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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보

주체110(2021)년 9월 28일 《통일신보》

 

    수 기 

 우리일가의 소중한 추억

 

사람은 젊어서는 희망에 살고 늙어서는 회억에 산다고 한다.

세월은 가고 백발이 오는 법이여서 내 이제는 팔순이 넘은 고령인지라 왕년의 일들이 까마득히 멀어진다.

하지만 백두산녀장군이시며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녀사께서 통일애국의 길에서 나의 시아버님(몽양 려운형)과 시누이(려연구, 려원구)들에게 기울이신 사랑과 정에 대한 이야기는 내 아들딸자식뿐아니라 손자, 손녀대에 이르도록 우리일가가 영원히 잊지 못하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열렬한 인간애와 민족애를 지니신분이시였다.

해방후에 있은 일이다. 어버이수령님의 통일애국로선을 받들어 심혈을 기울이신 그 나날 녀사께서는 나의 시아버님이 불원천리하고 평양에 왔을 때 체류기간 온갖 성의를 다하여 따뜻이 환대하셨다. 끼마다 색다른 음식 한가지라도 더 대접하도록 마음쓰셨고 객지생활에서 사소한 불편이 있을세라 이모저모로 왼심을 기울이셨다.

평양에 올적마다 어버이수령님의 댁에서 류숙하면서 김정숙녀사의 후덕한 인정미에 감복해 시아버님은 내 고향집에 온것 같은 기분이였다고 심경을 터놓았었다. 장군님께서도 위대하시고 녀사님도 또한 위대한 조선의 녀걸이시다, 그분께서는 수수한 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보통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신다, 농촌에 가시면 농민들을 도와 밭일도 하시고 메돌질도 물레질도 하시고 방아도 찧어주신다, 녀사님께서 지어주신 밥을 먹으면서 이분이 왜놈들을 전률케 하신 백두산의 녀장군이시구나 하고 생각하니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을 새 조선의 령수로 신뢰하며 그이의 자주독립국가건설로선을 적극 지지하고 받든 시아버님의 당부를 따라 딸자매가 평양으로 오게 됐고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보살피심속에서 생활하며 성장하였다.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그때 일을 더듬으시며 너희 아버지가 딸들때문에 페를 끼치게 되여 미안하다고 하길래 그런 말씀마시라고, 다 큰애들 밥이나 제때에 먹이고 책가방을 싸주면 되겠는데 무슨 페가 되겠는가고, 조금도 념려말고 어서 보내라고 했다고 말씀하셨다.

해방직후 수령님댁에는 항일의 빨찌산전우들은 물론이고 항일혁명렬사유가족들과 각계층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았다. 우리 시아버님을 비롯한 남조선의 정객들말고도 외국의 벗들도 있었다.

그러나 녀사께서는 댁의 살림살이가 어려운 형편에서도 그 많은 손님들을 친어머니, 맏누이의 손길로 반가이 맞이하고 소박한 식사라도 늘 성의껏 대접하셨다. 녀사께서는 나의 시누이들이 외국에 류학갈 때에는 철에 따르는 갖가지 옷가지며 신발, 학용품과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생활용품들을 모두 챙겨주셨다. 그리고 그들과 헤여질 때에는 부디 앓지 말고 공부를 잘하라고, 공부 많이 하고 돌아오면 우리 함께 손잡고 부강한 조국건설을 위해 힘껏 일해보자고 하시였다.

하지만 그들이 류학을 떠나며 본 녀사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뵈온 모습이였다.

그들이 류학하는 나날 때로는 햇쌀이며 고추장도 보내주시며 살뜰히 보살펴주시고 때로는 편지를 띄우시여 공부도 잘하고 생활도 잘하라고 신칙하시며 너희들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이면 통일이 되겠지, 그때 함께 서울에 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자고 하셨던 녀사이시다.

우리 시아버님과 시누이들을 한식솔처럼 대해주시며 각근한 사랑과 정을 기울이시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살도록 보살펴주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38(1949)년 9월 22일 너무도 애석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녀사께서 생전에 그처럼 가슴아파하신 민족분렬은 세월을 넘어 세대를 이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나와 자손들은 지금도 김정숙녀사께서 우리일가에게 베푸신 인덕을 잊지 못하며 녀사의 념원인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전심하고있다.

김정숙녀사의 서거 72돐에 즈음하여 절절한 경모의 인사를 삼가 드린다.

 

로 현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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