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1편 인천에서

6

 

기다리던 윤지환소좌가 드디여 나타났다. 먼 자동차행군길에 뽀얗게 오른 먼지를 털 사이도 없이 채정보에게 달려왔다.

채정보는 두팔을 벌리고 마주 나갔다.

《빨리 왔구만, 난 군산에서나 만날줄 알았는데.

《여기서 몹시 기다리는것 같아서… 괴뢰 8사가 우리의 포위속에 든걸 보고는 그길로 떠났습니다.》

무어라 더 보고하려는것을 채정보가 두손을 잡아흔들며 반갑게 부르짖었다.

《마침 잘 왔소. 본격적인 일판을 벌리재도 기술일군이 딸린단 말이요. 참, 동생이 여기 있다는 소식은 들었겠지?》

《예!》

《어서 만나봐야지. 가만… 지문동무가 방금전까지 여기 있었는데해철동무, 빨리 찾아오우.》

《알았습니다.》

해철이 달려가자 윤지환이 리설경군의와 함께 왔노라고 보고하였다. 채정보는 그제야 차에서 내린 련락병 기태서와 리설경군의를 보았다. 가둑나무잎이 꽂힌 위장망을 씌운 배낭과 위생가방을 메고 군관혁띠를 꼭 졸라맨 허리춤에는 씻은 밤알처럼 윤기나는 권총집이 달려있었다.

채정보와 눈이 마주치자 군복자락을 당겨 매무시를 바로잡은 그는 한달음에 달려와 보고하였다.

《대좌동지, 사령부군의소 군의 리설경 당신의 부대에 소속되여왔음을 보고합니다.》

너무도 뜻밖인지라 채정보는 처녀군의에게가 아니라 련락병 기태서와 윤지환에게 묻는 눈길을 던졌다.

그의 눈길을 받은 기태서는 난처한 표정이 되여 윤지환을 바라보았고 지환은 군의보고 어서 이야기하라는듯 고개짓을 하였다.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낀 채정보는 누구든지 먼저 말을 떼기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지 리설경이 호- 하고 가벼운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대좌동지, 저… 말씀드릴것이 있는데… 진경동무가 중상을 입었습니다. 지금 사령부군의소에 입원해있습니다.》

채정보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렇다면 주문진해상전투에서?!

그는 전쟁의 준엄함과 처절성을 모르는바 아니였으나 불행이 자기네 가정에 이렇게 빨리 닥쳐들줄은 몰랐다. 이 전쟁을 이기자고 두 아들을 헌헌히 웃으며 전선으로 떠나보냈지만 벌써 한팔이 꺾이여 병상에 누워있다는것이 아닌가.

그는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부상처와 치료정형에 대해 알려주는 리설경의 하얀 얼굴을 세세히 여겨보았다.

미리 준비하고나 있었던듯 낯색 하나 달리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처녀를 보며 그가 정말 진경을 사랑하는 애인이 옳은가 하는 의문까지 생겼다. 그러나 풍파많은 인생길을 걸어온 채정보는 그가 자기의 개인적인 슬픔을 굳세게 이겨나가는 속이 깊고 훌륭한 처녀인것처럼 생각되는것이였다.

채정보는 평화롭던 나날에 진경이와 설경이가 해당화 피는 바다가모래불에 발자국을 나란히 찍으며 거니는것을 여러번 띄여보았었다. 그때 그들이 무엇을 속삭였는지는 알수 없었어도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있다는것은 은연중 감촉했던 자기였다. 그리고 나도 이제 며느리를 맞고 손자, 손녀를 보게 되였구나 하며 새삼스레 자기 나이를 돌이켜보게 되였었다.

그렇게도 아름답게 채색되였던 그 꿈의 절반이 벌써 포화에 상처를 입고있는것이였다. 리설경이 조동명령을 받고 왔겠지만 애인이 중상을 입고 입원해있는 군의소에서 떠나오기가 조련치 않았을텐데더우기 우리 부대의 편제인원엔 군의가 없지 않은가?

그런 의문을 풀어주려는듯 윤지환이 나서서 설명을 하였다.

《저 설경군의동무가 여기로 온데는 그럴만한 가슴 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습니다.》

《?!…》

채정보는 윤지환이 발걸음을 옮기는대로 천천히 따라갔다.

《…주문진해상전투의 성과보고를 위대한 장군님께 올리게 되였는데 이 전투에서 진경동무가 기관장으로 전투의 승리적보장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운 소식도 함께 보고드리게 되였습니다. 그가 채정보동무의 맏아들이라는것을 알게 되신 장군님께서는 오래도록 여기 남쪽하늘가를 바라보시였답니다.

그이께서는 해방전에 부평초처럼 바다우에 떠다니며 병을 만난 정보동무가 해방지역의 항만들을 접수처리하는 한편 지금은 기뢰부설까지 맡아 어려운 전투를 벌리고있는데 건강을 돌봐줄 군의를 빨리 보내주도록 해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군의동무가 자진하여 오게 되였습니다.》

너무도 뜻밖의 소식에 채정보는 감격이 북받쳐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전쟁의 포화를 겪으며 온몸이 화약내로 절은 자기의 온몸에 어버이의 다심한 사랑이 따뜻이 끼쳐오는것이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김일성장군님은 해방후 나쁜 놈들의 모해에 걸려들번 한 자기를 가까이 부르시여 구원해주고 믿음을 주고 사랑을 부어주신 생명의 은인이시였다. 왜놈의 배를 탈 때 기관에 잘린 손가락을 쓰다듬으시며 그토록 가슴 아파하시던 장군님이시였다.

무상의 영광과 믿음을 받아안던게 어제같은데 오늘은 또다시 장군님께서 한 전사의 건강과 그 아들의 부상을 두고 마음을 놓지 못하고계신다.

이 사랑, 이 은덕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그는 자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의식하지 못한채 바다기슭쪽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는 추억의 배를 타고 해방된 해 가을에로 거슬러올라갔다.

 

…북조선보안국 호안부장 채정보를 청진역두에서 맞이한것은 항일혁명투사 김성국이였다.

《오시느라 수고했습니다. 제가 수상보안대장 김성국입니다. 자 동무들, 인사하십시오.》

아직 화약내가 가셔지지 않은 보위색군복을 입은 그는 마중나온 사람들을 소개하였다.

채정보는 이미 평양에서 김성국이란 이름을 여러명의 항일혁명투사들로부터 들었는지라 그를 보자마자 존경의 감정과 친근감을 동시에 느꼈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을 받들고 백두광야를 주름잡으며 왜놈들을 무찌른 싸움군들이 아닌가. 아직도 김성국의 팔목에는 정찰임무를 받고 국내에 들어왔다가 놈들과 총격전을 할 때 맞았다는 탄알자리가 남아있을것이였다.

먼길을 달려온 기관차가 가쁜숨을 톺느라 칙칙거리다 사라져버리였다. 기관차가 산굽이쪽에 한가닥의 연기를 남기며 사라지자 그들은 역앞에 세워놓은 차있는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성국은 사람들앞에서 씨엉씨엉 걸었다. 어느모로 보아도 돌려맺힌 단단한 체구였다.

평양에서 만났던 항일혁명투사들도 그랬다.

그들은 왜놈들의 징병을 피해 평북일대의 광산들을 떠돌아다니다가 해방후 집으로 돌아와 광산의 기계설비를 보아주던 자기를 찾아 건국사업에 내세우고 이끌어준 혁명선배들이였다.

역앞에 대기하고있는 화물차에 이르자 김성국은 채정보를 운전칸으로 안내했다.

《여기에 오르십시오. 생각같아서는 승용차를 가지고나왔어야 하는건데 이거 치음부터 귀한 손님을 푸대접한다고 욕 많이 하십시오.》

《아닙니다. 제가 무슨…》

당황해난 채정보는 운전칸에 타라고 권하는 사람들의 권고를 마다하고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적재함에 올라탔다. 할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김성국도 적재함에 올라 채정보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어떻습니까, 호안사업이 힘들지요?》

우선우선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그앞에 채정보는 그저 예 하고 대답하였다.

《인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보호하는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업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걸린 문제가 있는데 채동무만이 풀어줄수 있을것 같습니다.》

《제가 믿음에 꽤 보답할수 있겠는지…》

《채정보동무는 건국열의로 보나, 기술과 능력으로 보나 얼마든지 해낼수 있다고 봅니다.》

차가 어느덧 숙소앞에 이르렀다.

김성국이 그의 배낭을 벗겨들었다.

《먼길을 오시느라 수골 했는데 오늘은 좀 쉬십시오. 려독을 풀어야지요.》

김성국의 말에 채정보는 단호히 말했다.

《이제 숙소에 들어가 뭘하겠습니까. 곧장 현장으로 갑시다.》

《일없겠습니까?》

《네.》

숙소앞에 멈춰섰던 차는 다시 배기가스를 날리며 바다가로 향했다.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소리만 울리는 바다가는 주인없는 집뜨락처럼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발치에 나딩구는 어구는 쓸만한것이 없고 잔교에는 파도에 이리 밀리우고 저리 밀리우는 돛대 부러진 배들만 흥떡일뿐 건물 한채 성한것이 없었다. 패망한 일본놈들은 도망치면서 항만시설물과 보잘것 없는 조선소, 선박수리공장, 그물공장까지 혹심하게 파괴하여 온통 페허로 만들어버렸다. 생산도구를 잃은 어로공들은 뿔뿔이 흩어져갔다. 그들을 불러 물고기를 잡자 해도 변변한 배와 그물이 없었다. 설사 물고기를 잡아 가공하재도 가공설비 하나, 염장탕크 하나 성한것이 없는 형편이였다. 하루빨리 황페화된 어장들과 파괴된 고기배, 가공시설들 그리고 그물을 비롯한 어구들을 복구정비해야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동서해안에 조선소와 선박수리공장들을 건설하여 자그마한 배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큰 배들을 뭇되 철선까지 만들어야 할 과업이 제기되고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것들은 채정보가 당면하게 제기된 문제를 푼 다음에 론의해야 할것들이였다.

일제는 도망가면서 청진, 원산, 신포 등 주요항만과 기슭에 수많은 지뢰와 기뢰들을 매설해놓았다.

파괴된 항만시설들과 어항들을 복구하재도 이 지뢰와 기뢰를 해제하여야 했다.

바다물계에 들어선 모두 제노라 난다긴다하는 배군들이였으나 기뢰에 맞다들리자 모두가 손털고 나앉았다. 병기문제에 들어선 영 깜깜이였던것이다.

《쪽발이들이란 남의 익은 밥에 모래 뿌리는 놈들이라니까. 그러니 망해도 더럽게 망할수밖에…》

수족이 묶이운 배군들은 도망친 일본놈들에게 귀먼 욕설을 퍼부을뿐이였다.

어항의 구석구석을 살피던 채정보의 눈길이 방파제 안쪽에 떠있는 여러척의 기관선에 가멎었다.

보매 꽤 쓸만 한 배들이였다.

어떻게 저런 배들이 아직 남아있는가?

이때 부두가에 서있는 김성국에게 다가와 기뢰를 해제하는 기술자를 데려왔는가고 반기는 청년이 있었다. 시커먼 얼굴에 어깨가 쩍 버그러져 대번에 배군임을 알게 하는 스물두어살 나보이는 건장한 청년이였다. 보매 건국사업에 대단히 열성적으로 참가하는 모양이였다.

김성국은 채정보에게 배를 타는 하명찬이라고 그 청년을 소개하였다.

하명찬이 부두에 매놓은 여러척의 멀쩡한 배들을 가리키며 제꺽 설명을 했다.

《저 배들은 려수에 항적을 둔 선주 고흥천의 고기배들이랍니다. 고기떼를 따라 동해까지 올라왔다가 정박했었는데 일제가 설치한 기뢰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다가 해방을 맞게 되였지요. 배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가고 배들만 댕그랗게 남았답니다. 일본놈들은 다른건 다 파괴하면서도 선주란 놈이 저들의 앞잡이가 되여서인지 저 배들만은 남겨놓은 모양입니다.》

채정보는 알만 하다는듯 고개만 끄덕이였다.

고흥천이라면 자기도 잘 안다. 그 가문이 구한국시대부터 조선일판에 보기 드문 어물장사로 소문이 자자했었다.

집은 려수에 있었다.

선주였던 고흥천은 자기를 가리켜 배사람이라고 자주 말하군 하였다. 제딴에는 자기도 바다를 알고 배를 알고 항간에서 《배놈》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겪는 갖은 경난을 다 안다고 자부하는 소리였다.

원래 배사람들을 천시하여 《배놈》이라고 부르기 시작한것은 바다를 인간생활에 리용하기 위해 생산수단인 배를 만들고 사람들이 배에 올라 물고기를 잡고 짐을 운반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산같이 큰 배를 타든, 가랑잎같은 매생이를 타든 배를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계없이 세기를 두고 내려오며 《배놈》으로 불리웠다.

칠성판을 지고다닌다며 멸시와 동정을 받는 사람들, 《배놈》이란 말이 듣기 싫어 배에서 내렸다가도 배운것이 배질밖에 없는지라 다시 그 칠성판에 올라 허허바다를 밥줄로, 생활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이 바로 배사람들이였다. 울며 겨자먹기라고 가족들의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겠으니 다시 배에 올라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반면에 배사람으로 자처하면서도 발바닥에 짠물 한방을 묻히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진세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들중의 하나였다.

수완가로 소문난 고진세의 아버지 고흥천이 서울을 미련없이 버리고 일약 바다가로 내려간 내막을 안다면 아무리 마른 까나리를 쪼개먹는 수전노라 하여도 혀를 차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어물장사로 잔뼈가 굵은 고흥천은 일본놈들을 등에 업고 여러척의 배를 부리는 선주가 되였다.

그는 재산이 불어나게 되자 멀리 남해가에서 부리는 자기의 고기배들이 마음에 걸리였다. 그래서 온 가족을 이끌고 려수로 내려왔는데 여기에는 또 한가지 해괴한 까닭이 있었다.

고흥천은 종로 뒤골목에서 단고기국집을 운영하면서 매번 단고기가 한참 끓을 때 닭알을 넣었다고 한다.

그렇게 삶은 닭알을 바가지에 담아 장복을 하던차에 그것을 발견한 젊은이에게 걸려들어 하마트면 사등뼈가 부러져나갈번 하였던것이다.

《이 노랑쥐같은 두상태기, 말해봐라! 닭알을 가마에 넣으면 단고기에 들어있는 영양분이 그 닭알에 모두 흡수된다는걸 모를것 같으냐? 여러분네들, 이 두상태기가 이때껏 고객들을 이렇게 속여먹였소!》

《그게 어디 사람의 가죽을 쓰고 할 일이요?》

노전방에 앉아 단고기국을 훌훌 불어대며 먹던 사람들이 버선발로 달려나와 윽윽 고아대며 고흥천을 밟아주었다.

세상에 망신이면 이런 망신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난 아버지때문에 머리를 들고다닐수 없어요!》

아무리 고진세가 항변을 해도 아버지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낯가죽이 두꺼운 아버지의 그 천연스러운 태도에 고진세자신도 역시 용해되여갔었다.…

채정보는 고진세와 헤여진지 하도 오래다보니 그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기서 생소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의 아버지의 배들을 보게 된것이였다.

(고흥천에 고진세라…)

저도 모르게 그들의 이름을 외워보았다.

아서라, 지금은 그런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배를 보느라 잠시 걸음을 멈춘 그의 곁으로 김성국이 다가서며 근심스레 물었다.

《그래 자신이 없습니까?》

채정보는 제 생각에 묻혀 미처 대답을 못한것이 미안스러워났다.

《그래서 그런게 아닙니다. 저 배들을 보니 고흥천네 일가가 생각나서…》

《그런걸 난 또… 기뢰를 해제 못하면 어쩌나 하고 가슴이 다 덜컥했습니다.》

김성국은 가슴 후련하게 웃었다. 나이가 자기보다 퍽 우라고 깍듯이 경어를 쓰는 김성국이였다.

그는 시원스레 웃으며 모래불에 나딩구는 배전에 걸터앉아 담배를 권했다.

《어떻습니까? 사람이면 사람, 기재면 기재 무어나 다 요구하십시오. 청진에 부족되는게 많아도 어떻게든 보장을 하겠습니다. 방도만 찾아주십시오. 새 조국을 일떠세우겠다는 사람들의 열의도 높고 바다물계에 들어선 제노라 하는 배군들도 많은데 기뢰문제엔 다 깜깜이지요.》

김성국의 말에 리해가 갔다. 그의 말은 채정보에게 한시바삐 일해야 한다는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채정보는 하명찬이라는 청년을 돌아보았다.

《여기 해도를 건사해둔 사람이 없소?》

하명찬이 머리를 기웃한채 미타한 소리로 대답했다.

《그놈들이 땅우에서도 바다밑을 샅샅히 가려본다는 그 알락달락한 종이장 말이우다?》

《옳소, 그거요!》

채정보의 입에서 부지중 반가운 소리가 튀여나왔다.

《허참, 왜놈들이 그걸 우리들에게 보여준줄 압니까. 제놈들끼리 펴놓고 쑥덕거리군 했는데 쫓겨갈 땐 무슨 보물단지처럼 보따리에 싸가지고 달아났다나 봅니다. 우리한테 남겨놓기 싫다는거겠지요.》

모래불에 퍼더앉아 신발을 벗어 툭툭 털던 그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락심해있는 채정보를 올려다보며 물어본다.

《그게 꼭 있어야 되겠수다?》

《빨리 기뢰를 해제하자면 그게 있어야 하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인데 어림짐작으로 할수야 없지 않소.》

채정보는 망연자실한 눈길로 하얀 파도가 이는 수평선 한끝을 바라보았다. 그의 속은 바질바질 타들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믿고 예까지 데려왔는데 해도가 없으니 어쩐단 말인가.

그의 심중을 헤아렸는지 하명찬이 배포유한 투로 말했다.

《거 여기 배군들중에는 이 바다밑에 성게가 몇마리인가 하는것까지 아는 친구들이 몇이 잘됩니다. 작살을 쥐여주면 물속에서 물고기 한두름쯤은 잠간 꿰올리지요. 왜놈선주와 맞서 파업을 할 때 그들이 꿰올린 물고기로 가족들이 살았지요. 이제 우리 배군들을 시켜 기뢰닻을 풀어서 기뢰를 바다물우에 띄워놓고 기관총으로 꽝꽝 쏴버리면 안되겠습니까?》

그러자 김성국은 곧 도리머리를 저었다.

《안되오, 그 폭발때문에 항구에 있는 배들과 건물이 못쓰게 되면 안되지, 안되구말구.》

그의 말마따나 사격하는건 불가능한 일이였다. 한것은 기뢰체가 둥글어 거기에 맞은 총탄은 도탄되기 쉬웠고 설사 명중된다 하여도 그 폭발반경이 얼마만 한 거리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모를 일이기때문이였다. 그리고 폭발시 일어나는 거대한 폭풍에 옆에 있던 기뢰닻줄이 끊어지면 기뢰들이 몽땅 흩어져 물우에 둥둥 떠다니는 부유기뢰로 된다. 제멋대로 떠다니던 기뢰들이 서로 부딪쳐 터지면 항만부근이 온통 불바다가 되겠는데 그로부터 초래되는 후과는 돌이킬수 없는것이였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였다. 그러니 사격으로는 제거할수가 없는것이였다.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물가에 건져놓은 해파리처럼 온 육신이 탁 풀려 말도 못했다.

그래도 바다물동이나 꽤 축냈다는 하명찬이 용기를 잃지 않고 물었다.

《그럼 어쩌면 좋겠수다? 방도만 내놓으시우, 일은 우리가 제낄테니.》

그 주위에 서서 구령만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배사람들의 믿음직한 모습들이 시야에 안겨들었다. 그들은 모두 새 조선의 주추로 되여야 할 귀중한 사람들이였다.

채정보는 말을 못했다. 그는 련이어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기슭을 따라 묵묵히 발걸음을 내짚었다. 쉬식- 밀려들었다 미처 빠지지 못한 바다물이 모래불에 잦아드는 소음만 들릴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파도가 씻고나간 모래불우에는 그의 사색을 심어박는듯 한 발자국이 유표하게 찍혔다. 그러다가는 밀려오는 파도에 다시 씻기고…

그러다가 채정보가 하명찬에게 물었다.

《여기 배수리기지는 보다싶이 다 파괴된것이고… 이 고장에 철공소같은것들은 없소?》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신중히 듣던 김성국이 여기 실태를 알려주었다.

《왜 없겠습니까. 공업지구다보니 철공소도 여러개 있었습니다. 왜놈들이 가지고 달아나던 기계설비 같은것들은 짐이 무거워 모두 바다물속에 처넣었지요.》

《그럼 선반을 돌리는데가 영 없습니까?》

《웬걸요. 상공인들이 쓰고있는것들이 있을수 있지요. 바다에 처넣은 기계들은 앞으로 건져내면 되는것이고… 당장은 상공인들에게 호소해야 합니다. 모두 내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까.》

《선반이 몇대나 될것 같습니까?》

그는 다우쳐물었다.

이번에는 김성국을 대신해서 시의 간부인듯 한 사람이 나섰다.

《워낙 여기 일판이 넓어놔서 구체적인건 잘 모르겠지만 찾아보면 여라문대는 잘될겁니다.》

《상공인들이 꽤 도와나설가요?》

《도와나설겁니다. 해방을 맞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됐습니다.…》

채정보는 하명찬을 찾았다.

《하명찬동문 그 작살질 잘하는 친구들을 좀 모집해주오. 아무래도 내가 강의를 좀 해야겠소.》

《강의란게 뭡니까?》

《배워주는것 말이요.》

《강의란걸 해봤자 헛수고입니다. 만나보면 알겠지만 갸들이란게 땅에 가로 금을 긋고도 그게 한 일자인지조차 모르는 일자무식쟁이들입니다. 나두 그렇지만 …》

아까는 제 동료들을 침이 마를 새없이 자랑하더니 막상 일을 해보자고 하니 배운게 없다고 흉을 본다.

채정보는 너그러이 웃었다.

《됐소. 모르는거야 배우면 되지 않소. 우리 배우면서 일해봅시다,》

그는 김성국을 돌아보았다.

《생각했던것보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뭐라고 해할지, 여하튼 배우지 못한 동무들에게 일을 가르치면서 로동안전교양도 해야 할것 같습니다. 그들의 힘에 의거해서 기뢰를 해제해보겠습니다. 한편으로 선반을 돌리는 상공인들에게 부탁해야 할것 같습니다. 기뢰뿔씌우개를 깎는게 급선무입니다.》

그리고는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어쩌자는겁니까?》

《물에 들어가보자는겁니다.》

돌발적인 그의 행동에 하명찬이 따라나섰다.

《같이 들어갑시다.》

《오늘은 내가 먼저 들어가보겠소.》

채정보는 늘 가지고다니던 자를 꺼내들었다. 하얀 스텐철이 해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오늘은 이걸로 기뢰뿔을 재야겠기에 나 혼자 들어가지만 래일엔 나랑 같이 들어갑시다.》

그는 자기에게서 근심스러운 눈길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념려마십시오. 조심하면 일없습니다.》

물이 차기때문에 내의를 입은채로 서서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가을이라 물은 뼈속까지 얼어들만큼 차거웠다. 이런 때엔 오랜 배군들도 물에 들어가기 끔찍해한다. 다른 때같으면 온몸에 닭의 살이 돋으며 오싹 조여들것이였지만 지금는 별스레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런 때 몸마저 훈훈해오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왜놈들이 태평양전쟁터에 끌어내려고 했을 땐 기관사고로 잘린 손가락을 빗대고 몸을 사리다가 들고뛴 그였다.

그러나 오늘에야 제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왜 성수가 나지 않겠는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 나라의 항구마다에 놈들이 뿌려놓은 살기어린 기뢰들이 새 생활에 일떠나선 사람들의 생명재산을 노리고있었다.

지금 그는 왜놈들이 남겨놓은 그 피비린 이리의 이발을 부시자고 나섰다. 처음 해도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해도가 뭔지도 모르는것을 알았을 때 난감했다기보다 눈앞이 아뜩했었다. 해도가 없이야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설사 한다 한들 어느 세월에 끝을 보겠는가.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지 이 일을 반드시 수행해야 했다. 이번 일은 누구에게도 맡길수도, 부탁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오직 제 손으로 기뢰부설상태를 확인해야 했고 자로 기뢰뿔의 크기를 재야 도면을 그릴수 있었다. 문제는 기뢰를 안전하게 걷어내여 비축하는것이였다. 그래도 안심되는것은 물속을 자유로이 헤여다닐수 있는 배사람들이 있다는 그것이였다. 어느모로 보아도 채정보에게 있어서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귀중한 존재들이였다. 그들에게 기뢰의 구조작용원리와 사용규정을 잘 가르쳐만 준다면 크게 문제될것이 없었다. 뿔안에는 전해질이 들어있는 유리관과 약간의 간격을 두고 금속전극판이 들어있다. 어떤 대상에 부딪치면 뿔이 부러져 유리관을 깬다. 그안에 있던 전해질이 공간을 따라 금속전극에 흘러든다. 그때 전기가 생기는데 그것이 신관에 작용하여 큰 폭발을 일으킨다. 그러니 뿔에 강철로 깎은 보호모자만 씌우면 기뢰는 안전하다. 그것을 들어내면 해제이다. 그러면 우리는 숱한 기뢰를 비축하게 된다. 이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가슴이 뻐근해왔다. …

채정보는 밤이 깊어서야 어렴풋이 정신이 들었다. 희읍스름한 달빛이 창가에 스며들어와 방안을 밝혀준다. 머리맡에 놓여있는 크지 않은 원탁에 더운 김을 문문 올리는 주전자와 고뿌들이 놓여있을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스름속에서 머리맡에 놓여있는 여러가지 약봉투들과 약병들을 일별하고나서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어디 와 누워있는가?)

낯선 방이였다.

그는 지나간 일들을 곰곰히 돌이켜보았다. 한동안이 지나자 아슴푸레한 기억의 실마리가 흘러드는 달빛에 서리여 손에 잡힐듯말듯 꿈처럼 다가든다. 기나긴 렬차행군, 항일혁명투사 김성국과 청진사람들과의 상봉, 그중 유표하게 떠오르던 하명찬…

그다음은… 차디찬 물속, 다치면 밀려났다가 다시 안겨들듯 한 기뢰, 부지런히 자를 놀려가며 기뢰뿔의 직경과 나사산을 재나가던 일, 물에 오르자마자 머리속에 기억한걸 잊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종이와 연필을 달래서 기뢰뿔의 보호모자를 속사하여 넘겨주던 일, 이어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우들우들 떨다 끝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던 일… 그뒤로는 생각나지 않았다.

부지중 몸을 일으키려 했다. 온몸이 쑤셔들어와 도저히 일어날수 없었다.

《아, 정신이 듭니까?》

옆에서 환성에 가까운 소리가 났다. 이어 불이 켜졌다.

김성국이 반색을 하며 침대머리로 다가왔다. 채정보는 이 방에 자기 혼자만 있은것이 아니였음을 알았다. 방 한켠에 김성국이 앉아있던 긴 쏘파가 놓여있음을 보았던것이다.

《정신이 좀 드는 모양이군요. 아까 쓰러질 때 같아선 내 눈앞이 다 아찔했습니다. 귀한 손님 모셔다 객사시키는가 했지요.》

김성국이 상우에 놓여있던 사과를 권하며 친근하게 웃었다.

채정보는 머리를 한번 흔들어보았다. 약기운때문인지 아니면 한잠 자서인지 온몸이 거뜬했다.

《제가 무슨 손님이겠습니까. 이젠 일없습니다.》

그는 앉은자세로 팔굽을 굽히고 몸통돌리기운동을 몇번 했다. 어쩐지 다시 눕고픈 생각이 없어졌다. 병석에서는 동무도 약이 된다는데 구면 지기처럼 여겨지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싶어졌다.

그러나 김성국은 환자의 건강이 념려돼서인지 아니면 바빠선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좀 많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아직 안 올가?》

김성국이 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기다리고나 있은듯 손기척도 없이 방문이 열리였다. 달아오른 남비손잡이를 두터운 천쪼박으로 감싸쥔 하명찬이 허리를 구부정한채 문을 밀며 들어섰다.

《일어나셨습니까? 다행이구만요. 엣, 뜨거워!》

그는 뜨거운 남비를 서둘러 원탁우에 놓고 두손을 귀뿌리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다시 들어올 때는 밥그릇과 수저를 손에 들었다.

《자, 식기 전에 어서 드시우다. 우리 친구들이 바다에 나가 작살질을 해서 잡아온건데, 어서요.…》

원탁우에 음식그릇들을 펴놓는 하명찬의 크고 험한 손을 보며 김성국이 쯧쯧 혀를 차며 끝내 한마디 했다.

《이보 하명찬동무, 여기에 음식을 만들 녀자가 그렇게도 없소?》

갑자기 밑도끝도없이 녀자타령을 하는 김성국을 돌아보던 채정보는 원탁우를 내려다보았다.

뚜껑을 열어놓은 남비안에서는 김이 문문 솟구치는데 시뻘건 고추가루에 파란 파를 성둥성둥 썰어얹은 양념밑에 보기에도 트직하리만큼 크게 토막친 물고기들이 무둑히 담겨져있다. 하명찬은 자기가 무얼 잘못했는지 리해되지 않아 고개를 기웃하고 얼떠름해있는데 김성국이 핀잔을 주었다.

《그래도 음식이란게 문화성이 있어야지 이게 뭐요? 어른도 먹다가 목에 걸리겠소. 이건 꼭 따기식대로라니까. 그리고 이면수를 끓여오면서 고기대가리는 왜 안 넣었소? 그건 아이들도 찾는건데. 골자를 빠쳤군.》

그제야 뭣때문에 그런다는걸 안 하명찬이 픽 웃었다.

《우리 배군들에게야 텁텁한게 좋지요. 녀자들이 만드는 아기자기한 음식은 목구멍이 간질거려 어디 먹겠더라구요.》

《아 아, 됐소, 됐소. 품들여 끓여온 국이 식겠소. 이러다간 귀한 손님 저녁 굶기겠소. 혼자 자시고 푹 쉬도록 우리 자릴 피하기요. 어서, 어서.》

김성국이 하명찬에게 어서 나가자고 등을 떠미는데 그는 억울하다는듯 사리를 따지자고 접어든다.

《아, 대가리로 말하면 어두일미라고 맛이야 있지요. 그렇다고 환자가 언제 아이들처럼 손가락을 어지럽히며 대가리가시를 빨겠나요. 그래서 가시는 말짱 걷어낸건데.》

문턱을 넘으면서도 변명하던 그는 무엇을 잊었는지 다시 채정보에게로 돌아와 꽁무니에 찼던것을 꺼내 원탁우에 턱 놓았다.

《그건 또 뭐요?》

김성국이 멈춰서서 돌아보았다.

《소주예요. 아무렴 우리가 먹는 막걸리겠어요?》

《원, 사람두!》

문닫는 소리와 함께 두런두런 울리는 말소리, 투덕거리는 발자국소리가 멀어져간다. 채정보의 입가에 빙그레 웃음이 실렸다. 그들에게는 웃사람과 아래사람의 간격을 초월하는 친근한 정이 흐르고있었다. 채정보는 마음의 안정을 느끼며 자리에 누웠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것 같았다.…

채정보와 하명찬을 비롯한 애국열의에 끓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기뢰들이 해제되였다. 드넓은 바다로 나가는 길을 여는 사람들의 얼굴엔 랑만과 희열이 넘쳐흐르고있었다.

채정보는 자기도 뭔가 새 조국건설에 기여했다는 긍지를 안고 다시 평양으로 올라왔다.

분망한 속에서 언제 날이 가고 해가 바뀌는지 몰랐다.

어느날 검찰소에서 그를 불렀다. 처음엔 흔연히 갔었는데 부닥친 일이 너무도 뜻밖이여서 어리둥절해졌다. 심문을 받게 되였던것이다.

《이제부터 묻는 말에 솔직한 대답을 해야 하겠습니다.》

심문을 담당한 사람이 처음엔 채정보가 상급이래서 그런지 경어를 썼다.

《그건 무슨 소립니까?》

놀라는 채정보에게 그는 엄하게 물었다.

《남조선에 고진세라는 진해상선학교시절의 동창생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채정보가 수긍하자 상대방은 알만 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통의 편지를 내놓았다.

《우선 이 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십시오.》

(?!…)

채정보가 의아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그는 책상우에 놓았던 편지봉투를 채정보앞에 내밀었다. 낯익은 글씨가 확 안겨들었다. 2년동안 한학급에서 지낸 동창의 글씨를 왜 몰라보겠는가.

《채정보형에게!》

고진세는 자기보다 두살우인 채정보를 《형》이라고 불렀다. 이전엔 나이에 개의치 않고 너나들이로 지내던 그가 제법 웃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투로 편지를 썼다는게 이상하여 머리를 기웃한채 다음글줄을 내리읽었다.

고진세는 채정보와 헤여진 후의 안부를 묻고 다음과 같이 썼다.

《…여기 이남에서는 일정때처럼 재부나 권력이 없으면 사람축에 들지 못한다는것을 형도 짐작하실겁니다.

북조선보안국 호안부장을 하는 정보형이 힘만 써주면 능히 해결할수 있으리라 보면서 외람된 부탁을 하는것이니 널리 량해하여주시오.

다름이 아니라 청진항에 정박했다가 부당하게도 적산으로 몰수된 우리 가문의 재산전부라고 할수 있는 5척의 고기배들을 속히 남으로 돌려보내주도록 주선해주셨으면 해서 이 편지를 씁니다. 일본놈들이 부설하여놓은 기뢰때문에 우리 배들이 오도가도 못했던건데 정보형이 기뢰해제에 달라붙어 다시 해상로가 열릴 전망이 틔였다니 천만다행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쩔수가 없어 이런 구차한 부탁을 드리는것이니 동창의 정과 의리를 봐서라도 정보형이 저를 협조해줄것이라고 믿어마지않습니다.

부디 귀체만강하시기들 빕니다.

부언컨대 형의 경력과 실력을 잘 알고있는 미군정청과 우리 군부(난 지금 여기 군부의 해병단에 소속되여있습니다.)에서는 정보형이 중대결단을 내리고 38°선을 넘어와 나라의 군대창설의 일선에 서주시기를 크게 기대하고있습니다. 해군부의 요직이 형을 기다리고있다는것을 확언하는바입니다.

용의가 있으면 즉시 회답해주시기 바랍니다.

 

동기동창 고진세로부터

서기 1945년 10월 6일》

 

마지막글줄까지 다 읽었지만 채정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편지를 든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였다. 골속이 웅웅거리는게 뭐가뭔지 통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복잡한 그의 심중을 들여다보았는지 심문자가 물었다. 좀전과는 달리 위압적인 목소리였다.

《이러루한 편지를 이전에도 받은적이 있습니까?》

채정보는 고진세의 편지가 왔다는것이 아직 잘 믿어지지 않아 고개만 저을뿐이였다.

그러다가 펀뜩 정신이 들어 다급히 물었다.

《그런데 이 편지는 어떻게 된겁니까. 어떻게 여기에 나타나게 되였습니까?》

심문자는 시종 엄한 표정으로 편지가 들어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나 그도 구체적인 사연은 알지 못하고있었다.

…머나먼 남해에서 고기떼를 따라 우리 나라의 북단에까지 올라왔던 고흥천의 배가 수족을 묶이우게 되였다.

기관선도 몇척 되는데다 좀 낡긴 했어도 저예망으로 구비하고 바다길을 떠났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해따라 흉어기가 닥쳐 북방에 와서는 배까지 저당잡히는 신세가 되였다.

엎친데 덮친다고 일제가 패망할무렵 배가 정박해있는 바다앞에 기뢰까지 부설하여 오도가도 못하게 되였다지 않는가.

그러니 고흥천의 립장에서 보면 묵직하게 느껴오는 손맛으로 고기그물을 당기던 사공이 부꺼리를 들어올리는 막판에 와서 그만에야 그물이 째지는 격이 되였다.

고흥천의 배를 부두에 묶어놓았던 일본인고리대금업자며 려인숙주인들이 한몫 잡게 되였다고 기뻐하고있을 때 나라가 해방이 되였다.

세상이 변했다.

그러나 북쪽에 있는 배로 하여 거의나 미칠 지경이 된 고흥천의 귀에는 자나깨나 기다려지는것이 그 소식뿐이였다.

자리에 누워 우황든 소 앓듯 하는데 우연인지 아니면 하늘이 도왔는지 남으로 도망쳐온 채권자들의 목소리가 고흥천의 귀전에 날아들었다.

《그 배도 이제는 무용지물이야. 미련을 버리라구, 공연히 개인 하늘에서 무지개 잡겠다는 꿈에서 헤매지 말구.》

《하긴 일본량반들이 다 내다봤거던. 그 수역엔 모두 그들이 부설해놓은 기뢰판이라네. 어느 미련한 놈이 목숨을 내대고 그속에 뛰여들겠나.》

《모르는 소리, 채정보라구 북조선보안국 독찰부장인지 호안부장인지 한자가 여기 진해상선학교출신인데 기술이 여간 아니라누만. 기뢰해제같은건 식은죽먹기로 해제낄거라더군. 요새 그자가 평양에서 내려와 바다길을 여는 일판을 펴놓는 모양이야.》

복장이 터져와 찬물에 적신 수건을 이마에 동이고 끙끙 앓던 고흥천에게 그 마지막말만은 홍시 빼물듯 귀에 쏙 들어왔다.

그는 자리를 차고일어나 이마의 수건을 활 풀어던졌다.

채정보라면 자기도 안면이 있다. 아들과 동창인 그를 얼핏 보기도 했고 아들에게서 여러번 말을 듣기도 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때 돈푼이나 쓰면서 미리 채정보에게 생색을 냈어야 하는건데, 후회도 좀 되였으나 그렇다고 물러설 고흥천이 아니였다.

그는 즉시 아들을 불러다 앉혔다.

아버지의 말을 들은 고진세는 시쁘둥한 얼굴이였다.

《난 못 가요. 그 자식과는 원래 앙숙이였는데 내가 이제 고갤 숙이고 구걸을 하란 말이예요?》

고진세는 상선학교시절 채정보와의 관계가 결렬에까지 이르렀던 까닭에 선뜻 손을 내밀 형편이 못되였다.

그로서는 기분나쁜 추억이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창안한 채정보의 발명품이 학교적으로 가장 우수하게 평가되여 많은 학생들의 축하와 아낌없는 찬사를 받게 되였다.

그런데 공시된 1등당선자의 이름은 채정보가 아니라 다무라이 게이찌였다.

분격한 학생들이 항의를 들이댔다.

그들앞에서 교학이라는자가 지껄였다.

《반도인은 여기서 공부한다는것자체를 과남하게 생각해야 할것이다.》

조선사람이기때문에 일본사람의 앞자리에 설수 없으며 그 자리는 응당 일본인인 다무라이 게이찌가 차지해야 한다는 론리였다.

학생들은 더욱 분개하여 들고일어났다.

그걸 기화로 몇명의 조선인학생들이 퇴학처분을 받았다.

고진세만이 학생들의 소요에서 빠져 팔짱을 끼고 관망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은근히 채정보를 설복하려들었다.

《자중하는게 좋아. 이게 약소민족의 처지라는걸세. 어떻게 달리될수가 있겠나. 이보라구, 우릴 학교에 받아준 사람들의 호의를 생각해서라도 참을수밖에 없어. 참자, 참자 세번 하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졸업이나 잘하고봐야지. 안 그런가?》

이전부터 의뭉스럽고 검질기면서도 왜놈앞에서는 해빛에 녹아문드러진 해삼같이 뼈대없이 노는 그의 성격이 체육인의 기개는 고사하고 할끔할끔 돌아보면서 살얼음판을 건너가는 여우같아 채정보가 환멸을 느끼던터였다.

조선사람이, 그것도 한하숙에서 한가마밥을 먹는 사람이 쓸개빠진 소리를 하는 바람에 채정보는 역스럽기 짝이 없었다.

《진세! 너 게이찌한테서 대체 뭘 얻어먹고 그래?》

《아니, 자길 생각해서 그러는데 도리여 모욕할내기야?》

《신경 더 돋구지 말구 내 눈앞에서 썩 사라져.》

《흥,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어. 어디 두고보라구.》

고진세는 무언가 예감하고있는것처럼 빈정거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학교측에서는 학생들의 소요에서 주동인물이였던 채정보만은 퇴학시키지 않았다.

그의 창안품을 공정히 평가하면 당당히 1등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학교측이 아무래도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어서 그랬던지?…

게이찌는 시종일관 함구무언이였다.

서로 마주치면 아닌보살하고 외면하는품이 사뭇 딴세상에서 온 사람같았다.

돈줄에 칡줄처럼 얽혀진 리기심은 고진세와 게이찌를 한동아리로 만든것 같았다. 다만 게이찌가 경솔하고 사무럽다면 고진세는 느리면서도 집요한데가 있는것이 좀 다를뿐이였다.

그들 두사람은 패를 짓고도 채정보 하나를 당해낼수가 없어서 늘 뒤에서 이를 갈군 하였다.

그러니 해방이 된 오늘에도 고진세가 채정보를 꺼리고 멀리하는것이였다.

돈과 재물이라면 노래기 회쳐먹을 비위를 가진 고흥천이고보면 아들의 기분이나 고충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야, 숱한 돈이 왔다갔다하는데 체면이고 뭐고 가릴게 있냐? 아무렴 동창생을 모른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 그리고 이 재산으로 말할것 같으면 종당엔 누구의것이 되느냐 말이다. 내가 관속에 넣고 가자고 이렇게 아득바득하는줄 아니? 진세야, 나도 이젠 늙었다. 이젠 네가 나설 때다.》

고진세의 이발사이로 씹어뱉듯 하는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알겠어요, 아버지.》

아버지의 령이라 거역은 못하고 마지못해 대답은 했으나 입맛은 소태같이 썼다.

그는 묵돈을 찔러주고 청부업자인지 망나닌지 딱히 구별이 되지 않는 패들을 모아놓고 고기배를 탈취하라는 지령을 주어 북으로 들여보냈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우두머리로 지명된자에게는 채정보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써서 쥐여주었다.

그런데 그들이 청진에 당도했을 때는 기뢰해제를 끝낸 채정보가 평양에 올라가고 없었다.

고진세가 긁어모은 놈들은 채정보를 만날수가 없으니 저희들끼리 손을 썼다. 몰래 배를 몰고 남으로 나가면 뭉치돈을 받게 되는 판이라 패당은 각기 조를 무어 배들을 훔쳐타고 도망쳤다.

남쪽으로 달아나던 그들의 꿈은 38°선에 채 닿기도 전에 수상보안대의 경비진에 걸려 깨여지고말았다.

이때 체포된 우두머리의 품속에서 고진세가 쓴 편지가 나졌던것이다.

채정보는 전후사연이 이쯤 밝혀졌으면 크게 오해할 근거가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일은 점점 더 크게 번져졌다.

사건을 맡아보던 사람이 바뀌고 허세를 부리는것인지 굵은 골통대를 입에 문 비대한 사나이가 심문장에 나타났다.

그는 정보가 내적으로 고진세와 몇차례나 통신을 주고받았는가를 솔직히 대라고 강박하였다.

그리고 일제통치시기 진해상선학교에 다니고 목포에서 왜놈배의 기관장노릇을 한것은 물론 학교시절 중국의 대련과 일본 오사까조선소에서 실습한것, 대양횡단실습때의 일 등을 다 문제시하면서 채정보가 살아온 과거지사, 특히 친일적인 경향과 행적을 낱낱이 밝힌 시말서를 써내라고 요구하는것이였다.

채정보는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의 처지가 가긍해보이기도 하였다.

그의 침묵에 화가 났는지 심문자가 고압적으로 나왔다.

《여기가 프로레타리아독재의 집행기관이라는것을 당신이 모르진 않을텐데. 심문에 응하지 않겠다는건 곧 숨겨진 죄과가 있다는것을 의미하는거요. 그렇게 해석해도 일없겠소?》

채정보는 모든것을 체념한채 아무런 응대도 없이 책상우에 놓여진 하얀 종이장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심문자는 더 말해봤자 빗장을 지른것과 같은 그의 입이 당장은 열리지 않으리라고 여겼던지 펴놓았던 서류들을 걷었다.

《다시한번 곰곰히 잘 생각해보시오.》

《…》

며칠후 채정보는 보위색군복을 입고 찾아온 젊은 일군을 따라 승용차에 올랐다.

채정보는 차를 타고 평양시내를 달렸다.

더 높은 심문기관으로 이송된다고 여긴 그는 흔들리는 차에 몸을 맡긴채 묵묵히 앉아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비치는 해빛이 그의 눈을 쪼프리게 했다.

그가 젊은 일군의 안내를 받아 당도한 곳은 평양에서 흔히 볼수 있는 크지 않은 청사였다.

정원에 떨어진 락엽이 금빛을 띠고있었다.

이미 승용차의 경적을 들었는지 현관까지 나오신 젊은분이 반가이 맞아주시였다.

《기다렸습니다. 김일성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그이께서는 현관계단까지 내려오시여 구면지기라도 만난듯 채정보의 두손을 잡고 힘있게 흔들어주시였다.

너무도 뜻밖인지라 채정보는 놀란 눈길을 들며 흠칫 몸을 떨었다.

친근감을 자아내는 다정한 미소… 너무도 젊으신 모습이였다.

이분이 그토록 왜놈들을 절망과 공포에 떨게 하던 김일성장군님이시란 말인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는 장군님의 전설을 들으며 잠 못들던 밤들이 떠올랐다.

눈물이 핑 돌았다.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아 인사말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였다.

장군님의 손에 이끌리여 집무실에 들어선 그의 눈길은 저도 모르게 방의 여기저기를 둘러보게 되였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소박하게 꾸려진 방이였다.

그를 이끌어 나란히 의자에 앉으신 그이께서는 손가락이 잘라지고 마른 논바닥처럼 터갈린 손등을 쓰다듬어주시였다.

《손을 보니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채정보는 그제야 자기의 처지가 돌이켜지며 이런 불민한 몸으로 장군님을 뵈온다는것은 분수에 닿지 않는 일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몸들바를 몰라 말씀조차 변변히 드리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너그러이 말씀하시였다.

《채정보동무가 남해를 떠나 우리를 찾아오다가 아주머니가 해산을 하게 되여 평안북도에 머무르게 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채정보동무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어쩌면 그런것까지… 전 일없습니다.》

《가족들은 어떻게 지냅니까?》

《저희 가족은 다 잘있습니다. 이젠 어깨를 쭉 펴고 활개치며 살고있습니다.》

장군님의 소탈한 물으심에 채정보는 점차 긴장을 풀고 대답을 올렸다. 그제야 가슴속에 간직하고있던 감사의 인사를 미처 올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일어서며 입을 열려는데 장군님께서는 그의 어깨를 눌러앉히며 다심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설음설음해도 나라 없고 집 없는 설음이 제일 크다고 했는데 정착된 곳이 없이 왜놈들을 피해다니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

채정보는 목이 꺽 메였다.

자기가 겪은 고생은 실로 아무것도 아니였다.

장군님께서는 이 나라 백성들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자고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며 싸우시느라 고생인들 얼마나 많으셨으랴!…

그는 넋을 잃고 장군님의 인자하신 모습을 우러르기만 했다.

(아, 저렇게 젊으신분을 어버이로 모신 이 나라의 장래는 또 얼마나 밝고 창창한것이냐.)

장군님께서는 물으시였다.

《몇해나 배를 탔습니까?》

채정보는 얼굴을 붉히며 말씀드리였다.

《장군님, 부끄럽습니다. 왜놈통치시기 놈들의 대형화물선 기관장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진해상선학교시절까지 합치면 근 10년동안 배를 탔습니다.》

《그러고보면 경험있는 배사람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기술도 능하고…》

장군님의 존안엔 만족해하는 빛이 어리시였다.

그러나 채정보의 목소리는 점점 기여들어갔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풍찬로숙하시며 왜놈들을 치고 해방을 안아오셨는데 전 도리여 놈들의 배를 타고…》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채정보동무도 인간이하의 멸시와 천대를 받았을것입니다. 조선민족에게 차례진 비참한 운명이 아니였습니까. 그래서 예로부터 나라없는 민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시는 나라를 침략자들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인재가 많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채동무와 같은 기술자들이 필요하단말입니다. 이제는 내 나라를 위하여 뼈심을 들여 일할 때가 왔습니다. 나는 채정보동무에게 중요한 과업을 하나 맡기자고 합니다.》

《저에게 말입니까?》

채정보의 입에서는 다시 놀란 말소리가 새여나왔다.

예심을 받게 된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던 자기에게 중요한 과업을 주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터였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렇습니다. 동무에게 말입니다. 우리는 인민무력을 건설하면서 여러 군종, 병종의 간부양성기지들을 꾸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해군간부양성기지를 꾸리지 못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야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이 아닙니까. 이전에 일본놈들이나 미국놈들은 다 바다로부터 우리 나라를 침략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바다를 지키기 위해 해상보안간부학교를 세우자고 하는데 바다물계를 잘 아는 채동무와 같은 사람들이 이 사업을 맡아주었으면 해서 불렀습니다.》

《제가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해양국으로서의 체모에 맞게 강력한 해군을 건설하자고 합니다. 물론 우리의 손으로 각종 함선도 건조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동무와 같은 기술자들이 필요합니다.》

너무도 뜻밖의 말씀에 채정보는 어리둥절해졌다.

《장군님, 제가 어떻게 그런 중임을…》

너무도 한량없는 믿음에 채정보는 황송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장군님께서는 친근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물론 어려울수 있습니다. 빈터에서 하는 일이니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닐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먹고 달라붙으면 능히 해낼수 있습니다.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이 뭐 정규교육을 받고서 문무지략이 겸비된 싸움군들로 자랐겠습니까. 모두 전투를 하고 행군을 하면서 우리 글로부터 혁명의 리치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배웠습니다. 그러니 배심을 크게 가지고 해양국의 위용을 떨쳐봅시다.》

채정보는 당황해났다.

《장군님, 그래서 그런게 아닙니다. 저를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채정보의 목소리가 처음엔 꺽 메였다가 맥없이 울려나왔다.

《동무의 과거사때문에 그럽니까? 우리는 그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은 너그럽게 울리였다.

허나 채정보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전 어제까지도 검찰소에 불려다니던 몸입니다. 그런 제가 장군님을 받든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채정보는 오열을 터치며 그간에 있었던 자초지종을 두서없이 말씀드리기 시작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창가로 다가서시여 인내성있게 그의 말을 들어주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천천히 돌아서시면서 가슴아픈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니까 정보동문 일부 우연분자들의 그릇된 처사때문에 의기소침해진 모양인데… 배를 타고 대양을 횡단했다는 동무의 배짱이 그게 답니까?…》

그이의 음성은 안타까움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채정보는 아무리 장군님의 질책이 준절해도 한시도 그이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이따금 넓은 이마앞으로 드리워진 몇오리의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쓸어넘기시는데 우렁우렁한 그이의 음성과 빛나는 안광은 채정보를 매혹시키였다.

창가에서 물러서신 그이께서는 채정보의 곁으로 다가오시였다.

《채정보동무, 우리는 동무를 믿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내 조국을 위해 한몸 바치겠다는 그 각오 하나면 무서울것도, 두려울것도 없습니다.》

《장군님, 잘 알겠습니다. 제가 그만…》

장군님께서는 채정보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였다.

《알았으면 됐습니다. 우리 서로 힘을 합쳐 우리의 바다를 굳건히 지켜나갑시다.》

어버이의 따뜻한 체온이 바다물에 쩔고 해풍에 거칠어진 채정보의 가슴에 포근히 스며들었다.

아, 이것이 내가 안겨사는 어버이의 품이구나.

채정보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장군님의 하해같은 믿음과 사랑을 잊지 않고 그이를 받들어 헌신의 길을 가리라 맹세를 다졌다.

다음날 그는 두 아들을 불러앉혔다.

《내 말을 명심해듣거라. 바다를 지키는 일은 내 조국의 관문을 지키는 일이고 장군님 계시는 평양을 보위하는 성스러운 일이다. 온 집안이 그이의 뜻을 따라야 한다. 바다를 잘 아는 우리 삼부자가 장군님께서 맡겨주신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길에 선참으로 나서자.》

그날로 아버지와 아들들은 모두 해군무력창설을 위해 집을 나섰다.

그는 장군님께서 파도사나운 날바다에서 몸소 어뢰정을 타고 하시던 말씀을 잊을수 없었다.

《력사적으로 보면 외적들이 대체로 바다로 많이 침략하여왔습니다. 우리가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보위하자면 해군을 강화하는데 힘을 넣어야 합니다.》

얼마나 해군을 강화하는데 마음을 쓰셨으면 그토록 뜻깊은 말씀을 하셨겠는가.

아마 그이께서는 바다를 건너온 섬나라 오랑캐무리들을 쳐부시던 백두의 혈전만리길에서부터 장차 조선의 해군을 창설하실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셨으리라.

장군님의 뜻을 깊이 명심했기에 채정보는 우리의 힘으로 경비함을 건조할데 대한 영예로운 임무도 나라의 운명과 직결된 중대한 사업임을 알고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그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건조된 200톤급 경비함 네척이 차례로 진수될 때마다 장군님께서는 채정보의 수고를 거듭 치하해주시였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심장은 금시 흉벽밖으로 튀여나올것처럼 쿵쿵 울리였다.

걸음을 멈춘 채정보는 자기뒤로 누군가가 따라온다는것을 느끼였다. 돌아섰다. 리설경이였다. 그는 처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단정히 쓴 군모아래 바다바람에 흩날리는 자분치가 도도록한 이마우에서 반짝인다.

채정보는 먼저 위로의 말을 했다.

《전쟁이 아닌가.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이미 전장에서 피흘리며 목숨 바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겠지. 우리 진경이야 어뢰정으로 미국놈들의 중순양함을 까부시는 싸움에 참가하지 않았나. 난 그걸 자랑으로 여긴다.》

싸움판에 처음으로 나온 처녀, 이 준엄한 싸움만 아니라면 오래지 않아 며느리로 대하게 되였을 처녀를 바라보는 채정보의 가슴은 알알해왔다.

리설경이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채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었다.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군의소에 어머니가 오셔서 진경동물 돌봐주고있습니다. 동생도 한번 왔다갔습니다.》

둘째아들도 해군복을 입고있었다. 그러고보면 전쟁이 일어난지 며칠어간에 온 가족이 이 싸움터에 뛰여든것이였다. 우리 가정의 일원으로 될지 모를, 소독내가 몸에 배인 이 연약한 처녀도 준엄한 전쟁의 불길속에서 강철로 벼려질것이다.

여름이라지만 파도치는 바다기슭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채정보는 해방전 평북광산일판을 돌아다니며 기계수리를 해줄 때 아들형제를 키우던 생각이 났다.

그들은 장난이 무척 세찼다. 특히 채진경이라면 린근동네에서 싸움대장으로 소문이 짜했다. 그의 코에서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고 부은 눈두덩이가 가라앉을 사이가 없었다. 그에 따르는 어머니의 지청구 또한 귀가 아플만큼 높았다. 형의 주먹이 세면 동생이 그 그늘밑에서 한몫 볼 때가 많다. 그러나 동생 채진철에게는 그런 기회가 차례지지 않았다. 형이 그런 동정과 응석을 받아주려 하지 않았던것이다.

하루는 진철이가 광산덕대의 아들에게 얻어맞고 피가 랑자하여 집울안에 들어섰다. 그때 채정보는 아래방에 있었다.

마당에서 맏아들 진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어디서 얻어맞았니?》

《저기 백원이새끼가 때렸어!》

《왜 맞았니?》

《자기네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보다 더 쎄다구 하면서…》

《이 민충아, 왜 마주 때리지 못하고 얻어맞기만 하니?》

《갸가 나보다 키가 한뼘이나 더 큰데 뭐… 형, 한번 때려줘.》

동생의 마지막말이 형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철썩! 동생의 귀뺨을 후려치는 여무진 소리가 울렸다.

어디에 갔다가 돌아오댔는지 허둥대며 부르짖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동생의 역성을 들어주지는 못할망정 웬 손찌검이냐! 이 꼴을 못보니?》

어머니가 진철을 품에 안고 토방에 올라서려는것을 진경이 막는것 같다.

《어머니, 그 앨 놔두세요!》

형은 어머니의 품에서 바들바들 떠는 동생의 팔을 와락 나꿔채서 밖으로 떠밀었다.

《야, 너 어딜 들어와? 이제 당장 가서 그놈을 때려주고 들어와라. 그전엔 이 집문턱 넘어설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 어서 나가!》

어머니가 피자박이 되여 울며 나가려는 진철을 말리려 했지만 진경은 막무가내였다.

《놔두라요. 맞고 다니기 시작하면 버릇돼요!》

진철이 훌쩍거리며 나가는 소리에 이어 《야, 그만 그쳐. 울면 지는거야!》 하고 동생의 등뒤에 대고 소리치는 진경의 목소리가 울렸다.

방안에 도면을 펴놓고 앉아있던 채정보는 뜨락에서 벌어지는 일을 처음부터 낱낱이 감수하고있었다. 그는 맞고는 집에 들어서지 말라는 진경의 말이 백번 옳다고 생각했다.

언제인가 어머니 안풍심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를 찾아 남해까지 찾아온 맏아들을 안고 바다로 나갔던 일이 있었다.

쾅쾅, 기슭을 때리는 센찬 파도는 그들의 발치아래에 휘뿌려졌다. 무서워난 어린 진경은 아버지의 허리춤을 꼭 부여잡은채 떨어질줄을 몰랐다. 《허-》 하고 허구픈 웃음을 짓고난 채정보는 어린 아들을 전마선에 태우고 광란하는 파도를 헤치며 기슭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갔다. 무서워난 아들은 왕 울음을 터뜨렸다. 채정보는 껄껄 웃었다. 어린 아들을 짜디짠 바다물에 절고 사나운 물멀기에 길들여져 온갖 세상풍파도 끄떡없이 헤쳐갈 바다사나이로 키우려는것이 아버지된 마음이였다.

맏아들은 그렇게 굳세게 자라났다. 그러니 어디에 가서 매나 맞고 들어오는 동생의 꼴을 형으로서 어찌 용납할수 있겠는가.

집은 결코 싸움을 피하는데가 아니다. 집은 꾸리고 지키는 보금자리이다. 아이들의 싸움이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계급적대결이 있었다. 돈 있는자와 없는자간의 융합될수 없는 대립과 모순, 권세에 눌리지 않으려는 진경의 자존심… 진철은 점차 형을 닮아 담차고 굳센 사내로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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