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0월 12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원한이 사무친 배소로

흥남비료련합기업소 계급교양실을 돌아보고

 

우리 조국땅에 해방의 만세소리가 울린 때로부터 73년이라는 긴긴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흥남의 로동계급은 무고한 우리 인민들의 피땀을 짜내고 무참히 학살한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지금도 잊지 않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제놈들은 정말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입니다.》

지난 조선강점시기 일제는 저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수많은 지하자원은 물론 생산물을 닥치는대로 략탈해갔다. 그가운데는 흥남지구에서 일제가 우리 로동자들에게 중세기적강제로동을 강요한 만행도 있다.

1927년 6월부터 일제는 흥남지구에 비료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소년공들까지 모집하였다. 송영일도 소년공으로 뽑혀와 류산직장에서 일하였다.

그때 류산직장은 유해가스로 인하여 비료공장치고도 제일 일하기 힘든 곳이였다. 어린 몸으로 모진 천대속에서 힘에 겨운 로동을 강요당하는 송영일은 늘 고향에 있는 부모들을 그렸다.

한번은 배소로의 배기관이 메여 작업이 중단되였다. 이렇게 되자 감독놈은 배소로안에 송영일을 들여보내려고 하였다.

얼굴에 얄미운 미소를 담고 살며시 송영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감독놈은 돈을 많이 벌어 고향에 가고싶지 않은가고 물었다.

너무도 뜻밖의 감독놈의 말에 송영일은 미처 대답을 못하였다.

감독놈은 더 바싹 접근하면서 오늘 밤에 한가지 일만 하면 래일이라도 당장 고향에 갈수 있다고 어린 소년을 꼬드겼다.

고향에 갈수 있다는 단 한가지 생각으로 송영일은 너무 기뻐서 서슴없이 감독놈이 시키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되여 송영일은 감독놈의 낚시에 걸려 배기관을 뚫기 위해 배소로안에 들어가게 되였다.

배소로가 멈춰선지는 사흘째나 되였지만 로안의 온도는 400℃를 오르내렸다.

송영일은 물에 적신 가마니를 뒤집어쓰고 로안에 들어갔다.

캄캄한 로안에서 배기관을 찾자고 헤맸으나 가스와 고열로 하여 조금도 전신을 움직일수 없었다. 그러나 송영일은 어떻게 하든지 이것을 참아야 고향에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기운을 내여 다시 배기관을 찾아 더듬었다. 이때 옷에 불이 당겼다. 옷은 화약이 타듯 타들어갔다.

송영일은 불이 당긴 옷을 벗어던지려고 몹시 애를 썼다.

그러나 이미 전신을 휩쓴 불길로 하여 송영일은 로바닥에 쓰러졌다.

송영일을 들여보내여 막혔던 배기관을 뚫으려던 저들의 계획이 실패하자 놈들은 서슴없이 재차 다른 소년공들을 붙잡아다 배소로에 들여보냈다. 몇분도 아니고 긴 시간을 로안에 들어가서 가스와 고열을 이겨낸다는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였다. 이날 놈들은 4명의 소년공들을 죽이면서 막혔던 배기관을 뚫었다.

이것은 일제가 비료공장에서 저지른 만행들중 하나의 사실에 불과하다. 일제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참화를 들씌우고 치떨리는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살인광들이며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이라는것을 똑똑히 말해주고있다. 일제의 만행은 세월이 흘렀다고 절대로 력사에 묻어둘수 없다. 죄는 지은데로 가기마련이다. 일제살인귀들에 의해 흘린 겨레의 피값을 우리는 마지막까지 천백배로 받아내야 한다.

 

특파기자 김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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