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1편 소망

10

 

학교운동장에서 학생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던 리덕구는 다급히 소리쳤다.

《성철이 뭘 해? 빨리 뽈을 대각으로!》

단독으로 몰기에 열중했던 성철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즉시 저쪽 대각선에 있는 리덕구선생에게로 뽈을 련락하였다.

상대방 선수들이 성철이쪽에 집중되여있어 리덕구쪽은 빈 공간이였다.

리덕구는 성철이 넘겨준 뽈을 받자 곧바로 문전으로 날카롭게 돌입해들어갔다. 상대방 방어수 한명이 다급히 마주 달려오는것을 슬쩍 기만하여 빼돌리고 리덕구는 꼴문앞으로 육박했다. 드디여 문전 사활구역에서 상대방 문지기와 일대일의 정황이 조성되였다.

리덕구는 꼴문앞에 선 문지기의 위치를 정확히 판단하고 뽈을 강하게 꼴문모서리로 찼다. 뽈은 총알처럼 속도있게 날아가 문지기도 어쩔새없이 그물에 걸렸다. 운동장의 학생들속에서 환성이 오르고 그와 거의 동시에 경기마감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울렸다.

이 축구경기는 며칠후에 있게 될 학교운동대회때 학급별대항경기를 앞두고 진행한 련습경기였다. 학급별대항경기규정에는 무조건 담임교원이 참가하게 되였는데 그러지 않아도 체육에 관심이 높은 리덕구는 학생들과 함께 방과후 축구련습에 빠짐없이 참가하고있었다.

련습경기가 끝나자 학생들은 운동장 한옆의 풀밭에 모여앉아 물도 마시고 고향 제주도특산인 귤과 감, 산열매들을 먹으면서 방금 진행한 련습경기에서 나타난 부족점들을 놓고 서로 열을 올리며 론의를 하였다.  그때 어깨를 떨구고 우울한 얼굴로 앉아있던 학급축구팀의 주장인 조성철이 리덕구앞에서 한숨쉬며 무심중 맥빠진 소리를 했다.

《선생님, 솔직히 말하면 지금정도의 우리 학급수준으로는 암만해도 승산이 없을것 같습니다.》

《팀의 주장이 그런 약한 소리를 하면 안돼. 그래서 지금 모두가 열심히 련습하며 발을 맞추는게 아닌가.》 하고 리덕구는 성철을 꾸짖었다.

《선생님, 그렇지만 워낙 전반적인 수준이 낮은데다가 그중 실력있는 핵심공격수인 고비호까지 빠지고보니…》

성철은 머리를 떨구고 울적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성철이, 무슨 경기에서든지 반드시 이긴다는 강한 신심이 중요한거야, 그런데 고비호란 누구요? 우리 학급에는 그런 이름의 학생이 없지 않소?》 하고 리덕구는 의심쩍은 어조로 물었다.

성철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뜨직뜨직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 학급의 고병호를 <고비호>라고 합니다. 비호는 그의 별명인데 언젠가 한나산에 올라갔을 때 날아가는 꿩을 맨손으로 잡았다고 해서 <나는 범>이라는 뜻에서 비호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뭐, 나는 꿩을 맨손으로 잡았다고?》 하고 리덕구는 껄껄 웃으며 탄복했다.

리덕구는 되박이마의 고병호를 잘 알고있다. 령리하고 동작이 남달리 민첩해서 학습도 체육도 잘하는것으로 소문난 학생이였다. 학습, 체육 모든 면에서 정의감이 강하고 다정다감한 조성철과 고병호는 학급에서 쌍벽을 이루고 서로 1, 2등을 다투는 사이였다.

《성철이, 그런데 고병호학생이 왜 축구련습경기에 빠졌소? 오늘 수업시간에는 참가했었는데 말이요?》 하고 리덕구는 추궁조로 물었다.

성철은 대답을 못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리덕구의 눈길을 피하며 마지못해 입안의 소리로 응답하였다.

《수업시간에는 참가하였지만…》

《왜? 고병호학생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하고 리덕구는 불시에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러나 성철은 머리를 숙인채 침묵하였고 다른 학생들도 어줍은 웃음을 지으며 잠잠했다.

리덕구는 좀 엄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성철이, 무슨 일인데 말을 못하오?》

《선생님, 저… 어제 병호는 말에 채워서 걷기조차 힘들어하는데 당분간 뽈을 차기는 글렀습니다.》

성철이 마지못해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응답하는데 곁에 앉아있던 학생들은 시물시물 웃고있었다.

《말에 채우다니? 언제? 어떻게 채웠소? 그렇게 날래서 맨손으로 날아가는 꿩을 잡았다는 병호가 말한테 채웠다는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요?》

리덕구는 미심쩍어하며 성철을 여겨보았다.

《선생님, 병호가 채운 말은 제주도 수천마리 말들중에서 제일 사납고 갈개는 말로 소문난 놈입니다.》 하고 성철은 급급히 병호를 두둔했다.

《모르겠소. 아무리 사납고 갈개는 말이라고 해도 다른 학생도 아닌 고병호학생이 채웠다니 말이요. 뭐 별명이 <고비호>라면서? 그래 <나는 범>이 말발통에 걷어채웠다니 어불성설이 아닌가?》

리덕구의 신랄한 비평에 성철이도, 학생들모두가 묵묵히 약속이나 한듯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럴수밖에 없었는데 일인즉 이렇게 된것이였다.

어제 수업을 끝내고 학교운동장에서 축구련습을 하던 학생들은 쉴참에 모여앉아 용감성과 담력에 대하여 이야기하던중 학급에서 누가 가장 대담하고 담력이 센가를 놓고 말싸움을 벌렸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것을 이제 당장 검증할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기발한 착상을 내놓았다. 그것은 제주도에서 가장 갈개고 성칼사납기로 소문난 학교건너편 집의 말곁에 누가 제일 가까이 다가가는가 하는것으로 판단할수 있다는것이였다. 그러자 모두가 환성을 지르며 즉시에 공감했다. 하여 학급에서 누가 가장 용감하고 담력이 센가를 겨루는 경기에 9명의 선수들이 나섰다. 학급의 모든 학생들이 우르르 운동장을 지나 건너편 집쪽으로 달려갔다.

마침 키가 크고 엉덩이가 떡판같은 성칼사납기로 소문난 절다말이 쇠를 부어 만든것 같은 억센 다리를 뻗치고 길가에 서서 풀을 뜯어먹고있었다.

곧 경기가 시작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들은 3~4m까지 접근하는것으로 끝났다. 오직 남은것은 조성철과 고병호였다.

결국 그들이 승부를 겨루게 된것이다. 먼저 조성철이 발볌발볌 성칼사나운 말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드디여 대담하게 2m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하고는 돌아섰다. 성철은 자기는 그 이상 가까이 못 가겠다고 솔직히 선언했다. 그래서 조성철의 경기기록은 2m로 끝났다. 남은 선수는 고병호뿐이였다. 이제 만약 고병호가 조성철의 기록인 2m보다 더 말곁으로 접근하는 경우 그는 학급에서 가장 용감하고 담력이 센 학생으로, 우승자로 되는것이다.

고병호는, 자기는 1m까지 말곁으로 다가갈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우쭐렁거리며 자기의 담력을 뽐내는 고병호에게 아이들모두가 그만두라고 만류했으나 그는 《내가 만약 1m까지 다가서지 못하면 <고비호>가 아니다!》고 큰소리치며 제주도에서 제일 성칼사나운 말의 곁으로 접근해갔다.

3m, 2m… 학생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있었다. 끝끝내 고병호는 1m까지 대담하게 접근하였다. 그가 성공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호으응!- 소리를 내지르며 어느새 성칼사나운 말이 뒤발질을 했다.

고병호는 날래게 몸을 뒤채면서 훌쩍 피하였으나 끝내 오른쪽발목을 말발통에 채우고말았다. 그리 심한 부상은 아니였지만 발목이 부어올라 절름거리였다. 하지만 어쨌든 용감성과 담력경기에서 우승자는 고병호였던것이다.

지금 운동장곁의 풀밭에 서있는 리덕구는 그런 자세한 내막은 아직 모르고있었지만 무엇인가 심히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저쪽에 홀로 앉아있는 고병호에게로 다가갔다.

《고병호학생, 다리가 좀 어떻소? 심하지는 않소?》 하고 리덕구는 불안에 찬 얼굴로 의미있게 물었다.

고병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선생님, 걱정마십시오. 하루이틀 지나면 축구경기에는 참가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축구경기도 경기지만 큰일날번 하였소. 주의하시오. 헌데 병호학생!》 하고 리덕구는 의미있는 웃음을 지으며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야유조로 말을 보탰다.

《그렇게 날파람있다는 <고비호>가 말에 채운단 말이요? 수치요! 한창 때 말에 채우다니 이제는 그 비호란 칭호를 스스로 떼버리시오. 날아다니는 범이란 이름이 아깝단 말이요!》

고병호는 선생의 야유에 짐짓 어줍게 웃으며 응석조로 응수했다.

《선생님, 그 말은 제주도의 수천마리 말들중에서 가장 사납기로 이름난 말입니다. 주인이외에는 그 누구도 가까이 못 갑니다. 정직히 말하지만 아무리 선생님이 유술도 잘하시고 체육도 잘하지만 그 말만은 다루지 못할뿐아니라 1m가까이로는 접근하지 못할겁니다.》

《그렇지 않을걸. 아이때 난 말을 잘 다루기로 동네에서 소문이 났드랬소.》 하고 리덕구는 롱담조로 말하며 소리내여 웃었다.

그때 학교현관쪽에서 한 학생이 달려와 리덕구에게 교장선생님이 찾는다고 알려주었다.

리덕구는 학생들에게 축구련습을 계속하라고 이르고나서 교장실로 갔다.

교장은 여느때없이 긴장한 기분으로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교장선생님, 저를 불렀습니까?》 하고 리덕구는 방으로 들어서며 년장자인 교장에게 깍듯이 례를 표시했다.

《리덕구선생, 거기 좀 앉으시오.》

무거운 기색으로 그를 기다리고있던 교장은 역시 무거운 어조로 말하였다.

리덕구는 침착하게 교장이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리덕구선생, 방금 조천면 경찰지서에서 지서장이 왔었습니다.》

교장은 여전히 무겁게 뇌이며 리덕구를 바라보았다.

《지서장이요? 그가 무슨 일로 학교에까지 출입했습니까?》 하고 리덕구는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바로 리덕구선생을 만나겠다고, 선생의 사상동향이 당국의 기대에 심히 어긋난다면서 대단히 성난 기색이였습니다. 지서장은 리덕구선생이 빨갱이조직에도 관계하는것 같고 또 당국에서 내려보낸 교과서와 다르게 조선력사를 배워주면서 당국과 미군정을 비방하는 발언으로 나쁜 선동을 한다는것입니다.》

교장은 무겁게 한숨쉬였다. 비교적 량심적인 지식인인 교장은 지금까지 그 어떤 리념이나 정치에는 관계치 않고 순수 교육자로 살아온 사람이였다.

《교장선생님, 너무 걱정하실것은 없습니다. 제가 우리 나라 력사를 사실그대로 학생들에게 배워주는것이 죄로 될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구태여 말한다면 내가 교단에서 정의와 량심, 진리와 진실만을 가르쳤는데 그것이 빨갱이선동으로 될수는 없지 않습니까!》

리덕구는 차츰 자기도 모르게 격하여 열기있게 웨치듯이 말했다.

《리덕구선생, 그건 나도 잘 알고있는것이니 너무 격하지 마오. 지서장의 말인즉, 리덕구선생이 아이들에게 미군정과 미국에 대해 모독적인 발언을 자주 한다는것, 교사직분에 어긋나게 인민위원회결성에도 관여한것으로 알고있다는것… 등 그래서 주목하고있다는것입니다.》 하고 교장은 방금전에 면경찰지서 지서장이 찾아와 떠들어댄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리덕구는 이미 지난 9월에 둘째형 리좌구와 함께 제주도건국준비위원회결성과 인민위원회를 조직하는 사업에 협력한바 있었고 좌익조직에도 관계하고있었다.

《교장선생님, 전체 제주도인민들이 지지찬동하고 그들자신의 손으로 조직한 인민위원회를 도와준것이 무엇이 잘못입니까? 더우기 그 사업은 교사직분밖의 일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민위원회를 제주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관심을 가지고 환영하였습니다. 나는 지식인으로서 앞으로도 언제나 정의와 량심의 편에 서있겠습니다. 교장선생님, 제가 곧 면경찰지서로 찾아가 지서장을 만나겠습니다.》

리덕구는 신작로 건너편의 경찰지서를 창문으로 바라보며 결패있게 걸상에서 일어섰다.

교장은 그를 극력 만류하였다.

《리덕구선생,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지식인답게 자제하기 바랍니다. 내가 지서장을 설복할만큼 설복하고 타협하여 돌려보냈소. 리덕구선생, 일단 당국에서 주목하고 또 지서장까지 직접 찾아와 경고하고 간 이상 앞으로 각별히 주의하면 이후 문제가 다시 일어날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만큼 나의 의도를 알고 최대한 조심했으면 하는것이 내가 리덕구선생을 부른 취지입니다.》라고 어질고 선량한 교장은 조용조용 말했다.

그러나 흥분한 리덕구는 그 무엇도 재지 않고 열기있게 언명하였다.

《사실대로 이야기해주고 념려하여주어 고맙습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 저는 조국의 미래인 학생들앞에 선 교육자입니다. 그런만큼 설사 앞으로 저의 신변에 무슨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겼다 해도 후대들앞에서 거짓말은 할수 없습니다. 반드시 정의와 진실을 앞으로도 말하겠습니다.》

《리덕구선생, 나 역시 교육자인만큼 선생에게서 그런것을 불만으로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의라고 하여도 극단으로 흐르지 말것을 부탁할뿐이요.》 하고 교장은 버릇처럼 한숨을 쉬였다.

어질고 착한 교장 역시 해방후 제주도에 조성된 정세와 최근에 떠도는 첨예한 공기를 잘 알고있었다.

해방후 제주도에서는 민족주의좌익세력과 사회주의자들이 정치적주도권을 장악하고 그해 9월에는 제주도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이어 읍과 각 면들에 인민위원회를, 그후 제주도인민위원회가 결성되였던것을 교장은 지금도 기억하고있었다. 그때 인민위원회는 기본정책, 로선을 채택하였는데 그의 주요내용은 《조국의 자주통일과 민족의 완전해방을 위하여 투쟁할것, 일제의 잔재세력과 국제파시스트주구들을 청산하여 민족의 민주주의발전에 기여할것.》을 주장했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는 조선공산당 전라남도 제주위원회가 조직되였다.

이러한 좌익세력의 주도적장악은 일제시대의 독립운동, 비밀지하투쟁과 맥락이 이어진것이였다.

《리덕구선생, 나의 립장과 취지를 이제는 잘 리해하리라고 믿습니다. 돌아가도 좋겠습니다.》

교장은 온화한 어조로 말하고나서 미안하다는듯이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잘 알았습니다.》

리덕구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흥분을 누르며 교장실에서 나와 학생들이 있는쪽으로 탄력있게 걸어갔다.

(진실과 정의를 말한다고 경찰놈들이 주목한단 말이지!) 하고 리덕구는 내심 가소롭게 생각했다. 그때 문득 교실쪽에서 누군가 목청을 돋구어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하여 그쪽으로 다가가던 리덕구는 내심 놀랬다.

(?! …)

그가 담임한 학급의 전체 학생들이 모인 앞에서 숱이 많은 머리칼로 뒤덮인 부교장이 성이 나서 펄펄 뛰고있었던것이다.

리덕구는 성이 독같이 난 부교장에게로 급히 다가갔다.

《부교장선생,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하고 리덕구는 조용히 침착하게 물었다.

《리덕구선생, 선생이 담임한 학급의 학생들이 늘쌍 이 모양으로 말썽이란 말이요. 현관 창유리를 박살내고도 누구 하나 자기가 그랬다고 나서는 학생은 없고 모두가 소죽은 귀신처럼 질기게 함구무언이니 이걸 어쩌면 좋소?》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바글바글 끓는 성미인 부교장은 화가 나서 숱많은 머리를 흔들며 큰소리로 떠들썩하였다.

《부교장선생, 제가 학생들을 잘 교양하지 못한탓이니 저를 추궁해주십시오. 제가 곧 수습해놓겠으니 바쁘실텐데 가보십시오. 걱정을 끼쳐서 미안합니다.》

리덕구는 그러지 않아도 교장에게 불려가 심상치 않은 말을 들은 뒤여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진정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공손히 사과하였다.

《당사자를 끝까지 찾아내여 단단히 책벌하시오! 무슨 놈의 학생들인지 모두 란장판이라니까! 장난군들의 소굴이란 말이야!》

악의에 찬 목소리로 다시 욕설을 퍼붓고나서 부교장은 휭하니 교무실쪽으로 사라졌다.

리덕구는 부교장이 떠나가자 학급의 전체 학생들을 교실로 들어가 제자리에 앉으라고 보통때의 어조로 지시하였다.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침울한 기분으로 각기 자기 책상앞에 앉자 조금후에 뒤따라 리덕구가 교실로 들어왔다.

《학생들, 침울해하지 마시오. 생활에서는 누구나 실수할수도 있고 본의아니게 잘못을 저지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수나 본의아니게 저지른 잘못보다 더 나쁜것은 그것을 숨기는것입니다. 그건 아주 비도덕적이며 비량심적인 나쁜 행위입니다. 학생들중에서 누가 현관유리를 깼습니까?》 하고 리덕구는 조용히 학생들에게 물었으나 교실안은 잠잠하였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겠습니다. 뒤늦게 인정하고 나서기가 멋적을수도 있는것을 고려해서 이제부터 매 학생들에게 백지를 한장씩 나누어주겠습니다. 거기에 이름을 쓰지 말고 창문을 깨지 않은 학생은 맨우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실수하여 창문을 깬 학생은 십자표식을 하시오.》 하고 리덕구는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누어주었다.

《다 표시하면 여기 교탁우에 가져다 뒤집어놓으시오.》

그런 다음 리덕구는 교실의 창가로 걸어가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교실안의 학생들은 즉시 백지장에 표시를 하고 교탁우에 가져다 놓고는 제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얼마후 리덕구는 창가에서 교탁으로 돌아와 학생들이 가져다 놓은 백지장을 하나하나 번져보았다. 거기에는 솔직히 십자표식을 한 종이장이 있었다. 무등 기뻤으나 얼굴에 지은 정색한 빛을 허물지 않고 교실안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학생들가운데서 얼핏 마주친 눈을 떨구고 조성철이 슬며시 머리를 숙였다.

(성철이, 부끄러워하지 말라. 솔직한것이 얼마나 장한 일이냐!) 하고 리덕구는 사랑하는 제자에 대한 애틋한 정이 그 순간 새삼스럽게 되살아나는것을 느끼며 기쁘게 마음속으로 뇌였다.

리덕구는 학생들에게 오늘 일은 없었던것으로 하고 우선 운동장으로 나가 축구련습을 하라고 애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지시하였다. 그러자 학생들은 밝고 명랑한 얼굴로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맨 마지막으로 걸상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던 조성철이 교탁앞에 있는 리덕구에게로 다가갔다.

《선생님, 백지에 십자표식을 한것은 저입니다.》 하고 조성철은 머리를 떨구며 솔직히 고백하였다.

《성철이, 난 학생을 조금도 꾸짖을 생각이 없소. 자기의 실수와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고 서슴없이 인정하는것은 미덕이고 동시에 용감한 행동이요. 비겁하고 시시한 인간은 제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기 꺼려하며 숨기는거요.》

리덕구는 깊은 애정과 믿음을 가지고 성철을 눈여겨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좀더 일찌기 즉석에서 대담하게 잘못을 인정해나섰더라면 더 좋았을테지만, 난 앞으로 성철이가 그런 학생이 되리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하고 리덕구는 스스럼없이 성철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덧붙였다.

《자, 우리도 운동장으로 나가 축구련습을 해야지!》

며칠후 학교운동대회 학급별대항축구경기에서 끝내 우승한 그들은 바다로 수영하러 온 학급이 나갔다. 이것 역시 학습과 함께 체육을 중시하는 리덕구의 영향으로 자주 조직하는 학교생활의 준칙처럼 된것이였다. 기분이 좋아서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바다로 나가던 학생들 몇이 문득 멈춰서서 수군거리더니 곧장 리덕구의 곁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오늘은 이쪽 길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누구보다 리덕구의 총애를 받는 조성철이 좀 별스럽게 어깨를 실룩거리며 말했다.

《그건 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리덕구는 영문을 알수 없어 눈을 쪼프리며 성철을 쳐다보았다.

《아닙니다, 그건 저…》 하고 조성철이 어줍게 웃으며 어물거리는데 곁에 있던 되박이마의 고병호가 의미있게 웃으면서 리덕구에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오늘 저희들에게 훌륭한 특기동작을 보여주실것을 부탁합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수영에서? 아니, 난 수영에서 모범이 될만 한 특기동작은 없소. 그저 좋아할뿐이요.》

리덕구는 솔직히 말하며 티없는 깨끗한 미소를 지었다.

학생들이 굳이 리덕구를 인도해가는 길가의 저쪽앞에는 키가 크고 엉덩이가 떡판같은 절다말이 풀밭에서 풀을 뜯어먹고있었다.

《선생님, 수영이 아니라 바로 저기 저 말이 제주도의 수천마리 말들중에서 가장 사납고 갈개는 유명짜한 말입니다. 고병호가 저 말의 1m까지 접근해서 바로 학급에서 가장 용감한 우승자로 되기는 하였지만 끝내 뒤발질에 채운 그 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저 말의 가까이에서…》

조성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약속이나 한듯이 고병호가 즉시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때 선생님은 말에 채운 저에게 수치라고, <나는 범>이라는 칭호를 떼버리라고 꾸짖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희들은 이 기회에 유술선수인 선생님의 펄펄 나는 특기를 보려고 일부러 선생님을 이쪽 길로 모시고 왔습니다.》

고병호의 얼굴에는 어디 한번 보자는듯 한 호기심이 로골적으로 떠올라있었다. 학생들도 흥미진진한 기색으로 리덕구를 주시했다.

《선생님, 저희들모두의 부탁입니다. 용감성과 담력, 날랜 특기동작을 보여주십시오.》

조성철이 학급을 대표해서 다시 청원했다.

《아, 그랬댔구만! … 알겠소.》

흔연히 웃으며 대범하게 응수한 리덕구는 주저없이 절다말이 있는쪽으로 탄력있게 걸어갔다. 그러나 기백있게 앞으로 나가던 리덕구는 성칼사나운 절다말이 서있는 그 근방에 이르자 멀찍이 에돌아서 지나갔다.

학생아이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용감하고 날렵한, 펄펄 나는 리덕구선생의 특기동작을 보려니 하고 기대했던 학생들의 실망은 컸다. 실망한 학생들이 왁작 떠들며 리덕구에게로 뛰여왔다.

《선생님, 우리는 멋진 특기동작을 보려니 했는데… 모두 실망했습니다.》

《선생님, 어디 몸이 불편한게 아닙니까?》

《선생님, 언제면 한번 보여주겠습니까? 한번만이라도 보여주십시오.》

실망한 학생들이 저마끔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데 고병호가 로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선생님! 어쩌면 그럴수 있습니까? 말에 채운 저에게 수치라고 꾸짖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사춘기시절의 순진성을 숨김없이 드러낸 불만의 호소였다.

순간 리덕구는 승벽내기로 소리치는 아이들을 웃음기어린 얼굴로 바라보며 말을 뗐다.

《학생들, 피할수 있는 위험을 스스로 맞받아가는건 바보나 철없는 애들뿐이요! 뭔지 모르니까…》

그 다음 동안을 두었다가 이번에는 정색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자기 용감성을 시위하거나 남에게 보이려는 대담성과 용감성은 참된 용감성이 아니요! 그런 용감성은 뒤집어놓은 비겁성이요. 인간은 정의로운 일에, 목적에서 정당할 때 용감성이 필요한거요. 그것이 바로 참된 용감성이고 대담성인것이요!》 하고 말한 리덕구는 묵묵히 바다가로 걸어갔다.

학생들은 모두 말없이 서있었다.

별안간 스승의것을 자기들의것으로 만든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순간이였다. 그들은 생각깊은 표정으로 말없이 리덕구의 뒤를 따라 무리지어 바다가로 달려갔다. 바다에 뛰여든 학생들은 헤염을 치면서 리덕구선생이 들리지 않게 멀리 떨어져서 자기들의 선생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 박박 얽은 그 얼굴, 덕구 덕구 리덕구, 장래 대장감…

이미전부터 조성철, 고병호와 몇명의 학생들이 주동이 되여 학급전체의 지혜를 모아 자기들의 존경하는 선생님에 대해서 지은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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