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1편 소망

3

 

리덕구는 흥분으로 끊임없이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일찌기 자기의 소년시절이 꽃펴나던 고향의 바다가로 나왔다. 삼삼한 습기를 머금은 대기는 짙었고 향기 그윽하였다.

바다는 때마침 썰물이여서 새파란 바다풀들과 누런 가사리들이 들어붙은 너럭바위들은 해빛에 번쩍거리며 드러나있었다. 마을의 조무래기들이 드러난 바위짬들에서 골뱅이와 게를 잡기도 하고 청각과 돌김을 뜯느라고 새된 소리를 질러대며 정신없이 돌아치고있었다. 물이 깊은 도래굽이에서는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린 낚시군들이 종다리를 물에 잠그고 서서 참대낚시대를 드리우고있었고 돌담을 성벽처럼 둘러친 바다가 샘터에서는 동네녀인들이 모여 물을 긷기도 하고 물허벅(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내륙지방의 부녀자들과는 달리 돌이 많고 바람이 심한 이곳 제주도의 녀인들은 물동이를 대바구니에 담아서 등에 지고 다니는데 그것은 돌에 걸리거나 센 바람에 넘어지는것을 방지하려는데서 생긴 이 고장의 오랜 풍습이다.)을 지고 샘터를 떠나기도 하였다. 하늘, 수평선, 해볕, 하늘거리는 아지랑이… 모든것이 푸르렀다.

푸른 하늘의 해는 서쪽으로 헤염쳐가는 눈이 부실듯 새하얀 구름의 가장자리를 엇비듬히 꿰지르더니 구름을 벗어나서 다시금 찬란한 금빛해살을 땅우에 내려비치고있었다. 금노을이 핀 하늘과 맞붙은 실금으로 그어진 수평선은 아득히 펼쳐지고 잔잔한 파도는 기묘한 가락을 울리며 바위를 규칙적으로 두드리고있었다.

장엄하게 펼쳐진 검푸른 바다우에는 멀리, 가까이 흰 돛을 단 고기배들이 점점이 떠있고 그 근방에는 흰 머리수건을 동여맨 처녀들이 물새처럼 날파람있게 자맥질을 하며 처량한 휘파람소리를 내고있었다.

리덕구는 흥분으로 번쩍이는 눈을 치켜들고 해녀들쪽을 바라보았다. 아마 거기에는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도 있을것이다. 그는 문득 자기도 모르게 바다에 뛰여들고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어린시절부터 형들을 따라다니며 이 고향 바다가에서 헤염치는 법을 익힌 그였다.

리덕구는 바위우에 재빠르게 옷을 벗어놓고 속내의바람으로 마치 수영선수가 그러듯이 손과 발을 적시고나서 곧 바다물속으로 첨벙 몸을 던졌다. 순간 무더위와 흥분으로 달아올랐던 그는 시원한 쾌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바다물속에 깊숙이 몸을 잠그었던 그는 빠르게 솟구쳐올라 머리의 물을 흔들어 털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머리를 들고 고향의 비취색하늘과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리덕구는 지금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학도병》시절에 겪었던 그 모든 더럽고 혐오스러운것을 여기 고향의 바다물에 깨끗이 씻어버리는듯 한 상쾌감을 맛보고있었다. 머리가 거뜬해지고 몸은 날아갈듯 가벼워지는것 같았다.

그는 기분좋게 천천히 헤염을 쳤다.

(얼마나 상쾌하고 마음이 편한가. … 이것이 고향의 품이다! 그렇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고향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든 고향을 빼앗기고 얼마나 오랜 세월 망국노로 살아왔던가. 수많은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야 하였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왜놈들의 총알받이로 낯선 고장에 징용으로 끌려가 마소처럼 고역을 치르다가 무주고혼이 되였던가. 출렁이는 이 검푸른 바다에 얼마나 많은 고향사람들의 쓰라린 피눈물이 뿌려졌던가! …

(력사의 증견자 고향의 바다여! … 너는 그 모든것을 정확히 기억하며 새겨두고 잊지 않을것이다!)

허나 해방된 오늘, 이제 더는 그런 쓰라린 일이 없을것이며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사랑하는 처자와 리별하는 일이 없을것이다.

(그래, 다시는 절대로 고향을 뜨지 않고 여기서 평생을 조용히 살아가리라! …)

리덕구는 여전히 기분좋게 헤염치고있었다. 그러다가 불쑥 물속에서 바위가 짚이자 그우에 올라섰다. 바다물이 허리까지 차는 바위돌우에서 심호흡을 하며 잠시 서있는데 저쪽에서 애처로운 휘파람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서 해녀들이 자맥질하며 불어대는 휘파람소리였다. 애처로운 휘파람소리는 련속 들려왔다. 그 순간 리덕구의 가슴은 불현듯 자기도 모르게 쩌릿해지면서 어린시절에 자주 들어온 눈물겨운 《겨울의 해녀》라는 시가 생각났다.

 

    차디찬 겨울날 물옷입은 해녀떼

    두릅박 옆에 차고 바다밑까지

    잠겼다 뜰 때에 휘파람소리

    괴로움 신음과 함께 들린다

    …

 

리덕구는 한동안 생각깊은, 서글픈 눈길로 해녀들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있었다.

(저기 해녀들속에 분명 늙으신 어머니가 계실것이다. …) 하는 생각이 그의 의식속으로 지나가자 그는 철썩- 물속으로 무작정 뛰여들었다. 보통때 이 고장의 남자들은 바다에서 해녀들에게로 다가가지 않는다. 이것은 제주도에서 오랜 세월 굳어진 불문법이였다. 그러나 해해년년 그리던 어머니를 찾아보고싶은 걷잡을수 없는 욕망이 그를 지금 무서운 힘으로 떠밀고있었다. 하여 그는 두팔과 두발로 힘차게 물을 걷어차며 자유형헤염으로 속도를 높여 앞으로 나갔다.

리덕구의 손끝과 발끝에서는 흰 물결이 련속 일었다. 그렇게 몇백메터를 단숨에 헤염쳐가니 벌써 목에서는 단내가 났다. 그러나 그는 멈춰서지 않고 줄곧 앞으로 전진해갔다. 그에게는 어려서부터 무엇이건 난관을 이겨내는데 버릇된 강인성과 정열이 있었다. 기실 리덕구는 자기에게 무엇인가 힘겨운것이 닥쳐들 때 그것을 디디고 일어서는것으로 쾌감을 맛보군 했었다. 어릴 때 그는 자기를 《곰보》라고 놀려주는 아이와는 설사 그가 아무리 큰아이라도 머리가 깨여지고 코피가 터져도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기죽지 않고 싸우군 했었다. 이런 성미가 차차 굳어지면서 자라난 그는 학생시절에 조선사람을 《센징》이라고 모욕하는 일본놈들에 대한 반발심이 류달랐었다. 공부에서도 일본학생들을 기어코 이기려고 하였고 유술경기에서도 지지 않았다. 언젠가 유술경기때 일본인학생의 팔을 꺾어버린적도 있었다. 심판이 경기를 중지하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팔꺾기를 했던것이다. 이것은 물론 일본놈들때문에 아버지를 일찍 잃은 분노의 감정이기도 하였고 조선학생들을 깔보고 모욕하는 일본놈들에 대한 사무친 원한과 분노, 반발심의 폭발이였고 나라잃은 울분이기도 했었다. …

리덕구는 지금 오랜만에 바다에 뛰여들어 자기가 어지간히 맥이 빠지고 지쳤음을 느끼고있었지만 역경에 부닥치면 부닥칠수록 더욱 머리를 쳐들고 맞서나가는 강한 기질로 팔다리를 움직이며 해녀들쪽으로 방향을 잡고 헤염쳐갔다.

그때 한 해녀가 자기들에게로 다가오는 낯모를 사나이를 띄여보고 깜짝 놀라 눈섭을 치켜들고 새된 소리를 질렀다.

《웬… 남정네가 우리한테로 다가온다!-》

그러자 일시에 해녀들의 자맥질이 멎고 뒤따라 처량한 휘파람소리도 뚝 그쳤다.

《무슨 사나이가 우리 신디로 왔시니?》 하고 한 해녀가 감궂게 눈섭을 꺾고 제주도 토배기사투리로 야단스럽게 웨치듯이 말했다.

《처음 보는 사나이싱걸.》

《헤염글 잘 치염시네.》

《게메 뭍에서 여기긴지 얼마나 머니게.》

《퇴박도 없이…》

《어느 집 랑군인지 기운도 좋다게.》

해녀들이 여기저기서 토배기사투리로 왁자지껄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그들중에서 아무 말이 없던 가냘픈 중년의 해녀가 둥그런 수중안경을 흰 수건쓴 머리우로 올리고 김삼봉에게로 다가왔다.

《저기, 할망네 작은 아들이 아니우까?》 하고 중년의 해녀는 시원한 미소를 띠고 잘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삼봉은 퇴박우에 몸을 태우고 물안경을 이마우로 올렸다. 그런 다음 중년의 해녀가 가리킨쪽을 여겨보았다. 한 젊은이가 팔다리를 기운차게 휘저으면서 쏜살같이 이쪽으로 헤염쳐오고있었다. 이따금 번쩍 물속에서 쳐들군 하는 얼굴을 찬찬히 여겨보니 모색이 비슷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삼봉은 곧 머리를 저었다.

(아니, 그럴수 없지. 내가 잘못 보았을게야. 오매불망 그리던 내 마음속의 환영이겠지…)

몇년째 감감무소식이였고 행방마저 모르던 아들이 어떻게 깊은 바다밑에서 불쑥 솟아오른것처럼 여기 바다 한복판에 나타날수 있겠노. … 아니다 하고 김삼봉은 단념하고 서글피 웃으며 자맥질을 하려다가 무엇인지 자기로서도 알수 없는 이상한 예감에 다시한번 눈을 쪼프리고 살펴보았다.

(아니, 정말 덕구가?!)

순간 김삼봉은 어머니들만이 소유한 모성의 특유한 감각으로 아들을 정확히 알아보았다. 그 찰나 그의 몸이 가벼이 떨렸다.

(덕구야!-) 하고 뜨겁게 마음속으로 뇌인 어머니 김삼봉은 돌연 저도모르게 발로 물을 차며 마주 헤염쳐갔다. 다가갈수록 개구리헤염으로 마주오는 사나이는 근시안경을 벗었지만 동그스름한 얼굴에 얽음새가 력력한것이 막내아들 덕구가 틀림없었다.

한편 마주 헤염쳐오던 리덕구는 (어머니시다! 어머니시다!-) 하는 번개치는듯 한 생각과 동시에 뭐라고 형언할수 없는 환희와 반가움으로 온몸에 힘이 용솟음치는것을 느꼈다. 자나깨나 먼곳에서 그리던 어머니!

고향을 생각할 때 언제나 제일먼저 떠오르는것은 어머니였고 굶주림과 병마에 신음할 때도 고향의 어머니를 불렀었다.

《어멍! …》 하고 리덕구는 자기도 모르게 철부지아이적에 부르던 친근한 제주도 토배기사투리로 어머니를 소리쳐 불렀다.

《덕구야!-》

어머니쪽에서도 자애에 넘친 갈린 목소리로 웨치며 성급히 다가왔다.

《어멍!-》

《이녀석아! … 어떻게 물귀신처럼 바다 한복판에 불쑥 나타난디?》

물결치는 수심깊은 바다 한복판에서의 눈물겨운 모자간의 상봉이였다.

《네가 틀림없는 덕구구나게!-》 하고 어머니는 울고 웃으면서 오글조글 주름이 간 손바닥으로 물에 젖은 아들의 바투 깎은 꼿꼿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겨주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예전처럼 바다물속에 뛰여들고싶더군요.》

리덕구는 아이때처럼 개구리헤염으로 어머니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몇년사이에 어머니는 몰라볼 지경으로 늙으신것 같았다. 젊은 시절에 제주도에서 미인으로 소문높던 어머니… 어머니의 머리수건밑으로는 흰머리칼이 헤아릴수 없이 늘어져있었다. 로년과 겪어온 파란으로 하여 어머니의 온몸은 여위고 메마른것 같았다. 입의 량모서리주름은 늘어지고 얼기설기 정맥이 지나간 퍼런 눈시울은 부석부석하였으며 무수한 잔주름이 부채살모양 관자노리쪽으로 퍼져있었다. 얼굴의 살도 빠지고 두볼은 꺼져 훌쭉하였다. 어머니의 시원한 눈만은 이전과 다름없이 강직하면서도 온화한 빛을 뿜고있었다. 늙고 몸이 마른 어머니는 애처롭고 볼품이 없었으나 그래도 역시 아름답고 순결한 그 어떤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빛났다. … 어머니에 대한 련민의 정이 세찬 파도처럼 리덕구의 가슴에 가득찼다.

(그 험악한 악몽같은 세월이 너무도 일찌기 어머니의 젊음을 빼앗아갔구나!-)

리덕구는 갑자기 가슴속 밑바닥에서 눈물이 솟아오르는것을 강잉히 눌렀다.

《어머니, 그 몸으로 왜 바다에 나왔어요?》 하고 리덕구는 울음섞인 목갈린 소리로 탓하듯이 말하였다.

《네 큰형이 자꾸 기침을 하기에 전복이라도 따다가 먹일가 하고 나와시네. … 그런데 넌 이렇게 돌아왔으니 한시름놓인다만 순우녀석은 어디 가서 고생하며 헤매는지…》

어머니 김삼봉은 불시에 짧고도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아들걱정, 손자걱정으로 한시도 마음편한 날이 없이 한평생을 걱정과 시름속에 살아온 어머니였다.

(정말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새가 없다더니…)

어머니는 앓아누운 맏아들 호구에게는 미역을 건지러 바다가에 나간다고 마음놓게 하고는 실상은 늙은 몸으로 자맥질하여 아들 몸보신시키려고 전복을 따려고 나온것이다.

(어머니! …) 하고 리덕구는 자식들에 대한 어머니의 마를줄 모르는 자애와 헌신에 머리를 숙이며 마음속으로 거듭 뇌였다.

(예로부터 자식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만이 안다고 했거늘, 내 어찌 그 사랑을 깊이 알랴! …)

《어머니! 너무 걱정마십시오. 순우도 인차 돌아올거예요!》 하고 리덕구는 목메인 소리로 늙으신 어머니를 위로했다.

《오, 맞다께! 인차 돌아오구말구…》

어머니는 위로하는 성장한 막내아들의 진정에 따스한 감동을 느끼며 기쁘게 응답했다.

《어머니, 그래 전복을 얼마나 땄어요?》 하고 리덕구는 마음속 괴로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오늘은 무사신지 조개같은 생복만 눈에 띤다께…》

어머니는 락담실망하는 기색이였다.

(오늘따라 그런게 아니라 이제는 늙으신 어머니의 기운이 모자라서이리라.) 하고 리덕구는 부지중 어머니의 늙음에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그럼 어머니, 여기 가만계시라요. 제가 한번 자맥질을 해보겠어요.》

리덕구는 흔연히 어머니를 향해 기세좋게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즉시에 막아나섰다.

《녀자들이 하는 일인데… 그만두거라.》

《어머니, 세상에 녀자들만 힘든 자맥질을 한다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건 옳은 풍습이 아니예요.》 하고 리덕구는 대범하게 소리내여 웃었다.

《그래두…》

녀자들의 고생을 깊이 리해하는 성장한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가슴속은 대견함으로 가득찼다. 그는 흐뭇한 기분으로 눈을 빛내이면서 아들에게 고무줄이 달린 물안경을 넘겨주었다.

《거든 수경이나 쓰고 해보거라.》

리덕구는 물안경을 코언저리까지 내려쓰고 입으로 숨을 길게 몰아쉬고는 열길 깊은 바다물속으로 단번에 기운차게 내려꽂혔다.

퇴박에 몸을 실은 어머니 김삼봉은 아들이 들어간 바다물속을 행복스럽게 눈을 끔쩍거리며 지켜보고있었다.

리덕구는 바다밑바닥에 발을 붙이고는 큰 넙적바위를 움씰하고 들어제끼였다. 그것은 어머니는 물론이고 건강한 젊은 해녀들도 어쩌지 못하는 바위돌이였다. 그 바위를 들어제낀 그는 물우로 솟구쳐올라와 오리마냥 발헤염을 치면서 푸- 짧게 깎은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었다.

《어머니, 바다밑의 생돌을 들어냈는데… 뭔가 우글우글하는데 퍽 많은것 같애요.》

그러더니 어느새 다시 바다속으로 급히 들어갔다. 잠시후에 리덕구는 거죽이 우둘투둘하게 도두라진 커다란 소라를 한아름 안고 솟구쳐올랐다.

그는 어머니의 퇴박에 내리달린 그물에 잡은 소라를 쏟아넣고나서 재빨리 다시 물속으로 내려꽂혔다. 조금후에 이번에는 성게를 한아름 안고 올라왔다.

《조심하라게. 너무 욕심부리면 바다밑에서 솟아오르지 못한다.》 하고 어머니는 아들이 념려스러워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를 떨면서 말했다.

《어머니, 걱정말아요!》

신바람이 나서 다시 잠수했던 리덕구는 전복을 세개씩이나 건져가지고 올라왔다.

《어머니, 크지요. … 이런게 또 기여다녀요!-》

타래모양으로 줄이 가고 등에 구멍이 줄지어난 푸른빛이 도는 밤빛의 두손바닥을 합친것보다도 더 큰 전복이였다.

《얘, 조심하거라!-》

어머니는 뜻밖에 많아진 수확에 무엇인가 마음이 갑자기 더욱 불안해짐을 느낀것 같았다. 그러나 리덕구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어느새 또다시 자맥질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들어간 물속에 불안에 찬 시선을 잠시도 떼지 못하고있었다.

그럴 때 돌연 바다밑이 먹물을 휘뿌린듯 시커멓게 흐려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여 물밑 아들의 행처를 도무지 알아볼수가 없었다.

순간 늙은이다운 느슨한 주름살에 뒤덮인 어머니의 목이 가늘게 떨렸다.

(어인 일인가? …)

이제는 나올 시간이 지나갔으나 아들 덕구는 좀처럼 종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 괜히 자맥질을 시킨게 아닐가? … 내가 그만 주책없이…)

대경실색한 어머니의 가슴이 돌연 조여드는 순간 아들 덕구가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불쑥 솟아올랐다.

《덕구야-》

《어머니, 문어예요. 문어! … 덩지가 나만큼이나 큰 놈이예요!-》

《얘… 몸이 가라앉겠다!-》 하고 어머니는 불시에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머니, 문어대가리를 뒤집어놓았어요. 초미(제주도에서 낫을 그렇게 부른다.)를 좀 줘요. 다리를 몇개 잘라야겠어요.》

리덕구는 어머니에게서 초미를 받아 문어의 각을 떠서 그물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순간에 그물에 가득차고 퇴박이 가라앉았다.

《아이고, 그만해라. 이제는 헌적(빨리) 바다에서 나가자!-》 하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소리쳤다.

《어머니, 물밑에 또 있는데요. 이제 한번만 더 하겠어요!-》

신바람이 난 덕구는 싱글벙글하며 또다시 잠수하려 했다.

《아니다. 퇴박이 가라앉암시에게…》 하고 어머니는 펄쩍 놀란 목소리로 급히 막아나섰다.

리덕구는 몹시 아쉬웠지만 어쩔수 없었다. 생각 같아선 물밑의것을 몽땅 건져내야 직성이 풀리겠지만 퇴박이 가라앉으면 어머니가 헤염쳐나가야 하는것이다. 아쉬웠지만 리덕구는 단념하고말았다.

《어머니, 그럼 다른 해녀에게 알려주어야겠어요.》

때마침 뒤집 외가에 와있는 조천면에서 온 처녀가 가까운 물우에 떠있었다.

《민숙아, 여기 왕 마지 건지라. 이 물밑에 뒤집어놓은 자리에서 허라. 우린 먼저 나가마.》 하고 어머니 김삼봉은 처녀에게 소리쳤다.

《그러지요.》

민숙이라고 불리운 처녀는 살이 오른 튼튼한 흰 허벅다리를 힘차게 놀리며 물을 차더니 솜씨있게 바다물속으로 자맥질해들어갔다.

김삼봉모자는 바다가쪽으로 천천히 헤염쳐나갔다. 그물자루가 어찌나 무거운지 아무리 발로 물을 차도 퇴박이 앞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그들 어머니와 아들이 겨우 끌며 밀며 바다기슭, 바위돌우에 올라서서 보니 문어는 정말 상상외로 큰 놈이였다.

《아이고, 참말 큰 놈이구나! 용케 잡았다게…》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감탄했다.

《글쎄, 처음에는 이놈이 있는줄도 몰랐댔어요. 한데 이놈이 먼저 불쑥 대가리를 내밀더니 내 발에 철썩 감기는것이였어요. 그 순간에 나는 대뜸 이놈의 대가리부터 잡았지요. 그제야 먹물을 마구 뿌리면서 달아나려고 하더군요. 난 놓지 않고 문어아가리짬새로 손을 들이밀어 대가리를 뒤집어놓았어요. 그랬더니 앞을 못 보는 이놈이 끝내 갈팡질팡하더군요. 그바람에 나도 숨이 차서 종시 바다물을 몇모금 마셨어요!》 하고 리덕구는 기분좋게 큰소리로 웃었다. 오랜만에 만시름놓고 웃어보는 통쾌한 웃음이였다.

《아이고, 큰일날번 했구나. 널 붙잡고 바위에 붙으면 어쩔번 했나? 천만다행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어머니가 걱정할만도 하였다. 잠수에 경험있고 능란한 오랜 해녀들도 바다물속에서 문어를 만나면 피하군 하는것이 상례인것이다. 그런데 해녀도 아니고 전문잠수부도 아닌 리덕구가 놀랄만큼 큰 문어를 잡아냈으니 운수가 여간만 좋은것이 아니였다.

(그런즉 고향의 바다에서 첫날부터 행운을 만났으니 고향의 인사가 륭숭한걸! … 아마 고향에서 나의 모든 생활은 운이 트이고 잘되려나보군!) 하고 속으로 뇌이던 리덕구는 자신의 희떱고 실없는 상상과 만족에 허거프게 웃었다.

(아니, 해방된 오늘 왜놈들이 쫓겨간 고향에서… 나의 인생은 소망한대로 교사로 보람있게 조용히 평온하게 흘러가는것이다!)

문득 어머니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구야, 네가 돌아온 기쁜 날 앓는 네 형에게 먹일 전복도 건졌으니 참 기쁜 날이로구나!》

리덕구는 바위우에 오른 어머니를 다시 찬찬히 여겨보았다. 어머니는 늘씬한 키에 해녀들이 입는 우아래가 달린 속옷차림이였는데 탄력을 잃은 팔과 다리는 가늘어지고 살이 빠진 어깨는 삐죽 솟아있었는데 온몸은 뼈만 남은 눈물겨운 모습이였다.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늙으셨는가!)

리덕구는 불현듯 또다시 가슴속에서 눈물이 솟아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제주도에서 소문났던 미모, 거기다 온 동네에서 녀걸로 칭찬이 자자하던 우리 어머니가 어쩌면 이렇게까지…) 하고 리덕구는 어머니모르게 머리를 돌리고 흐르는 눈물을 씻었다.

《어머니, 어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십시오. 이젠 제가 그물자루를 메고 가겠습니다.》 하고 리덕구는 눈물을 삼키며 정중히 말했다.

《그만둬라, 이 전복 세개만 가져가라.》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왜놈들에게 빼앗길가봐 그런다.》 하고 어머니는 조용히 뇌였다.

《어머니, 이제는 그놈들이 그런 못된짓을 못합니다. 그놈들이 망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 잘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얘, 그 이야기는 집에 돌아가서 들으려. 처는 만나보았디야?》 하고 어머니는 정깊은 목소리로 물었다.

《처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큰형님을 만나보고 곧바로 여기로 나왔습니다.》

《네 처는 왜놈들이 네 행방을 알려고 찾아왔다간 뒤로 친정에 가시에. 그애도 근심이 태산같을것이다. 빨리 가서 만나보아라. 한데…》 하고 어머니는 웬 일인지 긴장한 기색으로 주위를 살펴보며 나직이 말을 덧붙였다.

《왜놈들이 망했다는건 무슨 말이냐?》

《어머니, 마음놓으십시오. 왜놈들이 패망했습니다.》

리덕구는 일부러 큰소리로 웨치듯이 열기있게 말했다.

《아이고, 속씨원한 날을 봤구나! 얘, 이젠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처를 만나라.》

어머니는 녀인들이 들고 다니는 물건을 사나이가 가지고 다니는게 아니라면서 둥그런 퇴박이 달린 무거운 그물자루를 둘러메고 지친 걸음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자신의 뼈를 깎고 살을 저며내서라도 자식들만은 잘 내세우려는 어머니의 깊은 자애와 마를줄 모르는 헌신에 리덕구는 자기 눈에 또다시 눈물이 솟아오름을 감촉했다.

(어머니! … 지금까지 어머니가 저희들에게 바친 헌신과 사랑을 일생토록 잊지 않을것입니다. 어머니! … 저는 이제 다시는 고향을 뜨는 일없이… 지금까지 못한것을 합쳐 어머니를 위해드리겠습니다!)

리덕구는 솟아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그냥 서있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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