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1편 소망

5

 

바다가마을의 상공에는 검푸른 어스름이 깃들어있었다. 초저녁 별과 저무는 하늘의 어스름한 빛 그리고 까딱도 하지 않는 마을의 나무들이 괴괴한 정적속에 하나로 엉클어져 마치 그 모든것이 고요속에서 태여난것 같았다.

리덕구의 안해 량후상은 황혼의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본가집의 뜨락에서 돌담장밖 길가로 나왔다. 세모시적삼에 깜장물을 들인 무명치마차림의 그 녀자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는 희한하게도 아직 처녀시절의 몸매를 그대로 간직하고있었다. 탐탐하면서도 아련해보이는 그 녀자의 온몸에서는 건강과 탄력이 넘쳐흐르고있었지만 길다란 속눈섭에 덮인 두눈에는 수심과 애수가 비껴있었다.

그는 오래동안 웃음도 기쁨도 모르고 살았다. 벌써 3년째 전쟁터에 끌려나가 행방을 모르는 남편에 대한 근심과 불안으로 어느 하루도 마음편한 날이 없었던것이다.

량후상은 지금 큰애를 업고 오후에 나간 남동생이 웬 일인지 집으로 들어오지 않아 밖으로 찾아나온것이였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컹컹 개짖는 소리가 들리는 마을의 집들은 서서히 저녁어스름에 잠겨들고있었으며 길가에는 낟알익는 구수한 냄새와 물고기굽는 냄새가 떠돌고있었다.

(어디로 가서 아직 안 들어오누?)

이쪽저쪽에서 하루일을 끝낸 동네사람들이 밭에서 돌아오고있었다. 싱싱한 꼴을 한가득 실은 마차도 지나가고 콩이나 들깨의 야들야들한 애잎을 뜯어 망태기에 넣어가지고 오는 농군도 보였다.(이곳 제주도사람들은 야들야들한 콩잎이나 깨잎으로 쌈싸먹기를 좋아한다.) 뒤따라 들판에서 방목하던 말떼와 소떼들이 발굽으로 지축을 울리며 지나갔다.

말을 탄 목동들이 회초리질을 하지 않아도 짐승들은 제가 가야 할 곳을 어떻게 아는지 뚜걱뚜걱 앞을 다투면서 순순히 걸어간다. 동쪽의 동구밖에는 5정가량 되는 넓은 들을 돌로 쌓았는데 거기로 들어가는 한가닥 외통길이 있다. 짐승들이 드나드는 유일한 그 길만 막아놓으면 사방이 바다물로 둘러싸여있어 말들과 소는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이 섬을 자연짐승우리로 많이 리용하군 하였다. 목동들은 바로 이 섬으로 짐승들을 몰아가고있었다. 도적이 없고 맹수도 없는 제주도에서는 짐승을 잃어버릴 걱정도 없었다.

량후상은 떼를 지어 몰려가는 말떼속에서 시집의 소유인 이마가 흰 유표한 말을 인차 알아보았다. 허리가 길고 다리가 늘씬한 그놈도 량후상을 알아보았는지 지나가면서 앞발질을 하더니 대가리를 흔들면서 투르르- 하고 코투레질을 하였다. 동네사람들은 그 말이 특별히 잘 달린다고 하여 분마라고 부르고있었지만 량후상에게는 그보다도 류별나게 영특한 말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이마가 흰 시집의 저 유표한 말… 그 말은 남편이 총각시절에, 그 다음 결혼이후에도 자주 타고 다니던 말이였다. 어느 하루도 남편에 대한 생각을 잊은적 없는 그 녀자가 눈물어린 눈으로 그 말을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순간 어인 일인지 불현듯 자기의 처녀시절과 기쁜 일이라고는 사뭇 드물었던 지나간 시절이 회상되였다.

… 중학교를 졸업할무렵에 량후상의 아버지는 고된 로동에 지쳐 시름시름 앓다가 종시 세상을 떠나갔다. 그후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눈물겨운 고생속에서 전문학교를 다니였고 졸업후에는 어머니를 도와 농사도 짓고 가정일을 돌보면서 철없는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근근히 살아왔다. 그 시절에 량후상은 한동네에 사는 총각 리덕구를 존경과 남다른 눈으로 바라보군 했었다. 리덕구의 남자로서의 대범성과 의협심 그리고 그의 높은 학식을 존경했다. 리덕구 역시 한마을의 처녀 량후상을 누이동생처럼 다정히 대해주군 하였지만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거나 얼핏이라도 그런 눈치를 보인적은 없었다. 그무렵에 이미 전문학교를 졸업한 리덕구가 대학으로 간다는 소문이 마을에 나돌았다.

아마도 형들의 피땀어린 도움과 남달리 높은 본인의 향학열의 결실일것이라고 마을사람들은 말하고있었다.

그런 어느날 리덕구의 어머니 김삼봉이 량후상의 집을 찾아왔다. 현숙하고 성격이 남자들처럼 서글서글하여 동네에서는 물론이고 제주도일대에서도 녀걸로 소문난 김삼봉은 량후상의 집마당에 들어서며 소리쳤다.

《이 집에 사람 이시나?-》

집안에 있던 후상의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아이고, 형님. 어서 들어옵서게. 어떻게 우리 집엘 다 옵디까?》

《무사 난 찾아 못 올 집이라?》

《아이고, 그런 말이랑 맙소. 하도 오래간만에 찾아오지 않았수까. 게 그래서 하는 말이우다.》 하고 량후상의 어머니는 반기며 떠들썩했다.

전에없이 나들이옷차림을 한 체격좋고 환한 미모의 김삼봉은 방문턱에 흰고무신을 벗어놓고 버선발로 문지방을 넘어섰다.

그는 방안으로 들어서자 곧 바느질을 하고있는 량후상에게 시선을 모았다.

《마침 저 아이도 있구나!》 하고 뇌인 김삼봉은 방바닥에 앉자마자 주저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에둘러 길게 말할것 없주게. 내 저 아이가 욕심나서 찾아왔주게. 며느리로 삼았으면 해서…》

그 순간 량후상은 내심 깜짝 놀랬다. 얼굴이 불시에 확확 달아오르고 가슴속에서는 하나의 심장이 아니라 열, 스무개의 심장이 일시에 뛰는것만 같았다.

마을에서 마음씨 곱고 희말쑥한 얼굴에 자존심 높고 도고한 성격의 소유자로 총각들이 함부로 넘겨다보지 못하는 량후상이였지만 너무도 불의적이고 뜻밖이여서 당황했던것이다.

량후상의 어머니 고씨도 갑자기 당하는 일이여서 뭐라고 선뜻 확정적인 답변을 할수 없었다.

《겨애마심. 저 아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고 당황한 고씨는 한참만에 어정쩡한 말을 하였다.

그러자 우물쭈물하는 성격이 아닌 김삼봉은 즉시에 주저함이 없이 시원시원한 어조로 물었다.

《후상아, 늬 어멍은 반대없는것 같은데 늰 어떻니? …》

《…》

후상은 좋다싫다 아무런 응대도 못하고 머리를 숙인채 그냥 침묵하고있었다.

《그럼 반대는 아이라는게로구나게. 오늘 이 자리에서 확답을 받아가자는건 아니고… 덕구를 한번 이 집에 보내겠으니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라. 그런 다음에 대답도 들으켜!-》

그리고나서 김삼봉은 할 말을 할만큼 하고 앉을만큼 앉아있었으니 이제는 돌아가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량후상의 어머니 고씨는 더 앉았다가 가라면서 극력 만류하였으나 김삼봉은 혼사가 락착된 다음에 모여앉자면서 인차 돌아갔다.

그날 갑작스러운 김삼봉의 류다른 방문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처럼 고씨와 량후상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김삼봉이 돌아간 후 한동안 고씨모녀는 침묵한채 서로 말이 없었다. 고씨는 결심을 하지 못한채 안절부절 못하며 딸의 눈치만 살피였고 딸은 딸대로 번거로운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이고, 답답하기란… 네속을 어디 말 좀 하라게.) 하고 고씨는 마음속으로 말없는 딸을 꾸짖었다.

그러나 후상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이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세상에… 그만 한 남자도 흔치 않아. 그만 한 남자도…)

드디여 안절부절 못하던 고씨는 어머니의 륙감으로 말없는 딸에게서 무엇인가를 예민하게 감촉한듯 혼자말처럼 조용히 뇌였다.

《그 집 막내아들은 얼굴이 좀 얽은게 흠이지만… 그래두 그만 한 사람을 찾기란 힘들지… 그래, 사람은 얼굴을 보고 정붙는게 아니지! …》

량후상은 머리를 숙이고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어머니, 옳아요. … 어머니! 난 지금까지 그의 가식없는 높은 인격과 사나이다운 의협심, 대범성을 남모르게 존경해왔어요. 그리고 어머니, 웬일일가요. 나에게는 그의 얼굴의 흠집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져요. 어머니, 혹시 이것이 련모의 정때문이 아닐가요?)

그런 일이 있은지 3일후 저녁녘에 리덕구를 데리고 그의 둘째형수가 량후상의 집에 나타났다. 리덕구의 집측에서는 후상과 덕구가 서로 모르는 사이로 생각하고 그랬는지 아니면 례법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중매군을 따라보냈다.

그날 기름등잔불을 켜놓은 방안에서 중매군의 장황한 말이 끝난 다음 고씨가 웃방에 올라가있는 딸을 불러내였다. 아래방으로 조용히 내려온 량후상은 기름등잔불을 마주한채 머리를 숙이고 앉았고 리덕구는 출입문을 등지고 덤덤히 앉아있었다. 리덕구의 형수와 중매군은 량후상의 화장도 하지 않고 일상때 그대로의 희말쑥한 용모와 조용하면서도 침착한 거동을 내려보고 올려보고 하면서 만족해하는 눈치를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량후상은 얼핏 머리를 들고 본인인 리덕구의 얼굴표정을 살펴보았다.

리덕구의 얼굴에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있었으나 무엇인가 이상하게도 평상시의 표정과는 전혀 다른 몹시 어색해하는 표정이였다.

더우기 이상한것은 좁쌀알같은 마마자욱이 얽죽얽죽하던 그의 얼굴이 웬 일인지 미끈하게 보이는것이였다. 검은테안경을 낀 갸름한 그의 얼굴에는 그 마마자욱이 전혀 알리지도 않았다.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자 량후상은 불쑥 불쾌감과 동시에 경멸감을 느꼈다.

(어쩌면…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또 설사 모르는 사이라고 해도 어떻게 꾸민 얼굴로 나타날수 있는가? … 위선치고도 너무나도 비렬한것이 아닌가!-) 하는 타매의 감정이 그의 가슴속에 곤두섰다. 그때 방안의 웃어른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무슨 말인지를 하더니 약속이나 한듯 일시에 자리를 떴다. 당사자들끼리 서로 의사소통을 해보라는것이다.

방안에 덕구와 단 둘이 남게 되자 후상은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듯 등잔불밑에서 다시 그의 얼굴을 찬찬히 여겨보았다. 보면 볼수록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얼굴의 마마자욱을 무엇인가로 메우고 나타난 리덕구의 얼굴에서 자기에게 잘 보이려고 꾸민 허식과 위선을 강하게 느꼈던것이다.

(서로 잘 아는데 이렇게까지 분장을 하고 나타나다니… 너무, 너무하지 않는가! 얼굴의 흠집을 알면서도 세상의 그 어떤 남자보다 더 내 마음을 끌어당기던 사람인데 왜 이 모양을 하고 나타났담… 내가 그렇게 존경하고 마음속으로 돋보이던 사람이 정녕 이런 유치한 가식과 위선의 사나이였는가?)

끊임없이 련속 솟아오르는 불쾌감과 실망에 잠긴 량후상은 줄곧 말 한마디 없이 옴짝않고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그러한 후상에게 이윽고 덕구는 스스럼없이 말을 던졌다.

《후상이,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주저하지 말고 내가 싫은지 아니면 좋은지…》

리덕구의 말이 끝나자 돌연 머리를 숙이고있던 량후상이 번쩍 머리를 들었다. 그 다음 경멸의 눈빛을 감추지 않고 쌀쌀한 어조로 내뱉았다.

《난 싫어요. … 보기도 싫어요.》

그 순간 리덕구는 얼핏 놀라는듯 하더니 인차 자기를 수습하고 흔연한 어조로 평소처럼 온화하면서도 갈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의사를 명백히 말해주어 고맙소. 한데 후상이, 성을 낼것까지는 없을것 같은데… 우리는 앞으로도 한동네에서 오빠와 동생처럼 지내야 할 사람들이 아니요?》

그러나 량후상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무엇인가 까닭없이 모욕당한 사람처럼 입술을 떨며 내쏘았다.

《난 다름아닌 그 허식과 위선이 질색이예요. … 어쩌면 그렇게 얼굴을 분장하고 왔어요? …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난 그게 정말이지 실망하고 아연했어요. 난 그래서… 싫어요! 싫단 말이예요! … 이젠 하고싶은 말을 다했어요.》

마침내 마음속의 경멸감을 속시원히 터뜨리며 하고싶은 말을 끝내는 순간 량후상은 흠칫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의 로골적인 반발과 거절에 당황해하거나 아니면 성을 낼줄로 생각했던 리덕구가 갑자기 통쾌하게 껄껄 웃었던것이다.

《하하하… 좋구만, 아주 훌륭해, 후상이! … 정말 제주도처녀답소. 그래야지. 위선과 허식은 응당 타매해야 하오. 후상이, 앞으로의 생활에서도 그렇게 허식과 위선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마오! 그렇소. 위선과 가식은 시시한 사기군의 행위요!-》

기분좋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 리덕구는 자리에서 탄력있게 일어섰다.

《난 가겠소. 후상이! … 비록 혼사에서는 거절당했지만 우리 제주도의 처녀들이 모두 대바르고 훌륭한 처녀들임을 아니 난 더없이 기쁘오. 대만족이요! 난 기분이 아주 좋아서 돌아가오. 자, 그럼 안녕히!》

그날 량후상에게서 거절당한 리덕구는 자기에 대해서 아무런 변명도 없이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거절한 량후상은 오히려 그날 밤 끊임없이 갈마드는 이런저런 번거로운 생각으로 온밤 잠들지 못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량후상에게는 평소에 자기가 믿던 그대로 리덕구라는 사나이는 대범하고 높은 인격의 소유자임이 틀림없는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 무엇때문에? 왜? 오늘은 그답지 않게 얼굴의 흠집을 지워 감추고 나타났었을가? 그런 좀상스럽고 비렬한 사나이가 아닌것이 분명한데…)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리덕구본인은 자기 얼굴의 분장을 완강히 한사코 반대하였지만 집안의 웃어른들과 중매군이 첫선을 볼 때는 그렇게 하는것이 례법이라고 강박하는 바람에 하는수없이 그렇게 하는데 응했던것이다.

그런 사연을 알게 된 다음부터 량후상의 리덕구에 대한 존경과 련모의 정은 더욱 강렬해졌었고 마침내 얼마후 그들은 결혼했다. …

량후상은 왜 그런지 자기도 모르게 그때를 자주 회상하군 하였다.

지금도 그는 본가집 돌담장밖의 길가에 서서 그 시절의 일들을 한장한장 책장을 번지듯이 회상하고있었다. 남편인 리덕구가 늘쌍 타고 다니군 하던 태성말은 보이지 않고 말떼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이가 살아있다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을가? … 혹시 전장터에서?)

그러한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섬찍해지는 량후상이였다.

(살아있다면 어째서 3년째나 종무소식일가? …)

얼마전 마을에 나타난 왜놈헌병들이 시집에 느닷없이 들이닥쳐 리덕구의 행방을 따져물으며 소동을 피웠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리덕구가 전장에서 탈출했을것이라고 온 집안사람들은 짐작하고있었을뿐 정확한 생사를 알아볼 길이 없어 날마다 가슴을 조이며 기다려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량후상은 괴로움속에 시집의 승낙을 받고 잠시 애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왔던것이다.

《참, 그애가 정신나갔지. 어델 가 안 왔시? 별랗다게.》 하고 저녁밥을 짓던 고씨가 부엌에서 돌담장밖으로 나와 땅이 꺼지게 한숨쉬며 걱정하는 소리에 량후상은 언뜻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정말 애가… 걱정이군요.》

《아무래도 찾아봐야 허켜…》

고씨는 무슨 일이 없으면 이렇게까지 늦을수 없다면서 종시 동네쪽으로 찾으러 나갔다. 후상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 자리에 서있는데 조금후에 어머니가 곧 돌아왔다.

《후창이가 애를 업고 바다가쪽으로 가더란다. … 넌 들어가 저녁밥을 지어라. 내가 찾아보마.》 하고 고씨는 바다가쪽으로 불이 나게 발을 재게 놀리며 걸어갔다.

후상은 부엌으로 들어가서 어머니가 짓던 밥솥을 열어보았다. 보리밥은 거의다 되여서 장작불을 국끓이는 통소구로 옮겨놓았다. 그럴 때 갑자기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서며 목갈린 소리로 웨치듯이 소리쳤다.

《얘, 후상아!-》

《?!》

후상은 어머니의 갑작스런 격동에 찬 소리에 놀라 말을 못하고 굳어진듯 서서 보기만 했다.

(혹시 우리 애가? 웬 일이세요, 어머니?)

고씨는 너무도 흥분하여 몸을 떨면서 말없이 무작정 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머니, 무슨 일이예요?》

《밖에 누가 왔나 보라게, 어서!-》

후상은 영문을 몰라 주춤거리는데 동생 후창이가 나는듯이 부엌으로 뛰여들어와 소리쳤다.

《누이, 빨리!》

《얘, 너 아이는 어쩌구?-》

《글쎄 걱정말아요. 아이는 사둔댁 할망한테 가있어!》

《거긴 어떻게?》

《바다가에 나갔다가… 에이, 그 말은 후에 하고 빨리 나갑서게!》

후상은 웬 일인가 하여 뜨락으로 나왔다. 8월말의 짤막한 땅거미가 잰걸음으로 왔다가 사라진 뜨락은 어둑컴컴하였다. 문득 후상의 눈에 어떤 남자가 어둠속에 우뚝 말없이 서있는것이 보였다.

(설마 애아버지가? …)

후상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졌다.

《누이, 매부야! 매부!-》

불시에 후상의 눈앞은 뽀얗게 흐려졌다.

(혹시… 이게 꿈이 아닌가? … 오매불망 그리던 나머지 환영처럼…)

《여보! 나요. 그간 고생많았겠소.》 하고 나직이 뇌이며 앞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분명 애아버지였다. 귀에 익은 정겨운 그 목소리, 그 억양, 어둠속에서도 정확히 분간할수 있는 그 발자국소리…

문득 후상은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고말았다.

(아… 그이가 살아서 돌아오셨구나!- 그렇게도 속이 타 재가 앉도록 애타게 기다리던 애아버지가!)

후상은 흐느껴울었다.

어둠속 뜨락에 서있는 리덕구의 가슴에 불현듯 말 못할 격정이 밀물처럼 차오르고있었다. 결혼후 6년동안 집을 떠나있은 리덕구였다. 대학 3년, 《학도병》 3년 생리별의 괴로움과 고통속에 살아온 안해, 그에게 어느 하루인들 기쁨이나 행복한 날이 있었겠는가. 측은함과 동정, 형언할수 없는 련민의 정이 지금 리덕구의 눈굽을 뜨겁게 하고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서있던 리덕구는 이윽고 불끈 힘을 주어 안해를 일으켜세웠다.

《여보, 그동안 모진 고생을 겪었을테지. 실컷 우오. 그럼 속이 후련해질거요.》 하고 리덕구도 불시에 목이 메여오는것을 느끼며 목갈린 소리로 말하였다.

눈물에 젖은 량후상의 봉싯한 입귀가 바르르 떨고있었다. 그는 흐느껴울며 진정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왜 이제야 왔어요! … 왜 이제야 오는가 말이예요!-》

뜨락의 어둠속에서 고씨도 울고 남동생 후창이도 울었다.

잠시후 자신을 다잡은 후상은 남편을 정겹게 쳐다보았다.

《용서하세요. 제가 그만 주책없이 울음을 터쳐서… 그 험한 사지판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절이라도 하듯 머리를 숙였다.

《고생이야 했지… 하지만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소!》

리덕구는 안해를 정겹게 바라보며 소리내여 웃었다.

《누이, 오늘 내가 매부를 데려왔으니 큰일했지. … 바다가에 나갔다가 매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거던. 그래서 진우를 업은채로 찾아가 만났지 뭐. 매부, 어서 방으로 들어가요.》

리덕구는 어린 처남에게 이끌리여 기름등잔불이 그물그물 타오르는 방으로 들어섰다. 몇해전에 선을 보던 감회깊은 바로 그 방이였다.

뒤따라 안해와 장모가 들어왔다.

《아이고, 오죽 고생했을라고… 얼굴이 영 딴 사람같이 됐구만.》 하고 장모는 리덕구의 수척한 얼굴을 찬찬히 여겨보며 혀를 찼다.

《예. 죽지 않은게 다행이지요.》

《정말 천명이네. 그런 죽을고비를 겪은 사람은 오래 산다고들 하네.》

《허, 그런가요.》 하고 리덕구는 나직이 웃었다.

《아이고, 내 정신 보라게. 얘야, 주안상 차려오라게. 아니, 내가 나가마.》

진정을 못하고 울고 웃으며 어쩔바를 몰라하는 장모를 리덕구는 조용히 만류하였다.

《그만두십시오. 전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아이고, 그 험한 전쟁판생활을 했는데두 술을 안 마셔?》

《입에 맞지 않아서…》

《사내대장부가 한잔 할줄도 알아야 하네. … 그리고 사지판에서 살아돌아온 자네를 반가워하는 이 가시에미의 성의를 봐서라도 오늘은 좀 마셔보라게!-》

장모는 신바람이 나서 밖으로 나갔다. 사위 덕구를 끔찍이 위해주고 사랑하는 고씨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위의 겉발림을 모르고 언제나 대범하고 의협심이 강한 성미를 특별히 마음에 들어했다.

후상이도 고씨를 따라나가려고 일어났다. 그러자 리덕구가 조용히 처에게 말했다.

《우린 인차 집으로 가야 하오. 오늘 저녁 우리 가족전부가 모이라는 호구큰형님의 분부가 있었소. 어머니에게 후날 자주 오겠으니 오늘은 그만두도록 이르오.》

《알겠어요. 하지만 어머님을 섭섭하게 해드릴수는 없지 않아요. 잠간만이라도…》 하고 말한 후상은 곧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방안의 리덕구는 몰라볼 지경으로 성장한 처남에게 물었다.

《후창아, 넌 지금 학교에 다니지?》

《네, 소학교 5학년이예요.》

《공부는 잘하겠지? 그래 학급에서 몇번째냐?》

처남은 대답을 못하고 눈을 껌벅거리며 우물쭈물하였다.

《그러고보니 너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그저 중간쯤은 돼요.》

《허, 틀렸다. 공부를 잘해야 이담 훌륭한 사람이 된다.》

《체, … 거짓말!》 하고 처남은 불쑥 코방귀를 내불며 말을 덧붙였다.

《매부, 공부를 잘하면 뭘 해요. 왜놈들한테 늘쌍 놀림을 받는거… 차라리 힘이 세야지.》

철없는 처남애의 말에도 진실이 있었다. 왜놈시절에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민족적멸시와 차별속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드센 주먹으로 얕보는 왜놈아이들을 조겨대는것이 오직 유일한 분풀이였다.

리덕구는 큰소리로 웃었다.

(이제부터는 그렇지 않을게다. 그래서 나도 학교의 선생이 되련다!) 하고 리덕구는 마음속으로 뇌이며 철없는 처남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럴 때 장모 고씨가 주안상을 차려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뭐, 안주감이 변변한게 없어서…》 하고 장모는 걱정했다.

그러나 차려온 주안상에는 지진 닭알, 구운 소고기가 올라있었고 고추장과 콩나물도 곁들여 놓여있었다.

《추석을 앞두고 좀 구해둔게 있어서 이만큼이라도 차린게라네. 자, 잔을 받으켜!-》

장모의 목소리는 어쩐지 목이 메인듯 하였다.

《그럼, 제 한잔만 받겠습니다. 장모님! …》 하고 리덕구는 잔을 받았다.

추석을 앞두고 집에서 고았는지 독한 소주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맛을 잘 모르는 리덕구는 단숨에 물마시듯 들이켰다. 순간 목이 뜨끔하였다. 그는 안해가 방으로 들어서자 장모에게 말했다.

《후날 또 오겠습니다. 형님들과 형수님들에게도 돌아온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그러게. 한데 한잔만 더 들구 가게.》

장모의 뜨거운 인정과 권고에 못이겨 그럭저럭 석잔을 받아마시고난 리덕구의 몸은 홧홧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럼, 어머님. 안녕히 계십시오. …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하고 리덕구는 머리를 깊숙이 숙여 절을 했다.

《오, 어서 가보심. 집에서들 오죽이나 기다리겠나?》

고씨는 흔연히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딸과 사위를 훌쩍 떠나보내기가 몹시 섭섭하고 서운해하는 기색이 력력하였다.

《후상아-》

고씨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떠나려는 딸을 불러세웠다.

《친정에 왔다가는 몸이 빈손으로 가서야 되니. 뭘 좀 가지고 가서 시어멍신디랑 동서들신디 인살 해야 한다.》

고씨는 불이 나게 정주간으로 들어가더니 한참만에 한되들이병에 술을 채우고 음식 몇가지를 넣은 고운 참대바구니를 들고 나왔다.

《어서 들고 가서 기쁜 날에 진우 애비를 대신해서 인사드려라.》

리덕구와 그의 처 량후상은 참대바구니를 들고 길에 나섰다. 오랜만에 부부가 함께 걷는 가슴후더운 고향길이였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마을의 상두거리로 들어섰다.

《참, 여보. 애가 당신을 알아보던가요?》 하고 후상은 정겹게 속삭이듯 조용히 물었다.

《허, 녀석이 얼마나 못났던지 내가 오라고 했더니 삐죽삐죽 울더군.》

리덕구는 나직이 소리내여 웃었다.

《낯이 설어서 그랬겠지요. … 몇년만에 보는 당신을 그애가 어떻게 제아버지인줄 알겠어요!》 하고 량후상은 무엇엔가 가슴을 찔리우기라도 한듯 어둠속에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겠지. 한데 할머니한테는 척척 군말없이 업히더군.》

《그러니 당신은 아직 그애를 한번도 안아보지도 못했겠군요.》

량후상의 목소리는 어둠속에서 서글프게 울렸다.

《허허… 이제 늘 그녀석을 안아주게 되겠지.》 하고 리덕구는 나직하니 뇌이고는 침묵했다. 그는 지금 병이 심한듯 한 호구큰형이 신중한 표정으로 온 집안이 다 모이도록 하라던것을 줄곧 생각하고있었다.

(온 집안이 모여 무슨 중히 의논할 일이 있는가분데…)

리덕구는 병색이 짙고 자주 깊은 생각에 잠기군 하던 호구큰형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없이 어둠속을 걸어갔다.

바다쪽에서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있었다. 리덕구는 안해와 함께 오랜만에 고향길을 걷는 이 저녁 류다른 뭐라고 말로는 표현할수 없는 감회에 잠겨 페부깊숙이 고향의 바다바람을 호흡하고있었다. 해해년년 머나먼 낯선 이국땅에서 생시에도, 꿈속에서도 오매불망 그립고그립던 고향의 체취였다.

(… 어느 시대, 어느 년대를 막론하고 대체로 격변하고 소용돌이쳤다고 력사는 전해온다. … 하지만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1945년, 이해처럼 이렇게 유난하고 그렇게 특이한 해는 아마 드물것이다. 해방맞은 내 고향 제주도, 여기서도 이제 새 생활이 소용돌이치며 흘러가게 될것이다. 나의 생은 이제부터 여기, 외국인이 없는 내 조국 고향땅의 학생아이들속에서 조용히 흘러가게 될것이다. 내가 그렇게도 바라던 소망대로!)

리덕구는 오래전부터 소망해오던 나서자란 고향에서, 선조들의 애국의 넋이 어린 여기 제주도에서 평온하면서도 보람있는 교사로서의 생활을 흐뭇하게 그려보며 말없이 고향의 훈훈한 밤길을 걸어갔다. 8월말의 검푸른 여름밤하늘에서는 유난히 밝은 별빛이 반짝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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