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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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신발은 어디것이 제일 좋소?》
왜서인지 사람들은 한순간 말을 못하고 침묵했다. 조인섭의 목소리가 울렸다.
《신발은 원산구두공장에서 만드는것이 최고라는걸 알지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신발공장에서 30년을 일했는데 신발이야 아버지공장것을 신어야 하지 않겠느냐구 합디다. 아들녀석이 하는 말을 들으니 내 심정도 좀 별났습디다. 코마루가 찡해지는게…》
사람들은 불현듯 자기들앞에 있는 직장장이 60고개를 바라보는 늙은이라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주름이 잡힌 얼굴에 곡진하고 시름겨운 빛을 짓고 조인섭은 말했다.
《하면서도 좀 부끄럽더라구요. 내 아들이 장가를 가면서 신을만한 온전한 신발 하나 못만들면서도 30년을 신발을 만들어온다고 자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서 지배인동지에게 우리 아들, 며느리가 결혼식을 하면서 신을 최상급의 신발을 만들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댔지요.》
그의 말은 다소 쓸쓸하게 울렸다. 회관안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김윤화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난 그 부탁을 받고 개발실에서 결혼식때에 신어도 손색이 없을 남녀 신발을 설계하게 했습니다. 혜련동무, 정화동무, 동무들이 그린 신발도안들을 보여주세요.》
앞쪽에서 개발실의 준비원들이 콤퓨터로 그린 신발도안들이 손과 손을 거치며 회관안을 돌기 시작했다. 찬탄과 공감의 웅성거림이 도안들과 함께 회관을 떠돌았다.
《어떤 공장들은 계획을 넘쳐했다고 만세를 부르는데 인민들은 그 공장의 제품을 잘 리용하지 않고있습니다. 질이 높지 못하고 수요에 맞게 다양하지 못하기때문입니다. 만세는 공장이 아니라 인민들이 불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공장은 지금 그저 편안하고 쉽게 일하면서 만세만 부르려 하고있습니다.》
김윤화는 조용한 눈빛으로 회관안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 눈빛을 번득거리며 지배인을 마주보는 사람, 저희들끼리 심중한 표정으로 수군거리는 사람…
《우린 모든 신발들을 자기 자식이나 부모들이 신는 신발을 만들듯이, 바로 저렇게 결혼식신발을 만들듯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신발을 만드는것이 바로 다품종화생산입니다.》
김윤화는 마대속의 수지운동신들을 하나하나 쳐들어보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 신발은 문지기가 신었던 신발인데 40문입니다. 이 선수는 바닥이 미끄러지는것을 내놓고는 신발에 다른 의견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선수는 신발장식이 단순하고 무게있는것을 좋아합니다. 너무 알락달락, 울긋불긋한건 싫어합니다. 대신 공격수인 10번선수는 진색으로 장식한 화려한 신발을 좋아합니다. 장식이 많고 다색화된 신발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신발색갈에 검은색이 들어가있는것은 죽어라고 싫어합니다. 14번선수는 색갈이나 장식은 관계없이 가볍고 꼭 붙는 신발을 좋아합니다. 신발이 양말을 신은것같으면 좋겠다는것이 그의 견해입니다.
방어수들의 신발에 대한 견해는 또 다릅니다. 그들은 신발이 미끄러지고 발이 신발안에서 노는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신발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그들의 견해는 신발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를 종합한것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난 그들의 취미와 견해를 반영한 11개 품종의 신발도안을 새롭게 그리도록 했습니다. 난 공장이 이제부터 바로 그 11개 품종의 신발을 만들자는것을 제의합니다. 그렇게 만든 우리 공장의 신발을 축구선수들에게 다시 가져다주자는걸 호소합니다.》
문득 조인섭이 조심스럽게 연탁을 두드리며 수군거렸다.
《저… 지배인동지, 11가지만 생산하면 우리 아들, 며느리는?…》
김윤화는 웃었다.
《오, 그렇군요! 제화직장장동지의 아들, 며느리 생각을 못했군요. 그럼 우리 그 신발까지 합해서 모두 13가지의 신발을 만들자요. 다품종화생산으로 우리 공장의 힘을 키우구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자요.》
사람들은 회관안이 울리도록 술렁거렸다. 찬탄과 공감도 있고 불안과 우려도 있으며 거부감도 풍기는 각이한 웅성거림이였다. 그 웅성거림은 그냥 회관안을 울려갔고 다음날 생산현장들에까지 그대로 이어져갔다.
공장은 힘들게 모지름을 쓰면서 다시금 다품종화생산을 시작했다.
조인섭직장장의 아들의 결혼식날이 왔다. 김윤화는 신랑신부가 시내를 도는 길에 굳이 공장에 들렸다가도록 했다. 신랑신부가 공장정문에 도착했을 때 온 공장이 떨쳐나와 환성을 올리며 축하해주었다.
《거 결혼식옷감은 확실히 우리 나라것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것같구만.》
《원, 신발공장사람이면 신발부터 먼저 보라구요. 신발이 얼마나 멋쟁인가? 그런데 류성신발공장상표는 붙였는지 모르겠다.》
한사람이 참지 못하고 슬그머니 신랑에게 다가가 바지단을 들고 신발을 살펴보기까지 했다. 그리고나서 소리쳤다.
《붙였어요!》
사람들은 와하하 웃었다.
《머리빈침은 우리 나라의 <코스모스>예요. 꽃도 우리거겠지요?》
《중구역꽃방에 우리 나라에서 꽃을 제일 잘 만드는 녀인이 있대.》
《오!》
《그런데 넥타이가 좀…》
《그래, 늙은이색갈 같아보이는구만. 보나마나 조인섭직장장이 골랐겠지. 말이나 잘하지 미감이야 나이를 속이나?》
《어쨌다구 그래? 무게있어보이는데…》
《나도 아들 결혼식을 저렇게 해야겠다.》
김윤화를 비롯한 공장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난 신랑신부가 떠나려고 승용차에 오르려는데 누군가가 문득 소리쳤다.
《아니, 그런데 승용차가 우리 나라것이 아니지 않나? 수입제야!》
모두가 깜짝 놀라 굳어졌다. 승용차는 김윤화가 공장승용차를 내주었는데 다른 나라의 승용차였다. 종업원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아니, 거 모든걸 다 우리 나라의 최상급으로 했는데 승용차를 다른 나라의걸 타다니?》
《틀렸다. 틀렸어!》
《조인섭직장장, 조인섭직장장을 찾으라구!》
《이왕이면 우리 나라의걸 태우자구. <휘파람> 이 있지 않아, <휘파람>!》
《아니, <뻐꾸기>, <뻐꾸기> 가 최고다!》
조인섭직장장은 없고 신랑신부와 둘러리들이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라하며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김윤화도 신랑신부와 승용차 그리고 열이 올라 소리치는 종업원들을 바라보며 어쩔바를 몰라 서있었다. 자기의것에 대한 긍지를 느끼고싶어하는 종업원들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불현듯 화끈 달아오르는 마음을 느끼며 손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옳아요! 신랑신부를 우리 나라의 제일 좋은 승용차에 태우자요. 승용차는 내가… 내가 다시 구해오겠어요!》
체육경기를 응원하는것과 흡사한 열띠고 즐거운 웨침소리가 떠올랐다. 그 웨침소리에 떠밀리우듯 김윤화는 급히 공장정문을 벗어나 큰길로 달려나왔다. 하지만 다음 순간 당황하여 길가에 굳어졌다.
신랑신부를 세워두고 이제 당장 어디 가서 필요한 승용차를 구해온단 말인가?
국내에서 생산한 고급승용차가 있는 일군들을 그려보며 손전화기를 꺼내들었으나 당장 어디에 가서 승용차를 구해와야겠는지 알수가 없었다. 하면서도 무작정 길을 따라걸었다. 딱히 어쩌겠다는 방도도 없이 그냥 허둥거리며 걸었다. 지나치는 승용차들에 자꾸만 눈이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문득 김윤화의 눈에 어느한 기업소정문앞에 서있는 승용차가 비껴들었다. 그것이 《뻐꾸기》표승용차라는것을 알아보는 순간 반가움과 기쁨으로 온몸이 확 달아오르는듯했다. 정신없이 그 승용차에로 달려갔다. 승용차차체를 마른 걸레로 닦고있던 애젊어보이는 운전사가 례사롭지 않은 얼굴로 다가오는 김윤화를 경계하듯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