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전설

잊지 못할 하모니카소리

 

위대한 김일성주석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함께 세월과 더불어 전해지는 가슴뜨거운 사연을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평안남도를 현지지도하시던 어느 해 봄날이였다.
  그날 어둠이 조용히 한겹두겹 누리를 감싸안던 때,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는 숙소로 찾아들어가던 일군은 저도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분명 누군가 손풍금반주에 맞추어 하모니카를 부는것 같기도 하고 하모니카를 위한 기악중주를 연주하는것 같기도 하였다.
  경쾌하고도 전투적기백이 넘쳐 흐르는 혁명가요였다. 류다른 하모니카소리에 이끌려 한걸음, 두걸음 선률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다가가던 그는 주춤 그 자리에 멈춰섰다.
  외등이 켜져있는 정원의 수수한 의자에 어버이수령님께서 앉아계시였던것이다.
  몇몇 수행원들만 있을뿐 연주가들은 눈에 띄우지 않았다.
  순간 그는 우리 수령님께서 록음기로 음악을 감상하고계신다고  생각하였다.
  혁명가요 《유격대행진곡》을 연주하는 하모니카소리는 어둠이 짙어가는 저 하늘 멀리로 퍼져가며 준엄하고도 영광스러운 항일전의 나날에로 추억의 나래를 펼쳐주었다.
  《유격대행진곡》이 끝나고 혁명가요 《인민주권가》의 선률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모처럼 마련된 어버이수령님의 음악감상에 방해가 될세라 조심조심 몇발자국 다가가던 일군은 그만 못 박힌듯 선자리에 굳어졌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하모니카를 불고계시였던것이다.
  일군은 우리 수령님께서 어쩌면 하모니카를 그리도 잘 부시는가 하는 놀라움을 금할수가 없었다.
  이윽하여 하모니카연주를 끝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곡 더 듣고싶어하는 수행원들에게 그만하자구, 내가 국가주석이 아니고 당 총비서가 아니라면 매일저녁 우리 집에서 음악회를 열고 동무들을 초청하겠소라고 말씀하시였다.
  수행원들이 그래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보고만 불라고 하지 말고 동무들도 불어야지. 사람은 락천적으로 살아야 하오. 혁명가는 비관을 모르는 락천가가 되여야 하오.》
  먼발치에 서있었지만 자신을 찾아온 그 일군을 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집무실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 일군은 어버이수령님을 따라 길을 많이 걸었지만 그때 수령님의 발자국을 따를 때에는 가슴이 더욱 뜨거워졌다.
  우리 수령님께서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얼마나 멀고 험난한 길을 걸어오셨는가.
  눈보라만리, 혈전만리를 헤치셔야 했던 그 장구한 나날 어려울 때마다 노래를 부르시며 힘을 얻군 하신 우리 수령님.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인민주권가》와 같은 혁명가요들을 통하여 해방된 조국에 일떠설 인민의 나라를 눈앞에 펼쳐주시며 미래에 대한 신념과 락관을 북돋아주신 우리 수령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나날처럼 힘든 고비들을 락천적으로 넘기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고 수호하시였으며 우리 조국을 부강하게 건설하기 위한 사업을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에서 혁명가요 《유격대행진곡》, 《인민주권가》를 하모니카연주로 들려주신데는 항일의 나날 혁명선렬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는 강의한 혁명정신으로 무장한 불굴의 투사들로, 미래를 락관하는 락천가들로 자라난것처럼 우리 후대들도 대를 이어 혁명가요를 높이 부르며 사회주의조국의 수호와 무궁번영을 위하여 견결히 싸우는 참다운 혁명가들로 자라나기를 바라시는 크나큰 믿음과 기대가 담겨져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일군과 수행원들의 가슴속에는 어버이수령님의 하모니카소리가 영원히 사라질줄 모르는 삶과 투쟁의 선률로 새겨졌다.
  이 이야기는 절세의 위인이신 우리 수령님의 위인상을 조국청사에 새겨갈 로동당시대의 또 하나의 혁명전설로 길이 전해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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