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1편 인천에서

5

 

꽈광, 꽝 꽝 꽈당당…

넓은 인천부두에 눈먼 포탄이 날아와 터지기 시작하였다. 콩크리트바닥에서 터지는 포탄이라 그 폭발력은 몇배로 강했다. 포격에 부서져나가는 콩크리트쪼각도 파편으로 변했다. 마구 쏘아대는 함포탄인지라 부두고 바다고 산기슭이고 가리지 않았다. 물기둥이 솟구치는 바다는 물보라를 날리며 죽가마끓듯 했다.

인천 내항의 안침진 곳에서 배수리를 하던 해병들은 쏟아지는 물벼락과 파편, 흙의 세례를 피해 기슭에 파놓은 대피호에 들어갔다.

누군가가 온몸에 들씌워지는 흙먼지를 털며 투덜거렸다.

《개자식들, 쇠가 그렇게도 많은가. 자갈밭에서 돌팔매질하듯 하누만.》

나이가 들어보이는 전사가 웅뎅이에 기대여앉아 셈평좋게 한마디 했다.

《계속 퍼부으래, 몽땅 걷어다 우리 용광로에 쓸어넣어 강철로 꽝꽝 뽑아내지 않나. 이게 불로소득이란게야.》

수리하던 배 가까이에서 함포탄이 터졌다. 물기둥이 솟구치자 수리를 끝내가던 배가 뒤집힐듯 요동쳤다.

《저런?!》

경악에 가까운 부르짖음이 동시에 울렸다. 한 해병이 달려나가려는것을 하명찬이 끄당겨앉혔다.

《어쩌자구 그래?》

《배를 살려야지요.》

《이런, 함포탄이 비오듯 하는데 어떻게 배를 살린다는거야? 두팔을 벌리고 포탄을 막아내겠다는건가?》

여느때같으면 와- 웃음이 터졌겠으나 말하는 해병의 목소리는 철판을 울리듯 떨려나 다른 해병들의 숨소리까지 거칠어지는것이 알렸다. 그것은 자기들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는데 대한 울분이였다.

며칠째 해오는 배수리이지만 좀처럼 일자리가 나지 않았다. 거의 고쳐놓으면 함포탄이 날아와 부셔놓군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배를 수리해본 경험이 없는지라 채정보에게 매달려 하나에서 열까지 물어보군하였다.

채정보는 늘 강조했다.

《버릴 배는 한척도 없소. 이제부터는 우리모두가 배무이공들이요. 병사가 싸움을 하자면 병쟁기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전투무기는 배요. 신심이 중요하오. 우리에겐 이미 우리의 손으로 함선을 건조한 경험이 있소. 수리나 하는건 문제될것이 없소. 크고작은 배를 다 수리할수 있단 말이요. 큰 배들은 많은 기뢰를 실을수 있으니 좋고 작은 배들은 기뢰 한두개라도 실을수 있으니 힘을 내여 일손을 다그칩시다.》

배수리전투는 그야말로 생소한 땅에서 집짓기였다. 바다기슭에 있던 상가대들도 포탄에 부서져서 이젠 포탄을 피할수 있는 내항쪽의 간석지에 모래가마니를 쌓고 그우에 아직 배라고 말할수 없는 나무형체를 놓고 일을 시작하는데다 형체없이 파손된 고기배며 짐배들은 룡골과 륵골까지 갈아대다싶이 하였다.

한편으로는 윤지문이 감추어두었던 기관부속을 맞추어 움직이게 만든 두척의 배와 수리한 돛배들과 노요선들로 신미도, 덕적도, 굴업도와 같이 가까운 섬의 바깥쪽으로 기뢰를 부설하기 시작했다.

부족되는것은 역시 배였다. 낮과 밤으로 페물이나 같은 배들을 수리한다고 하지만 계속 함포세례를 받고보니 피해가 적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하명찬이 상부에 제기하여 경비함이나 우리 해군들이 장비하고있는 함선들을 받아오자고 하였다가 채정보로부터 눈물이 쑥 나오게 욕을 먹었겠는가.

대패며 자귀와 끌, 톱 같은것도 자체로 해결해야 했다.

얼마전에 채정보는 인천시내에서 옛 동창인 림종훈을 찾아볼가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헤여진지가 20여년이나 되였으니 한번 꼭 만나보고싶기도 하였고 만나면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수도 있을것 같아서였다.

련락병을 시켜 이곳 주민들에게 두루 물어보게 하니 림종훈은 시내에 집이 있었고 전쟁전까지도 여기서 선박수리소를 운영하였다고 하였다. 전쟁직후 선박수리소가 미군비행기의 폭격을 맞았는데 만신창이 된 현장을 돌아본 뒤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것으로 보아 《국군》을 따라 남쪽 어디론가로 떠나가버린것 같다는것이였다.

(아무러면 림종훈이가 적들을 따라갈 정도로 변질이 되였을가?)

채정보는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상선학교시절 종훈은 배멀미를 이겨내지 못해 고생을 한 약질의 사나이였다. 동창들이 달아준 별명은 《백면서생》이였다.

언제보나 낯이 헐끔하고 양기가 부족했지만 마음은 착하고 우애심이 깊어 채정보와 각근하게 지냈다. 이를테면 정보는 손우의 형처럼 종훈을 돌봐주고 보호해주었다고 할수 있었다.

종훈이가 이 학교에 들어온것은 넓고넓은 세계 5대양을 횡행해보겠다는 젊은이다운 포부때문이라기보다도 자기뒤를 잇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뜻을 차마 거역할수가 없어서였다.

그래선지 졸업후에도 배사람이 되지 못하고 뭍에서 아버지를 도와 낡은 배를 상가대에 끌어올려 수리하는 기술자노릇을 하게 되였다.

채정보가 상선을 타고 인천항구에 들렸던 길에 친우를 만나보러 간적이 있었다.

그때 림종훈은 작고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선박수리소를 운영하고있었다.

종훈이 현장에 나갔다기에 찾아 나가보니 종훈은 허름한 작업복을 걸치고 배기관실에서 기술자들과 더불어 기관을 뜯어놓고 손에 기름칠을 해가면서 고장개소를 찾고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나 회포를 나누자고 찾아갔던 채정보는 자기도 팔을 걷고 달라붙어 그와 함께 기관을 수리하느라고 그날 해를 다 보냈다. 저녁이 되자 채정보가 부랴부랴 항으로 나가 상선에 오르게 되여 그와 미진한 이야기는 다 나누지 못했지만 친우와 함께 일하면서 보낸 그 반나절은 지금도 아름답게 추억되군 하였다.

그렇게 친근하고 마음이 맞던 림종훈이가 리승만이를 따라갈 정도로 세상일에 암둔해졌거나 변질이 되였다는것이 인차 믿어지지 않았다.

림종훈이 아직 시내에 남아있을수도 있지 않을가? 그렇다면 혹시 친구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항으로 달려나올수도 있고 자기 수리소를 살려보려고 바다기슭에 나와 손에 일거리를 잡았을수도 있을것이였다.

대체 종훈이가 어떻게 되였단 말인가?

그러나 채정보는 이 드바쁜 전쟁의 와류속에서 옛친구 생각에만 옴해있을수가 없었다.

그는 해병들을 배수리에로 불러일으켰다.

《항일유격대원들이 맨손으로 연길폭탄을 만들던 정신으로 해봅시다. 야장간을 꾸려서 필요한 공구를 벼려내면 되오. 전쟁마당에서야 흔한게 강철인데 불속에서 녹신녹신 안해지는게 있소? 무엇이나 만들수 있지.》

백두밀림속의 병기창에서처럼 쇠를 녹이고 두드려 배못이며 공구들을 만들었다.

채정보는 일판이 커질수록 초조하게 윤지환을 기다리고있었다.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그가 배수리의 기술적지도를 맡아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윤지환은 성미가 과격한편이지만 손탁이 세서 사람들을 휘동하는 일을 잘했다.

요즘 채정보는 눈코뜰 새가 없었다.

방금전에도 채정보가 배에 필요한 자재를 구해보자고 나간 사이에 또 함포사격을 받은것이였다.

적들의 함포사격이 끝나자 해병들은 온몸에 흠뻑 들씌워진 흙먼지를 털며 일어섰다.

《다친 사람들이 없소?》

하명찬이 어깨의 흙먼지를 툭툭 털며 소리쳤다.

《없습니다!》

입에 들어간 먼지를 퉤퉤 뱉기도 하고 눈굽을 닦기도 하는 속에서도 례사로이 울리는 물음과 대답이였다.

《에, 이건 때없이 제멋대로 쏘아대니 생산계획을 할수가 있나!》

《동무가 놈들한테 가서 시간을 약속하지 그래.》

해병들은 웃고떠들며 다시 배수리에 달라붙었다.

이때였다. 무전실쪽에서 리해철이 나타났다. 그는 맨머리바람으로 손에 든 종이장을 흔들며 뛰쳐나왔다.

작업장이 떠나갈듯 웨쳐대는 짜랑짜랑한 고함소리에 배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과 기슭에 앉아 나무배에 박을 칠 삼실을 손질하던 해병들이 고개를 들었다.

《저 친구 왜 저래?》

《돌지 않았어?》

모두 해철의 귀염성스러운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짓는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하명찬이 누런 삼먼지로 뿌얘진 군복을 털며 스적스적 그리로 다가갔다.

《그건 뭐야?》

하명찬이 험한 큰 손을 내밀자 리해철이 눈이 올롱해져서 전신문을 쥔 손을 등뒤로 가져갔다. 그제야 전신문은 꼭 대좌동지에게만 보여야 한다는 엄격한 규정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안됩니다.》

그 바람에 웃음이 터졌다.

마침 그를 곤경에서 구원해주는 귀인이 나타났다.

어디서 구했는지 어깨에 걸치고오던 바줄퉁구리를 포탄에 파헤쳐진 흙무지에 내려놓으며 채정보가 말했다.

《전신문을 가져오오.》

리해철의 손에서 전신문을 받아읽던 채정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동무들, 우리 어뢰정대가 놈들의 함선집단을 녹여냈소!》

처음엔 무슨 말인가 하여 쳐다보고만 있던 해병들과 주변에서 일하던 해병들이 사연을 알아차리고 와- 환성을 올리며 욱 밀려들었다.

전신문을 전사들에게 맡겨버린 채정보는 바줄퉁구리우에 주저앉았다. 누군가가 전보문을 읽는 소리를 듣는 그의 눈귀로는 뜨거운것이 슴배여나왔다.

기어이 해냈구나, 해냈어.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했어.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해전에서도 네척의 어뢰정으로 세계 《최강》을 떠드는 미국놈들의 중순양함과 경순양함을 격침, 격파시킨 례는 없었다. 더우기 감격스러운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적함선집단을 일격에 소멸할 구체적인 전법까지 세워주시고 승리에로 이끄신 그 사실이였다.

기성관념으로는 믿어지지 않을 진짜 기적이 일어난것이였다.

이 전투에 아들 채진경이도 참가하였을것이였다. 채정보는 흥분한 해병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상식적으로 한마디 한다면 저기 동해에 격침된 중순양함급의 배수량은 1만, 1만 7천톤급 정도이고 어뢰정의 배수량은 일반적으로 150, 200톤에 불과하다는거요. 이렇게 대비해놓고보면 우리 해병들이 이룩한 전과가 얼마나 큰것인가를 알수 있단 말이요.》

이야기를 해나가는 그의 눈앞엔 적함을 향해 육박하는 우리 어뢰정들이 방불히 그려졌다.

철의 포화, 포화… 뒤이어 일어나는 폭음, 삼단같이 솟구치는 물기둥, 물기둥… 바다는 그야말로 불바다이다. 팥죽끓듯 하는 그속을 헤가르며 살같이 돌진하는 네척의 어뢰정들… 《발사!》구령과 함께 련이어 적함을 명중하는 어뢰들… 중순양함과 경순양함이라는 거물들이 화염에 흽싸여 서서히 기울어진다.

채정보의 눈앞엔 아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어뢰정대의 전과소식은 온 부대를 들끓게 했고 그들에 대한 무한한 선망과 전투적열의를 불러일으켰다.

해병들을 속상하게 하는것은 역시 배가 모자라는것이였다. 위훈에 대한 갈망은 어떤 대원들에겐 분별을 잃게 했다. 해군이 배가 없이야 어떻게 싸우는가. 더우기 이젠 어뢰만 크게 보이고 기뢰는 보잘것 없는것으로 여기는 축들도 생겨났다.

《바다에서 움직이는 섬으로 알려진 중순양함을 까부신 그들에 비하면 이런 기뢰부설이야 아이들의 소꿉놀이지.》

《언제 이 배들을 수리해가지고 전투에 나가겠나. 나간들 이런 배가 무슨 맥을 추겠어?》

한 구대원이 그들의 말에 귀가 간지러운지 한마디 퉁을 놓았다.

《중뿔나게 나서서 단가마에 찬물 끼얹지 말라구.》

지금은 무전교신시간이 아닌지라 배수리하는데서 일손을 거들던 리해철이 참견했다.

《그래도 공업에는 중공업과 경공업이 있잖아요. 중공업이 기본이지요.》

그가 말하는 중공업이란 어뢰정으로 적함을 까는것을 뜻하는것이였다. 경공업이란 의미는 물론 기뢰전이고…

요즈음 무전으로 주문진해상전투소식을 전해준 다음부터 그것을 마치도 제가 치른것처럼 우쭐해진 해철이였다. 흥, 내가 없어봐라, 누가 그런 희한한 소식을 전해주나 하는 식의 재세였다.

누군가가 긴목을 빼들고 주위를 둘러보며 빈정댔다.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구만, 저 입에 발동이 걸린걸 보니.…》

하명찬을 찾는 소리임을 안 리해철이 그만에야 약이 올랐다. 전번에 도하를 앞두고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명찬에게서 받은 수모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지금 하명찬은 기뢰창고경비에 나가있었다. 요즘 부대에서는 반동들과 암해분자들이 기뢰창고를 노릴수 있으므로 기뢰들을 다른데로 옮기고 특히 야간경비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중사동지가 있으면 어떻단 말이예요? 큰소리만 쳤지 엉터리예요. 모든건 혼자 다 아는것 같지만…》

볼이 부어있는 그를 보기가 재미있었던지 해병들이 한수 더 떴다.

《그래도 처음 입대했을 때 중사동진 해철동무가 너무 고와 처남 삼으려 했다던데…》

해병은 말끝을 맺을수 없었다. 리해철이 버럭 소리쳤던것이다.

《누가 그따위 허튼소릴 해요?》

《불 안 땐 굴뚝에서 연기나겠는가. 바빠하는걸 보니 정말 처남매부되자고 약속한 모양이구만 뭐.》

해병들은 부대의 막냉이인 그를 보며 재미있다고 허리를 그러쥐고 박장대소를 하는데 너무 억울해난 리해철은 눈물이 다 글썽해졌다.

《흥, 알기도 잘 안다, 중사동지 중맬 누가 서주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나타나기만 해봐라, 내 다 공개할테다.》

그의 마지막말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아니, 그런 일도 있었나?》

《진짜 중사동지의 중매를 섰어? 그게 헐치 않은 일인데.》

사연을 아는 구대원들은 시물시물 웃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입씨름을 잊고 그의 다음말을 기다려 조용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는 표정들이였다.

자기의 말에 대원들이 관심을 돌리자 이때가 하명찬을 《복수》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리해철의 입에서는 막혔던 물목이 터지듯 그에 대한 뒤소리가 쏟아져나왔다.

…금년 봄 부대에서는 주변농촌에 대한 지원을 하였다. 농촌에서는 부지깽이도 뛴다는 바쁜 철이였다.

오늘은 장윤옥이네 집 논판에 모를 내는 날이였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린 신대원 리해철이 허리춤을 동인 장윤옥과 한짝이 되여 모를 꽂아나가고있었다. 모를 꽂아나가는 그들의 손이 재봉바늘 오르내리듯하는데 좌락좌락 물소리가 났다.

하명찬은 지금 그 소리를 들으며 모지게를 지고 부지런히 모춤을 보장하고있다.

(구대원이란게 이게 무슨 꼴이람.)

이래저래 심사가 뒤틀어진 그는 황소숨을 힝힝 내쉬며 걸음을 짚는다.

곱지 않은 걸음이다나니 자주 비틀거리고 근육이 뻗치는 장딴지와 걷어올린 군복바지에까지 온통 감탕이 게발리였다.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일이였다.

원래 그는 아침일찍 남먼저 논판에 뛰여들어 이쁜 처녀와 짝을 뭇고 부지런히 모를 꽂는다는게 손기가 빠르지 못한데다가 고루매질을 한 논바닥에 큰 발자국을 마구 찍어놓아 동리사람들의 놀림가마리가 되였다.

《아유, 매끈한 논판을 저렇게 소외양간바닥처럼 만들어놓으면 어떻게 모를 꽂는다우.》

《됐어요, 그만해요. 바다삼촌이니 논일이 서틀기마련이지요.》

(젠장, 내가 언제 농사일을 해봤어야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창피하고 무안하여 제풀에 논판에서 나오고말았다.

그런데 차례진것은 모춤을 나르는 큰 지게였다.

대신 리해철이 약을 올리듯 해쭉 웃으며 그 자리에 들어섰다. 게다가 모자를 척척 넘기며 변성기를 채 넘기지 못한 생소리로 노래가락까지 넘기는통에 하명찬은 울화가 치밀었다.

지게에 작시미를 뻗쳐놓은 하명찬은 갈퀴같은 두손에 여러개의 모춤을 움켜쥐고 논두렁에 올라섰다. 그의 손에서 모춤들이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가 논판에 떨어져 우뚝우뚝 섰다. 참으로 멋진 광경이였다.

재미끝에 쉬쓴다고 아쁠싸, 큰 모춤 하나가 멋들어지게 날아가 한참 모꽂기에 여념이 없는 장윤옥의 발치에 철썩 떨어졌다. 늘창 모를 내느라 흐려진 감탕물이 튀여 갓 입은 하얀 옥양목저고리에 얼룩점들을 그려놓았다.

《에그머니나!》

《누구야?!》

처녀의 외마디 비명이 울리고 동시에 짝패인 리해철의 오돌진 소리가 귀청을 쨌다.

난처해진 하명찬은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싶었다. 마침 장윤옥의 어머니가 중참을 가지고 논머리에 나타났다. 안고온 큰 버치에는 김이 문문 오르는 시루떡과 시금치나물, 도라지무침, 탁주방구리에 받쳐 마른 명태와 낙지 같은 마른 어물들이 들어있었다.

《자, 이젠 쉬고합세다. 다들 여기로 나오시우!》

푸른 잔디밭가운데 서있는 정자나무아래에 마을사람들과 해병들이 한데 어우러져앉았다.

《차린건 없어도 좀 드시우다. 이 쩡한 탁배기부터 시원하게 내시우. 땀이 쑥 들어갈거우다. 자, 군인동무들부터 한사발씩 쭉쭉…》

장윤옥의 어머니가 지성으로 권했다.

《아니, 우리 군인들은 못합니다. 이건 규률입니다.》

《이거야 농가들에서 늘 담궈먹는건데 섭섭하게 뭘 그래요.》

《성의는 고맙습니다. 그러나 정말 못합니다.》

대오를 인솔하여온 지휘관이 굳이 사양하는데도 장윤옥의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라도 음식을 들게 하려고 왼심을 썼다.

지휘관이 타협조로 나왔다.

《정 그러시다면 우린 시루떡이나 먹겠습니다.》

장윤옥이와 함께 있는 자리라 옹색해있던 하명찬은 지휘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이때라 생각하고 물동이를 들었다.

《중대장동지, 제가 물을 떠오겠습니다.》

아무리 나무그늘이라 해도 한낮의 더위에 미적지근해진 동이안의 물을 쏟아버린 그는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지만 어디에 우물이있는지 딱히 알수가 없었다. 마을에 들어가면 의례히 있겠지 하고 걷는데 뒤에서 자박자박 발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장윤옥이 이마에 내돋는 땀을 자근자근 누르며 부지런히 따라오고있었다. 하명찬의 곁에 이르자 수집은 목소리로 간신히 청했다.

《물동이를 이리 주세요.》

《예? 예.》

처녀와 단둘이 있어보기는 난생처음인지라 당황해진 그의 입에서는 왕청같은 말이 나왔다.

《아깐 정말 미안했습니다. 우정 그러자고 한건 아닌데…》

하명찬의 손에서 물동이를 앗아든 장윤옥은 입을 가리고 웃으며 우물을 향해 달려갔다.

잠시 어리둥절해있던 하명찬은 자기의 행동이 돌이켜지자 허거프게 웃으며 우물가에 다가가 처녀가 채워놓은 물동이를 들고 돌아섰다. 얼마간 걷는데 《거기 놓으세요.》하는 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물탕이 튀였던 옷을 갈아입은 장윤옥이 달려와 물동이를 잡았다.

《아이, 남자가 이런걸 어떻게 들고간다고 그래요? 보기 무엇하게스리.》

똬리를 머리우에 얹은 처녀는 물동이를 빼앗았다. 동이굽이에서 흐르는 물을 손등으로 연신 훔치며 종종걸음을 놓는 처녀의 가슴이 눈에 뜨이게 오르내렸다. 맨손으로 그의 뒤를 경중경중 따르게 된 하명찬은 싱겁기 짝이 없었다. 어색하기도 하였다.

(젠장, 내가 왜 이래? 한다하는 대장부란게 처녀앞에서…)

가만 생각해보니 스스로도 화가 동했다.

활랑거리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용기를 내여 처녀의 앞을 막아섰다.

《인주오, 내가 가져가지.》

《어쩌자고 그래요? 이런건 남자들이 드는게 아니예요!》

처녀가 황망히 소리쳤다.

《휴식장소에 물을 가져가는데 뭐라오?》

《아이참, 우리 집일을 도와주러 오셨는데… 남들이 보면 욕해요.》

그들의 싱갱이질을 멀리서 보았는지 정자나무그늘아래서 쉬는 사람들이 껄껄 웃어대는 소리가 처녀, 총각의 귀에까지 날아들었다.

농촌지원이 끝난 후 병영으로 돌아온 하명찬은 낮에 장윤옥이와 함께 모를 꽂은 리해철을 불러놓고 이죽거렸다.

《처녀란게 왜 그리 차돌이야?》

그 말에 리해철이 분개하였다.

《윤옥누이가 차돌이란건 무슨 소리야요?》

해철이 어찌나 성이 났던지 그의 약을 올려 장윤옥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려던 하명찬의 다음말이 쑥 기여들어갔다.

대신 《제가 마치 후견인이라도 되는것 같구만.》하는 애매한 소리가 튀여나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이것이 처녀에 대한 총각의 남다른 관심임을 하명찬은 스스로도 느끼지 못했었다.

모내기가 끝난 후 부대에서는 주변마을의 집수리를 해주었다. 하명찬은 다른 한명의 대원과 함께 장윤옥의 집을 담당하게 되였다. 명찬이 은근히 왼심을 쓴 결과였다.

모를 낼 때 명찬과 윤옥은 어성버성한 관계였지만 어느덧 점차 친밀해지게 되였다. 나중에 그들의 정은 한점의 불꽃이 불길로 타오르듯 사랑으로 번져졌다.

며칠이 지나 군대들의 도움으로 집수리가 끝났을 때에는 하명찬을 대하는 윤옥의 어머니말투가 해라 할 정도까지의 가까운 사이로 되여버렸다. 대신 장윤옥한테서 친동생처럼 사랑을 받던 리해철은 그 사랑의 대부분을 하명찬에게 빼앗긴것만 같아 가슴이 알찌근해져 남모르는 한숨끝에 《우리 누이 괄세만 해봐라.》 하고 귀먼 욕만 해댔다.

그러나 사랑에는 뜻하지 않은 곡절이라는것도 있는 법이다.

농촌지원을 마친 그들은 또다시 위병근무에 들어갔다.

그런데 주변인민들과 친숙해진 해병들에게 있어서 바다가 아니라 땡볕이 내리쬐는 사령부정문에서 심어박은듯 꼿꼿한 자세로 보초만 서는 자기들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였다. 줄문양이 간 해군내의에 닻을 그린 해군모의 댕기를 바다바람이 아니라 산골짝을 타고 오르내리는 골바람에 날리며 바다에 대한 끓어오르는 동경과 욕망을 누를 길 없어하던 그들, 해병들은 위병소앞길을 지나 일터로 오가는 주변마을처녀들의 맑고 명랑한 웃음소리가 날지 못하는 집오리같은 저들의 처지를 비웃는것 같이 들려 곁눈 한번 팔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리민청위원장을 하는 장윤옥을 자기 애인이니 누구도 넘보아서는 안된다고 으시대던 비위좋은 하명찬이 처녀를 울렸겠는가.

어느날 처녀가 《명찬동무, 사람들이 동무네를 보고 왜 몽고해군이라고 하나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너무도 분하고 기가 막혀난 하명찬은 《동문 그것도 모르오? 한집안을 놓고보아도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이 다 있어야 정상이란 말이요. 해군에서도 바다에 있는 해병, 땅에 있는 해병이 다 있어야 한다는 상식쯤은 알고있어야지. 아버지만 있으면 홀아비집안이요, 어머니만 있으면 과부집이 되지 않겠소. 그걸 몰라서 묻소?》 하고 생각없이 소리쳐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손에서 서럽게 자란 처녀를 울리고말았다.

그다음부터 허물없이 지내오던 그들의 사이가 랭전에 들어갔고 본의아니게 처녀에게 《넌 과부집자식이야.》라고 선언해버린것으로 된 하명찬은 바질바질 타드는 기름가마속같은 고민에 빠져버렸다.

그 정상을 보다못하여 곁에서 시샘을 하던 리해철이까지 하명찬이보고 먼저 가서 용서를 빌라고 권고해보았으나 여느때는 장윤옥인 내 애인이라고 흰소리치던 위세는 어디 가고 내가 이제 무슨 낯으로 처녀를 만나겠는가고 쭐난 소리를 하는것이였다.

그래도 성정이 무른것은 역시 처녀쪽이였다. 하명찬을 찾아온 처녀는 도리여 제편에서 하명찬의 그 속타는 심정을 모르고 공연히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면서 용서를 빌었는데 진정이 넘친 처녀의 말에 총각은 눈물까지 찔끔 쏟았다던지.

후에 안 일이지만 처녀는 마음좋고 호방한 그가 왜 그런 말을 하였을가 하고 슬그머니 해철을 찾아와 물어보았다. 해철은 몽골이라는 나라에는 바다가 없다면서 《몽고해군》이라는건 뭍에서 군사복무하는 해병들을 두고 놀려주는 소리로서 제일 듣기 싫은 호칭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뒤에 처녀는 하명찬이 얼마나 바다가 그리웠으면 그랬을가 하고 미안한 심정이 되여 먼저 총각을 찾아왔던것이다.

리해철의 말이 끝났다. 와- 해병들이 웃었다. 아무리 곁에서 터지는 함포탄이래도 그 웃음소리보다야 더 크랴.

《정말 해철이가 큰일을 했구만.》

《들었지? 예로부터 뭐라 그랬던가. 중매를 잘 서면-》

해병들이 합창했다.

《술 석잔!》

《동무들, 이제 전쟁이 승리하면 우리모두 중사동무가 해철동무에게 술 석잔을 부어주는걸 보기요.》

《해철인 좋겠구나.》

《그만한 나이에 상좌에 틀고앉아 신랑한테서 술 석잔 받는다는게 어디 흔한 일이요?!》

벌써부터 재미있는 그 광경을 여기저기서 그려보는지 키들키들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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