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2편 봉화

4

 

밤은 조용히 지나가고 4월 3일, 새날이 시작되고있었다. 하늘에는 희미한 그믐달이 떠있을뿐 사위는 고요하였다.

희끄무레한 달빛에 멀리 방목초원이 바라보였고 그뒤의 펑퍼짐한 언덕들의 상록수들이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번쩍이였으며 그 너머에는 이른 새벽의 고요속에 잠든 우중충한 한나산이 우렷이 바라보였다. 전날(4월 2일)에 찬비가 내린 뒤여서 새벽날씨는 다소 산산하였다. 하늘에 멜대모양으로 구붓하니 걸려 마치 흐르는듯 한 저 희미한 빛줄기는 아마 은하수일것이다.

제주도인민유격대 3.1지대장인 리덕구는 옷자락밑으로 전지불빛을 가리우고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1시 30분을 가리키고있었다.

이제 30분이 지나면 저기 한나산 산정에서는 무장봉기의 시작을 알리는 봉화가 타오를것이다. 한나산 왕관릉에서 이 주봉화가 타오르면 잇달아 삼각봉과 새별오름, 윗새오름, 대수산봉과 방아오름에서 같은 시각에 불길이 타오를것이다. 그 봉화들을 신호로 놈들의 경찰서, 서북청년단 숙소, 악질주구기관들에 대한 무장습격이 개시될것이다.

리덕구는 지금 3. 1지대의 선발된 전투원 50명을 인솔하고 제주시내에 들어와 신작로주변에 잠복하고있었다. 3. 1지대의 다른 대원들은 각기 분담된 조천면과 구좌면의 지정된 지점들을 차지하고 봉화신호를 기다리고있었다. 한편 김봉천의 2. 7지대는 애월, 한림, 대정일대에, 조몽구의 4. 3지대는 서귀, 남원, 표선, 성산일대에서 봉화신호를 기다리고있을것이다.

이제 반시간이 지나면 봉화는 타오를것이고 어둠에 잠긴 온 제주도에는 가증스런 놈들의 아우성과 비명소리가 터져나올것이다.

해방후 남조선인민들의 정의와 민주주의, 조국통일을 위한 첫 무장봉기의 날로 력사에 기록될 4월 3일 새벽 2시는 각일각 다가오고있었다. 바야흐로 다가오는 무장봉기는 수천년세월 면면히 이어온 민족의 혈통과 이 땅의 지맥을 끊으려고 날뛰는 외세의 포악한 힘과 폭력, 전횡에 대한 이곳 제주도인민들의 장한 투쟁과 항거의 웨침으로 될것이며 굴복하지 않는 인민의 정의의 의지의 거세찬 분출로 될것이다.

제주시거리는 여전히 고요하였다. 어디선가 술취한 주정군의 중얼대는 맥빠진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새벽닭이 홰를 치며 울었다.

드디여 기다리던 2시, 한나산에서 마침내 봉화가 타올랐다. 그 세찬 불길은 어둠을 밀어제끼며 하늘높이 솟구쳐올랐다. 뒤따라 여러 봉우리들과 오름들에서 일시에 무장봉기개시의 불길이 활활 솟구쳤다.

《적경찰서를 향해 돌격 앞으로!-》 하고 리덕구는 서리발이 날리리만큼 분노한 목소리로 웨치며 새벽어둠을 박차고 적경찰서를 향해 맨 앞장에 서서 내달렸다. 뒤따라 대원들이 잠복진지에서 일어나 달려나갔다.

탕!- 새벽대기를 찢으며 총성이 울렸다. 리덕구의 총탄에 맞아 경찰서정문 보초놈이 너부러졌다. 동시에 대원들이 총을 쏘며 불의에 경찰서로 달려들었다.

전화직일병놈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수직근무로 대기하고있던 경찰놈들이 순식간에 황천객이 되였다. 제주시내 사방에서 유격대원들의 총성이 울렸다. 경찰서, 서북청년단 숙소, 괴뢰기관들과 단체들의 사무소가 녹아났다. 습격은 너무도 불의적이여서 적들은 반항도 못해보고 순간에 제압되였다. 시내 여기저기서 벙긋벙긋 불빛이 번쩍이고 총성이 터졌다.

아우성소리, 비명소리… 불과 몇분사이에 제주시는 무장봉기자들의 손에 완전히 장악되였다.

《계획한대로 무기고와 탄약고의 무기와 탄약들을 즉시 마차에 싣고 기지로 철수하시오.》 하고 지대장 리덕구는 후방조 성원들에게 명령했다.

후방조 성원들이 대기해놓은 마차에 경찰서의 무기와 탄약들을 싣고 한나산으로 들어가는 산길쪽으로 달려갔다.

제주경찰서를 완전점거한 리덕구지대장이 인솔한 습격조는 즉시 수색작전을 벌리고 적통치기관들에 돌입하여 문건들을 불사르고 건물에 불을 질렀다. 제주시는 삽시에 이곳저곳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집에 있던 경찰서장놈과 미제앞잡이놈들은 어디론가 황급히 도주하여 숨느라 정신없이 돌아쳤다.

제주시를 얼마동안 완전장악하고 성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대원들은 철수시간이 되자 리덕구지대장을 따라 약속된 집결장소로 향했다. 기세충천한 대원들은 의기양양하여 질서정연하게 시내에서 철수하였다. 그들이 1차집결장소에 도착하니 조천, 구좌면일대에 진출했던 대원들전체가 이미 당도하여 대기하고있었다. 그들은 숲속에서 유쾌하게 떠들썩 웃어대며 자기들이 진행한 전투에 대해 이야기하고있었다. 구좌면쪽으로 나갔던 언변좋은 한 대원이 무슨 말을 하였는지 그쪽에서 또다시 와하하- 웃음이 터져올랐다.

날은 이미 환히 밝았고 숲속의 대기는 수정처럼 맑았다. 숲속 멀리, 가까이에서 잠을 깬 새들이 푸르릉 푸르릉 날며 우짖고있었다.

《각 중대장동무들은 중대인원들을 점검확인하고 나에게 보고하시오. 지대는 곧 본부가 있는 2호지점으로 행군하게 되오. … 아침식사는 행군도중 휴식시간에 조직하도록 하겠소.》 하고 지대장 리덕구는 중대장들에게 지시했다.

얼마후 중대장들이 달려와 점검결과 이상이 없다고 리덕구에게 기세찬 어조로 보고하였다. 그런데 웬 일인지 군사훈련때 수류탄투척명수로 소문났던 목수출신의 중대장 김영찬이 맨 나중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점검정형을 보고하려고 다가왔다. 그의 이마에는 밤알만 한 혹이 시퍼렇게 솟아있었다.

《여보, 영찬중대장, 그 이마에 돋은건 뭐요? 혹시 놈들에게서 얻어맞은건 아니요?》 하고 리덕구는 다가온 그에게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김영찬은 심드렁해서 태연히 응수했다.

《지대장동무, 뭐 별게 아닙니다. 그저 재수가 없어서 그만… 글쎄, 조천면 경찰지서 무기고에 뛰여들어가다가 문턱에 쪼았지요. 키는 왜 남보다 덜썩 커가지고 이 고생 아닙니까.》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리덕구도 하는수없이 미소했다.

《여보, 영찬동무, 재수없는 날이여서도 아니고, 키가 남달리 커서도 아니요. 침착하지 못한탓이요. 동무는 늘쌍 덤벼치면 꼭 불상사가 생긴다고 자신이 말하지 않았소. 명심하오. 매사에 침착, 침착 또 침착하시오. 중대인원들은 별다른 이상없소?》

김영찬중대장은 시무룩이 웃으며 이마의 혹을 슬슬 쓰다듬으며 말이 없었다.

《뭐, 부상당한건 유일하게 중대에서 나 혼자인데… 우리 중대에는 대원 3명이 오히려 불어났습니다.》

《여보, 그건 무슨 소리요? 대원이 셋씩이나 늘어나다니?》 하고 리덕구는 종잡을수 없는 영찬중대장의 보고에 의아하여 물었다.

그랬으나 중대장 김영찬은 씨물씨물 웃으며 천연스레 대꾸했다.

《글쎄 말입니다. 조천면에서 철수할 때 보니까 보지 않던 세명의 새파란 청년이… 그중 한명은 처녀인데 우리 대오에 끼워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무기도 없이 죽창을 들고 말입니다. 그래서 동무들은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글쎄 리덕구지대장을 잘 안다고 막 사정하기에 할수없이 여기까지 함께 행군해왔습니다.》

《영찬중대장! 경각성도 없고 규률도 없소? 신원확인도 없이 본인의 말만 듣고 대오에 세웠단 말이요?》 하고 리덕구는 엄하게 추궁했다.

《그러고보니… 제가 잘못한것 같습니다. 날이 채 밝기 전에는 어두워서 몰랐고 날이 밝은 다음에 알고 따지고드니 지대장동지를 잘 안다고 사정하기에 제가 그만 인정에 지고말았습니다. 이제 당장 가서 쫓아보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 하고 저쪽 풀에 덮인 오솔길쪽에서 환성을 지르며 새파랗게 젊은 애숭이청년 3명이 일시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려왔다. 보니 그들은 다름아닌 조천중학교 학생들인 조성철과 고병호, 한미숙이였다.

《아니, 너희들이! 학교에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너희들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느냐?》

리덕구는 오랜만에 만나는 제자들이 더없이 반갑기도 하고 한편 놀랍기도 하여 큰소리로 웨치듯이 물으며 성큼성큼 그들에게로 마주 걸어갔다.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조성철, 고병호, 한미숙은 달려와 굽석 머리숙여 인사하였다.

《그래, 보는것처럼 난 별고없었다. 한데 갑자기 너희들은 웬 일이냐?》

《선생님, 우리들은 선생님과 함께 싸울 결심을 하고 이렇게 따라나섰습니다. 저희들은 이미전부터 서로 약속하고 산으로 오를 준비를 갖추고있었는데 때마침 오늘 놈들을 족치는 전투가 있는 좋은 기회가 와서 이렇게 따라나선것입니다.》 하고 일동을 대표하여 조성철이 반가움과 기쁨으로 눈을 빛내이며 학교에서처럼 명확하고 잘 울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헛배우지는 않았구나! 기특하다! 선생님은 기쁘다. 너희들은 공부도 남달리 잘하고 품행도 훌륭한 학생들이였지!-) 하고 리덕구는 마음속으로 더없이 흐뭇해하였으나 말은 다르게 하였다.

《안된다! … 너희들은 공부를 계속해서 민족의 인재로 자라야 해. 그리고 이 제주땅에 너희들 아니고도 총잡고 싸울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돌아가라. 이건 선생님의 부탁이다.》 하고 리덕구는 교단에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그러자 얼굴이 발그레 상기된 한미숙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드센 성미그대로 열정적인 어조로 사정하였다.

《리덕구선생님! 결심품고 나선 우리들을 제발 쫓지 말아주십시오. 저 역시 제자로서 선생님에게 드리는 부탁입니다. 제주도인민유격대에서 저희들을 가장 잘 알고 리해하여주실분은 바로 선생님이 아닙니까.》

《그러지 말아라. 바로 너희들을 가장 잘 알고있는 나이기에 쫓아보내는것이다. 미숙학생, 더우기 너는 녀성의 몸이고 집에서 얼마나 걱정이 많겠느냐. 보나마나 네 성미에 부모들의 승낙도 받지 않았을터이고… 또 성철이는 늙으신 홀어머니를 모시고있지 않느냐. 돌아가라. 다시한번 선생님이 당부한다. 너희들은 잘 알지 않느냐. 내가 두번 당부하면 그것으로 끝난다는것을, 돌아가라.》

《선생님!-》

《리덕구선생님!-》

《안된다, 돌아가라.》 하고 리덕구는 엄하게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말하면 난 너희들을 그지없이 기특하게, 장하게 여긴다. 고향땅을 짓밟는 미제와 매국노들을 쳐부시는 싸움에 나서려는 너희들의 그 정의로운 마음을 난 귀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공부를 더 많이 하는것이 지금 더 귀중한것이다. 공부는 때를 놓치면 안된다. 내가 언젠가 말했었지. <소년은 늙기는 쉽지만 배우기는 힘들다.>는것을… 자, 됐다. 이제는 헤여지자.》

그런 다음 지대장 리덕구는 김영찬중대장을 소리쳐 불렀다. 그가 달려오자 리덕구는 단호히 명령했다.

《중대장동무, 동무가 직접 이 세 학생들을 무사히 길가에까지 데려다 주고 곧 돌아오시오.》 하고 리덕구는 돌아서서 휴식하고있는 대원들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얼마후 대오는 다시 2호지점을 향해 출발했다. 잡관목을 헤치고 계곡을 지나 산을 넘어 행군하던 대오는 계획대로 잠시 휴식하며 아침식사를 하였다. 철죽나무, 키낮은 소나무밑에서 유쾌히 웃고떠드는 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주위에는 살진 굵은 고사리들과 표고(참나무버섯)들이 사방에 자라고있었다.

아침식사를 하며 휴식하고있는 소나무숲속으로 《지대장동무 어디 있는지 모르겠소?》 하고 키가 크고 체격이 황소같은 사람이 큰소리로 말하며 다가왔다. 유격대본부의 후방을 책임진 리좌구였다. 그는 이번 무장봉기를 앞두고 림시로 3. 1지대에 내려와있었다.

《저기 3중대와 함께 식사중입니다.》 하고 당돌한 성격의 한 대원이 빠른 어조로 알려주었다.

《알겠소.》

리좌구는 큼직큼직한 걸음으로 3중대가 식사하고있는 등성이너머로 갔다. 거기에 리덕구지대장이 대원들과 마주앉아 식사하고있었다.

《지대장동무!-》

《네, 무슨 일입니까? 식사는 했습니까?》 하고 리덕구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례절있게 물었다.

《이제 하겠소. 한데 이거 지대의 인원이 적지 않게 많아졌구만. 그래서 식사공급량이 무척 늘어났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소?》

《특별히 이상할것은 없을것 같습니다. 아마 제주읍과 조천, 구좌면에서 전투를 끝내고 철수할 때 그곳의 청년들이 자원해서 중도에서 따라나섰기때문일겁니다.》 하고 리덕구는 그를 설득시켰다.

《참, 그렇겠군. 알겠소. 어서 식사하오.》

리좌구는 기분좋게 싱긋이 웃으며 후방조가 있는 곳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식사를 끝내고 출발을 앞둔 때 리덕구는 중대들을 돌아보았다. 그의 예측대로 각 중대에는 제주시와 마을들에서 자원하여 따라나선 청년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지대장 리덕구가 놀란것은 내려보낸것으로 알고있던 조성철, 고병호, 한미숙이 그대로 대오안에 남아있는것이였다.

지대장 리덕구는 곧 중대장을 불렀다.

《영찬중대장!-》

《네!-》 하고 대원들속에서 껄껄 웃으며 무슨 롱담인가를 하고있던 중대장 김영찬은 벌떡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왔다.

리덕구는 소나무에 기대여서서 말없이 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지대장동무, 무슨 일이라도…》

《동무는 왜 내가 준 명령을 집행하지 않았소? 그 학생들을 왜 돌려보내지 않았는가 묻는거요.》

《저… 지대장동무, 사실은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중대장 김영찬은 여전히 비위좋게 벌씬벌씬 웃으며 천연스레 대꾸하였다.

《영찬중대장! 동무는 명령을 흥정하는 버릇을 언제 배웠소?》 하고 리덕구는 엄하게 추궁하며 다름아닌 그의 눈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지대장동무, 흥정하는게 아닙니다. 제가 직접 책임지고 산밑까지 내려가 돌려보내고 돌아오는데… 슬금슬금 뒤따라 오는걸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만만찮게 뻗치는데… 저도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만… 일은 그렇게 되였습니다.》

김영찬은 흔연스레 변명하며 어쩔수 없었다는듯 두팔을 벌려보였다. 순간 리덕구는 자기도 모르게 어처구니없어 웃고말았다.

《동무도 참… 좋소. 내가 내려보내겠소.》 하고 리덕구는 혼자소리처럼 나직이 뇌였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렇지만 아마 그 애숭이청년들의 기세를 꺾구 마을로 내려보내기는 조련치 않을것입니다. 만만치 않은 성격의 제주도내기 녀석들인걸요.》

김영찬중대장은 시커먼 눈섭을 움씰거리며 씨물씨물 웃고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어서 그 학생들을 나에게로 보내시오. 대오는 20분후에 출발하겠소.》 하고 명령조로 말한 리덕구는 짐짓 엄한 기색을 지었다.

《돌려보내기가 조련찮을거라구? 만만치 않은 제주도내기 청년들이란 말이지.》 하고 리덕구는 방금 영찬중대장이 한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여보았다. 기쁘기도 하고 어딘가 가슴이 쓰리기도 하였다.

리덕구는 학생들이 마주오는것을 띄여보고 성큼성큼 마주 걸어나갔다.

리덕구의 노한듯 한 목소리가 울렸다.

《너희들은 뭐냐? 내가 너희들을 잘못 가르쳤구나! 선생님의 말도, 지시도, 당부도 막무가내로 듣지 않는 너희들을 내가 배워줬단 말인가!》

세 학생은 잠잠히 머리를 숙이고 서있었다. 그들은 꼭같이 흥분한 기색이였으나 여전히 머리를 숙인채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왜 말들이 없느냐? 나는 너희들을 가르친 선생이고 너희들은 내가 배워준 학생들이 분명한가 묻는다.》 하고 리덕구는 꾸짖듯이 엄하게 물었다.

《네, 저희들은 리덕구선생님의 제자들이 옳습니다.》

세 학생은 일시에 번쩍 머리를 들고 주저없이 열기있게 응답했다.

리덕구는 그들의 대답이 끝나자 동안을 두지 않고 즉시 다그치듯 물었다.

《그런데… 내가 너희들을 그동안 선생님의 지시나 당부도 거역하는 그런 학생으로 가르쳤는가? 이 물음에 대답해보아라.》

《선생님! 우리는 지금 선생님이 가르쳐준대로 행동하고있습니다. 선생님은 언제 어느곳에서나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는 맨몸으로라도 총든 적들앞에 서슴없이 나설수 있는 강한 의지와 지식을 가진 참된 인간이 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지금 그렇게 행동하고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특별히 많이 받아온 학생으로서, 제자로서 선생님에게 진실을 말씀드리는것이니 버르장머리없다고 욕하지 마십시오.》 하고 주저없이 눈섭 하나 까딱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조성철의 까만 눈은 정열로 불타듯 번쩍거리고있었다.

순간 리덕구는 불시에 가슴이 뭉클하여 잠시 말없이 서있었다.

(많이 자랐구나! 성철이!)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옳고 정당한것에 대해서는 황금이나 그 어떤 권력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고 늘쌍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부모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집을 떠났어요.》

한미숙의 목소리는 열기를 띠고 당장이라도 쌓이고 맺힌 감정의 오열을 터뜨릴것 같았다. 뒤따라 성미급한 고병호가 맵짠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저에게 무모한 모험, 쓸데없는 용감성, 남들에게 보이려는 용감성은 용감성이 아니라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남들앞에서 자기의 용감성이나 시위하자고 대오를 따라나선것이 아닙니다.》

돌연 리덕구는 껄껄 웃으며 그들을 와락 끌어안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 그래… 그래야지. 정말 모두 컸구나! 하지만…)

허나 리덕구는 여전히 엄한 기색을 허물지 않고있었다.

《안된다. 너희들의 전투장은 학교이고 학습이다.》

《선생님!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시간에 온 학급이 울었습니다. 선생님의 일생소망은 교사가 되는것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째서 총을 잡았습니까? 놈들이 선생님의 소망을 빼앗았지요. 우리도 배움의 교실을 빼앗겼습니다.》 하고 성철은 격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교실을 빼앗기다니?》

리덕구는 놀라듯 빠르게 물었다.

《선생님! 저희들 셋은 수배대상이여서 학교에 나가면 체포됩니다.》 하고 대꾸한 조성철은 서북청년단 부단장놈을 죽탕치듯 조겨댄 자초지종을 리덕구에게 술회하였다.

(음… 준엄한 시절이니 학생들까지도…) 하고 리덕구는 무거운 얼굴로 말없이 서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출발준비를 끝낸 대오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련재

댓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7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