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0월 9일 로동신문

 

극악한 국권유린자의 본색을 드러낸 을미사변

 

일제의 조선침략사에는 을미사변으로 불리우는 명성황후살해사건이 기록되여있다. 날강도 일제의 천인공노할 살륙만행은 철두철미 조선침략정책에 따라 집행된 계획적인 특대형범죄행위였다.

19세기말 일제가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노리고 일으킨 청일전쟁이후 자본주의렬강들사이의 세력권쟁탈전이 치렬하게 벌어지고있었다.

이러한 때 조선봉건정부는 일본을 견제하고 통치지반을 유지하려는 타산밑에 짜리로씨야와 결탁하였다.

우리 나라에 대한 짜리로씨야의 세력권확장으로 저들의 대조선침략계획이 파탄될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일제는 조선봉건정부의 실제적인 권력자였던 명성황후를 제거하려고 획책하였다. 일제는 가장 음흉하고 악착하기로 소문난 륙군중장 미우라를 조선주재 일본공사로 임명하여 우리 나라에 파견하였다. 어떻게 해서나 조선봉건정부를 걷어쥘데 대한 비밀훈령을 받고 서울에 기여든 미우라는 우리 나라의 정치정세를 내탐한 후 황후를 저들의 손으로 직접 살해하기 위한 흉악한 음모를 꾸미였다.

1895년 10월 8일 이른새벽 미우라의 총지휘밑에 일본군대, 경찰, 민간인깡패 등으로 무어진 살인귀들은 경복궁의 광화문으로 달려갔다. 황궁을 지키고있던 시위대의 저항에 부딪친 악당들은 더욱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살인귀들은 총격전끝에 시위대 련대장을 사살하고 황제의 거처지를 포위하였다. 황제에게 황후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다가 그를 감금해놓고 황후의 침전으로 달려들어 이리떼마냥 그를 찾아 돌아쳤다. 하지만 야수들의 총소리와 군화소리에 질겁한 숱한 궁녀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는 혼잡속에서 그를 쉽게 찾아낼수 없었다. 피에 주린 야수들은 살기를 번뜩이며 궁녀들을 닥치는대로 란도질하였다.

쓰러져있는 궁녀들속에서 명성황후를 발견한 살인귀들은 숨이 채 지지 않은 그를 장작더미우에 올려놓고 석유를 뿌린 다음 불태워버리였다. 그것도 성차지 않아 타다남은 황후의 유골마저 못에 집어던지였다.

명성황후는 이렇게 비참하게 살해되였다.

명성황후의 죽음이 얼마나 깊은 여운을 남기였는지 이 사건에 직접 관여하였던 한 일본인은 자기의 수기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선혈로 물든 시체에는 석유가 뿌려지고 불이 달렸다. 순식간에 시체는 화염에 싸여 이상한 냄새를 풍기였다. 참으로 귀곡추추(귀신도 서글프게 운다는 뜻)하였다.》

자기들의 침략적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한 나라의 황후까지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일제의 죄행은 동서고금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극악한 반인륜범죄행위이며 우리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무참히 유린한 국가주권침해행위였다.

을미사변은 일제야말로 우리 인민의 백년숙적이며 국제법도 인륜도덕도 안중에 없는 포악무도한 살인마, 인권범죄자라는것을 세상에 낱낱이 고발해주고있다.

사람잡이를 체질화한 일제는 을미사변이후에도 특대형반인륜범죄행위들을 끊임없이 일삼았다. 20만명의 조선녀성들에게 성노예생활을 강요한 일제의 특대형반인륜범죄, 인권유린행위는 오늘도 국제사회의 저주와 규탄을 불러일으키고있다.

독초의 뿌리에서 독초가 자라기마련이듯이 조상의 체질적인 악습이 뼈속까지 배인 현 일본당국자들은 죄악으로 얼룩진 과거사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오히려 군국주의를 부활시켜보려고 발광하고있다.

일본당국은 저들의 대에 와서 과거때처럼 일본을 아시아의 《맹주》로 만들어보겠다고 허황한 망상을 하며 날뛸것이 아니라 변천하는 동아시아의 정치지형을 똑바로 보고 자중하며 현실성있게 과거청산을 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는것이 좋을것이다.

 

본사기자 정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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