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2편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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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자연풍경은 계절마다 그 어디에서나 륙지의 다른 지방에서는 볼수 없는 독특한 절경으로 펼쳐진다. 3월, 봄… 이 계절에는 이곳 특유의 남방식물계, 조류계의 번성기인데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절벽들과 흰 백사장… 한나산이 큼직큼직하게 주름지어 내려 검푸른 물결에 젖어드는 해변과 나란히 푸른띠처럼 펼쳐진 초원에는 푸른 연파의 설레임속에 불타는 춘백, 보라빛제비꽃, 하얀 들딸기꽃, 노란민들레와 붉고 하얀 동백꽃들은 류달리 진한 향기를 멀리까지 내풍긴다. 수십메터의 아득한 벼랑에서 곧바로 바다에 장쾌한 소리를 내지르며 떨어져내리는 정방폭포와 수많은 폭포들… 그 누구나 한번 보면 일생토록 잊지 못할 인상과 감흥을 자아내는 자연경치는 대자연이 창조한 신비로운 명화일것이다.

그러나 요즘 제주도사람들은 모두가 자기 고향땅의 자랑인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수하며 즐기지 못하였고 또 그럴 경황도 없었다. 제주도사람들은 화창한 봄날에 때아닌 폭설이 내린듯 한 아연실색과 불안,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괴이한 충격속에 살고있었던것이다.

섬의 어디서나 음산하고 살벌한 광경이 펼쳐지고있었다. 며칠전 미국구축함 《콜로라도》호로 륙지에서 증강해온 경찰대(경상도 철도경찰대), 서북청년단패거리들이 무리를 지어 거리와 골목, 사방을 돌아치며 온갖 악행을 서슴없이 감행하고있었다. 섬에 기여든 놈들은 마치 제 나라, 제 민족이 아닌 식민지에 상륙한 강점군처럼 제 마음대로 돌아치며 오만무례하게 섬사람들을 괴롭히며 날치였다. 놈들은 대여섯씩 무리지어 길을 메우다싶이 몰려다니면서 행인들을 못살게 굴고 유부녀와 처녀들을 희롱질했다. 가게방과 음식점에 몰려가서는 터무니없는 흥정질을 하는가 하면 술과 음식을 처먹고는 값도 치르지 않고 뻐젓이 사라지는 파렴치한짓을 눈섭 하나 까딱않고 해치우군 하였다.

예로부터 례절바르고 단결력이 강하고 성미가 만만치 않은 제주도사람들은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고 생각하였고 다음에는 실망과 단념으로 아연해하였으며 마지막에는 드디여 분격으로 단호히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초보적인 인륜도덕도 례절도 없는 놈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섬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놈들은 무턱대고 경찰서로 끌고 가 《빨갱이》로 몰아대며 승냥이무리처럼 달려들어 모두매를 안겼다.

본래 이놈들은 정신도덕적으로 타락한자들이였다. (북에서 지주, 경찰, 친일분자의 자식들로서 집과 가산을 몰수당하고 앙심을 품은채 월남도주한 놈들이였다.)

이놈들이 여기 섬으로 떠나올 때 부산항에 조병옥(경찰국장)이 직접 나타나 반공의식을 불어넣고 치외법권적인 권한까지 주었었다.

… 무자비하게 행동하라. 당신들의 과잉행동은 조금도 추궁받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동정이나 우유부단은 엄격히 처벌할것이다. 무자비성, 이것만이 제군들앞에 나선 시국의 요구이고 명령이다. 당신들 뒤에는 강대한 미군이 있음을 알고 용기를 가지고 마음놓고 행동하라! …

하여 마침내 온 제주도땅은 깡패들의 란무장으로, 무법천지로 변하고 인간이기를 그만둔 무리들이 아침부터 먹이감을 찾아 떨쳐나와 제세상처럼 돌아쳤던것이다.

그런 어느날, 오후 3시경에 고병호는 언젠가 채운바 있는 성칼사나운 말을 길들여 타고 방목지에서 돌아오고있었다. 그전같으면 의례히 신바람이 나서 봄노래를 부를 병호였지만 지금 심사가 뒤틀린 기분으로 평보로 말을 몰았다. 구좌면쪽에서 신촌리를 지나 조천면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들어서던 그는 저쪽마을 골목길에서 바다가로 나가는 낯익은 친구를 띄여보았다. 요즘 학교에도 가는둥마는둥하여 며칠째 서로 만나보지 못한 친구 조성철이였다.

《성철이!-》 하고 고병호는 기쁘게 소리치며 말을 속보로 몰아갔다.

《어, 고비호구나. 방목나갔었니?》

무척 반기는 성철의 손에는 낚시대와 다래끼가 쥐여져있었다.

《성철이, 요새 너 학교에 나가니?》 하고 말우에서 고병호가 물었다.

《응, 나가며 말며 해. 어디 학교에 나갈 흥이 나야지. 가는 곳마다 기분잡치고 분통이 터지는 일뿐이야. 퉤!-》

성철은 뿌루퉁한 얼굴로 퉤- 침을 뱉으며 사방을 두루 살폈다.

《나도 마찬가지야. 뭍놈들 지랄발광에 노상 속이 불끈거려서… 한데 너 낚시질 나가니?》 하고 고병호는 그쯘한 어깨를 쭉 펴면서 물었다.

《응, 그런데 병호, 너에게 조용히 할 말이 있어.》

조성철은 크지 않은 눈을 반짝거리며 말탄 병호에게로 다가갔다.

그럴 때 말우에서 고병호가 갑자기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말아! 이 <마비호>의 뒤발질에 골통이 깨진다.》

《너 용케 길들였구나! 한데 틀렸어. 주인의 친구도 몰라보는 <마비호>가 아니라 멍텅구리, 바보말이란 말야!》 하고 성철은 좀 떨어져서 짐짓 업수이 여기듯 픽 웃었다.

《그건 그렇기도 해. 내 이제 며칠 지나면 성철이 너에게만은 성칼사납게 굴지 못하게 해놓겠어!》

고병호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에서 훌쩍 뛰여내렸다.

《자! <마비호>! 저쪽에 가서 가만 서있어.》 하고 고병호는 말의 대가리를 툭툭 치며 다정하게 뇌이고는 곧 성철에게로 다가왔다.

성철은 경계하는 시선으로 주위를 살폈다. 얼마 멀지 않은 신작로쪽에서 뭍에서 온 낯선 경찰 몇놈과 서북청년단놈들이 잔뜩 취해서 혀까부라진 소리로 왁자지껄 떠들며 저희들끼리 다투고있었다.

《퉤!- 인간쓰레기들!》 하고 조성철은 땅바닥에 침을 뱉으며 고병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병호, 난 어제 리덕구선생님을 만났댔어.》

《뭐, 건강하시던?》 하고 고병호는 기쁨에 넘쳐 큰소리로 물었다.

《쉬!-》

조성철은 놀라듯 불시에 나직이 병호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때 그들의 뒤쪽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늙은 녀인이 나타났다.

조성철의 어머니였다.

《얘, 넌 집일을 하든가 공부를 하지 않고 또 낚시질 나가냐? … 오전에도 바다가에 나가 돌아치더니… 쯧쯧… 언제면 철이 들겠냐?》 하고 녀인은 못마땅한듯 요란스레 혀를 찼다.

《어멍, 환자가 있어서 좋은 물고기가 필요해요. 그러니 오늘만은 용서해줘요.》

조성철은 천연스레 대꾸하였다.

《원, 네가 하는 일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 글쎄 앓는 사람에게 주려고 성의로 낚시질을 하는건 좋은 일이다만. 쯧쯧…》

조성철의 어머니는 연신 혀를 차며 허리를 구부정하고 그들의 곁을 지나 집쪽으로 걸어갔다.

《성철이, 갑자기 환자란건? 난 아직까지 어머니를 속이는 너를 본적이 없는데 웬 일이냐?》 하고 고병호는 놀라워하며 주의깊이 성철을 바라보았다.

《병호, 난 어머니를 속이는게 아니야. 내 어제 리덕구선생님을 만나보았다고 했지?》

《그랬지. 그런데?》

《그런데 선생님이 퍽 수척했더라. 그렇게 탄탄하던 선생님이 글쎄 꺼칠해지고 기침까지 하는걸 보니 난 막 눈물이 나서… 아마 중요한 일로 밤에 쉬지도 못하고 너무 무리하신것 같아. 너도 선생님의 성미를 잘 알지? … 그래서 좋은 물고기라도 잡아서… 대접하려고 그래.》 하고 조성철은 눈물이 글썽해서 떠듬거렸다.

《성철이! 그 말을 왜 이제야 하니! … 좋아, 나하고 함께 바다가로 나가자. 낚시질에선 날 당할 사람이 이 근방에는 없어.》 하고 큰소리치던 고병호는 문득 성철에게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성철이! 선생님이 지금 어디 계시니?》

《쉬!- 그건 여기서 함부로 말하는게 아니야… 이제 인적없는 바다가에 나가 자초지종을 말해주지. 이건 사실 신중한 비밀이다!》 하고 조성철은 격하기 잘하는 친구 고병호의 기질을 념려하여 다짐을 받았다.

《병호, 다시말하지만 이건 부모나 그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돼. 지금 선생님은 큰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그래 알겠다. 내 이제 저 말을 집에 가져다 놓고 낚시대를 가지고 나오겠어.》 하고 말이 서있는 곳으로 가던 고병호는 문득 멈춰섰다.

《여기서 꼭 기다려야 해.》

그때 장거리쪽에서 동급생이며 성철이와 유별한 사이인 한미숙이 자기 언니와 함께 보짐을 들고 지나가다가 멈춰섰다.

《아이, 여기서 무얼 해요? 아니, 학교엔 안 나오고 낚시질을 나가요?》 하고 모가 나게 힐난조로 말했지만 그의 고운 눈은 웃고있었다.

《학교에? … 어, 집사정이 좀 있어서…》 하고 조성철은 어물어물 대꾸했다.

그러는 사이에 미숙의 언니는 먼저 가고 병호도 말을 타고 달려갔다.

《난… 혹시 어디 몸이라도 불편해서 학교에 못 나오나 하고 여간 걱정하지 않았어요.》

한미숙의 말에서는 평상시처럼 진정이 느껴졌다.

《뭐, 특별히 아픈데는 없었지만 뭍놈들 놀아대는 꼬락서니에 속이 뒤집혀 울화병을 앓았다고 할가. … 미숙이, 실은 그래서 학교에 안 나갔댔어.》 하고 성철은 솔직히 고백했다.

《아이, 지금 이 고장 사람치고 누군들 마음이 편하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한미숙의 말에는 비난이 느껴졌지만 눈은 여전히 부드러이 웃고있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조성철이네와는 달리 대대로 상업과 중농으로 여유있는 집안에서 자란 한미숙이였다. 그러나 마음이 고운 한미숙은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과도 잘 어울렸고 사심없이 도와주기를 좋아하였다. 언젠가 보고싶어하는 책을 돈이 없어 사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조성철에게 주저없이 값비싼 책을 구해준것이 인연으로 되여 그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남달리 총명하고 다정다감한 성철을 한미숙은 좋아했으며 조성철 역시 마음씨 곱고 진취적이며 정의감이 강한 미숙과 진심으로 가까이 사귀였었다.

《그렇다고 학습을 포기할셈인가요?》

《당분간…》

《당분간이 나중에는 영원히로 이어지면 어찌겠어요. 전 그게 두렵군요. 이건 저에게도 하는 말이예요. 사실 나도 지금의 환경에서는 머리가 너무 번거롭고 착잡해서 자신을 다잡기 어렵더군요.》

한미숙은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주저없이 성철에게 피력했다.

조성철은 말없이 서있었다. 그는 한미숙의 괴로운 심정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이 소란한 시절에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제주도사람이라면 누군들 마음이 편하겠는가.

《미숙! 어서 가봐. 난 이제 고병호가 오면 바다가에…》

《내보기엔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은데 무슨 일이예요? 내가 알면 안되는 일인가요?》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그저…》 하고 조성철은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였다.

《오늘은 웬 일이예요? 난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성철을 처음 봐요. 그렇군요. 그러니 지금까지 나를 믿지 않고 지냈군요. 좋아요. 그럼 난 가겠어요.》

자존심이 강하고 도고하며 성미가 드센 한미숙은 불시에 홱 돌아섰다.

순간 조성철은 당황한 기색으로 그를 막아섰다.

《서라구! 미숙이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리덕구선생님에게…》 하고 조성철은 목소리를 낮추고 사연을 그대로 토설했다.

《나도 어렴풋이 짐작하고있었어요. 좋아요. 그럼 나도 바다가에 나가 전복이랑 해삼을 건지겠어요. 해녀질은 1등급은 못되도 2등급은 되니까요.》

한미숙은 곱게 생긴 반달같은 눈섭을 쫑깃거리며 돌연 까르르 웃어댔다.

조성철은 급히 손을 흔들어대며 막았다.

《그만두라구. 병호하고 둘이서 나가도 충분해. 그리고 난 오전에 벌써 잡아다 놓은것도 있거던.》

《그러지 말아요. 나도 그 좋은 일에 한몫 끼우고싶어요. 나 역시 리덕구선생님을 존경해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존경하고있어요. 선생님은 내 일생에 잊을수 없는,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 스승으로 남아있을거예요.》 한미숙은 조성철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여기서 기다려요. 셋이 함께 바다로 나가자요.》

한미숙은 돌아서서 가벼운 걸음으로 집쪽을 향해 걸어갔다. …

얼마후 조천중학교 동급생들인 조성철과 고병호, 한미숙은 웃고 떠들며 바다가로 나갔다. 바다가에 이르자 성철과 병호는 바위가 많은 곳에 자리를 잡고 낚시대를 드리웠으며 한미숙은 거기서 보이지 않는 후미진 곳에서 잠수를 시작하였다.

그날 오후는 마침 물고기가 잘 무는 때인지 성철과 병호는 도미와 가재 등 고급어족들을 낚아냈다.

《성철이, 우리도 선생님을 따라나서자구! 리덕구선생님이 지금 무장대조직성원으로 활약한다고 하던데…》 하고 고병호는 나란히 앉은 성철에게 담찬 어조로 말을 던졌다.

《쉬!-》

성철은 즉시에 내쏘는듯 한 빠른 어조로 병호에게 주의를 주었다.

《입조심해.》

《여, 성철, 여기는 아무도 없는 곳인데 뭘 그다지나 소심해서 그러는가 말이야.》

《병호, 무슨 소릴해? 어디나 경찰놈들과 서북청년단놈들이 미친개 싸다니듯 하는걸 몰라서 그래?》

《휴!- 숨막히는군. 이건 제 고향땅에서 주객이 바뀌였으니… 정말 말못할 세상이 됐구나!》 하고 고병호는 울분을 터뜨렸다.

《병호! 참아야 할 때는 참을줄도 알아야 해!-》

《말은 옳은데. 그래 우리도 함께 총잡고 싸움에 나서겠다고 말도 못해봤단 말야! … 성철이 답지 않아. 학급에서 제일 사랑받던 제자인 네가 그래 선생님한테 말 한마디 못했다는게 무슨 꼴인가!》 하고 고병호는 참지 못하고 또다시 큰소리로 울분을 토했다.

《병호, 너무 그러지 말라구. 나도 말했어. 내가 왜 가만있었겠어. 그런데… 가만, 이크, 이게 뭐야?》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잘 들리는 귀속말로 말하던 성철은 불시에 말을 끊었다.

묵직한 도미 한마리가 낚시를 물고늘어져 낚시대가 휘청거렸던것이다.

《성철이, 그런데 어떻게 됐다는거야?》

고병호는 등이 달아서 성철의 뒤말을 성급히 독촉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엄하게 꾸중하시더군. 학생은 공부를 잘해서 민족의 인재로 준비해야 한다면서, 너희들 아니래도 제주도에는 싸울 사람이 많으니 그런 생각말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더 말을 못하게 딱 짜르더란 말야.》

성철은 낚시에 물린 큼직한 도미를 떼서 다래끼에 넣고 다시 낚시를 던졌다.

그러자 고병호는 무엇인가 못마땅한듯 성철을 조소했다.

《여, 성철! 그런다고 쉽게 물러섰단 말이야?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어쩌다 만난 기회에 끝장을 볼 때까지 들이대야지. 너는 암만 보아도 선비형이지 무사형의 사나이로 태여나지 못했어.》

《허, 네 말이 옳은지도 모르겠어. 병호, 아무튼 네 충고대로 앞으로는 무사다운 담력을 키워나가겠어.》 하고 성철은 조용히 웃으며 친구의 조소를 너그럽게 받아넘겼다.

그때 돌연 바위너머 저쪽 한미숙이 잠수질하는 곳에서 새된 녀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조성철과 고병호는 그 어떤 불길한 예감에 일시에 벌떡 일어섰다.

《무슨 일일가? 빨리 가보자구.》

조성철이 급히 그쪽으로 서둘러대며 가는데 고병호가 건너뛰듯 앞질러 나갔다.

그들이 한미숙이 잠수질하던 곳에 당도하니 술에 잔뜩 취한 서북청년단깡패 두놈이 해녀복차림의 한미숙을 가운데 세워놓고 희롱하고있었다.

《어, 몸매고운 숫처녀야! 이리 와 안겨… 내래 누군지 알아? … 억… 내래 여기 온 서북청년단 부단장이야. 내래… 고럼… 부단장이래두…》 하고 곤드레만드레 억병으로 취한 놈은 역한 술냄새를 풍기며 한미숙을 끌어안으려고 비청거렸다.

《헤… 제주도 숫처녀야! 우리 부단장님한테 안기는건… 여… 여… 영광인줄이나 알라구. 어서… 헛눈 팔지 말라.》

마주섰던 졸개놈이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분노한 조성철과 고병호가 다급히 다가서는데 문득 《더러운 개놈들!》하는 욕설과 함께 철썩- 세차게 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미숙이 다가선 코털이 구지레한 부단장놈의 상통을 힘껏 후려쳤던것이다.

《엉? 이 쌍년, 네년의 가랭이를 찢어놓겠다!-》 하고 뺨맞은 부단장놈은 독을 쓰며 사납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한미숙은 어느새 민첩하게 빠져나와 쩜벙- 바다물속으로 뛰여들었다.

《저년 잡아라! 빨갱이년이다!-》 하고 부단장놈은 발을 구르며 고함을 질러댔다.

곁달아 단원놈이 악청으로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악질빨갱이년이다!- 저년을 생포하라!-》

그러자 여기저기 바다가에 나와 돌아치던 서북청년단깡패놈들과 경찰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소란인가?》

《골수 빨갱이라도 잡았어?》

《어디 있어? … 어느 놈이야?》

모여든 놈들은 제마끔 떠들어대며 쑤얼거렸다.

《금방 바다물속으로 도망쳤어. 빨리 끌어내라!》 하고 부단장놈은 한미숙이 뛰여든 물속을 가리키며 코맹맹이소리로 고아댔다.

그러나 바다에 뛰여든 한미숙은 벌써 저 멀리에서 잠시 머리를 내밀었다가 다시 물속으로 사라지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딘가 저쪽바위너머 멀리로 빠져나간것이다.

《추악한 인간쓰레기들!》

너무도 더럽고 혐오스러워 성미급한 고병호는 종시 참지 못하고 나직이 뇌이며 이발을 갈았다.

《병호, 참아야 해. 이제 징벌할 때가 오겠지.》 하고 조성철은 귀속말로 뇌이며 병호의 팔을 붙잡고 낚시질하던 곳으로 이끌었다.

그들이 몇걸음 옮기는데 등뒤에서 부단장놈이 코맹맹이소리로 꽥 소리지르며 멈춰세웠다.

《야!- 너희들 이리와.》

《입건사를 잘하시우. 누굴보고 야- 야 하오. 우리가 당신의 하인이우?》 하고 성이 난 고병호가 사납게 쏘아붙였다.

《저 새끼래 빨갱이 아니야?》

시퍼렇게 부어오른 부단장놈이 대번에 눈을 부라리며 단원 몇놈을 끌고 징겅징겅 다가왔다.

순간 조성철은 고병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자제하라는 뜻으로 눈을 끔쩍이고 그놈들에게 마주 걸어갔다.

《부단장님, 왜 그러시우? 우리를 찾았소?》 하고 조성철은 짐짓 공손한 어조로 물었다.

《내래 너희놈들을 찾았어. 너희들 이자 그 해녀년이 어디 사는지 알고있지?》

부단장놈은 독살스럽게 되물었다.

《글쎄요. 제주도비바리는 분명한데…》 하고 조성철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모호하게 대꾸하였다.

《뭐? 비바리란 무슨 소리야?》

부단장놈은 바투 다가서며 피발이 선 눈을 부라렸다.

《아, 영 언어불통이군. 뭍에서 처녀라는 말을 제주도에서는 비바리라고 한다오.》 하고 성철은 깨우쳐주며 이죽거렸다.

《어… 그런가. 내래 한번 결심하면 못한 일이 없는 평북도에서 소문난 사나이야. 저 빨갱이년을 이제 꼭 붙잡아내겠어. 그러니 너희들도 협력하는게 좋아. 만일…》 하고 부단장놈은 몰풍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내래 평북룡천 디주(지주)아들이야. 룡천바닥 당마당(장마당), 덩거장(정거장)에서 유명한 쌈패 두목이였어. 이자 달아난 빨갱이년을 잡게 해주면 너희들도 반공용사로 상부에 보고하겠어.》

그 순간 어떤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는지 성철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고병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귀속말로 빠르게 몇마디 퉁겨주었다.

그러자 성이 나서 눈살이 꼿꼿했던 고병호의 눈에서도 문득 흥겨운 불꽃이 번뜩였다.

고병호는 성철에게 머리를 끄덕여보이고 낚시대며 잡은 물고기들을 가지고 먼저 떠나갔다.

조성철은 그가 떠나가자 즉시 부단장에게 다가가 자기와 함께 가면 그 《빨갱이비바리》의 행처를 자세히 알려주겠노라고 장담해나섰다.

서북청년단 부단장놈은 기분이 좋아서 동가슴을 불쑥 내밀며 지껄여댔다.

《좋아, 좋아… 내래 약속대로 너를 제주도 미군정청에다 빨갱이숙청에 공적이 있다고 통보하겠어. 그러면 너에게 상장과 상금이 내려올게다. 이건 틀림없는 약속이다.》

《그래요? … 거 정말 해볼만 하구만요. 자, 그럼 어서 가자구요.》

조성철은 히죽히죽 천연스레 웃으며 앞장서 걸어갔다. 기분이 들뜬 부단장놈이 두놈의 서북청년단깡패를 달고 뒤따랐다.

얼마후 그들은 한나산기슭의 외진 마을에 이르렀다. 그 외딴 마을의 무성한 숲근처에는 고병호가 이미 성칼사나운 그 유명한 말을 타고 기다리고있었다. 말우에 앉은 그의 손에는 묵직한 말채찍이 쥐여져있었다.

성칼사나운 말은 휘우듬히 목을 굽혀 앞가슴근육을 문지르고있었다.

조성철은 여전히 능청스럽게 히죽히죽 웃으며 부단장놈에게 알려주었다.

《부단장, 저 사람이 그 빨갱이비바리의 집으로 안내하리다. 부단장님의 빰을 후려친 그…》

조성철의 조소에 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칼사나운 말우에 떡 버티고 앉은 고병호가 소리쳤다.

《부단장님. 어서 가까이 오시우. 내가 곧 안내하겠소.》

《좋아, 아주 좋단 말이야. … 어느 집인가?》

신바람이 나서 동가슴을 불쑥 내밀고 어깨를 실룩거리며 부단장놈은 고병호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로 다가서는 순간 갑자기 와당탕 딱!- 성칼사나운 말의 뒤발질에 면상을 정통으로 채인 부단장놈은 으악!-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허궁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졌다. 눈깜박할 사이에 벌어진 통쾌한 광경이였다. 따라나섰던 서북청년단깡패 두놈은 후닥닥 질겁하여 튕기듯 달아났다.

순간 말우에서 고병호가 말채찍을 훌쩍 던지며 통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성철이!- 받아라!-》

조성철은 고병호가 던져준 말채찍을 받아쥐자마자 곧 쓰러진 서북청년단 부단장놈의 몸에 채찍을 날렸다.

《엣다, <상> 받아라!- 이놈아, 이건 네놈에게 모욕당한 제주도비바리 한미숙의 몫이다. 엣다 <상> 받아라! 이건 내 몫이다. 자, 또 받아라! 이건 내 친구 고병호어른이 네놈에게 주는 <상>이다. 또 이건 제주도백성들이 네놈에게 내린 <큰상>이다.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말채찍이 련속 획획 울었다. 퍽-퍽 매가 들어가 박혔다. 그 다음 조성철은 울퉁불퉁한 굳은 땅바닥에 부단장놈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발뒤꿈치로 짓밟았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조성철은 또다시 말채찍으로 후려치고 또 후려쳤다. 말발통에 면상을 얻어맞고 연방 내리치는 말채찍에 서북청년단 부단장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실신한듯 꿈틀거렸다.

《저놈들 잡아라!-》

《빨갱이폭도놈들이다!-》

서북청년단깡패 두놈이 달려들지는 못하고 저만큼 떨어져 서서 고함을 지르며 소란을 피우고있었다.

《이 인간쓰레기놈들아!- 채찍맛을 보려거든 어서 이리 오라!-》 하고 조성철이 맞받아 소리쳤다.

《지독한 빨갱이놈들아! 네놈들을 꼭… 언제든지 찾아내서 사지를 찢어놓을테다!-》

서북청년단깡패 두놈은 기죽은 목소리로 제법 을러댔다.

《자, 우리는 간다. 우리를 찾으려면… 우리 집주소를 알려줄테니 그리로 오라. 우리 집주소는 제주도 한나산 백록담이다!-》 하고 조성철과 고병호는 함께 말을 타고 유유히 숲속으로 사라졌다.

말발통에 채여 이발들이 박살나고 상통이 으깨여져 만신창이 된 부단장놈은 그 어떤 보기 흉한 벌레처럼 울퉁불퉁한 땅우에서 실신한채 꿈틀거리고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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