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4월 21일 로동신문

 

총련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대화원을 꽃피워준 위대한 사랑은 영원합니다

리정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 총련의 민족교육을 발전시키시기 위하여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 때로부터 어느덧 60년이라는 년륜이 새겨졌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처녀교원으로 민족교육의 교단에 섰던 저의 귀밑머리도 어느새 희여졌지만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고 우리 학교에서 배워 오늘도 현직교원으로 사업하고있으며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각별한 은총으로 공화국 로력영웅, 인민교원의 영예를 지닌 총련교육일군으로서 온 동포사회가 울고 웃으며 눈물을 흘리던 그날의 감격을 영원히 잊을수 없어서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이 살고있는 곳 어데 가나 우리 말과 글, 우리 노래를 배우는 아이들의 랑랑한 목소리가 울려나오고 일본땅에 민족교육체계가 정연하게 세워진 이 현실은 마를줄 모르는 사랑의 생명수, 영양소를 부어주신 절세위인들의 은덕을 떠나 생각할수 없습니다.

나라가 그처럼 어려웠던 시기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해 세계해외교포운동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새 력사를 펼쳐주시고 년대와 세기를 이어 베풀어주시는 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사랑과 배려는 오늘 우리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고있습니다.

 

애국의 피줄기를 굳건히 이어준 위대한 사랑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재일조선인운동발전에서 민족교육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헤아리시고 총련결성후 동포자녀들을 위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사업에 큰 힘을 넣으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습니다.

《공화국정부는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사업을 힘껏 도와줄것입니다. 교육원조비와 장학금도 보내주고 교과서도 보내주려고 합니다.》

언어도 다르고 생활풍습도 같지 않은 일본사람들속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어 그들이 민족성을 지키고 애국의 길을 꿋꿋이 이어나가게 하는데서 민족교육의 역할은 그 무엇으로써도 대신할수 없습니다.

더우기 지난날 모든 차별과 탄압으로 배울래야 배울수 없었던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교육사업은 재일동포사회의 존속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사업이였습니다.

우리 재일동포들이 해방의 기쁨을 안고 자녀들의 민족교육을 위해 곳곳에 세워놓았던 조선인자주학교는 일본반동들의 탄압으로 페쇄되거나 일본학교법의 제약을 받는 공립학교, 공립분교, 민족학급으로 개편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독창적인 로선전환방침에 따라 주체44(1955)년 5월 25일에 총련이 결성되여 재일동포들은 민족교육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으나 몇개 안되는 조선학교들마저 교육기자재구입과 교원들의 생활보장문제로 매우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이런 속에서 학생들의 교육비보장은 생각도 할수 없었습니다. 교원들은 허물어져가는 판자교실에서 백묵과 종이마저 부족하여 한숨을 지었고 동포들은 자녀들의 학비를 보장하기 위해 품팔이로동으로 푼전을 모았지만 너무도 보잘것없어 대다수의 동포학생들이 배움의 꿈을 포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동포자녀들이 취학의 길을 잃었으며 일본반동들로부터 동화교육을 강요당하였습니다. 1955년만 보아도 12만명의 동포학령아동가운데서 취학생은 절반도 안되였습니다.

자녀들을 공부시키려고 그처럼 애태우던 동포들도, 동포자녀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그들을 참된 조선사람으로 키우자고 모지름을 쓰던 교육자들도 해결방도를 몰라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 재일동포들의 그 심정과 총련의 교육실태를 속속들이 헤아려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총련의 민족교육체계를 바로세우고 교육사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갈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1955년 9월 조국해방 10돐경축 재일조선인축하단을 만나주시고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사업을 힘껏 도와줄것이며 교육원조비와 장학금도 보내주고 교과서도 보내주겠다고, 희망하는 학생들은 조국에 와서 공부하도록 하자고 은정어린 교시를 하시였습니다. 같은 해 10월 공화국을 방문한 일본국회 의원들을 만나주신 자리에서도 일본정부가 공화국이 재일동포들에게 보내는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들일것을 요구하신데 이어 공화국의 국가예산항목에 재일동포자녀들에 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항목을 첨부시키도록 하시였습니다.

1957년 1월 국가예산을 토의하는 중요한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민족적의무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두번 보내주고 그만둘 일이 아니다, 일본에 우리 동포가 있고 배워야 할 어린이가 있는 이상 계속 보내주어야 한다, 그렇기때문에 림시적인 사업으로 하여서는 안된다, 국가예산에 새로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항목을 내오고 항구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한다,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사업을 단순히 교육사업이라고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민족을 도로 찾고 민족을 지켜나가는 중요한 민족적애국사업이다라고 가르쳐주시였습니다.

당시 조국의 형편에서는 돈 한푼한푼도 쪼개써야 할 때였다고 봅니다. 전후의 재더미를 털고 갓 일어선 조국앞에는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았으며 어느 부문에서나 요구되는것이 자금이였을것입니다. 사회주의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며 인민들의 의식주문제를 기본적으로 풀기 위한 5개년계획의 기본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자고 해도, 조국땅우에 새 전쟁의 불을 지르려고 미쳐날뛰는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의 책동에 대처하여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자고 해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련의 민족교육사업을 재일동포들의 운명과 관련한 근본문제로 보시고 국가예산항목에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반영하도록 하시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세계재정금융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새로운 항목이 세상에 태여나게 되였습니다.

1957년 4월 조국에서 처음으로 보내준 1억 2, 109만 9, 086¥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은 동포들은 끝없는 격정에 넘쳐 자애로운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모두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목청껏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때 초급부 4학년 9살 철부지였던 저도 그날의 감격과 기쁨을 60년이 된 오늘에도 생생히 기억하고있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늘 자금난으로 곤난을 겪고있던 총련의 민족교육사업을 활성화하여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킨 생명수였으며 재일동포들로 하여금 공화국의 해외공민된 영예와 긍지를 안고 총련애국사업에 적극적으로 떨쳐나서게 하는 추동력으로 되였습니다.

 

절세위인들의 은정속에 강화발전된 총련의 민족교육

백두산절세위인들께서 총련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부어주신 한없이 위대한 사랑은 해외교포운동사에 빛나게 아로새겨져있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학부형들의 자녀교육비부담을 덜어주었고 새 학교건설, 교사증축, 각종 교구비품구입 등 교육의 물질적토대를 강화하는데 리용되였습니다.

조선대학교와 일본대학들에 다니는 빈곤한 조선인학생들과 학비난을 겪는 초, 중, 고급학교의 학생들, 과학자, 기술자들이 장학금, 취학장려금, 연구보조비를 받았습니다.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최고전당인 조선대학교가 번듯하게 일떠서고 곳곳에 조선학교들이 일떠서기 시작하였으며 배움의 창가마다에서 우리 글 읽는 재일동포자녀들의 랑랑한 목소리가 일본땅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족교육발전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던 시기 조선대학교의 창립은 민주주의적민족교육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현실적으로 나서는 절박한 요구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체없이 조선대학교를 창립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여기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명철한 해답을 주시였으며 대학건설문제와 학생모집사업, 교과서출판과 교원대렬을 꾸리는 사업을 비롯하여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깊이 헤아리시고 은정깊은 조치들을 취하여주시였습니다. 특히 조선대학교의 교사건설문제를 놓고 마음써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제2차로 보내주신 교육원조비를 대학교사건설비로 쓰도록 배려하여주시였습니다.

그때로 말하면 조국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후복구건설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어려운 시기였으며 더우기 안팎의 원쑤들이 또다시 전쟁의 불을 지르려고 날뛰던 준엄한 때였습니다.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지도자도 많지만 참혹한 전쟁의 피해를 가시는 그 어려운 시기에 해외교포자녀들의 교육을 걱정하여 그처럼 귀중한 외화를 보내준 지도자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시며 이역만리의 재일동포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보살펴주시는 우리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서만 베풀어주실수 있는 은정깊은 사랑이였습니다.

해외교포자녀들에 대한 이 세상 가장 숭고한 사랑의 력사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대원수님에 의하여 변함없이 이어졌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선대학교창립 25돐을 맞이하던 1981년 1월 하순 어느날 창립기념행사준비정형을 알아보시다가 조선대학교에 력사박물관을 하나 크게 꾸려주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거기에 원시시대와 고조선, 고구려, 발해시기를 비롯하여 력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의 유물들과 사료들을 전시하면 우리 나라 력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서 손색이 없을것이라고 교시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배려에 의하여 조선대학교 조선력사박물관이 개관되였을 때 재일동포들은 물론 남조선인민들과 일본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인학교와 교육계는 물론 정계에서까지 떠들썩하였고 일본의 신문들이 앞을 다투어 대서특필하였습니다.

조선대학교 조선력사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에 탄복한 외국의 한 력사학자가 온종일 자리를 뜨지 않아 박물관의 한 일군이 끼니를 번졌다는 일화 《혼쌀담》까지 생겨났으며 남조선의 한 신문사에서는 《조선대학교 조선력사박물관의 전시품들을 통채로 가져다 고대문화전시회를 열고싶다.》는 요청을 거듭 제기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선대학교에 세워주신 자연박물관도 규모와 내용의 완벽성에 있어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교육박물관입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교육사업에서 교과서편찬, 출판사업에 필요한 방대한 재정문제를 풀어주시기 위해 정세가 아무리 긴장하고 나라의 사정이 어려워도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거듭 보내주시여 민족교육도서출판기관인 학우서방이 자기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도록 이끌어주시였습니다.

우리 조국에는 총련 조선대학교 교원, 학생들을 위한 강습소와 실습학교들, 통신수강제도와 통신박사원제도를 내오도록 하여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처럼 분망하신 속에서도 조국을 방문한 우리 교육일군들과 동포학생들을 만나주시고 따뜻한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였으며 수많은 교편물들과 교재, 교구비품, 민족악기들을 보내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재일조선공민들과 그 자녀들에게 제때에 정확히 가닿도록 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해주시였습니다. 해마다 보내는 거액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는 총련동포자녀들을 생각하시는 수령님의 자애로운 사랑이 담겨져있다고, 총련에 교육원조비를 보내는것은 총련동포자녀들에 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마음을 보내는것이라고 하시면서 교육원조비를 정성껏 마련하여 보내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이르시였습니다.

1990년 12월 공화국 정무원(당시)에서는 위대한 장군님께 긴장한 외화사정으로 총련에 보내주기로 한 교육원조비의 나머지돈을 이번에는 보내기 어렵다고 보고드린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동유럽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빚어지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시련도 총련과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하시는 우리 장군님의 그 웅심의 세계를 절대로 흔들어놓을수 없었습니다. 총련에 보내주기로 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금덩이를 팔아서라도 꼭 해를 넘기지 말고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즉시 해당 부문 일군들을 부르시여 어떻게 하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줄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교육원조비와 장학금문제를 결코 나라의 사정에 걸고 에누리할수 없으시였던것입니다.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 깃든 사랑의 이야기는 5천년래 처음으로 하늘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은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피눈물의 그날에도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조국의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는것을 저희들도 알고있었습니다.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이 절정에 달하고 련이어 들이닥치는 자연재해로 하여 겹쌓이는 모든 난관과 시련을 사생결단의 각오와 의지로 헤쳐나가야 하였습니다. 때문에 해당 부문 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께 총련의 교육원조비와 관련된 문제를 차마 말씀드릴수가 없어 망설이기만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재일동포자녀들에게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제도와 전통이므로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기간을 변경시키거나 그 량을 줄이지 말고 수령님께서 계실 때와 꼭같이 보내주어야 한다고 간곡하게 이르시였습니다.

좋은 날에나 시련의 날에나 변함없이 총련의 민족교육을 생각하시며 새 세대 동포자녀들을 위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넘치는 교시를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끝끝내 솟구치는 격정의 눈물을 쏟고야말았습니다.

대국상의 나날 뜻밖에 어버이수령님의 사랑그대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은 우리 총련일군들은 《누구보다 상실의 아픔이 크신 장군님께서 오히려 우리 재일동포들에게 이처럼 많은 돈을 보내주시다니 세상에 이런 꿈같은 일도 다 있습니까!》라고 자기들의 격동된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년년이 이어지는 그 은정에 감격을 금치 못하며 한 재일동포시인은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또다시 보내주셨구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준엄한 복구건설의 그날로부터

고난의 행군길을 다그치는 오늘까지

 

기나긴 40년세월

사랑의 생명수

이역땅에 우리 가슴에

한가득 차고넘치여라

 

아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생각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마음

어쩌면 이렇게도

어버이수령님과 꼭 같으십니까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 깃든 은혜로운 사랑의 력사는 오늘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 계시여 더욱 빛을 뿌리고있습니다.

재일동포들은 비록 조국과 멀리 떨어져있지만 두터운 정을 안고사는 하나의 혈육이라고, 우리는 주체의 애국유산인 총련을 귀중히 여기고 백방으로 보호할것이며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존엄높은 삶과 밝은 미래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할것이라고 온 세상에 선언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숭고한 뜻을 정히 받드시여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해마다 변함없이 보내주고계십니다.

얼마전에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탄생 105돐을 맞으며 총련에 보내주신 2억 1, 800만¥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았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총련에 보내주시는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는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고귀한 애국유산인 총련을 굳건히 지켜내고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인 민족교육을 더욱 강화발전시키시려는 높으신 의도가 담겨져있습니다.

세상에는 모국을 떠나 해외에 사는 교포들이 적지 않고 그들의 조직도 수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총련과 같이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따뜻한 사랑과 은정속에 강화발전하는 해외교포조직,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의 보살핌속에 조선민족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행복한 해외공민들은 없습니다.

 

태양의 빛발아래 창창한 총련의 민족교육

절세위인들의 위대한 손길아래 오늘 일본땅 곳곳에는 유치원으로부터 초, 중, 고급학교와 대학교에 이르는 민족교육체계가 정연하게 세워져 동포학생들을 주체성과 민족성을 지니고 높은 실력을 소유한 인재로 키워나가고있습니다.

총련중앙으로부터 각 지방본부와 지부에 이르기까지 각급 단위들에 있는 교육전문부서들은 교육과정안과 교과서편찬, 교원양성과 학교건설 등 교육사업에 대한 통일적인 지도를 보장하면서 동포들의 창의창발성을 적극 조직동원하고있습니다.

60여명의 학생과 10명의 교원으로 첫출발을 뗀 총련 조선대학교만 보더라도 오늘은 수많은 학생들과 교직원들 그리고 8개의 4년제학부와 2년제단기학부, 3년제교육학과, 5개의 연구기관을 가진 권위있는 종합대학으로 발전되였습니다.

수십년전에 교사라고는 판자로 지은 교실뿐이였던 조선대학교는 오늘 3만평의 부지에 제1, 제2, 제3연구당과 조선력사박물관, 자연박물관, 도서관, 강당, 체육관, 사무당, 기숙사를 그쯘히 갖춘 세계적수준의 대학으로 면모를 일신하였습니다.

조선대학교는 또한 일본을 비롯한 세계 50여개 나라의 220여개의 대학들과 학술교류를 진행하고있습니다.

총련애국위업의 전렬에는 조선대학교 졸업생들이 서있습니다.

조선대학교가 키워낸 인재들이 총련의 각급 조직들과 교육, 언론, 문학예술, 경제와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에서 기둥이 되고 대들보가 되여 재일본조선인운동을 믿음직하게 떠메고나가고있습니다.

하기에 세상사람들은 《조선대학교는 곧 총련의 얼굴》, 《총련을 보려거든 조선대학교를 보라.》고 말하고있습니다.

언제인가 조선대학교를 참관한 남조선의 한 인사는 《이렇게 훌륭한 대학을 짓고 운영하고있으니 감동의 눈물을 금할수 없고 민족적긍지를 느낀다. 조선대학교는 세계에 크게 자랑할만 한 대학이다.》고 말하였습니다.

정연하게 꾸려져 은을 내고있는 민족학급, 오후야간학교, 토요아동교실, 하기학교를 비롯한 준정규교육체계도 민족교육사업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되였습니다.

총련의 민족교육체계에서 공부한 10여만명의 졸업생들이 모두 총련일군, 분회열성자, 애국적상공인 등 동포사회의 당당한 주인공들로 자라났습니다.

일본반동들의 악착스러운 탄압책동속에서도 총련을 지키고 애국의 한길을 억세게 걸어올수 있은것은 은혜로운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생명수로 하여 자라난 애국자들이 있었기때문입니다.

지금도 재일동포학생들이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우리 말과 글, 우리의 력사와 문화를 배우면서 총련의 훌륭한 역군으로 꿋꿋이 자라나고있습니다.

이역땅에 몰아치는 가혹한 시련과 도전의 광풍은 총련의 애국항로를 끈질기게 막아나서고있습니다.

허나 뿌리깊은 나무가 폭풍에도 끄떡없듯이 탄압의 광풍이 아무리 모질고 세차도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키워주시고 품어주시는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애국의 신념은 굳건합니다.

오늘 우리 재일동포들은 어버이장군님의 마음을 담아 해마다 새해축전과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꼭꼭 보내주시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일동포들은 어머니조국과 한피줄을 잇고사는 친형제, 한집안식솔이라고 다정히 불러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 충정다할 일념으로 가슴 불태우고있습니다.

총련 각급 기관 일군들과 저를 포함한 우리 교육일군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대원수님께서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위하여 베풀어주신 뜨거운 정과 혈연의 력사를 변함없이 이어나가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따라 주체혁명의 대번영기를 펼쳐가는 조국인민들과 심장의 박동을 맞추어 총련의 애국충정의 본태를 빛내여나갈것입니다.

(필자는 총련 니시도꾜조선제2초중급학교 교장임)

댓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7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