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1편 소망

12

 

무게가 느껴지는 묵직한 검은구름장들이 북제주군 조천면 상공우로 흘러가고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누습한 밤바람은 마을의 집들의 새초이영을 버석거리며 들추어대고있었다. 어딘가 마을의 멀지 않은 곳에서 밤새의 가슴을 찢는듯 한 처량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불빛 한점 없는 컴컴한 마을들에는 꺼분꺼분하게 느껴지는 밤안개가 자욱하였다.

이 불안하고 음산한 밤에 리덕구가 피신해있는 사돈집의 창문사이로 나직하면서 격한 남자들의 말소리가 새여나오고있었다.

창문들을 꼼꼼히 가리운 석유등잔불이 가물거리는 방안에서는 체구가 크고 성미가 괄괄한 리좌구가 방안을 왔다갔다하며 격한 어조로 력설하고있었다.

《잘 생각해보아라! 지금이 어떤 때냐? 적들은 피눈이 되여 너를 잡으려고 날뛰고있어. 물론 너뿐만은 아니다. … 이 삼엄한 놈들의 폭압공세와 관련하여 조직에서는 앞으로의 투쟁을 위해 로출된 일체 조직성원들은 절대로 공개적인 장소에 나타나지 말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너는 제멋대로 행동하겠다는거냐? 난 형으로서 그리고 조직의 한 성원으로 너에게 충고하는거다. 흥분을 늦추고 잘 생각해보아라!》

리좌구는 자기가 바라던것보다 더 나직이 말했으나 어조에는 참을수 없는 불만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리좌구는 끓어오르는 격정을 누르려고 애쓰면서 침묵하고있었다.

《그래, 이제는 내 말이 리해되냐?》 하고 리좌구는 침묵하고있는 동생을 애정깊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니요, 저는 형님의 말에 공감할수 없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나가서 학생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겠다는것이 왜 옳지 않은지 전혀 리해할수 없단 말입니다!》

리덕구는 즉시에 주저없이 열기있게 반박했다.

《고집부리지 말아!- 나도 교단을 떠나면서 정든 제자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겠다는 너의 심정을 모르는바 아니야! … 하지만.》 하고 좌구는 자신도 모르게 격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너는 대학도 나왔고 지식도 많은건 사실이지만, 아직 조직적단련이 부족해! … 그러니까 고집을 부리면서…》

《형님!-》

리덕구는 불시에 격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꺾었다.

《난 조직적단련이 아직 부족한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어떻게 행동하는것이 조직에 리익을 주는것인지는 판단하고있습니다! 형님! 나는 내가 학생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교단을 떠나는것이 조직에 리익으로 된다고 확신합니다!》

그때 뜨락에서 쿨럭…쿨럭… 늙은이의 기침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을 열고 사돈집로인이 석쉼한 소리로 경계하듯 나직하니 말했다.

《조심들하라구! … 말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네!-》

사돈집로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뜻밖에도 어둠속에서 몇사람이 불쑥 방문앞에 나타났다.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이곳 신촌리에 있는 아지트에 내려와있던 오대건과 강규찬, 김달삼이 방안으로 들어섰던것이다.

《여기선 무슨 론쟁이요? 경각성들이 없구만. 흥분한 말소리가 밖에까지 들린단 말이요!-》 하고 김달삼이 보통어조로 조용히 충고했다.

사돈집로인은 다시 어둠속의 뜨락으로 나가고 리좌구형제는 신중한 표정으로 말없이 그들을 맞이하였다.

《허, 몹시 흥분한것 같구만! … 무슨 일이요?》

년장자인 오대건이 먼저 자리에 앉으며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특별한것은 아닌데…》 하고 리좌구는 그들을 둘러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아니, 특별한것입니다.》

리덕구는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주저없이 말을 덧붙였다.

《저는 래일아침 제시간에 학교에 나가 마지막수업을 하고 학생들과 정식으로 작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요? … 형님이 반대한단 말이지요? … 리덕구동무, 형님이 옳소. 나도 리좌구동무의 립장에 공감이요!》 하고 김달삼이 정색해서 언명하듯 말했다.

순간 리덕구가 숙였던 머리를 들자 눈에서 무엇인가 번쩍하였다.

《김달삼동무! … 어쩌면 그렇게 심사숙고함이 없이 쉽게 반대하시오?》

리덕구는 대답을 기다리듯 깜박이지 않는 시선으로 몇순간 김달삼을 응시했다.

《덕구동무, 그러니 나의 발언이 신중치 못하다는거요?》 하고 김달삼은 되물었다.

《그렇소. 신중치 못하오. 동무야 한때 교편을 잡았던적도 있는 사람이 아니요?》

《옳소. 내 경력에는 교사시절이 있었소. 한데, 그게 이 론쟁과 어떤 련관이 있는지 말해주오.》 하고 김달삼은 조금도 격하지 않고 말하였다.

리덕구는 순간의 지체도 없이 즉시 응수했다.

《련관이 있소! 학생들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은 교사로 될수 없소!》

《옳은 말이요! 덕구동무, 난 학생들을 사랑할줄 모르는 교사는 아니였다고 자부하고있는데…》 하고 김달삼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리덕구 역시 이번에는 점잖게 잔잔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그건 나도 알고있소. 그래서 나는 더욱 김달삼동무의 발언에 대해 노엽게 생각하는거요! 어째서, 왜 그런 동무가 나를 지지하지 않소? … 학생들앞에 선 스승은 하나의 행동, 한마디의 말도 산모범으로, 정의와 량심의 거울이여야 하오!》

《가만, 덕구동무, 이건 정식회의가 아니지만… 나도 자유롭게 한마디 묻겠소. 그래 동무의 요구는 뭐요?》 하고 오랜 투쟁경력을 가진 강규찬은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물었다. 저력있는 그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있었다.

리덕구는 곧바로 강규찬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강규찬동무, 난 앞으로 조직의 결정대로 무장대를 결성하는 사업을 하게 됩니다. 그런만큼 그 일에 전적으로 투신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해오던 교사생활을 총화하면서 학생들과 정식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헤여지려고 합니다.》

《학생들과 작별? … 그럴수도 있소. 하지만 지금 정황이 그걸 허용치 않는데… 혹시 덕구동무는 적들이 체포령을 내렸다는것을 모르고있는게 아니요?》

《내가 그걸 왜 모르겠소. 적들이 나에 대한 수배령이 내렸기때문에 더욱 나는 학생들앞에 나타나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나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내가 속한 조직과 그리고 우리모두에게도 관계되는것입니다!》 하고 리덕구는 열기있게 언명했다.

그러자 격한 리좌구가 자기도 모르게 어성을 높이며 동생을 꾸짖었다.

《아직도 그냥 고집이냐? 그래 위험속으로 스스로 뛰여드는건… 그건 무모한 모험이야!》

《모험이라구요?-》 하고 리덕구는 돌연 형에게 말을 던졌다. 그런 다음 그는 동안을 두지 않고 방안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계속하였다.

《여기에 있는 동지들은 투쟁경력으로 모두 선배들이지만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그건 무모한 모험이 아니라 륜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결백한 인격의 소유자들인 우리들이 누구나 응당해야 할 정당한 행동입니다.》

《덕구! 그래 끝까지 너는 조직규률을 놓고 흥정하자는거냐?》 하고 리좌구는 화난 목소리로 따지고들었다.

《아니, 흥정이 아니라 제기하는것입니다. 우리는 규률을 지켜야 할 의무도 있지만 또한 조직에 제기할 권리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정식회의는 아니지만 여기에 모인 동지들이 다 조직의 책임적인 직위에 있는만큼 저는 정식으로 의견을 제기합니다!-》

그때 시종 침묵하고있던 오대건이 조용히 웃으며 한마디 하였다.

《옳소, 의견을 제기할 권리가 있소. … 내가 듣건대 동무의 주장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것 같은데…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가야만 하겠소?》

부드러운 얼굴의 나이지숙한 오대건은 그동안 좀 수척한듯 한 젊은 리덕구를 애정에 찬 눈길로 여겨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순간 리덕구는 어딘가 목구멍밑에 뭉쳐있던 오열이 일시에 터져나오는듯 하여 잠시 말을 못했다. 그렇게 애정을 기울이고… 서로 따르며 진정으로 맺어진 사랑의 뉴대, 친혈육의 이상으로 사랑하던 학생들과 말 한마디 없이 헤여진다는것은 도덕으로 보나 륜리로 보나 있을수 없는 일이다.

《나는 반드시 학생들앞에 나타나 작별을 하고 교단을 떠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고 들릴가말가하게 나직이 말하는 리덕구의 마음속 고통의 경련이 그의 입술우로 지나갔다.

다음순간 리덕구는 비약하듯, 마치로 모루를 내려치는듯 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왜냐하면… 생활이 아무리 불안정하고 정세가 아무리 엄혹하여도 학생들에게, 후대들에게 주의를 돌려야 하기때문입니다. 우리가 목숨걸고 투쟁하는것도 결국은 애들을 위해서이고 그들에게 참되고 휘황한 미래를 안겨주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 나는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정의와 량심, 악과 선, 참된 조국에 대해서, 외래침략자들과의 투쟁의 정당성과 용감성, 대담성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것을 가르치던 내가… 나 하나의 목숨이 두려워 작별의 말도 없이 도망치듯이 떠난다면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 학생들은 우리를 지켜보고있습니다. 미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선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가를 말입니다! 때문에 교원인 나 한사람만이 아닌, 싸움에 나선 우리들전체와도 관련된 신중한 문제라고 주장하는것입니다!-》

정열적이면서도 진실한 뜨거운 감정으로 혈기차게 말하는 리덕구의 눈에서 눈물이 번쩍이는것 같았다.

방안의 등잔불이 가물거리고 심지가 검은 연기를 올리고있었다.

밖의 컴컴한 돌울타리쪽에서 이름모를 밤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는 고향에서 교사로 사는것이 한생의 소망이였습니다. 그러나 미제침략자들과 매국노들은 그 소망을 빼앗았고 끝내 나를 교단에서 쫓아냈습니다. 나는 피로… 목숨걸고 놈들과 싸워 그 소망을 찾아내야 합니다. …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어떻게 놈들에게 소망을 빼앗겼으며 교단을 떠나 정의의 싸움에 나서게 되였는가를 이야기해줘야 합니다. 이것은 제 개인의 기분이나 감정이 아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라 의미있는 싸움이며 투쟁이라고 봅니다. 학생들은 제주도의 미래이고 조국의 래일입니다. 바로 그들에게 옳바른 말뿐아니라 참된 실천과 행동을 보여주어야 하며 미제와 매국노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때문에 나는 설사 놈들에게 체포되여 처형당하는 한이 있어도 학생들앞에 나타나 작별을 하고 교단을 떠나겠다는것을 정식으로 제기합니다!-》

리덕구는 가슴속에서 후더운 피같기도 하고 뜨거운 열같기도 한것이 련속 치밀어올라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있었다. 방안의 그 누구도 일체 말이 없었다. 모두가 침묵으로 그의 말에 공감하고있었던것이다.

창밖의 어디선가 새벽닭 홰치는 소리가 울리자 뒤따라 이집저집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소! … 그런데…》라고 말하는 강규찬의 사려깊은 눈에 벙끗 감동의 불꽃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는 리좌구를 향해 말을 계속하였다.

《이곳 조천면조직에서 래일… 아니, 이제는 오늘이군. … 학교로 나가는 리덕구동무의 신변에 최대의 주의를 돌리도록 면밀한 조직적대책을 취하도록 해야겠소.》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 한데 덕구야, 만약을 생각해서 좀 변장을 하고 학교에 나가는게 어떠냐? … 나한테 헌 모자와 마차군옷이 있다.》 하고 리좌구는 동생에게 권고하였다.

《아니, 난 학생들앞에 늘 나서던 깨끗한 조선바지저고리차림으로 마지막교단에 서겠습니다.》

리덕구의 목소리는 확고부동하였다.

날이 밝은 아침에 리덕구는 학교에 나갈 때 입고 다니던 흰 조선바지저고리에 검은색두루마기를 입고 늘 다니던 길로 평상시의 걸음으로 학교에 나갔다. 아직은 수업시간전이여서 그는 여느때처럼 먼저 교원실로 들어갔다.

《선생님들! 안녕하십니까?》

리덕구가 보통때처럼 침착하게 인사하며 들어서자 방에 모여있던 교장과 교사들은 놀라 웅성거렸다.

《아니, 리덕구선생이?》

《리덕구선생.》

《교장선생! 그리고 선생들… 저는 학교를 떠나면서 작별인사를 하려고 들렸습니다.》 하고 리덕구는 놀라워하는 그들을 태연히 둘러보며 인사했다.

《고마운 일이요. 리덕구선생… 그런데 지체말고 즉시 떠나시오. 우리들은 모든것을 리해하고있으니… 어서 여기를 떠나오.》

교장은 무엇인가 리덕구에게 닥쳐올 위험을 예감이라도 하듯 커다란 눈을 섬뻑거리며 턱을 잘게 떨었다.

《덕구선생, 벌써 며칠째 경찰과 서북청년단패들이 선생을 잡으려고 학교에 왔었습니다. 그러니 어서 피하오.》 하고 한 동료교사가 불안에 찬 목소리로 입재게 뇌였다.

《모두들 념려해줘서 고맙습니다. … 교장선생, 선생들, 나는 학생들과 작별인사 겸 오늘 마지막수업을 하고 곧 떠나겠습니다.》

《작별 겸 마지막수업을?》

교장은 아연한 기색으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교단을 떠나는 교사가 사랑하는 학생들과 마지막작별의 말도 없이 어떻게 떠나겠습니까? 저는 지금 그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고 리덕구는 의미심장하게 매 말마디를 쪼아박듯 혈기차게 력설했다.

《교장선생, 선생들, 몸건강하시고 교육사업에서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교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교원실을 나선 리덕구는 아무런 긴장감도 없이 침착하게 학생들이 있는 교실쪽으로 뚜걱뚜걱 걸어갔다. 그때 교실밖의 복도에 나와있던 한미숙학생이 《선생님!-》 하고 나직이 환성을 지르며 달려오다가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홱- 돌아서며 먼저 교실로 들어갔다.

뒤이어 교실안에서 갑자기 환성이 터지더니 학생들이 우르르 복도로 달려나왔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싶었습니다.》

《선생님, 보고싶었습니다!-》

학생들은 한떼의 새무리처럼 웃고 떠들며 달려나와 리덕구를 둘러쌌다.

《나 역시 학생들이 무척 보고싶었소!》 하고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하는 리덕구의 목소리는 목이 메인듯 석쉼하게 울렸다.

《자, 학생들, 수업시간이 되였소. 어서들 교실로 들어가자.》

리덕구는 불현듯 가슴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쳐오르는 격정과 흥분을 누르며 교실로 들어갔다. 그는 학생들이 늘 보아온 침착하면서도 탄력이 느껴지는 걸음으로 교단에 올라서서 잠시 말없이 학생들을 정겹게 바라보았다. 학생들의 맑고 깨끗한 눈들이 교단의 리덕구를 마주보고있었다.

《학생들!-》

리덕구의 목소리는 학생들이 늘 듣던 음성이였으나 지금 무엇인가 의미심장하게 울리는것 같았다.

《나는 이제 교단을 떠나갑니다. … 교단을 떠나면서, 함께 조선력사와 지리를 배웠고 함께 뽈도 차고 수영도 했으며 함께 견학과 등산을 하면서 서로 끊을수 없는 인연을 맺고 살아온 학생들이 보고싶어 이렇게 왔습니다.》 하고 리덕구는 학생들의 티없이 맑은 눈을 마주보며 애정깊게 뇌이고 말을 계속하였다.

《학생들, 언젠가 첫 수업시간에 나는 바로 이 교단에서 말했었습니다. 나의 일생의 소망은 고향학교의 교사가 되는것이였다고! … 그런데 우리 제주도에 기여든 미제침략군-미군정과 그의 앞잡이 매국노들은 나의 이 소망을 빼앗고 교단에서 쫓아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놈들은 나를 잡아 처형하려고 피눈이 되여 발광하고있습니다. 내가 학생들에게 정의와 량심을 심어주고, 내가 고향 제주도를 사랑하고, 조국이 당하는 분렬의 불행을 가슴아파하고, 그를 막기 위한 옳은 일을 한다고 교단에서 쫓아내고 체포하여 처형하려는것입니다.》

그때 학생들속에서 조성철과 고병호가 서로 눈짓하고 슬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조성철, 고병호학생, 무슨 일이요?》 하고 리덕구는 고르로운 목소리로 침착하게 물었다.

《선생님, 밖에 나가서… 학교주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조성철이 총명해보이는 눈을 반짝이며 얼마간 긴장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리덕구는 조용히 웃었다.

《조성철, 고병호학생! 고맙소. … 어서 자리에 앉으시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마지막 작별수업시간인데… 학생들이 빠지면 내 마음이 허전하고 또 내가 오늘 찾아온 보람도 없습니다.》 하고 리덕구는 그들에게로 굽이쳐가는 따뜻한 애정을 느끼며 말했다.

그가 어찌나 진정으로 뜨겁게 말했던지 조성철과 고병호는 불시에 눈물을 머금고 제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학생들, 수천년력사를 내려오면서 우리 조선사람들이 그랬던것처럼 우리들은 어려운 때에 자기 조국, 자기 고향을 자기의 몸으로 막아야 합니다. … 내가 이제 교단을 떠나 참가하게 될 대오에는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참된 제주도의 아들들이 대다수인데… 그들모두가 바로 그렇게 조국과 고향이 어려운 때에 몸으로 막으려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학생들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그들을 존경하고 따라배워야 합니다.》

리덕구는 교실의 매 학생들이 들은바를 가슴에 새겨둘 시간을 주려는듯이 잠시 입을 다물고 동안을 두었다. 학생들은 선생의 마지막 작별수업의 매 마디를 새겨듣고 인상깊은 선생의 얼굴모습을 가슴에 새겨두려는듯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리덕구를 쳐다보고있었다.

《학생들, 돌이켜보면 나의 어린시절과 청춘의 전반기는 망국노의 처지에서 온갖 멸시와 천대속에서 흘러갔습니다. 마지막에는 전쟁마당에 총알받이로 끌려가 개죽음을 강요당했습니다. … 그런데 청춘의 후반기인 지금 또다시 망국노의 생활을 강요당하고있습니다. 학생들, 기억해두시오. 인간의 모든 슬픔중에서 가장 쓰리고 아픈 슬픔은 망국노의 슬픔입니다!

<나라잃은 백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 말은 바로 그 아픔, 그 슬픔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가르쳐주는 신랄한 표현입니다.

학생들, 나는 망국노의 처지를 강요하는 미제침략자들과 싸우러 갑니다. <노예로 살기보다는 싸우다 죽는것이 낫다!> 이것은 벌써 기원전 노예였던 스파르타쿠스가 웨친 말입니다. 자,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고 문득 리덕구는 갈린 목소리로 말을 맺지 못했다.

《선생님!-》

학생들이 일제히 작별하려고 눈물을 머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우리는 언제… 언제 다시… 만나게 됩니까? …》 하고 한미숙이 흐느껴울면서 묻고는 머리를 떨구었다.

《오늘래일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다시 꼭 만나게 됩니다. 언젠가 우리는 서로 약속했지요. 좋은 날 좋은 때 배를 타고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장군님께 인사를 드리자고 말이요. 학생들, 잊지 않았겠지요?》

격정을 누르며 침착하게, 담담히 말하는 리덕구의 얼굴은 불그레 상기되여있었다.

《선생님! 잊지 않고있습니다!-》

학생들은 일제히 울음섞인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학생들, 눈물을 흘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희망과 굳은 결의와 의지를 가지고 웃으며 작별해야 합니다. 학생들, 그런 의미에서 내 마지막으로 학생들앞에서 싸움의 길을 떠나는 나의 심정을 즉흥시로 읊겠습니다.》

리덕구의 격한 얼굴에서 눈물이 번쩍이였다. 그러나 그는 곧 끓어오르는 격정을 누르며 몇순간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윽고 절절하면서도 비장한 목소리가 울렸다.

 

    싸움에 나선 제주도의 아들들아

    고향땅 제주도를 우리가 지키자

    우리가 아니면 그 누가 지키랴

    선조의 땅 짓밟은 침략자놈들을

    쳐부시는 싸움에 몸바침은

    사랑하는 조국위해 몸바침은 장한 일이로다

 

리덕구의 짤막하면서도 가슴치는 즉흥시 랑송이 끝나자 학생들은 모두 흐느끼며 박수를 쳤다.

《자, 이제는 헤여지자! … 앓지 말고 열심히 배우고 또 배우시오.》

리덕구는 머리를 숙여보이고 교단에서 내려 밖으로 나갔다.

《선생님!-》

《선생님!-》

학생들은 소리내여 울면서 우르르 밖으로 따라나왔다.

밖에서는 비가 쏟아져 내리고있었다. 비를 맞으며 운동장으로 걸어가는 리덕구에게 조성철과 한미숙이 우산을 가지고 달려와 씌워주었다.

《선생님, 비에… 옷이… 젖습니다. 이 우산을 가지고 가십시오.》 하고 한미숙과 조성철은 흐느끼며 울었다.

《미숙이, 성철이, 난 일없어. 한창 배우며 자라는 너희들이 비를 맞고 감기라도 들면 안된다. 고맙다.》

리덕구는 우산을 그들에게 되돌려 씌워주고 비속을 걸어갔다.

운동장으로 나온 학생들속에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울음섞인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박박 얽은 그 얼굴

    덕구 덕구 리덕구

    장래 대장감

 

리덕구는 벌써 저 멀리 뽀얀 비발속으로 사라지고있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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