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회)

제 7 장

우리는 젊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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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식은 침묵으로 대했다.

이럴 때 대꾸하면 말이 길어질뿐더러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자기의 보다 엄중한 과오로 하여 문제가 복잡해질 우려가 있다는것을 알기때문이였다.

《제가 좀 말하겠습니다.》

문규가 자리에서 일어나는것을 본 명식은 가슴이 덜컹했다. 언젠가부터 자기를 대할 때마다 고까운 눈길을 감추지 않던 문규였다. 그때마다 은연중 늙은 국장에 대한 본능적인 불만과 함께 어떤 두려움도 함께 체험하게 되였던것이다.

《전 하나 물어보고싶습니다. 정말 실장동무가 아직도 새 연료안을 우연이라고 보는지, 과학적인 타당성이 없다고 보는지 하는겁니다.》

《…》

《전 결코 실장동무가 그걸 분간하지 못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처음엔 그럴수 있었다 해도 일반 심사원들도 다 리해하는 그걸 왜 느끼지 못하겠습니까. 압니다. 알고도 남지요. 그런데 어째서 이 자리에서까지도 계속 그런 주장을 하는가 하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문규의 꼿꼿한 시선은 명식의 정수리를 면바로 노려보고있었다.

《혹시 그렇게 해야 자기 결함이 감추어지리라고 여기는게 아니요? 그렇게 우겨야 여태껏 당의 요구를 외면한것이 아니라 기술안에 대한 의견때문이라는것이 증명된다고 여기는게 아닌가 말이요.

실장동문 지금 어떻게든 자길 위장해보려고 하지만 바로 그런 너절한 추태가 여태껏 당의 의도보다 자기 속심만 채워왔다는걸 증명하고있단 말이요. 바로 그 비겁성이 여느땐 원칙이 있는것처럼 떠들던 사람이 일단 처지가 위태로와지면 더없이 교활해진다는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소. 실장동무! 제발 그런 가장된 미욱은 부리지 마시오. 좀 인간다운 량심을 가지란 말이요.》

명식은 그제야 자기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현실적으로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부끄럽다거나 수치스럽다는 감정은 이미 초월하여 에라, 될대로 되라 하는 자포자기의 느낌뿐이였다.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했다.

부장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꾹 다문 입술과 우묵한 안확속에 단단히 박힌 눈, 흥분을 누르느라고 꽉 틀어쥔 손, 이 모든 인상은 현상을 분별있게 또 확신성있게 처리하는 사람에게서만 볼수 있는 그런 준엄성과 엄격성으로 가득차있었다.

《얼마나 무서운 일이요. 오늘 우리 현실에서 제일 무서운건 바로 저 실장동무와 같이 뜨거운 심장이 아니라 타산된 수치만 가지고 그것도 충실한척 가장하면서 일하는 그런 일군이 자리를 차지하고있는거요. 됐소, 앉으시오. 오늘은 새 연료안에 대해 알아보자고 왔지 동무때문에 온건 아니니까. 동무문젠 따로 토론하겠소.》

굳어진듯이 한자리에 서있던 명식은 앉으라는 소리를 나가라는 말로 들었는지 아니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던지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진호는 그런 명식이를 보느라니 여태껏 품었던 반감은 사라지고 어쩐지 그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는 감상적인 사람이 버림받는 사람을 바라볼 때와 같은 그런 동정어린 눈길로 명식이를 지켜보았다.

《계속합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있었다 해도 그건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듯이 흔연한 표정으로 돌아선 부장은 곧 출입문옆에 앉아있는 기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책임기사동무던가?》

옆에 있던 지배인이 옳다고 귀띔하자 부장은 곧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취입공정안을 설계하느라고 수고가 많았소. 사실 새 연료의 취입과 관련된 과학적인 가치나 성과를 따짐에 있어서 연료자체가 가지는 의의도 의의지만 기류식취입기의 착안, 여기에도 적지 않은 의의를 부여하지 않을수 없소. 결국 동무들 두사람이 일심동체가 된것으로 해서 새 연료의 취입이 가능하게 된것이 아니겠소. 얼마나 큰 일이요. 새로운 연료로 강철을 쫄인다는게 어딘가 말이요.

이 성과는 나타난 사실에 몇곱을 해도 모자라오. 왜냐하면 일년에 수만톤의 중유를 절약하는데만 있는것이 아니라 보다는 이젠 우리의 무진장한 연료를 쓰게 된데 더 큰 의의가 있단 말이요. 난 중유를 대신하는 우리 나라의 연료가 곧 취입된다는데 대해 또 동무들의 노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당에 보고하려고 하오.》

《…》

기철은 뭐라고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대답도 대답이지만 얼굴이 달아올라 견딜수가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지나간 모든 일을 상기시키며 량심에 꺼리끼는 일을 하고도 뻔뻔스럽게 앉아있는 자기의 비렬성을 자인할것을 요구하고있었으나 어떤 다른 힘이 이 충동을 억제해버리는것이였다.

(당에 올리는 보고! 만사람의 격찬! 화려한 명예!)

그래도 대담하게 일어나 《전 사실 이제껏 새 연료안을 외면해온 사람입니다.》 하고 말해야 할것이다. 아니 《의의가 너무도 큰것이기때문에 그 성과에 한몫 끼여들자고 취입공정을 설계한데 불과합니다.》 응당 이렇게 까밝혀야 옳겠으나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람이란 누구나 살아가는 과정에 자기의 량심을 각별히 엄정하게 지켜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때 량심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면 개인적인 행복이 크게 약속될 그런 기회가 생기는 경우도 있는것이다. 그런데 그때의 경계선이라는것이 반드시 뚜렷하고 명백한것이 아니기때문에 자기의 리익을 생각하는 사람에겐 쉽사리 그 경계의 밖에 서게 되는것이다.

기철이도 바로 그런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내심을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정아였다.

정아가 느낀 첫 감정은 경악이였다. 하지만 곧 심장이 터질듯 괴로왔다.

(어쩌면 진호동무가 갖은 고생을 다해 이룩해놓은 성과에 서슴없이 발을 들여놓을수 있을가! 어쩌면 단 한마디나마 자긴 가망이 없는 일로 여겨 소격하게 대해왔노라고 말하지 못하는걸가! 그가 이젠 진정으로 새 연료안을 도와나선다고 믿었던것이 잘못이였단 말인가! 취입안의 설계를 부에 올려보내고도 그가 말하지 않은것이 지나간 일에 대한 부끄러움과 회오때문이라고 여겼던 내가 어리석었단 말인가! 아니야! 그는 결코 그렇게 량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야. 이제 일어나 모든걸 말할거야. 대담하게 자기의 잘못을 털어놓을거야.)

그러나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의 기색으로 봐서는 도저히 일어설상싶지 않았다.

(아, 어쩜 저럴수 있을가?)

《고생은 누구보다 저 처녀동무가 많았지요. 계속 진호동무의 조수의 역할을 했으니 말입니다.》

이런 지배인의 말에 정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처녀동무가 어디 한번 말해보오. 동무들한테 걸린 문제가 뭐요? 당장 해결해주었으면 하는게 뭔가 말이요.》

《전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아는 두손을 맞쥐면서 고개를 숙였다.

《다만 이 자리에서 명백히 밝히고싶은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 연료안과 관련된 성과는 전적으로 진호동무가 이룩해놓았다는것입니다.》

그는 야무진 눈길로 기철이를 돌아본 다음 말을 이었다.

《물론 취입공정도 무시할수야 없겠지요. 그러나 제 생각엔 그것이 정당한 의도에서 창안된것이 못된다고 봅니다. 성과가 크다고 어떻게 그 성과에 온당치 못한 의도를 용해시킬수 있겠습니까. 전 우리 기술안이 당에 보고되기때문에 이 사실을 더 밝히지 않을수 없습니다.》

모두들 아연한 눈길로 정아를 바라보았다.

누구보다 놀란것은 진호였다.

(아―니?)

정아가 누구를 사모하고있는가 하는것을 진호도 이젠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러니 이젠 맘이 변했다는건가? 사랑을 품을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단정해버렸는가?)

진호는 기철이를 돌아보았다.

굳은듯이 앉아있는 그는 숨도 쉬지 않는것같았다. 모멸과 치욕으로 하여 낯색이 창백해질대로 창백해있던 그는 마치 견딜수 없는 중압을 헤치기라도 하듯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옳습니다. 정아동무 말이 옳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아래로 떨구며 말했다.

《전 사실 새 연료안이 가망이 없는것으로만 여겼댔습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성공하리라는것을 알고서야 설계에 달라붙었습니다. 성과가 너무도 커서, 평가에 유혹돼서 말입니다. 전… 전 사실 그렇게도 량심이 없는 놈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의 괴로운 신음이였으나 거기에는 뜨거운 진정이 너울치고있었다.

《…》

부장은 물론 심사원들까지도 저마끔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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