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4월 20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대를 이어 복수하리라

중앙계급교양관 강사 리옥희녀성의 체험담을 전하며

 

얼마전 우리는 중앙계급교양관의 한 강사와 상봉하게 되였다.

그는 70고령의 로인,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야수들에게 두팔을 빼앗긴 리옥희녀성이였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미제침략자들의 극악무도한 만행을 피타게 절규하며 그는 말하였다.

원쑤놈들에게서 피값을 받아내기 위해 세 딸의 이름을 《김복수》, 《김하》, 《김리라》 즉 《복수하리라》로 짓고 아들의 이름은 원쑤를 대를 이어 기어이 갚고야말겠다는 결심을 담아 《김원대》라고 지었다고. …

리옥희녀성의 체험담은 미제가 우리 인민에게 감행한 만행이 얼마나 악랄하고 치떨리는것인가를 새겨주고 구천에 사무친 그 원한을 기어이 우리 세대에 갚고야말리라는 서리발치는 증오와 분노로 우리의 피를 펄펄 끓게 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반제반미교양, 계급교양을 떠나서 우리 인민의 자주적삶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하여, 혁명의 승리,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미제원쑤놈들은 리옥희녀성이 나서자란 고향마을에도 기여들어 피비린내나는 살륙만행을 감행하였다.

전선에 보낼 식량을 안전한 곳에 옮기고 뒤늦게야 후퇴의 길에 올랐던 그의 아버지도 놈들에게 체포되여 악착스러운 고문을 당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세 자식을 데리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놈들의 눈을 피해 산으로 올랐다. 산속에서 며칠을 보낸 그들에게는 먹을것이 떨어졌다. 집에만 내려가면 포근한 이불도 있고 밥도 있을텐데…

어린 옥희의 작은 가슴엔 이런 생각이 파고들었다. 먹을만 한 산열매나 풀뿌리를 찾아 산속을 헤매이던 그의 어머니는 놈들이 설마 어린애를 어쩌랴 하는 생각으로 옥희를 집에 내려보내였다. 그 설마가 그처럼 어리석은것인줄 어이 알았으랴.

옥희가 집뜨락에 거의 다달았을 때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고함소리가 울렸다. 뒤를 돌아다본 옥희는 소스라쳐 놀랐다. 야수의 몰골그대로인 미군 두놈이 총을 들고 자기에게로 달려오고있었던것이다. 옥희는 황급히 뜨락으로 달려들어가 방문고리를 잡았다. 노리개라도 만난듯 히히닥거리던 두놈중의 한놈이 총을 들어 문고리를 잡은 어린 옥희의 오른팔을 쏘았다. 쇠망치로 후려치는듯 한 감각과 함께 옥희의 오른팔은 맥없이 늘어졌다. 허나 무서움에 아픔조차 느끼지 못한 옥희는 어서 집안에 들어가 숨어야 할텐데… 이 하나의 생각에 다시 왼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 순간 또 한방의 총성이 울리고 옥희의 왼팔에서도 선지피가 흘렀다. 소리 한마디 크게 지르지 못한채 의식을 잃고 쓰러진 옥희의 작은 몸이 토방에서 마당으로 굴러떨어졌다.

옥희의 어머니가 뒤늦게야 어린 딸을 찾아 정신없이 달려온것은 바로 이때였다.

피칠갑을 한 어린 딸을 본 순간 어머니의 두눈에서는 불이 일어번졌다.

《이 인간백정놈들아, 내 딸을 살려내라.-》

미제원쑤놈들은 그러는 옥희의 어머니를 총탁으로 때려 쓰러뜨리고는 군화발로 그의 팔과 가슴을 마구 짓밟았다.

피를 즐기는 야수들은 그것으로도 성차지 않아 쓰러진 옥희를 화물자동차적재함에 올려뜨리고 제놈들의 소굴로 끌어갔다. 이미 피를 흘릴대로 흘리여 시체나 다름없이 된 옥희를 끌어내린 원쑤놈들은 그를 두툼한 널판자우에 비끄러매였다.

놈들은 《빨갱이종자가 얼마나 숨이 질긴지 보자.》고 하면서 널판자에 묶이운 그 어린것의 왼팔을 어깨밑까지 톱으로 뭉청 잘라내였다. 또다시 소녀의 오른팔에 달라붙은 놈들은 손목에서부터 팔굽밑까지 세토막을 내였다. 그럴 때에 야수들중의 한놈이 이 자리에서 아주 죽이기보다 이쯤해두는게 더 고통스럽게 죽게 할것이다, 혹시 숨이 붙어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고통속에 시들어죽고말것이라고 지껄이며 잘라낸 팔토막들을 쓰레기마냥 내던졌다.

의식을 잃은채 겨우 숨이 붙어있던 옥희가 인민군군인들에 의하여 구원된것은 그로부터 몇시간후였다. 옥희는 마침내 군의소에서 소생하였다.

옥희는 웃기도 잘하고 눈물도 헤프던 소녀였다. 그러나 미제야수들에게 두팔을 잃은 뒤의 옥희는 영 딴 아이가 되여버렸다. 두손이 없어 생활의 순간순간마다에 당하게 되는 쓰라린 좌절감으로 몸부림친적은 그 몇번이던가.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미제원쑤놈들의 흉물스런 상통과 놈들이 뇌까리던 말을 상기했다. 설사 살아난다 해도 고통속에 시들어죽을것이라던 살인귀들의 지껄임을 돌이키며 복수의 맹세를 더욱 억척스레 다지군 했다.

그는 입술을 사려물고 글쓰는 련습을 하였다. 처음에는 발로, 그다음에는 팔에 연필을 비끄러매고…

이렇게 대학까지 졸업하고 20대의 처녀로 자란 옥희가 중앙의 어느 한 신문에 소개된 후 전국각지에서 많은 편지가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바로 그 고마운 사람들가운데 조국의 최전연초소를 지켜선 김봉수라는 인민군지휘관도 있었다.

그의 편지는 끊기지 않고 계속 날아왔다. 어느날 옥희는 그 군관이 보낸 47번째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서 군관은 자기 가슴속의 크나큰 상처, 미제원쑤놈들에 의하여 자기 가정이 당한 크나큰 불행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우리 고향인 삼천군에 기여든 미제원쑤놈들은 나의 어머니의 목을 매여 끌고다니다가 우물에 처넣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와 다섯살우인 누이도 미제원쑤놈들에게 끌려 사형장에 나갔다가 인민유격대원들에 의하여 구사일생으로 구원되였습니다. …

얼마후 휴가를 받고 고향으로 가는 길에 옥희를 찾아온 김봉수동무는 처녀앞에서 자기의 속깊은 심정을 터놓았다.

《…내가 동무를 동정해서 찾아왔다고는 생각지 마오. 미제원쑤놈들때문에 참혹한 불행을 당한 사람이기에 동무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야 하며 또 동무가 행복한 가정을 가지는것 역시 원쑤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난 더욱 동무를 외면할수가 없었소.》

그들은 이렇게 가정을 이루었고 자식들에게도 복수자의 넋을 굳세게 심어주었으며 계급의 총대를 억세게 물려주었다. …

우리 당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조선로동당원으로, 로력영웅으로 자라난 리옥희녀성은 자신의 체험담을 마치며 이렇게 절절히 당부하였다.

나의 체험, 나의 인생을 결코 지나간 과거로만 생각지 말라. 이 땅에 승냥이 미제가 남아있는 한 투철한 계급의식을 한시도 늦추지 말고 무자비한 복수의 칼날을 더 날카롭게 벼리라!

 

본사기자 장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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