 망라된 소범위의 심사였다. 심사성원들외에는 기술안을 같이 추진하고있는 태수와 정아 그리고 취입기를 설계한 기철이 세사람뿐이였다. 정식심사가 아니라는데도 있었지만 보다는 실천적인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기 위해서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호는 은연중 문규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변론을 담당한 교수가 제자를 마주볼 때와 같은 그런 고무를 느낀 진호는 저으기 마음이 안정됐다. 이미 그로부터 어떤 방향에서 준비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언을 받았던것이다.

《그럼 새 연료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먼저 말씀드리지 않을수 없는것은 여러 동지들이 기대하는만큼 충분한 답변을 드릴만한 준비가 못돼있다는것입니다. 그것은 취입이 아직 시험단계에 있기때문이고 또 제자신의 수준이 어리기때문입니다.》

(쳇! 저따위 소리는 무엇때문에 해!)

정아와 함께 창가에 앉아있던 태수는 벌써 주눅이 들어버린것같은 진호의 태도에 코를 킁킁거리며 눈알을 부라렸다.

《알고있소. 시험단계에 있다, 부족점이 많다, 이런건 우리도 다 알고있단 말이요. 시험과정에 나타나고있는 실태에 대해서나 말해보오.》

무뚝뚝하게 들리는 부장의 말이였으나 진호에게는 용기를 돋구어주었다.

새 연료취입의 가능성을 찾게 된데로부터 연료와 중유의 차이, 연료의 난점에 대해 그리고 그 난점을 보충하기 위해 첨가제를 도입한것을 언급한 그는 첫 시험의 실패원인과 현재 취입시험과정에 나타나고있는 현상들을 상세히 밝혔다.

《우선 중유에 비한 새 연료의 우점이 뭔지 그것부터 얘기하오.》

진호가 제 곬을 못찾는것이 못마땅했던지, 아니면 그만큼 강조했는데도 중요한 대목을 그냥 스쳐버리는것이 불만스러웠던지 문규가 불쑥 한마디 했다.

《새 연료의 우점은 이렇습니다. 열량을 따질 때에는 아직도 중유와의 차이가 일정하게 있지만 첨가제와 보충연료의 합리적인 배합을 전제로 할 땐 거의 온도차이가 없다는것입니다. 이젠 1 800도의 온도는 담보하고있습니다. 특히 새 연료의 우점은 화염이 로공간에 뜨지 않기때문에 강욕중심에 포복현상을 이루며 미치게 되므로 중유취입때처럼 화염이 천정을 마모시키지 않을뿐더러 짧은 시간에 쇠물온도를 높일수 있습니다. 이것은 로수명을 연장시키는데서나 제강시간을 단축시키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작용을 할수 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습니다.》

《음―》

한손우에 다른 손을 포개얹은 부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첨가제의 역할이 생성물을 슬라크화하는데도 있다는게 옳소? … 옳다! 그건 어느 정도 처리하오?》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진호는 말꼬리를 흐리였다.

《파악이 없단 말이요?》

《처음부터 시험기구를 준비하지 못한데다가 새 연료를 조업도중에 취입했기때문에 정확한 량을 추산하지 못하고있습니다. 하지만 명백한것은 많은 량의 생성물이 슬라크화되고있다는것입니다.》

《그건 어떻게 아오?》

《연재의 분석을 통해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슬라크염기도가 그것을 실증하고있지요.》

《음―》

이번에도 똑같은 소리를 냈으나 아까와는 달리 어딘가 미심쩍어하는 기색이였다.

《새 연료에 의한 제강시간에 대해 알고싶은데요.》

과학기술위원회에서 온 처장이 마치 지내 까다로운 질문이나 아니냐는듯 조심스런 어조로 물었다. 그에 대해 대답하자 이번엔 그옆에 앉아있는 머리가 벗어진 연구소장이 강질의 변화에 대해 묻는것이였다. 탈탄속도와 규소성분에 대해, 분출구구조와 축열실에 대해서도 질문이 연방 제기되였다.

대답을 하면서도 진호가 놀라지 않을수 없는것은 심사성원들이 자기를 허술히 대하지 않을뿐 아니라 마치 대단한 과학자라도 되는것처럼 신중하게 대해주는 점이였다.

《알겠습니다.》하고 경어를 쓰는가 하면 별치 않은 현상에 대한 설명에도 《아!― 그렇군요! 옳습니다, 훌륭합니다.》하는 찬사까지 보내는것이였다. 직급과 나이의 한계를 초월한 이들의 처사에 진호는 면구스럽기도 했고 옹색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자기 역시 그들처럼 고상해진듯한감을 느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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