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1편 소망

9

 

북제주군 조천중학교 상공에는 구름 한점 없는 맑은 아침의 푸른 창공이 펼쳐져있었다. 상쾌한 아침의 크지 않은 학교운동장에서 까까머리사내아이들이 정신없이 뛰놀고있는데 문득 수업종소리가 울렸다. 학생아이들은 갑자기 무엇에 놀랜 한떼의 새무리처럼 일시에 우르르 학교현관으로 들어가 제각기 교실들로 흩어져갔다.

교실로 들어온 까까머리사내아이들은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서도 왁자지껄 떠들어대고있었다.

그때 하얀 바지저고리에 까만 두루마기를 입은 조선옷차림의 선생이 교실로 들어왔다. 그러자 바람부는 호수가처럼 술렁거리던 교실은 잠짓해지기 시작하였다.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고 검은테안경을 낀 선생은 유난히 명석해보이는 눈을 번쩍이며 마치 용수철우를 걷는듯 탄력있는 걸음으로 교단쪽으로 걸어갔다. 맑고 깨끗한 25쌍의 눈동자들이 젊고 탄탄한 체격의 범상치 않아보이는 선생을 바라보고있었다.

교단에 오른 선생은 무엇인가 남모를 뜻깊은 감회에 잠겨 몇순간 말이 없었다.

《학생들, 내 이름은 리덕구라고 하오. 오늘부터 우리는 함께… 우리 조국-조선력사와… 조선지리를 배우게…》

맑고 청좋은 목소리로 시작한 선생의 말소리는 차츰 격정으로 떨리더니 마지막에는 갑자기 석쉼해지면서 떠듬거렸다. 그는 온몸에 솟구치는 무엇인가 이름할수 없는 격정에 목이 메인듯 종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

교실의 여기저기에서 학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 첫 수업시간에 선생이 자기 감정 하나 걷잡지 못한다고 너무 탓하지 말아주시오. 우리는 다같이 오랜 세월 우리 말과 우리 글,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 지어 조상대대로 내려온 성과 이름마저 빼앗기고 온갖 멸시와 천대속에 노예처럼 망국노로 살아온 조선사람들입니다. 해방의 기쁨속에 오늘 이렇게 학생들과 함께 우리 나라의 력사와 자연과 지리를 내 나라 말과 내 나라 글로 배우게 된 감개무량함때문이니 리해해주시오. 겸해서 말하면…》 하고 리덕구는 자기를 다잡은듯 진정을 담아 스스럼없이 말하였다.

교실안은 또다시 물을 뿌린듯 고요했다.

《겸해서 말하면, 오늘은 나의 인생의 소망이 실현된 특별한 날이요. 나의 소망은 내 고향 제주도의 학생들을 정의롭고 참된 조국의 인재로 키우는 교사-교육자가 되는것이였소. 그런데 오늘 나는 끝내 고향 제주도 학생들앞에 서게 되였소!》

대범하고 스스럼없는 그의 말에는 학생들의 생각을 집중케 하고 마음을 틀어잡고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있었다. 하여 학생들은 숨소리마저 조심하면서 교단의 선생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리덕구는 잠시 침묵한채 학생들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생판 모르던 교실안의 학생들모두에 대해서 가슴속으로부터 따뜻한 정이 뿌듯이 부풀어오름을 느끼고있었다.

(… 어째서 저들이 바로 지금 나에게 이처럼 유난스레 다정스럽고 어째서 저들이 이처럼 사랑스러울가?) 하고 리덕구는 부성애와도 같은 흐뭇한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그때 교실문이 조심히 열리더니 되박이마에 날파람있게 생긴 남자학생이 서슴거리며 교실로 들어섰다.

《선생님!》 하고 지각한 학생은 어줍게 웃으며 머뭇머뭇하였다.

리덕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학생은 이름을 어떻게 부릅니까? 난 이미 학생들앞에서 소개했는데… 내 이름은 리덕구요.》

《선생님, 제 이름은 고병호라고 합니다.》 하고 지각한 학생은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머리를 숙였다.

《고병호학생, 오늘은 처음이니 자리에 들어가 앉으시오. 다시 또 지각할 때는 수업에 참가할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겠소.》

리덕구는 엄하면서도 지극한 애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리덕구의 말이 끝나자 학생은 슬며시 한숨쉬고 소리없이 자리로 가서 앉았다.

《학생들, 이제부터 우리는 학생과 선생으로뿐아니라 무변광대한 지식의 바다에서 서로 벗으로, 친구로 돕고 이끌며 깊은 과학지식과 높은 도덕품성, 튼튼한 체력을 갖춘 새 조국의 인재로 준비해나가도록 하기 바라면서… 오늘은 우리가 처음 만났으니 서로 낯도 익히고 알고싶거나 묻고싶은것을 기탄없이 묻고 대답하기로 하겠소. 정식 학과목수업은 다음시간부터 하려고 하오. 그런데 학생들, 언제든지 누가 물으면 아는것은 안다고 대답하고 모르는것은 모른다고 하는것이 아는것이라는것을 잊지 마시오. 먼저 학생들이 우리 나라 력사와 지리, 우리 고향 제주도에 대해서나 기타 여러가지 문제에서 알고싶은것이 있으면 기탄없이 자유롭게 나한테 물으시오!》 하고 리덕구는 간격이 느껴지지 않는 소탈한 목소리로 무랍없이 말했다.

그러자 얼마간 긴장하여 정숙히 앉아있던 학생들은 불시에 활기를 띠고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선생에게 묻는 학생은 없었다.

《그럼, 내가 먼저 학생들에게 묻겠소. 여기 우리 고향 제주도의 다른 이름 즉 옛 이름을 아는 학생이 있으면 대답해보시오!》

리덕구는 점점 활기를 띠고 흥성거리는 학생들을 애정깊게 바라보며 례의 청좋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때 불쑥 흥성거리는 학생들속에서 지각한 고병호학생이 일어서더니 노래라도 부르는것 같은 고음으로 대꾸하였다.

《선생님, 우리 제주도의 옛 이름은 탐라라고 불렀습니다.》

《옳소. 정확하오. 그런데 탐라국전설은 알고있습니까?》

리덕구는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손바닥으로 교탁을 짚고 상냥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삼성혈이…》

고병호학생은 머리를 기우뚱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좋습니다. 방금전에도 말했지만 모르는것은 솔직히 모른다고 하는것이 아는 사람이요. 학생들속에서 탐라국전설을 알고있는 학생이 없습니까?》 하고 리덕구는 교실안의 학생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잠짓하던 학생들속에서 정기도는 새까만 눈을 유난히 반짝거리며 한 학생이 일어났다.

《선생님, 제가 알고있습니다.》

《아, 조성철학생이구만. 말해보시오.》

《옛 기록에 의하면 태초에는 사람이 없었으나 그후 어느때인가 세명의 신인이 땅속에서 지상으로 솟아나왔다고 합니다. (탐라주산의 북쪽산발에는 굴구멍이 있어 이를 모홍이라고 하는데 이곳이 곧 신인들이 나온 곳이라는것이다.) 그 맏이를 량을나, 둘째를 고을나, 셋째를 부을나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사람은 산간 유벽한 곳으로 다니면서 사냥하며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조성철은 자기의 총명성을 보여주듯 간명하게 구술하였다.

… 하루는 봉인된 나무궤짝 하나가 동해가로 떠돌아닿는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세사람이 달려가 그 궤를 열어보았더니 그안에 돌함이 들어있었고 자지옷에 붉은 띠를 띤 사자 한사람이 따라나왔다. 사자는 돌함을 열었다. 그랬더니 돌함속에는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망아지, 송아지 및 오곡종자 등이 나왔다. 사자는 세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자기들의 래력을 소개하였다.

《저는 하늘나라에서 온 사자입니다. 이 처녀들은 저의 나라 왕의 딸들인데 왕의 말씀이 <서해가운데 산이 있어 거기에 신의 아들 세사람이 하강하여 장차 나라를 창건하려 하고있으나 배필이 없다.>고 하시면서 저더러 분부하기를 <세 딸을 데리고 가라.>고 하시기에 제가 명령을 받들고 여기에 왔습니다. 바라옵건대 그들로 배필을 삼으시고 대업을 성취하시옵소서.》 하고 세 녀자를 바치고는 문득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세 신인은 나이순서대로 각각 그 세 처녀를 취하여 안해로 삼았다.

그 다음 각기 세사람은 샘물이 달고 땅이 비옥한 곳을 골라 찾아가서 살 곳을 정하게 되였는데 량을나가 사는 곳을 제일도라고 하고 고을나가 사는 곳을 제이도라고 하고 부을나가 사는 곳을 제삼도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처음으로 오곡을 파종하고 또 망아지와 송아지를 길렀는데 날이감에 따라 그들은 점차 부유하고 번영하게 되였다.

그후 15대손인 고후, 고청 등 형제 세사람이 배를 무어 타고 바다를 건너서 신라의 탐진에 와닿았는데 이때는 바로 신라의 전성기였다. 그들이 오기 직전에 신라에서는 난데없는 별이 남쪽하늘에 나타나 보였는데 이를 본 천문관은 《이국사람이 와서 왕을 뵈울 징조이옵니다.》 하고 왕앞에 아뢰였다.

그랬더니 과연 세 형제가 왔는지라 신라왕은 그들을 가상히 여겨 맏형을 성주(별을 움직이게 한것을 의미한다.)라 하고 둘째는 왕자(왕이 고청으로 하여금 자기의 가랭이로 나오게 하고는 자기가 낳은 아들처럼 사랑하기때문)라 하고 셋째는 도내라 하였으며 읍호는 탐라라고 이름지어주었다. 처음에 그들이 올 때 배를 대인 곳이 탐진이므로 탐라라고 이름지었던것이다. 신라왕은 또한 그들에게 각각 일산과 의대를 주어보냈다.

《선생님, 제가 읽은 <고려사>에 있는 탐라국전설은 이상과 같습니다.》 하고 조성철은 혈기차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교실은 물을 뿌린듯 고요하였다.

《학생들, 방금 조성철학생이 <고려사>에 있는 탐라국전설을 정확히 잘 말했습니다. 독서를 많이 하는것이 알릴뿐아니라 기억력이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조성철학생이 말한 탐라국전설에 더 보충할 학생은 없습니까?》 하고 리덕구는 학생들을 여겨보며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눈길을 떨구고 잠잠히 앉아있었다.

《그러면 내가 보충설명하겠소. 탐라국전설은 흔히 제주도전설 또는 삼성혈전설의 이름으로 알려져있는 우리 나라의 유명한 전설중의 하나입니다. 탐라국이란 학생들도 알고있는것처럼 우리의 고향 제주도의 옛 이름인것입니다. 탐라국은 고대로부터 우리 나라의 한 소국가로서 발전하여왔으며 <삼국유사>에 의하면…》

리덕구는 열정에 사로잡힌듯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하였다.

… 이미 탐라국은 9한의 하나로서 렬거되고있다. (이 기록에는 탐라가 탁라라고 씌여져있다.)

이 나라 즉 탐라는 세나라시기 중기 즉 5세기경에는 신라, 백제 등과 관계를 부단히 가지여왔다.

이 전설의 기록에는 탐라가 처음부터 신라와 접촉을 가지고 또 그를 대대로 섬겨온듯이 되여있으나 세나라시기에는 대체로 지리적 및 기타 관계로 하여 신라보다도 오히려 백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있었던것이 사실이고 백제멸망후 신라시기에 와서 이 나라와 직접적인 접촉관계들이 빈번하게 되였던것이다. 탐라는 백제와 신라에 적지 않은 경우 예속적관계에 놓여있었으나 고려 초기까지는 역시 하나의 독립적인 소국으로서 자기 면모를 일정하게 유지해온것이다.

정식 고려의 하나의 군현으로 배속개편되게 된것은 숙종10년(1105년)때에 와서였다. 즉 탐라국은 상당히 오래동안 제주도라는 하나의 섬속에서 소왕국을 형성하고 자기의 력사와 문화를 발전시켜온것이며 또한 이 지방 고유의 설화들과 민요들을 창조발전시켜온것이였다. 이미 소개한바와 같이 건국설화적특성을 가지는 이러한 이 섬 독특의 력사적유래를 설명하는 전설이 창조전승되게 된것도 그런 사정과 밀접히 관계되고있는것이다.

제주도지방이 자기의 고유하고 풍부한 민요들과 설화의 창조전승지로서 오늘날 구전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거리의 하나로 되고있는것도 우연한것이 아니다.

탐라국전설은 우리 나라에 전하는 건국설화들치고는 일련의 독특한 특성들을 보여주고있는 전설형이다. 고대건국설화(례하면 부여, 고구려, 신라, 가락국 등과 고조선건국신화에 있어서조차)들에서 그 《건국주》라는 사람들의 출생경위를 설명하는 설화의 류형을 보면 대개 두가지 계렬로 갈라진다. 그의 하나는 《천강(하늘에서 내려온)설화형》이고 다른 하나는 《란생(알에서 까난)설화형》이다.

물론 이 량자의 혼합형도 있다. 첫째 형의 대표적인것으로 우리는 부여건국설화인 해모수전설을 들수 있으며 둘째 형의 대표적례로서는 고구려 주몽전설을 들수 있다. 《천강》과 《란생》의 혼합설화형으로서는 신라의 박혁거세전설과 가락국 수로왕전설 등을 들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탐라국전설은 이들과는 다르게 그 주인공들이 땅속에서 솟아나온것으로 되여있는바 이것은 흥미있고 특징적인 설화형이라 할수 있다.

이 설화가 독특성을 가지는것은 여러가지 조건, 우선 그 설화산생의 지대적조건과도 많이 관계되겠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이 설화가 전 시기의 건국설화들에 비하면 그 창조시기가 비교적 늦은것과 관계되지 않겠는가. 벌써 《천강》(하늘에서 내려온것)이나 《란생》(알에서 까난것)으로써는 《건국주》들의 출생을 믿기 어려울만치 사람들의 의식이 발전되는 시기의 조건에서 이 설화는 그 주인공들을 땅에서 솟아나온것으로 설명하게 된다.

《특히 제주도인민들은 이 섬의 중심부에 높이 솟아있는 한나산을 상당히 오래동안 신비롭게 생각하였고 또 <신성시>해온 조건에서 그리고 활화산인 이 섬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굴들이 있는 조건에서 이 설화는 그의 형성이 더욱 무리없이 사람들에게 믿어질수 있도록 창조전승되게 된것이 아닌가 보아집니다.》

리덕구는 학생들이 들은바를 잘 생각해볼 여유를 주려는듯이 잠시 입을 다물고 동안을 두었다.

고요한 교실안의 어떤 학생들은 서둘러 무엇인가 들은것을 쓰고있었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겨 까딱않고 앉아있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 그러니만치 탐라국전설은 일면 건국설화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그것은 오히려 건국설화라기보다도 이 섬, 제주도의 개척자들의 출현의 유래를 설명하는 지방전설적인 일종의 개벽설화의 후기형이라고 규정하는것이 타당할것 같습니다.》 하고 그는 시종일관 박력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설명을 계속해나갔다.

… 이 전설에서 세 형제의 안해가 될 처녀들이 왔다는 이야기는 가락국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과 함께 신라사람들로서 일본에 가 왕과 왕후가 되였다는 연오랑, 세오녀 등과는 대조되는 전설적인물들이다.

《고려사》의 기록원문에는 《일본국사신》이 그 처녀들을 데리고 와 바치였다고 되여있는데 이것은 확실히 후세사람들이 이 전설을 기록하면서 원래 이름을 자의대로 바꾸어버린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원래 《일본》이란 이름이 그 나라에서 생겨나 쓰이게 된것은 기원후 7세기경부터인데 이 탐라국전설은 그보다 훨씬 이전시기의 생활을 반영하고있으며 그 발생기원이 벌써 《일본국》이라는 명칭이 세상에 생겨나기 훨씬 오래전에 창조된것이라는것을 확증할수가 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왜땅》이라고 하는것이 정확할것이다.

왜땅에서 제주도 《삼성혈》의 주인공들에게 처녀들을 바치였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잠간 언급한다면 세나라시기 훨씬 이전에 이미 우리 선조들은 왜땅에 많은 사람들이 가서 살았고 또한 그 땅에서 적지 않게 통치귀족계층들을 이루고있었던 사정에서 그쪽에 가있는 조선사람 우두머리(문헌기록에는 왜왕)가 자기 고향땅에 딸들을 시집보내고 혼인관계를 이루었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사회력사적조건으로 보아 충분히 있을수도 있었던 생활현실을 이 전설이 반영하고있는것이라고 생각된다. …

《학생들, 탐라국전설은 우리 제주도인민들의 력사와 고대시기 우리 인민들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큰 의의가 있을뿐아니라 우리 나라 고대설화들의 전체 면모의 특성을 연구해명하는데 아주 귀중한 가치를 가지는 설화작품의 하나로 될것입니다.》

교실안은 학생들의 숨소리마저 크게 들려올 정도로 고요하였다. 학생들은 여전히 까딱않고 앉아 그 어떤 강한 힘에 이끌린듯 교단에 선 리덕구선생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리덕구는 자기에게로 쏠리는 학생들의 맑은 눈길앞에 잠시 침묵한채 미소짓고 서있었다.

(얼마나 티 한점 없이 깨끗하고 맑은 눈빛들인가. 이애들의 장래는 또 얼마나 창창한것인가. 나는 이 학생들에게 아는 지식, 있는 정을 다 쏟아부으리라!)

그는 애정이 느껴지는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어느 학생이 우리 제주도의 특색이고 자랑이기도 한 삼다, 삼무, 삼려, 삼보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제가 말하겠습니다.》

교실의 맨 앞줄에서 무엇인가 줄곧 쓰고있던 키가 작고 녀자처럼 곱살하게 생긴 학생이 자신있는 태도로 불쑥 일어섰다.

《우리 제주도에서 세가지 많은것 즉 삼다는 바람, 돌, 녀자이고 세가지 없는것 삼무는 거지가 없는것, 도적이 없는것, 대문이 없는것입니다. 그 다음 삼려는 첫째로 전통적인 아름다운 인심 즉 상부상조하는 정신이고 둘째로는 아름다운 자연이고 그 다음 열매를 말합니다. 그 다음 삼보는 풍부하고 특이한 수산자원, 독특한 식물들 그리고 제주도의 고어와 민요들입니다. 우리 제주도는 력사적, 지리적특성으로 하여 남방계통의 문화와 북방계통의 문화가 한데 어울려진 륙지와 다른 독특한 생활문화와 풍습을 가지고있습니다.》

학생의 답변이 끝나자 리덕구는 나직이 탄성을 질렀다.

《아주 정확한 대답입니다. 솔직히 말하지만 내가 어설프게 알던것을 오늘 정확히 배우고 알게 되였습니다. 한데 학생에게 한가지 더 묻겠소. 집주인들이 외출할 때 집안에 사람이 없다는 표시로 집앞에 가로질러놓는 통나무를 뭐라고 하던가요?》

《정주먹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 정주먹이라고 하지. 오늘 내가 배우는게 많소. 나는 모르는것이 많소. 학생은 그런 면에서 나의 선생이요!》 하고 그는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듣는 사람들의 가슴이 저절로 탁 트이고 후련해지는 그런 웃음이였다.

학생들은 일시에 교실이 떠나갈듯 한 웃음을 터뜨렸다.

리덕구는 학생들을 향해 소탈한 어조로 말했다.

《웃지들 마시오. 일자지사라는 말은 글 한자를 배워준것도 스승이란 뜻이요. 그런데 오늘 내가 배운것이 어디 글 한자에 비길거요?》

신바람이 나서 어깨를 흔들며 웃던 학생들은 은연중 무엇인가를 또다시 깨달은듯 눈을 반짝이며 교단의 선생을 호기심어린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학생들, 방금전에도 말했지만 난 어려서부터 여러해동안 고향을 떠나 다니다나니 여기 토배기말과 풍습에서 모르는게 많소. 그러니 앞으로 학생들이 많이 배워주시오. 학생들, 우리는 자기 조국과 자기 민족의 력사, 지리, 풍속을 잘 알아야 하며 자기 고향과 자기 조국, 자기 민족을 열렬히 사랑해야 합니다. 나는 선조들의 분묘가 있고 나의 태를 묻은 내 고향 제주도를 사랑합니다. 그럼 어느 학생이 한나산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바람이 난 학생들속에서 이번에는 녀학생이 일어섰다.

리덕구는 내심 너무도 반갑고 사랑스러워 그에게 물었다.

《학생의 이름은 어떻게 부릅니까?》

《한미숙이라고 불러요.》

《좋습니다. 한미숙학생, 어서 말해보시오!》

녀학생 한미숙은 산판에서 꽃을 꺾듯이 또박또박 듣기 좋은 중음으로 말을 시작하였다.

《제주도중심에 솟아있는 한나산은 화산활동에 의하여 생겨난 고깔모양의 생김새를 가진 산으로 높이가 1 950m입니다. 한나산에 올라서면 섬 전체를 바라볼수 있을뿐아니라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남해안의 섬들이 보입니다. 한나산은 우리 나라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의 하나이며 비물은 주로 땅속으로 스며들어 바다가에서 샘으로 나옵니다. 때문에 하천들은 대부분이 비가 올 때에만 흐릅니다. 한나산마루에는 화구호인 백록담이 있습니다. 한나산은 이 산꼭대기의 백록담과 갖가지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 남방지대의 희귀한 고산식물 등 아름다운 자연풍치로 하여 예로부터 명승지로 일러왔습니다. 백록담에 대해서 좀더 설명하면, 백록담은 화산이 폭발할 때 생긴 분화구에 물이 고여 생긴 화구호로서 옛날에 신선이 흰사슴을 타고 내리여 즐기였다는 전설과 더불어 신비경을 펼치고있으므로 <한나산> 하면 누구나 백록담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미숙은 기억을 더듬는듯 류달리 정기도는 눈을 반짝이며 몇순간 침묵하더니 곧 대답을 계속했다.

《백록담의 둘레는 약 3km이며 가장 깊은 곳은 8m이고 평균깊이는 1m정도로서 사철 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을 찾아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여기에 모여들군 합니다.

조종의 산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조선의 지맥이 다도해를 건너 한나산에 잇닿아있어 사람들은 대대로 백두산과 한나산을 두고 즐겨 시와 노래를 읊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나산은 조선의 지맥으로, 여기에는 조선민족의 넋과 자랑이 깃들어있고 선조들의 유구한 력사가 년륜으로 아로새겨져있습니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처럼 이 고장 태생으로 고향 제주도를 사랑하며 그 어디에 가든 고향 제주도를 잊지 않겠어요!》

마지막을 자기 심중의 말로 열기있게 맺은 한미숙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학생아이들은 제 고장에 대한 남다른 풍부한 지식과 애정을 가진 한미숙을 감탄의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리덕구는 끓어오르는 기쁨과 감동을 느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 큰소리로 웨치듯이 말했다.

《한미숙학생, 훌륭하오!- 그것이 바로 향토애, 조국애입니다!-》

감화력있는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흥미진진한 분위기에 휩싸인 학생들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줄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리덕구는 선량한 미소를 띠고 친숙해진 어조로 학생들에게 말하였다.

《자,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서로 묻고 대답하기로 한것만큼 이제부터는 학생들이 무엇이든지 알고싶거나 의문이 있는것을 나에게 물으시오. 나 역시 아는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것은 모른다고 대답하겠소!》

그때 학생들속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보이는 덩지큰 학생이 일어나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 일제하에서 해방된 우리 나라가 왜 남북으로 갈라지고 5천년 우리 나라의 력사에 있어본적 없는 38°선이라는것이 생겼습니까?》

순간 지금까지 밝고 유쾌한 기분으로 교단에 서있던 리덕구의 얼굴에 언뜻 어두운 그림자가 지나가고 낯색이 달라졌다. 그는 갑자기 무엇에 아프게 찔리운 때처럼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몇순간 발성기능을 상실한 사람처럼 말을 못하고 굳어진듯 서있었다. 그러던 리덕구는 말없이 교단에서 창가로 걸어가 한동안 묵묵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지금 그의 가슴속에서는 후더운 피같기도 하고 뜨거운 열같기도 한것이 련속 치밀어올라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불덩이같은 쓰라린 괴로움과 고통, 분노가 그의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고있었다. 문득 창밖의 어디선가 이름을 알수 없는 새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쁜 놈들!)

리덕구는 이제까지 어딘가 목구멍밑에 뭉쳐있던 오열이 일시에 터져나오는듯 한감을 느꼈다.

《분노할 일이요.》 하고 교단으로 돌아온 리덕구는 비분에 찬 갈린 음성으로 혼자소리처럼 나직이 뇌였는데 그것은 학생들에게 더욱더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학생들, 교단에 선 사람은 누구나 그러하지만, 나 역시 진실만을 말하는데 습관된 사람이요. 학생들, 우리모두가 가슴아프게 느끼는 38°선으로 인한 남북의 분렬은 외세때문이요! 지금 미군이 남조선에 군정을 실시하고있소. 우리 제주도에도 제주도 미군정이 인민위원회들을 강제로 해산하고 군림하고있소. 이것은 전패국에 대한 전승국의 통치형식이요! 진짜 전패국인 일본에 대해서는 당초의 군정계획을 포기하고 간접통치를 실시하면서도 근 반세기동안 반일투쟁과 항일전쟁을 벌려온 조선인민에 대하여 군정을 실시하는것은 우리 인민의 자주권에 대한 란폭한 유린이며 참을수 없는 적대행위인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국제도의로 보나 리치로 보나 상식에 어긋나는 부정의이고 무리한것이요.》

리덕구의 목소리에는 누를래야 누를수 없는 분노가 울리고있었다. 그는 몇순간 침묵했다. 분노로 맥박치는 침묵이였다.

지금 이 시각의 리덕구의 착잡한 감정을 학생들은 다 리해하지 못할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그 어떤 무거운 사색의 파문이 지나갔다.

이윽고 리덕구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무엇인가 기대어린 학생들의 눈빛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학생들, 우리 이 아픔과 분노를 당분간 가슴속에 묻어두고 지켜봅시다. 장구한 인류력사는 정의와 부정의의 피어린 투쟁의 력사였소. 이 력사의 싸움에서 항상 승리자는 정의였고 패자는 부정의였습니다. 학생들, 우리 나라에 조성된 이 비정상적인 괴이한 상태가 반드시 바로잡히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안고 우리모두는 배움에 힘써나가야 하겠소.》 하고 말하는 리덕구의 마음속 고통의 경련이 그의 입술우로 지나갔다.

고요한 교실의 학생들은 누구도 까딱않고 비분으로 목이 갈린듯 한 교단에 선 선생님을 주의깊이 여겨보고있었다.

잠시후 그는 얼굴에 숙연한 빛을 떠올리며 범상치 않는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은 제각기 자기 일생에서 자신이 제일 숭배하고 존경하는 영웅, 명인, 위인이 있으며 항상 그를 배우며 그를 닮으려고 애써 노력하면서 사는것이 상례입니다. 학생들도 제각기 자신이 숭배하는 영웅이 있을것입니다. 우리 나라와 세계의 수많은 영웅, 명인, 위인들중에서 어느분을 가장 숭배하고 따라배우고싶은지 주저말고 누구든지 일어나 말해보시오.》

그러자 정숙하던 교실은 흥성거리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서로 마주보며 소곤소곤 말하였으나 정작 일어서서 대답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럴 때 수재형인 조성철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선생님이 제일 숭배하는 영웅은 어느 나라, 어느때의 누구입니까? 그것을 먼저 알고싶습니다.》

호기심에 사로잡힌 조성철의 열기있는 대담한 요청에 교실안의 학생들은 일제히 환성을 올리며 호응하였다.

《선생님! 말씀해주십시오.》

《듣고싶습니다!》

《알려주십시오!》

교단의 리덕구는 미소를 지은채 말이 없었다.

《내가 먼저 학생들에게 물었는데 오히려 반문이요? 그건 인사불성이요. 허, 조성철학생이 능청스러운걸.》

리덕구는 무등 정겨운 눈길로 학생들을 바라보며 소리내여 웃었다.

그리고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학생들, 인류력사에는 나라마다 영웅, 명인, 위인으로 떠받드는 인물들이 수없이 많이 알려져있소. 그러나 나는 우리 민족이 낳은 절세의 애국자,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을 제일 존경하며 숭배합니다. 그이께서는 14살 어리신 시절에 벌써 나라찾을 큰뜻을 품으시고 조국을 떠나 산설고 물설은 만주광야에서 20성상 포악한 일제와 싸웠소.

김일성장군님은 성스러운 조국해방의 싸움에 아버님과 어머님, 삼촌과 동생을 바치셨소. 김장군님께서는 마침내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함께 해방된 조국에 개선하시였소!》

흥분한 리덕구의 목소리는 진정할수 없는 감격과 깊은 감회에 젖어있었다.

《학생들, 나의 개인적인 소망은 고향 학교의 교사가 되는것이였는데 그것은 이미 성취하였소. 이제 내 평생의 가장 큰 소원은 우리 민족이 낳은 김일성장군님을 한번만이라도 만나뵙고 큰절을 드리는것이요! 학생들, 명심해들으시오. 우리 앞으로 좋은 날, 좋은 때를 택하여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장군님께 큰절을 올립시다. 오늘 이 시간에 약속하는데 모두 동의합니까?》

《좋습니다!- 약속합니다!-》 하고 학생들은 일제히 격정에 찬 목소리로 열렬히 호응했다.

학생들은 교단에 선 리덕구에게 매혹되여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선생님이 풍부한 지식을 소유한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것을 모두가 마음속으로 확신하고있었다.

수업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끝났다. 두고두고 추억할 인상깊은 수업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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