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3월 15일 로동신문

 

은혜로운 태양의 품속에서 혁명가의 영광은 불멸하리라

백두산절세위인들께서 항일혁명투사 김철만동지에게 베풀어주신 고귀한 은정에 대한 이야기

 

주체107(2018)년 12월 3일 3시 20분 당과 수령께 무한히 충직한 항일혁명투사이며 한생을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인민군대와 국방공업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여온 견실한 로혁명가인 김철만동지가 심장의 고동을 멈추었다. 김철만동지의 서거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조선혁명을 개척한 빨찌산의 이야기를 무한한 존경속에 들으며 자란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을 커다란 슬픔에 잠기게 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김철만동지의 서거에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하시면서 친히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이 되시여 그의 장의식을 엄숙히 진행하도록 온갖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은 인민대중을 승리와 영광의 길로 이끌어주는 령도자인 동시에 그들을 혁명가로 키워주는 스승이며 어버이입니다.》

17살 어린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선 때로부터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대해같은 사랑과 믿음속에 흘러온 로투사의 한생은 오직 탁월한 수령의 품에서만 평범한 사람도 시대와 인민의 경의를 받는 참다운 혁명가로 되여 값높은 삶을 누릴수 있다는것을 다시한번 확증하여주고있다.

 

참다운 애국자, 혁명가로 키워주신 어버이

 

김철만동지는 주체26(1937)년 여름 이국땅인 장백현 19도구 지양개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고 소년중대에 입대하는것으로 혁명투쟁에 참가하였다.

량강도 운흥군의 빈농가에서 태여나 일찌기 어머니를 잃고 조국광복회 회원인 아버지의 지지를 받아 항일유격대입대를 탄원하여온 소행은 기특하였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뜻 그를 받아주기 어려우시였다. 17살이라고는 하지만 장총보다 더 작은 애숭이의 키를 놓고서는 그를 데리고 온 리동백동지를 나무람하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나어린 가슴에 《2천만의 최고령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와 끓어오르는 경모의 정을 간직하고 마을사람들의 열렬한 환송까지 받으며 떠나온 김철만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의 작은 키를 놓고 무척 난감해하시자 속이 한줌만 해졌다. 그래서 팔뚝을 걷어올리며 자기의 유일한 자랑을 담아 수령님께 아뢰여올린 말씀이란것이 고작해서 이런것이였다.

장군님, 이래뵈두 못해본 농사가 없습니다.》

씨물씨물 웃으며 터놓는 순박한 농사군자식의 간절한 애원을 들으시니, 총이 크면 어깨우에 메거나 지고 다니면 되지 않는가고 떼를 쓰며 메였던 총을 어깨우에 올려놓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실지동작을 하는 그를 보시느라니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은 참으로 뜨거우시였다.

김철만동지를 비롯하여 그때 리을설, 김익현, 조명선 등 20여명의 소년들이 옷자락에 매달려 참군을 청원하던 일을 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그 어린것들이 사회개조의 중임을 스스로 걸머지고 어른들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무장투쟁에 나서겠다고 절절하게 탄원해나설 때 나는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

총건사를 제대로 할만 할 때 다시 오라고 하여도, 상상을 초월하는 유격대생활의 어려움에 대하여 설명하여도 버티고 서서 어른들이 눈우에서 자면 자기들도 눈우에서 잘수 있고 어른들이 전투를 할 때에는 자기들도 전투를 할수 있다고 하는 이 물불을 모르는 어린 매들을 두고 생각을 거듭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침내 소년중대를 조직할것을 결심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더덕더덕 기운 무명잠뱅이옷을 입고 키보다 큰 곽지를 메고 산판을 헤매이던 무지렁이 화전민의 아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서 운명의 새 출발을 하게 되였다.

얼마 안 있어 김철만동지는 소년중대에 입대하여 새 군복과 다루기 편리한 기병총까지 수여받게 되였다.

그날 솟구치는 감격을 억제할수 없어 어데라없이 막 달리던 김철만동지는 커다란 소나무를 붙안고 산발이 쩌렁쩌렁 울리게 이렇게 웨쳤다.

《어머니, 기뻐하여주십시오. 입대시험에서 나도 합격하였습니다!》

하지만 김철만동지는 자기들의 입대가 유격대와 더우기는 위대한 수령님께 얼마나 무거운 부담을 끼쳐드리는것인지 그때에는 미처 다 알수 없었다. 유격대의 적지 않은 지휘관들은 저애들때문에 우리가 발목을 묶일수도 있지 않겠는가, 저 꼬마들이 과연 어른들도 감당해내기 힘들어하는 시련을 이겨낼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산같은 걱정을 앞세웠다.

그러나 혁명의 후비대육성사업을 나라의 운명개척에서 또 하나의 천하지대본으로 여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멀고 험한 행군을 앞두고 배낭을 하나 더 짊어지는것과 다를바 없는 이 책임을 스스로 떠맡아안으시였다.

일제의 백만관동군이 무서워 벌벌 떠는 백두산장군이시였지만 몸소 만드신 커다란 자모표를 놓고 한자한자 가리키시며 소년중대원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친히 가르쳐주시고 력사에 이름을 남긴 명인들의 이야기며 정치강의를 하실 때에는 언제나 인자하신 스승이시였다. 바쁜 군정사업도 뒤로 미루시고 김철만동지를 비롯한 소년중대원들의 집총동작훈련, 조준련습도 일일이 보아주시고 분동작까지 해보이시면서 지도하여주시던 어버이수령님,

물살이 센 강을 건늘 때에는 소년중대의 꼬마들을 몸소 업어 건네주시였고 행군을 할 때면 《앞에 나무가 있으니 주의하여라.》, 《웅뎅이가 있으니 건너뛰여라.》, 《조심해서 강을 건너라.》라고 늘 이르군 하시였다. 그들이 우등불곁에서 자다가 신발이며 모자를 태울세라 하루도 맘편히 주무시지 못하고 부대가 죽으로 끼니를 에워야 하는 날이면 자신의 죽그릇을 고스란히 들고 찾아가시여 소년중대원들에게 덜어주군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진정 친부모도 대신할수 없는 극진하고 뜨거운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드셔야 할 죽을 나누어먹고 수령님께서 주무셔야 할 시간을 덜어 단잠을 자고 수령님의 사랑과 정을 해빛처럼 받아안으면서 성장한 혁명가!

바로 이것이 후세에 그 이름이 길이 남은 소년중대원들과 더불어 영광으로 가득찬 김철만동지의 혁명가적생애에서 근본을 이루는 특징이라고 말할수 있다.

혁명가의 대부대를 키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무한한 열도를 가진 인덕과 의리의 서사시일뿐아니라 불타는 조국애와 원대한 리상으로 일관된 한없이 숭고한 위인적사랑이였다.

행군이 계속되던 어느날 소년중대 사무장사업을 맡아보던 항일혁명투사 전희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엄한 비판을 받게 되였다. 깊은 밤 숙영지를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김철만동지를 비롯한 여러 소년중대원들이 입대전 버릇대로 신발을 벗고 자는것을 보게 되시였던것이다. 그것은 당시 엄중한 규률위반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년중대원들이 애처로와 그냥 놔두었다고 말씀올리는 전희동지에게 그런 얕은 인정으로는 소년들을 투사로 키워내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이런 내용으로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장차 조국의 운명을 두어깨에 걸머지고 나아갈 일군들을 키우고있습니다. …

우리는 이애들을 어떤 곤난과 난관도 두려움없이 뚫고나갈수 있는 백절불굴의 혁명가로 자라도록 키워야 합니다. …

그때까지 자리에 누워 눈만 감고있던 김철만동지는 사령관동지의 절절한 음성을 새겨들으면서 얼마나 웅심깊고 따사로운 사랑의 품에 지금 자기들이 안겨있는가를 북받치는 오열속에 더욱 깊이 절감하였다.

그후 소년중대에서 무슨 일에서나 앞자리를 차지하군 한 김철만동지를 오중흡련대장의 전령병으로 임명하여주신 다음에도,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준비하던 나날 그가 북부국경일대에서 소부대활동을 벌릴 때에도 사랑하는 전사에게 베푸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은 정녕 끝이 없었다.

주체27(1938)년 12월초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남패자를 떠나 100여일간에 걸치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였다. 강추위와 굶주림, 피어린 전투로 날과 날이 흐른 이 행군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시련의 련속이였다. 당시 기상학자들과 력사학자들이 100년래의 대강설이라고 놀라워한 폭설로 하여 대오는 어깨로 눈을 밀며 나아가야 했고 사납게 불어치는 눈보라때문에 누가 쓰러지는지, 누가 대렬밖으로 나서는지 가려보기조차 어려웠다.

대오의 뒤에서 집요하게 추격해오는 적들을 족치면서 행군하는 오중흡7련대 대원들중에서도 련대장의 전령병인 김철만동지는 수시로 적정을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리고 또 수령님의 결심과 명령을 오중흡동지에게 전달하느라 남들보다 곱절 힘겹게 내달리였다. 하지만 신입대원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던 김철만동지는 그만 깊은 눈구뎅이에 빠지고말았다.

어느새 사태같은 눈보라가 문다져놓아 김철만동지를 삼켜버린 눈구뎅이는 아무 일도 없는듯이 번번해졌다. 기력이 너무도 쇠진해진것으로 하여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손끝에서 감각이 사라져가는것과 함께 희박해지는 산소때문에 의식이 몽롱해졌다. 이렇게 눈속에 파묻혀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면 후세에 락오자의 수치를 남기게 될것이라고 생각하니 혼몽해지는 의식속에서도 억이 막히고 참을수 없는 반발심이 머리를 쳐들었다. 김철만동지는 초인간적인 힘으로 움씰 몸을 솟구쳤다. 겨우 눈무지우로 배낭 한끝이 보일락말락하게 되였을 때 옛사람들의 표현대로 한다면 《하늘이 도와주는》 행운이 차례졌다.

마침 그옆을 지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게 누구요, 철만동무가 아니오?》라고 놀라워하시면서 그의 손목을 잡아 이끌어올리시였다. 간신히 눈구뎅이에서 빠져나온 전사의 온몸에서 두텁게 묻은 눈을 털어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마트면 큰일날번 했군.》라고 하시더니 긴 막대기 하나를 주시며 이제부터는 이걸 가로 들고 다니라고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이렇게 김철만동지와 유격대원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에 의하여 사선에서 구원된적이 그 얼마였던가.

일제의 가혹한 억압과 멸시속에 살아가던 불우한 인생들에게 혁명가의 새 삶을 안겨주시고 두번다시, 열번다시 영광스러운 투쟁의 길에 세워주신 은인이시였지만 우리 수령님께서 전사들의 가슴마다에 언제나 소중히 심어주신것은 조국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였다. 이른새벽 조국진군의 길에서 철만동무는 조국땅을 처음 밟아보겠구만, 이 강이 바로 압록강이요, 이 강만 건느면 조국땅에 들어서게 되오라고 자애로운 음성으로 깨우쳐주신분도 우리 수령님이시였고 아름다운 조국산천을 바라보시다가도 혁명가는 그 어디에 가서나 조국을 사랑할줄 알아야 하며 귀중한 조국을 위하여 그 무엇인가 보람있는 일을 해야 하겠다는 결심과 포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애국충정의 큰뜻을 키워주신분도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성장의 한걸음한걸음에 그처럼 위대한 사상과 신념을 새겨주시고 그처럼 열렬한 사랑과 정을 고여주시였기에 김철만동지는 항일혁명전쟁과 조국해방전쟁의 승리, 주체적혁명무력의 강화발전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서 혁명가적본분과 책임을 훌륭히 수행할수 있었다.

한번 품에 안아 믿음을 준 사람이라면 끝까지 그 운명을 책임지고 보살펴주시는 숭고한 덕망과 동지애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철만동지에게 인민군대와 군수공업부문의 중요직책들을 련이어 맡겨주시면서 항일의 그 시절처럼 언제나 힘과 고무를 주시고 힘들어할세라, 나약해질세라 변함없이 이끌어주시였다.

이름모를 산중에서 소나무를 붙안고 어머니를 부르며 입대의 기쁨을 터치던 어제날의 소년중대원은 먼 후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자기의 심정을 고백하였다.

《내가 당의 신임과 사랑을 받는 군사정치일군으로 자라날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덕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를 소년중대에 받아들여 친부모의 사랑으로 키워주고 돌보아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름도 없는 초부나 농사군으로 남아있었을것이다.》

 

우리 장군님과 항일의 7련대 대원

 

주체31(1942)년 3월초 북부국경일대에서 소부대활동을 벌리던 어느날 김철만동지는 전우들과 함께 위대한 장군님께서 백두광명성으로 탄생하시였다는 대경사의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다. 그날 련락지점에서 사령부 통신원으로부터 이 소식에 접하고 감격에 울고웃던 투사들의 모습에 대하여 김철만동지는 어느 한 도서에 이렇게 썼다.

《〈백두광명성 만세!〉

누군가가 선참으로 이렇게 웨치자 그에 합창하여 만세환호를 올리였다. 그런데 만세를 부르며 환호를 올리기에는 초막이 너무도 키낮고 비좁은 집이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초막밖으로 뛰쳐나가 두손모아 흰눈을 움켜쥐고 하늘높이 뿌리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자 모두 밖으로 와르르 쏟아져나와 눈우에서 딩굴기도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고 서로서로 얼싸안고 돌아가며 자기들의 감격을 눈물속에 웨치군 하였다. …》

그날 투사들은 산중에서도 또 산중인 깊은 골에서 몇사람밖에 이 경사를 알지 못하는것이 너무도 안타까워 의논끝에 나무껍질을 벗기고 구호를 새기기로 하였다. 김철만동지는 여러 투사들에 뒤이어 《조선 미래의 광휘 백두광명성 만세》, 《은하수빛 흘러간 길을 따라서 어서빨리 보고싶은 백두성 찾아가자》라는 글발을 정히 썼다.

백두광명성 만세!

투사가 감격에 목메여 웨치며 아로새긴 이 글발은 조국과 인민 그리고 동지들과 더불어 김철만동지가 받아안은 또 하나의 크나큰 영광을 세월의 언덕넘어 확증하였다.

김철만동지가 인민군대의 책임일군으로 사업하던 시기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들의 무장도발사건들이 련이어 일어났다. 한초한초가 전쟁과 평화의 량극단을 천평우에 올려놓고 아슬아슬하게 흘러가던 그때 김철만동지는 누구보다 긴장한 나날을 보내였다.

주체65(1976)년 8월 나라의 정세가 엄중한 계선으로 치닫고있을 때였다. 적들이 그 무슨 《보복》을 떠들면서 남조선에 신형무기들을 잔뜩 끌어들이고있던 어느날 김철만동지는 천만뜻밖에도 위대한 장군님으로부터 가족까지 데리고 동해안에 가서 휴양을 할데 대한 명령을 받게 되였다.

너무도 뜻밖의 명령을 받고 어리둥절해있던 김철만동지에게는 문득 적들이 도발을 일으킨 때로부터 나흘후에 있은 일이 떠올랐다.

그날 어느 한 체육단으로 전사를 불러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몸이 퍽 축간것 같다고 하시면서 김철만동지에게 이제는 건강에 첫째 주의를 돌리면서 일하라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혼자말씀으로 아무래도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할것 같다고 하시더니 그 단호한 조치란 바로 가족휴양명령이였단 말인가.

위대한 수령님의 강인담대한 배짱을 그대로 체현하신 또 한분의 백두산장군을 우러르며 탄복을 금치 못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이번 명령만은 차마 집행하기가 어려웠다.

전사의 도리로 보나 정세의 요구를 봐서도 가족휴양명령만은 철회해주셨으면 하는 간청을 올리였으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까지 보고드려 무조건 휴양을 떠날데 대한 명령을 총정치국으로 또다시 내려보내시였다. 이렇게 되여 준엄한 정세속에서 인민군대 책임일군인 김철만동지는 자기가 응당 맡아 수행해야 할 사업부담까지 위대한 장군님의 어깨우에 지워드린채 가족휴양의 길에 오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에게 조국을 광복한 다음에 푹 쉬자고 하였는데 조국을 해방한 다음에는 새 조국건설과 3년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쉬우지 못하였으며 전후에는 빈터우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과 적들의 끊임없는 새 전쟁도발책동으로 정세가 긴장하여 쉬우지 못하고있다고 하시면서 늘 가슴에 안타까움을 안고계시였다.

김철만동지를 비롯하여 항일혁명투사들에게 베풀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대해같은 사랑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이런 안타까움을 한껏 풀어드리시려는 그이의 고결한 충정이 깃들어있었다. 그런것으로 하여 그 사랑은 시련에 찬 투쟁의 길을 꿋꿋이 걸어온 혁명선배들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심의 발현인 동시에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까지 합쳐 베푸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사랑이였으며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세심히 보살피며 갈수록 커만 가는 한량없는 사랑, 자신의 열과 정을 아낌없이 기울이시는 헌신적인 사랑이였다.

늘 분망한 군사사업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하는 김철만동지가 문화정서생활을 충분히 할수 있도록 사무실가까이에 영사실을 꾸려주도록 하시고 친히 그가 볼 영화필림들까지 선정하여주군 하신 위대한 장군님,

언제인가는 지방의 어느 한 곳에서 저녁늦게까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는 김철만동지를 위해 몸소 낚시대를 드시고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쏘가리를 잡아 식탁우에 올려주기도 하시였고 또 언제인가는 자신께서 리용하시려던 새 승용차를 선물로 보내주시여 투사의 눈굽을 젖게 하시였다.

김철만동지는 젊은 시절에 메밀국수를 매우 좋아하였는데 갓김치물에 말지 않은것은 절대로 들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해방후 그가 사업하던 보안간부훈련소에 나왔던 안길동지는 식사도중에 이 사실을 알고 대번에 얼굴을 찌프리며 군대가 식성이 까다로와서야 어디에 쓰겠는가고 하면서 되게 비판한적도 있다. 더구나 전사들이 성의껏 만들어준 음식을 그렇게 대해서야 되겠는가고 하면서 막 몰아대는통에 김철만동지는 한참이나 진땀을 흘리였다. 하지만 그는 후에도 그 습관만은 고치지 않았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해방후 지방에서 활동하던 김철만동지는 평양에 올라온 기회에 안해인 전희동지와 자식들까지 데리고 위대한 수령님의 저택에서 며칠간 류숙한적이 있었다. 그때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국수를 좋아하는 김철만동지를 위해 어리신 위대한 장군님과 함께 몸소 국수를 누르시였다. 갓김치물에 말아주시는 그 국수가 어찌나 별맛이였던지 김철만동지는 그때부터 갓김치물에 말지 않은 국수에는 아예 저가락도 대지 않는 완고한 습관을 붙이게 되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뒤에도 그때 일을 잊지 않고계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해 여름날 김철만동지를 위해 사연깊은 국수상을 차려주시였다. 그러시면서도 혹시 그가 나이들면서 식성이 변하였을수도 있다는것을 고려하여 국수물은 갓김치물과 고기국물 두가지를 준비하도록 하시였다.

다심한 은정이 어린 음식상을 마주한 김철만동지는 그만 목이 꽉 메여오르고 눈굽이 젖어와 선뜻 국수를 들수 없었다. 간고한 항일전의 나날 자신께서 드셔야 할 한그릇의 죽마저 덜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금시 떠오르고 전투에서 부상당한 자기를 정성다해 치료해주시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봄빛같은 모습도 못 견디게 어려왔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앞에서 그는 국수 한그릇은 갓김치물에, 다른 한그릇은 고기국물에 말아 다 들었다. 투사가 마지막그릇을 비울 때까지 사려깊은 시선으로 여겨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국장동무가 국수를 맛있게 드는것을 보니 내 마음도 기쁩니다. …

내가 오늘 작전국장동무의 변해진 식성을 알아맞힌셈입니다. 참으로 기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더없이 기쁘시여 환한 미소를 지으셨지만 투사의 마음속에선 격정의 눈물이 뚝뚝 흘렀다. 위대한 장군님 아니시라면 과연 누가 어머니란 말도 변변히 불러보지 못하고 자란 투사의 변해가는 식성까지 헤아려 마음기울여주고 식사 한끼라도 맛있게 드는 모습을 보며 이처럼 기뻐하랴.

항일의 7련대 대원답게!

위대한 장군님께서 투사에게서 바라신것이 있다면 오직 이 하나뿐이였다. 김철만동지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맡겨주신 높은 직무를 꽤 감당해낼수 있겠는가를 두고 근심할 때에는 항일의 오중흡7련대 대원답지 않게 그런 말을 다 하는가고 하시며 힘을 주시고 수령님을 받들어 간고한 두차례의 혁명전쟁을 치르던 그의 추억담을 들으실 때면 그때처럼 살라고, 앞으로도 우리 혁명의 1세로서 계속 꽃을 피워야 한다시며 로당익장의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학력을 놓고 말한다면 해방전에 보통학교에 한해 다니다가 돈이 없어 쫓겨난것과 해방후 군관학교를 몇달 다닌것이 전부인 투사에게 군수공업부문의 중요직책을 맡겨주신것만도 과분한 믿음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철만위원장이 나이가 많지만 그전에 총참모부 작전국장사업을 오래하였기때문에 수자같은것을 잘 외우고 모든 사업을 치밀하게 조직하고있다고, 그는 군수공장, 기업소들을 맡아보면서도 항일혁명투사답게 다른 단위들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잘 도와준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세워주시였다.

쓸모없이 처리되던 작은 유리쪼각으로 인민군군인들에게 손거울을 만들어보내게 한 전사의 소행도 크게 여기시며 역시 로투사들의 생각이 다르다고 치하해주신분이 우리 장군님이시였고 그를 혁명의 원로라고 불러주시며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사업할수 있도록 해주신분도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사랑의 힘, 믿음의 크낙한 품이 있었기에 투사는 90살이 넘은 나이에도 돌격나팔을 기세차게 울리며 전장을 내달리듯이 조국땅 방방곡곡을 동분서주하며 자위적국방력강화를 위한 길에 애국의 자욱을 힘있게 찍어나갔다. 로쇠를 모르는 혁명가의 그 열정과 기백은 우리 장군님께서 해빛같은 사랑과 뜨거운 념원을 부어 지켜주고 빛내여주신 항일의 7련대정신, 백절불굴의 빨찌산기상이였다.

 

인생의 영광은 어디까지인가

 

《투사동지, 건강을 빨리 회복해서 100살은 넘어 사셔야 해요.》

《암, 그래야 하구말구. 100살이야 넘어 살아야지. 난 오래 살고싶소.》

이것은 지난해 11월 어느날 김철만동지와 나어린 한 처녀의료일군사이에 오간 대화의 한 토막이다.

사람이 살고싶어한다는것은 그의 삶에 보람이 있다는것이며 꿈이 있고 앞날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10대의 시절부터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품속에 안겨 값높은 인생길을 줄기차게 걸어온 김철만동지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를 혁명의 진두에 높이 모신 주체혁명위업계승의 력사적전환기를 맞이한것은 벌써 90고개에 이른 때였다. 하지만 투사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백두광명성으로 탄생하신 소식을 전해듣고 적구에서 만세환호를 올리던 때와 조금도 다를바 없이 끝없는 감격에 넘쳐있었다.

해빛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모습은 얼마나 자애로우신가. 위대한 수령님들의 념원대로 조국강산을 몰라보게 전변시키시는 그이의 불타는 충정과 향도의 손길은 얼마나 위대하신가. 존엄높은 인민의 나라를 온 세상에 빛내이시는 절세의 영웅기상을 우러르고 인민을 위해 하시는 그이의 말씀 한마디한마디, 쉬임없이 이어가시는 로고의 자욱자욱을 가슴에 새길수록 투사는 더없는 환희에 휩싸여 이렇게 심정을 터놓군 하였다.

《우리 원수님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그대로이시야!》

당에서는 고령의 나이에도 군수공업부문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일하고있는 김철만동지가 사소한 불편도 모르고 사업하고 생활할수 있도록 변함없이 보살펴주었다.

어느 경치좋은 곳에 휴양을 갔다가도 투사는 며칠 안 있어 《이젠 집으로 가자구. 우리 집이 제일이요.》라고 하면서 평양으로 돌아오군 하였다. 투사가 한없는 정과 애착을 안고 어데 가나 한시도 잊지 못한 그 《우리 집》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몇해전 그가 대퇴골절로 보행장애를 받고있다는것을 아시고 마련해주신 사랑의 보금자리였다.

서재와 식사실, 목욕실, 별채까지 달린 2층짜리 그 주택의 정원에는 복숭아, 살구, 포도, 양벗 등 갖가지 과일나무들까지 심어져있어 봄이면 그윽한 꽃향기속에 투사의 심신을 한껏 취하게 해주었다.

더울세라, 추울세라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자애로운 손길이 어찌 보통강기슭의 《우리 집》에만 깃들었으랴. 김철만동지가 마지막까지 애용한 멋진 고급승용차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삼륜차를 타고 다니는 로투사가 불편을 느낄세라 몇해전에 보내주신 《달리는 요람》이였다. 한시라도 떨어지면 그이의 따뜻한 사랑을 잃는것 같아 김철만동지는 그 승용차를 자기 침실앞에 세우게 하고는 때없이 몸을 일으켜세워 창너머로 한참씩이나 바라보군 하였다.

끝없이 베풀어주시는 그 은덕은 하늘처럼 높고높건만 이제는 육체가 말을 듣지 않아 보답 못하는것이 투사는 정녕 안타까웠다.

지난해 4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전략적결단과 숭고한 의지에 의하여 온 세계의 관심속에 진행된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소식을 김철만동지는 어느 한 지방의 휴양소에서 접하게 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혁명활동소식만 나오면 언제나 환성을 올리며 텔레비죤화면앞으로 다가서군 하던 그는 그날 민족사에 특기할 력사의 새 경륜이 펼쳐지는 화폭을 보며 얼마나 흥분하였던지 휴양을 그만두고 당장 판문점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무작정 길떠날 차비를 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이제는 평양으로 돌아오시였을것이라고 만류하면 그럼 평양으로 가야지라고 하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위해 그처럼 로고를 바쳐가고계시는데 전사가 휴양이 다 뭔가고 하면서 야단을 쳤다. 몸은 비록 삼륜차에 실려있어도 언제나 최고사령부곁에, 최고사령관동지의 안녕을 위한 길을 남먼저 달리는것이 항일의 오중흡7련대 대원의 변함없는 마음이였다.

김철만동지가 해마다 손꼽아가며 기다리군 한 날들중의 하나는 전승절이였다. 중요한 당 및 국가정치행사가 진행될 때마다 늘 항일의 로투사들을 자신의 가까이에 앉혀주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해마다 전국로병대회에도 김철만동지를 꼭꼭 불러주시고 제일먼저 따뜻이 축하해주시였기때문이다. 어느해인가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김철만동지를 비롯한 로투사들을 앞세우고 대회장 주석단에 나오신적도 있다. 대회참가자들은 물론이고 온 나라 인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린 그날 김철만동지는 너무도 감격하여 눈물만 흘리였다.

지난해 전승절에 그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마지막으로 만나뵈웠다.

항일혁명투사인 동시에 조국해방전쟁시기 적후천리를 종횡무진하면서 《강철청년부대》 련대장으로 위훈떨친 김철만동지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기념촬영대의 맨 앞줄에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몸가까이 뵈웠다.

삼륜차에 앉아 환호를 올리는 로투사곁에 활달한 걸음으로 다가오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몸소 허리를 굽히시며 건강과 행복을 축복해주실 때 그는 끓어오르는 감격을 금할수 없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김철만동지는 《오늘은 참 좋구나. 정말 기쁘구나.》라고 하면서 어린애처럼 진정할줄 몰랐다. 몸을 부축해주려고 손을 잡으려고 하자 그는 여느때와 달리 거절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뜨겁게 잡아주신 손에서 그이의 체취와 온기를 한시라도 더 오래 느끼고싶어서였다.

깊어가는 밤 그는 침대에 누워서도 그냥 자기 손을 가슴에 꼭 품고 생각하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나의 이 손을 잡아 한생 혁명가로 키워주셨지. 몸소 조준련습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눈구뎅이속에서도 이 손을 잡아 구원해주시였다. 소부대활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제일먼저 이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면서 수고했다고 등도 두드려주시고…

김정숙동지께서 나의 두손을 뿌리치시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가 륙과송전투가 있은 후였지. 내 어깨를 먼저 뚫고나간 적탄이 오중흡동지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내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그래서 적의 흉탄이 나의 어깨가 아니라 가슴에 박혔더라면 오중흡동지는 아마 살수도 있었을것을.

지금도 생각하면 분하다. 우리 수령님께서 그날 충직한 전사를 잃고 얼마나 슬퍼하시였던가.

눈물과 비애속에서 나도 의식 못했던 총상자리를 김정숙동지께서 치료해주시였다. 숙영의 밤에도 신음하는 내곁에서 지새우시면서 눈물흘리시고 아파할세라 상처에 입김을 후후 불어주시면서 약을 붙여주시였다.

총상에 좋다는 약초를 찾아 한겨울에 눈덮인 산속을 훑으시던 항일의 녀장군, 두텁게 쌓인 눈과 언땅을 파헤쳐 풀뿌리를 들추어내시는 김정숙동지께로 달려갔을 때 그이께선 얼마나 노하셨던가.

이 추운 날에 어쩌자고 여기까지 왔는가. 만일 이 추위에 상처가 얼기라도 하는 날엔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과업을 집행하지 못하게 된다.

왜 그런것을 생각 못하는가. …

시꺼멓게 얼어든 그이의 손을 녹여드리려고 내가 내민 두손을 뿌리치시면서 김정숙동지께선 입고계시던 솜옷을 벗어 나의 잔등에 씌워주시였다.

그후에는 우리 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동지의 손길을 대신하여 나를 보살펴주시였다. 인생의 먼길에 혁명가의 영예를 끝까지 빛내가라고 떠밀어주고 드틸세라 잡아주시던 우리 장군님의 손길, 그 운명의 손길을 오늘 경애하는 원수님 품에서 또다시 잡게 되였으니 나는 얼마나 크나큰 행운을 타고난 사람인가. 세상에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또 있으랴.

아, 오래오래 살고싶구나. 자애로운 원수님의 품에서 우리 수령님들의 한평생 념원이던 조국통일의 날도 보고 백두광야에 피흘리며 쓰러진 전우들이야기도 후손들에게 끝없이 들려주고싶구나. …)

그로부터 석달후 김철만동지는 악화된 병환으로 하여 입원하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께서 주신 선물이외에 자신을 위해 남긴것이란 하나도 없었던 투사가 입원을 앞두고 찾은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이 모셔진 손목시계였다. 몇해전 광명성절을 맞으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직접 수여해주신 그 시계를 김철만동지가 퉁퉁 부어오른 손목에 기어이 차고 입원한것을 놓고 우리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였다.

주체27(1938)년 11월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남패자회의가 진행되고있을 때 일제놈들은 어리석게도 항일유격대를 《귀순》시킬 흉계를 품고 박차석놈과 리종락놈을 밀영에 련이어 들여보냈다. 리종락놈은 뻔뻔스럽게도 오중흡동지에게까지 접근하여 산중에서 고생이 많겠다고 하더니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며 가지라고 하였다.

오중흡동지는 섬광이 번뜩이는 눈길로 그자를 쏘아보며 나에게는 회중시계가 있으니 그따위것은 필요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면박을 주었다.

《시계는 하나를 기준해야지 오늘은 혁명시계를 차고 래일은 반동시계를 차는 식으로 해서야 되겠는가.》

그 비수같은 말에 기가 질린 놈은 오중흡동지의 전령병이였던 김철만동지에게 다가와 어린 동무가 산에서 싸우느라 고생을 한다느니, 한창 배워야 할 나이에 정말 안되였다느니 하면서 제법 동정어린 한숨까지 쉬는것이였다. 김철만동지는 즉석에서 김일성장군님의 품속에서 혁명학교를 다니며 세상리치를 다 배우고있는 사람에게 주제넘게 그런 당치않은 걱정을 하는가, 보건대 남의 풍에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것 같은데 제코나 바로 씻고 다니는것이 좋겠다고 서슬푸르게 내쏘았다.

그때 항일혁명투사들은 민족반역자, 일제의 충견으로 전락된 리종락놈을 단호히 처단하고 그 더러운 시체우에 동창생이건 누구이건 배신자는 이렇게 처단한다는 내용의 경고장을 덮어둔채 그곳 남패자를 떠나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였다.

수십년세월이 흘러간 뒤에도 그때의 일을 두고두고 잊지 않고있는 김철만동지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몸소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금시계를 손목에 채워주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금은 어떤 조건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동무는 금과 같이 절대로 변하지 말고 수령님께 끝없이 충실하여야 합니다. 혁명투쟁에서 언제나 견결하여야 하며 사업에서 요령주의를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김철만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절세위인의 존함을 모신 혁명시계의 초침에 심장의 박동을 맞추었다. 단 일분일초의 드팀도 없이 혁명가의 일생을 충정의 시간, 신념의 시간으로 가득 채웠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투사의 유해를 혁명적동지애와 도덕의리로 숭엄히 빛나는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하여주시고 그가 사랑하는 전우들과 어깨나란히 혁명가의 영광을 세세년년 빛내가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탁월한 수령을 높이 모셔야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친 혁명가의 삶이 끝없이 빛난다. 바로 이것이 항일혁명투사 김철만동지의 한생이 다시한번 력사에 힘있게 아로새기는 진리이다.

사상과 령도, 덕망에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들과 꼭같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를 모신것이야말로 조선의 혁명가들과 인민들이 또다시 받아안은 최대의 행운이고 최상의 긍지이다.

세상이 열백번 변한대도 혁명위해 바친 영광의 삶은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불멸하리라. 영원한 우리 태양 이 땅우에 찬란히 빛나기에.

 

본사기자 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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