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10월 12일 로동신문

 

승냥이 미제는 우리 인민과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철천지원쑤

 

력사에 남긴 죄악의 기록들

 

백수십년전부터 우리 나라를 먹어보려고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보며 갖은 악행을 저질러온 미제,

우리는 여기에 미제의 조선침략사의 갈피갈피에 새겨진 죄악의 기록중 그 일부를 전한다.

 

미제의 첫 침략선 《셔먼》호

 

1866년 8월 정체불명의 배 한척이 대동강어구에 나타났다. 미제침략선 《셔먼》호였다. 당시 《셔먼》호가 우리 나라에 침입한 목적은 군함과 대포소리로 봉건통치배들을 위협하여 불평등조약을 강요함으로써 조선침략의 길을 열어놓으려는데 있었다.

8월 27일 순찰임무를 수행하고있던 평양감영의 중군을 랍치한 놈들은 파렴치하게도 쌀 1 000석과 다량의 금, 은, 인삼 등을 내놓으면 중군을 석방하겠다고 떠벌였다. 저들의 강도적인 요구가 거절당하게 되자 놈들은 양키족속의 본성그대로 대동강을 오르내리는 각종 배들을 습격, 략탈하고 대동강변의 주민지대에 총포사격을 마구 들이대여 무고한 인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을 선두로 한 평양성인민들은 정의의 항전에 떨쳐나 오만무례하게 날뛰며 략탈행위를 감행하던 미제의 첫 침략선 《셔먼》호를 대동강에 수장해버리였다.

 

국권강탈을 노린 무덤도굴행위

 

침략선 《셔먼》호가 격침된 후 교활한 미제는 우리 인민들이 대대로 조상을 몹시 숭배한다는것을 알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파헤쳐 유해를 훔쳐낸 다음 그것을 내걸고 조선봉건정부와 불평등조약을 맺을 흉계를 꾸미였다.

미제는 침략선 《챠이나》호에 8t급의 작은 발동선 《크레타》호를 달고 1868년 4월 또다시 우리 나라에 기여들었다. 덕산군 구만포에 상륙한 놈들은 짜리로씨야군대로 가장하고 곧바로 관청을 들이쳐 무기를 빼앗은 다음 그길로 목적지인 덕산군 현내면 가야동에 도적고양이처럼 기여들어 무덤도굴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날강도들의 목적은 쉽게 이루어질수 없었다. 19일 새벽 그곳 인민들은 놈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호미와 괭이를 들고 집단적으로 항거해나섰다. 당황한 강도단은 야망을 이루지 못한채 황급히 꽁무니를 빼고말았다.

 

불법무도한 강화도침공행위

 

남연군묘도굴사건이후에도 미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행위를 계속 감행하였다.

미제날강도들은 1871년 4월(양력 6월) 기함 《콜로라도》호를 비롯한 5척의 군함에 수십문의 포와 1 200여명의 침략군무리들을 싣고 또다시 조선에 기여들었다. 날강도들은 조선봉건정부에 보내는 통고문에서 제놈들이 조선령해에 온 목적은 조선과 협상하자는데 있다고 하면서 《조약》이 체결되면 돌아가겠다고 수작질을 하였다. 그리고는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손돌목의 포대앞에 기여들어 각종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4월 23일 강화도남쪽 초지진에 침략의 더러운 발을 들여놓은 놈들은 함포의 엄호하에 우리측 방어지점들을 점령하려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상륙 첫날부터 놈들은 조선군사들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쳤다. 조선군사들은 미친듯이 쏘아대는 적의 함포사격속에서도 집중포화를 들이대여 적의 함선들에 심대한 손상을 입혔으며 달려드는 적의 륙전대를 육박전으로 요정내였다.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제놈들의 목적을 실현할수 없다는것을 깨달은 놈들은 황급히 군함들을 끌고 조선령해에서 도망치고말았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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