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1편 소망

2

 

신촌마을의 북쪽바다가 샘물터 가까운 곳에 리덕구의 형들이 마차길 하나를 사이 두고 앞뒤집에 살고있었다. 큰형인 호구가 어머니를 모시고있는데 그 사랑채에는 그의 아들 순우내외가 들어있다. 이 집에서는 돌담장너머로 아득히 수평선까지 내다보인다.

마차길 건너 남쪽에 둘째형 좌구가 살고 바로 사랑채에는 리덕구의 처자가 살림하고있었다.

집앞에 이른 리덕구는 높이 둘러친 돌담의(제주도에서는 어느 집이나 울타리를 흔한 돌로 둘러싼다.) 구멍사이로 정들고 눈에 익은 자기 집마당을 들여다보았다. 만일 안해나 자식이 보이면 소리쳐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고즈넉한 정적속에 묻혀있는 집의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으나 마당으로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어머님이 계시는 큰형 호구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막냉이로 아이때부터 어머니 김삼봉의 다심한 사랑을 각별히 받으며 자란 리덕구는 나이가 들어 성장한 지금도 제일먼저 만나보고싶은 사람은 역시 어머니였다. 뿐아니라 외지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먼저 어머니를 찾아뵈옵고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나서야 처자를 만나는것은 큰형 호구가 불문법으로 내세운 엄격한 가률이기도 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리덕구가 5살 되던 1925년에 그의 아버지 리근훈이 세상을 떠났다. 3. 1운동때 리근훈은 동네사람들을 선동하여 인솔하고 조천면 경찰서앞까지 몰려가서 시위를 벌리고 그 앞동산에 올라가 《조선독립 만세!》를 웨쳤다. 그후 사람들은 그 거사를 찬양하여 그 동산을 《만세동산》이라고 이름지어 불렀다.

그때 일제경찰놈들은 리근훈과 동네사람들을 야밤에 달려들어 마구 체포해갔다.

놈들의 악착한 고문으로 리근훈은 척추가 부러지고 하반신을 못쓰는 반신불수가 되였다. 일제경찰놈들은 리근훈이 다 죽게 되여서야 석방하였다. 안해인 김삼봉은 시동생과 함께 송장이나 다름없는 그를 달구지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해 김삼봉의 눈물겨운 정성에 의해 리근훈의 생명은 구원되였으나 종시 앉은뱅이가 되고말았다. 집안이 너무도 가난에 쪼들여 반신불수인 리근훈도 생계를 위해 벌이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래서 안해인 김삼봉은 저녁이면 남편을 업고 선창가로 나갔다. 앉은뱅이 리근훈은 병신된 몸으로 이물도 고물도 없는 떼우(떼처럼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무어서 만든 앞뒤가 없는 고기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온밤 고기잡이를 하고 날이 밝으면 돌아오군 하였다. 새벽에 어린 리덕구가 어머니를 따라 선창가로 나가보면 아버지의 참대바구니에는 언제나 고등어, 칼치 같은 물고기들이 가득차있군 했다. 이것을 볼 때마다 철없는 어린 리덕구는 너무 기뻐 환성을 지르군 했었다.

《야! 우리 아버지 제일이야!-》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웬 일인지 아버지의 참대바구니를 받아 배에서 내리우면서 눈물을 흘리군 하였다. 철들어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아버지는 병신된 몸이여서 물고기를 잘 잡지 못했다. 그런것을 함께 배를 타는 어부들이 동정하여 자기들이 잡은 물고기를 서슴없이 덜어주군 했던것이다. 어부들의 이 후더운 인정이 늘 김삼봉을 울리군 했다.

안해는 남편을 업고 돌아오고 동네녀인들이 물고기가 가득찬 참대바구니를 날라다 주군 하였다. 그 물고기를 산간마을이나 장사군들에게 넘기여 여섯식구가 연명해갔다. 그러다가 반신불수였던 리근훈은 너무도 일찌기 운명하였다.

하여 김삼봉은 홀몸으로 4남매를 키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 시절의 눈물겨운 어머니의 고생을 누구보다도 맏아들 호구가 잘 알고있었다. 때문에 맏아들 호구는 《날짐승인 까마귀도 엄지가 늙으면 산속에 앉혀놓고 먹이를 구해다 준다는데 항차 사람인 우리가 피눈물속에서 우리를 키워온 어머니의 눈물겨운 고생과 수고를 잊어서는 안된다.》 하고 동생들과 자리를 같이하면 늘쌍 입버릇처럼 외웠다. 그는 스스로가 그 모범을 보이군 하였다. 먼길을 다녀오던가 오랜만에 집으로 들어설 때면 먼저 어머니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자초지종 말씀드리고 먹을것이든 입을것이든 어머니를 위한 물품을 언제나 마련해가지고 와서 내놓군 했다.

그리고 자리를 뜰 때에도 어머니가 허락해서야 물러나군 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맏형의 효성이 지극했기때문에 동생들도 자연히 따라배웠고 형의 훈도를 어기지 않았다. 따라서 며느리들도 집안의 이 가률만은 군소리없이 지켰다.

가정의 이러한 미풍은 동네사람들속에 잘 알려져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

리덕구는 빨리 걸었다. 앞으로 뻗어나간 길을 따라 백보정도 걸어나가면 바로 꺾어드는 길에서 왼쪽의 첫집이 어머니를 모시고있는 맏형 리호구의 집이다. 사랑채의 한복판에 붙어있는 널대문은 숨쉬는 조개입처럼 벙긋이 열려져있었지만 정작 들어서려니 어머니와 일가들을 만나게 될 기쁨과 환희로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려서 리덕구는 널대문어구에 주춤 멈춰섰다.

(어머니! 형님! 제가 돌아왔습니다!-)

이윽고 그는 눈에 띄울만큼 흥분한 기색으로 대문을 밀었다. 삐익- 하고 돌쩌귀가 돌아가는 소리가 울렸다. 대문지방을 넘어서니 왼쪽은 마구간이고 오른쪽은 사랑채의 살림방을 막은 벽체였다. 그 벽체에 두평방이 됨직한 평상이 세워져있었는데 그것은 한여름동안 쓰던것 같았다.

마당에는 몇장의 멍석우에 갓 연자방아로 찧어온 보리를 고물개로 펴놓고 말리우고있었다. 어머니와 혈육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뜨락의 이 수수하고 소박한 광경은 어린시절의 추억을 불러오며 정답게 안겨왔다.

리덕구는 말리우는 보리쌀을 밟지 않으려고 멍석사이를 외나무다리를 건느듯 조심조심 열댓걸음 지나서 안채앞으로 다가섰다. 안채는 사랑채보다 기둥이 높고 집도 더 크고 길었다. 참대발이 걸린 아래방문과 대청마루칸으로 드나드는 퇴문 그리고 정주간으로 나드는 끝문도 있다. 그뒤로는 보이지는 않지만 터밭임을 리덕구는 잘 알고있었다.

이 모든것들을 빠르게 둘러보고난 리덕구는 흥분한 갈린 목소리로 소리쳐 불렀다.

《어머니!-》

안에서는 웬 일인지 응대가 없었다. 대신 남자의 쿨럭쿨럭하는 괴로운 기침소리가 울려나왔다.

《형님!-》 하고 리덕구는 역시 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참대발이 걷히면서 맏형 호구가 퇴마루로 나왔다.

《아니, 이게 누구냐? … 너 덕구가 아니냐? … 덕구야!-》

맏형은 소리쳐 부르며 맨발로 마당으로 뛰여내려와 동생 덕구를 덥석 뜨겁게 끌어안았다.

《형님, 지금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하고 리덕구는 몹시 뛰노는 흥분때문에 숨을 가쁘게 쉬면서 머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

맏형 호구는 반가움과 놀라움이 뒤섞인 시선으로 동생의 머리우에서부터 뿌옇게 먼지오른 신발까지 말없이 훑어보고나서 동생 리덕구를 퇴마루로 잡아끌었다. 그러는 그의 병색이 짙은 얼굴의 눈언저리는 축축히 젖어있었다.

《너 정말 용케… 살아돌아왔구나! … 우린 네가 잘못된줄로만 알고 무척 걱정을 했는데 어디서 이렇게 나타났느냐! …》 하고 호구형은 갑자기 목이 메이고 눈물이 솟아올라 더듬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어머니는 네 걱정으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얼마전까지도 일본놈들이 와서 네가 보르네인지 인도네시아에서인지 행불이 되였다면서 기별이 오면 곧 알리라면서 고함을 질러댔었다. 그리고 6월달에도 놈들이 네 일때문에 다시 우리 집에 왔었다. 놈들은 어머니에게 손주는 징병을 피해 도주했고 아들은 군대에서 탈주했으니 불온사상이 많은 집안이라고 고아대며 위협까지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닭을 잡아 먹이기도 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겨우 말썽을 눌러왔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너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하다면서 밤마다 남몰래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의 가슴에는 떼버릴수 없는 수심과 근심으로 재가 앉았다. …》

호구형은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래 너도 별별 고생을 다 겪었겠지? … 고생이 막심했을테지? …》 하고 호구형은 젊은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은듯 한 수척하고 나이들어 보이는 동생을 가슴아픈 눈길로 쳐다보았다.

리덕구는 대답대신 짧고도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렇다. 《학도병》으로 남방전선으로 끌려가 3년동안 겪은 그 무시무시한 악몽같은 일들을 어찌 한두마디 말로 피력할수 있으랴! 회상하기조차 몸서리치는 일이다!

리덕구의 얼굴은 불시에 괴로움으로 이그러졌으며 숱진 눈섭은 미간에 쏠려있었다.

(형님, 저는 야수들의 무리속에서… 3년간을 인간생지옥에서 지냈습니다!) 하고 리덕구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자 회상은 무서운 힘으로 리덕구를 틀어잡았다. 그의 머리속으로 그 나날에 겪었던 몸서리쳐지는 일들이 방금전에 있었던것처럼 생생히 떠오르고있었다.

… 《학도병》으로 끌려가 강압적인 훈련을 받을 때 기압을 받아 고막에 손상을 입던 일, 그 다음 망망한 바다를 지나 대만, 필리핀을 거쳐 인도네시아까지의 배길… 그것은 침략의 길, 죽음의 길이였었다. 적도아래 불줄기가 쏟아져내리는 45℃의 살인적인 무더위, 하루에 두세차례씩 퍼붓는 강한 소나기로 인한 습기로 대기는 불가마속을 방불케 했다. 거기에 또 망그로브열대림이 우거진 진펄길이 대부분이여서 한걸음한걸음이 고된 행군이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못견디게 고통스러운것은 이곳 현지의 주민들에게 차마 사람으로서는 하지 못할짓을 강요당하는것이였다. 닥치는대로 략탈하고 반항하는자는 가차없이 짐승처럼 죽이라는것이 상급의 명령이고 전투임무중의 하나였다. 략탈한 량곡과 원유는 그대로 《대일본제국》의 배에 실어보내야 했다. 일제는 이것으로도 성차지 않아 오스트랄리아령인 파푸아뉴기니아에 대한 침략에로 병사들을 내몰았다. 그리하여 부대는 이리안섬의 서부로 집결되였다. 리덕구도 소대장으로 그 섬에 가있었다. 그때 이리안섬의 서부에 집결한 일본제국군은 침략기도를 실천하기 전에 련합군의 포위에 들었다. 파푸아뉴기니아 동쪽에 위치하고있는 솔로몬해전에서 일본해군은 대참패를 당했으며 그로 하여 이리안섬의 서부에 있는 일본침략군은 련합군의 대포위속에 빠졌던것이다. 그런데 련합군은 일제의 대부대를 포위해놓고는 다치지도 않고 북방의 일본군세력을 타격하면서 더 멀리로 나갔다.

하여 포위된 일본군은 후방과의 련계가 단절되였다. 부대는 말그대로 고립무원한 사면초가에 들었다. 여기에 수시로 인도네시아의 애국적인 무장유격대가 사방에서 나타나 불의에 습격하군 하여 밤에도 잠을 잘수 없었고 낮에도 숲속을 함부로 다닐수 없게 되였다. 이러한 악조건속에서도 가장 긴급하고 엄중한것은 식량보급로가 끊어진것이였다. 아무리 기세등등하던 일본제국군이라 해도 굶주림속에서는 그 무엇도 할수 없었고 견디여낼수 없었다. 드디여 식량이 떨어진지 10일이 지나자 군대는 강도단으로 변하고 또 한주일이 지나자 순간에 식인종무리로 되고말았다.

부대가 안전한 산악지대로 이동하는 행군길에서 한 병사가 끝내 쓰러져 일어서지 못했다. 이 병사는 왜왕을 위해 목숨바치는것은 영광이라고 늘쌍 입버릇처럼 떠들어대던자였는데 원래 일본의 어느 지방 부호의 자식으로서 호의호식하면서 자란 놈이였다. 그런데 어려운 고비에서는 《야마도 다마시》라는것도 맥을 추지 못하는지 먼저 쓰러지고말았던것이다. 그 누구도 쓰러진 그를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허기진 자신을 어떻게라도 더 지탱하려는것이 모든 병졸들의 공통된 심리였다. 길게 늘어선 대오는 죽어가는 뱀처럼 간신히 움직이고있었다. 그때 쓰러진 병졸과 한고향이라면서 가까이 지내던 소대장이 뒤에 떨어졌다.

리덕구의 생각에는 동향이여서 소대장이 그대로 동정심이 생겨 그를 구원하려는줄로 알았었다. 그런데 얼마후 그들이 떨어진 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여올랐다. 비틀거리며 행군하던 병졸들은 잠시 휴식하면서 모두가 고기굽는 냄새가 풍겨오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던것이다.

얼마후 부대가 다시 행군을 시작하려는 때에 뒤떨어졌던 소대장이 숯검뎅이를 게바른 얼굴로 혼자서 어슬렁거리며 돌아왔다. 그는 대대장에게 들소고기라면서 구운 고기 한덩어리를 배낭에서 꺼내여 섬겨바쳤다. 이 지대에는 들소가 많았다. 허기진 대대장은 정신없이 그것을 뜯어먹었다. 속살은 채 익지 않아서 피가 엉킨 그대로였다. 《소금이나 있었으면 좋겠다나!-》 하고 대대장은 실컷 뜯어먹고나서 고기맛이 별스럽고 가죽이 부드러운데 무엇을 감촉했는지 이렇게 물었다.

《처음 먹어보는 고기다. 소대장! 들소고기가 틀림없는가?》

소대장은 눈을 이상스레 슴뻑거리며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들소라면 그런가부다 하시우. … 아무렴 대일본제국 군대가 천황페하에게 충성다하기 전에 굶어죽는다는게 말이 되는가요. 이제 앞으로 이런 고기는 얼마든지 생길것입니다!-》 하고 소대장은 수염이 더부룩한 턱으로 비칠거리며 간신히 걷고있는 병졸들을 가리키면서 눈을 열에 뜬 정신병자의 광적인 눈처럼 희번득거렸다. 그것은 쓰러지는 병졸들은 다 《들소고기》로 된다는 뜻이였다.

제놈들끼리 잡아먹는 도살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그런 속에서도 민족배타주의가 골수에 박힌 한 장교놈이 센징(조선사람을 모욕하는 말)부터 잡아먹어야 한다고 발기해나섰다. 그때부터 소나 말을 잡아먹듯이 조선인병사들을 골라 슬그머니 도살하기 시작했다. 며칠후 이번에는 끝내 리덕구의 차례가 닥쳐왔다. 그런데 이때 데리고있던 분대장이 어슬녘에 남모르게 찾아와 이 사실을 귀띔해주었다. 평소에 리덕구는 량심적인 조선사람으로, 대학생출신으로 지식이 많고 매사에 공명정대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아왔었다.

《대대부에서는 당신을 쳐야 한다고 했소. 한 동료가 나에게 당신을 감시하라고 했소. 빨리 도망치시오!-》

온몸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사태는 급박했다. 그렇다고 단독으로 식인종화된 야수의 무리와 싸울수도 없었다. 그는 밤에 부대를 탈출했다. 산을 넘고 진펄을 지나 무작정 멀리로 가야 하였다. 며칠동안 풀뿌리와 산열매로 굶주림을 이겨내면서 서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걷던 그는 종시 바다가 바라보이는 어느 산턱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말았다. 극도의 굶주림과 피로가 그를 쓰러뜨린것이다. 얼마후에 그가 죽물이 입안으로 흘러드는것을 느끼며 정신을 차리고보니 감실감실한 이 고장 사람들이 안남미죽을 먹이며 지켜보고있었다. 그들은 리덕구에게 국적을 물었다. 리덕구는 땅우에 아시아의 지도를 대충 그려놓고 조선사람임을 거듭 말하였다.

《나는 조선사람이요. … 난 놈들의 부대에서 탈출했소!》 하고 리덕구는 그들에게 전후사연을 그대로 솔직히 말하였다.

《놈들 부대에서 탈출한 조선사람이란 말이지. …》

그들은 산을 낀 바다가에 비밀기지를 꾸리고 일본침략자들을 반대하여 투쟁하는 인도네시아의 무장대원들이였다. 리덕구가 식인종화된 일본군에서 탈출한 구체적인 내용을 상세히 듣고난 그들은 고맙게도 모든 편의를 보장해주었으며 그를 무사히 귀국할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형편에서 집에 자기 소식을 전한다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였다. …

(그런데 놈들이 나의 탈출소식을 벌써 알고 고향의 집에까지 달려들어 행패질을 했다니… 어머니랑 모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겠는가! …) 하고 쓰라린 회상에 잠겼던 리덕구는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형님, 저는 남방전선… 인간생지옥에서 탈출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하고 말하는 리덕구의 쓰라린 마음속 고통이 그의 눈동자에 내비치고있었다.

《음, 용케 살아돌아왔다. 어머니가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냐! … 너의 안해도 네가 꼭 살아돌아오리라고 믿고 꿋꿋이 살아왔다.》

호구형은 격정에 넘쳐 말하고는 숨이 차서 괴로워하였다.

《형님, 어머니는 어델 가셨어요?》

《바다가로 나가셨다. 미역을 좀 건져오겠다면서…》

《아니, 어머니년세에 아직도 해녀질을 해요?》 하고 리덕구는 놀랐다.

《글쎄,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시다. 참…》

이렇게 탄식하듯 뇌이는 호구형의 얼굴은 병색이 완연하였다.

바짝 마른 얼굴에는 검버섯이 돋았고 쿨럭쿨럭… 가슴이 터지는듯 한 줄기침을 자주 했다.

리덕구는 병약한 맏형의 안색을 찬찬히 살피며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몸이 몹시 편찮은가보군요.》

《뭐, 견딜만 하다. 이제 왜놈들이 망하는 속시원한 꼴을 보게 되면… 그때는 아마 내 몸도 거뜬해질거다!》

《형님!》 하고 돌연 리덕구는 큰소리로 웨치듯이 말을 덧붙였다.

《왜놈들은 벌써 망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두 끝나구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마음놓고 집으로 돌아온게 아닙니까!》

《뭐라구? … 네 말이… 그게 사실이냐?》 하고 호구형은 미심쩍어했다.

《형님, 사실입니다!》

리덕구는 왜왕 히로히또가 눈물을 흘리면서 무조건항복한다는 방송을 하고 시게미쯔란자가 《대일본제국》의 정부를 대신하여 미국함선에 올라 항복서에 도장을 찍은 사실을 실감있게 이야기하였다.

《과연 왜놈들은 간악한 종자들이다! 지금까지 그걸 숨겨오다니… 천하에 악독하고 간특한 놈들…》 하고 호구형은 제주도에서 보름이나 지난 오늘까지도 감감 숨겨온 왜놈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참지 못해 마루바닥을 내려치며 펄펄 뛰였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에선지 누워앓던 병자같지 않게 벌떡 일어나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벽에 걸린 양복을 벗겨 입었다. 그 다음 일본 오사까에서 살 때부터 쓰던 베레모를 머리에 성급히 썼다.

리덕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빠른 어조로 형에게 물었다.

《아니, 형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

《내 이제 곧 조천면에 갔다오겠다. 안선생을 만나보련다. 해방이 되였는데 우리가 죽었다고 앉아만 있겠느냐! … 인차 다녀오겠으니 너는 바다가에 나가 어머니를 찾아뵙고 곧 모시고 들어오너라. 다른 식구들은 다들 밭에 나갔을테니 돌아오거든 모두 모이게 해라!》 하고 호구형은 지팽이를 내짚으며 기세충천해서 집을 나섰다. 정말 예전그대로 성미가 곧고 급한 큰형이였다. 그가 찾아가는 조천면의 안선생(안세훈)은 일찍부터 사회주의운동에 참가한 키가 작고 웅변이 좋은 제주도의 선각자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오랜 반일지사인 그는 리덕구의 맏형 리호구, 둘째형 리좌구와 인연이 깊었다. 안세훈은 빈농으로 부인이 망건을 만들어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면서 오래전부터 사회주의운동에 관계하며 비밀조직에서 활동했었다. 성격은 강직하고 청렴하였으며 직위나 금욕이 전혀 없는 사람이였다. … 지금 맏형 호구는 병상에 누웠던 몸으로 바로 그를 만나러 십리길이 넘는 면으로 떠난것이다.

중학시절의 리덕구는 맏형인 호구가 오사까에서 겉치레장사를 하면서 실지로는 반일비밀사업을 하며 자주 제주도에 다녀오는것을 어렴풋이 감촉하고있었다. 오래전부터 제주도와 오사까에 모여사는 조선사람들속에서는 반일지하조직이 비밀리에 움직이고있었다. 고향 제주도의 조천면에 있는 안선생이란 사람은 바로 그런 조직의 중요인물임을 리덕구는 그때 이미 짐작하고있었다. …

방에 홀로 남은 리덕구는 심한 시장기를 느꼈으나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어 바다가로 나가려고 일어섰다. 그때 사랑채에서 젖먹이딸애를 안은 조카며느리가 마당으로 나와 고운 이마를 얌전하게 숙이며 인사하였다.

《삼촌, 그간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오, 정량이구나!》

리덕구는 조카며느리 정량이가 중학교에 다니던 사춘기시절부터 잘 알고있었다. 지금 가리마를 반듯하게 비다듬어 넘긴 낭자튼 머리는 류다른, 새로운 인상을 주었다. 희맑은 이마와 시원한 큰 눈, 날이 선 코는 처녀시절과 다름없었으나 무엇인가 더 세련되고 눈길을 끄는데가 있었다.

정량의 아버지 장하문과 덕구의 맏형 리호구는 둘도 없는 딱친구였다.

그들은 서로가 아들딸을 보게 되자 사돈을 맺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성장한 순우는 아버지들끼리 한 약속을 봉건으로 간주하고 극력 반대했다.

그런데 어느날 순우는 가족들의 일손을 도우려고 밭으로 나가던중에 길가에서 밭에 나간 집안사람들에게 점심을 가져다 주고 돌아오는 정량이와 마주치게 되였다. 그때 순우는 그만 첫눈에 홀딱 반하고말았다. 기와집을 쓰고사는 세도가 당당한 정량이네 집이였지만 아버지들의 우정과 또 마을에서 존경받는 리호구의 집안이라 혼사는 그리 힘들것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정량이자신이 순우의 키가 작다고 타발하였다. 그러나 순우의 남다른 정열과 남아다운 기개에 눌려 정량은 휘여들고말았다. 리덕구가 《학도병》으로 끌려나갈 때는 그들이 약혼을 하였을 때였다. 실상 리덕구와 조카 순우는 나이가 1살 터울밖에 안되였다. 집에서 맏아들 호구를 9살나이에 너무도 일찌기 장가보낸 결과였다.

거기에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었다. 일제경찰놈들의 악착한 고문으로 페인이 된 아버지 리근훈의 기약할수 없는 일신이 맏아들인 호구의 잔치를 서두르게 했던것이다. 아버지 리근훈은 원한많은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며느리를 맞고싶어하였다. 여기에는 맏아들이 일찍부터 집안의 가장구실을 하기 바라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절절한 기대와 소원이 어려있었다. 어린 호구는 무엇인가 부모들의 기대를 어렴풋이 느끼고있었지만 역시 아직은 철없는 아이였다.

장가가는 날 그는 량가마를 타는것도 무서워서 울었다. 이런 철없는 아이를 따라 18살의 꽃나이였던 신옥심은 시집을 왔다. 그날 신부는 가마속에서 울었다. 세상살이의 이런 악습에 피할수도, 항거할수도 없는 서러움과 울분이 눈물을 쏟게 했던것이다. 잔치날 신랑신부가 눈물을 보이면 의좋게 못산다고 하였지만 오늘까지 그들은 의좋은 부부로 아들딸 낳고 살아왔다. 물론 이들부부사이에 곡절이 전혀 없은것은 아니였다.

신부 신옥심은 때로 시어머니에게서 욕을 먹거나 《구박》을 분풀이로 9살짜리 어린 남편을 밭으로 데리고 나가 꼬집어주기도 하고 때려주기도 하였다. 고생살이속에서 세월은 흘러 9살이던 호구는 17살이 되고 신옥심은 26살이 되여 부부간의 생활이 어떤것인지 알게 되고 아들을 보게 되였다. 그 첫아들이 바로 순우였다. 리덕구와 순우는 삼촌과 조카사이였지만 한해 터울로 형제간처럼 자랐다. 맏형 호구는 집안의 기대대로 일찌기 철이 들어 일본으로 다니며 장사를 하게 되였다. 처음에는 남의 심부름으로 왔다갔다하다가 다음은 가게방을 차리였고 후에는 동분서주하면서 장사를 하였다. 생활의 토대가 잡히면서 그는 부모를 대신하여 집안을 이끌었고 막내동생 덕구와 아들 순우를 꼭같이 키우며 공부도 함께 시켰다. …

《끝내 우리 집안에 시집을 왔구나! … 이제는 딸애까지 봤단 말이지. 어디 보자. 어, 눈이 시원스러운게 꼭 널 닮아서 곱게 생겼구나!-》 하고 리덕구는 큰소리로 유쾌히 껄껄 웃었다.

조카며느리 정량은 수집은듯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그래 어떻니? 우리 집안에 장손며느리로 들어오니 시어머니우에 로할머니까지 계셔서 숨도 크게 못 쉬겠지? … 그래 순우는 어딜 갔니?》

《애아버지는 징병을 피해서 2년전에 집을 떠나간 이후로는 아직 소식이 없어요. …》 하고 조용히 뇌이는 조카며느리 정량의 눈에 언뜻 물기가 스쳤다.

《그럼 어디 가있는지도 모르겠구나. … 음, 이젠 왜놈들이 망했으니 곧 돌아올게다. 마음놓고 기다려라!-》

《삼촌, 저도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껏 기다리고있어요!》

조카며느리의 대답은 의외로 힘찼다. 하긴 기다리는것이 인생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 생활은 정말 어렵고 험난한 때일수록 기다리는것이고 희망하는것이고 믿는것인지도 모른다. 기다림이 없고 믿음을 상실하고 희망을 잃으면 험악한 세월에 어떻게 살아가랴! 그래서 기다리는데 습관된 조선의 녀성들이 강한것인가? …

리덕구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침묵하고있었다. 문득 그는 또다시 강한 시장기를 느꼈다.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그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것이다.

《참, 정량이. 먹을게 좀 있거든 차려주렴. 배가 고프구나…》

정량은 그제야 번쩍 정신을 차린듯 미안해하였다.

《정말 안됐군요. … 당장은 찬밥밖에 없어서… 곧 밥을 지어드리겠어요.》

《아니, 그러지 말아. 있는 그대로 간단히 차려주렴. 우선 요기나 하면 되니까.》

조카며느리는 아이를 사랑방에 있는 애기구럭(참대로 엮어서 땅바닥에 놓고 흔들게 되여있는 제주도특유의 요람)에 눕히고나서 정주간으로 들어갔다.

잠시후에 리덕구는 대청마루에 앉아 조카며느리가 정성들여 차려준 밥상을 받았다. 놋바리에 소북이 담긴 밥은 흰쌀이 약간 섞인 보리밥이였다. 그는 오랜만에 제주도 갓김치와 고추장, 칼치구운것을 맛보았는데 그것은 꿈속에서도 그리던 고향의 향취를 실감으로 느끼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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