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2편 봉화

5

 

그날 김포군용비행장에 미군비행기가 날아와 착륙하였다.

비행장에는 미군정장관 띤, 정보고문 노불을 비롯하여 남조선강점 미군사령부의 거두급인물들이 나와있었다.

멎어선 비행기안에서 승강대가 내려지고 중장직급표식의 카키색군복차림의 미군장성이 몹시 불쾌하고 쓰거운 표정으로 내렸다. 도꾜의 맥아더사령부에 불리워가서 남조선에서의 당면한 5.10단선을 무난히 치르기 위한 모종의 지시를 받고 돌아오는 하지사령관이였다.

그는 기분이 몹시 나빴다. 험악한 남조선의 현정세로 하여 예정기일보다 하루 앞당겨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게 된 그를 떠나보내면서 한 맥아더의 극히 모욕적인 욕설때문이였다.

《하지중장, 나는 당신을 결단력있고 능력있는 군인으로 백악관과 국방성에 추천했었소. 유럽의 도이췰란드와 동등한, 아니 그보다 더 주목되는 동방의 남조선의 실권자, 주둔사령관자리에 말이요! 그런데 당신은 남조선의 정치정세를 수라장으로 만들어놓았소. 그게 뭔가 말이요. 무맥무능하오! 실망하게 되오. 당신을 추천한 나까지 망신을 당하고있단 말이요. 워싱톤에서는 지금 당신의 퇴역설까지 나돌고있는 형편이요. 어쨌든 5. 10단선을 모든 힘을 다해 치르시오. 이번 선거는 당신의 운명과도 직접 관계되오.》

하지에게는 이런 모욕이 처음이였다. 이러한 모욕은 일생토록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랬기때문에 오만상을 한 하지사령관은 비행장에 마중나온 이곳의 거두급인물들과 시답잖게 건성 인사를 받는둥마는둥하고 대기하고있는 승용차쪽으로 말없이 다가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홱 돌아서서 《미스터 노불, 사령부에 도착하는 즉시 나에게로 오시오.》 하고 명령조로 뇌이고는 차안으로 들어가 탕- 차문을 닫았다.

하지사령관이 탄 승용차는 서울의 미군사령부를 향해 최속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달리는 차안에서 얼굴을 잔뜩 찌프리고있었다. 뾰족한 턱을 쳐들고 눈을 꾹 감은채 불쾌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맥아더에게서 받은 모욕이 독을 바른 가시처럼 박혀 줄곧 괴롭히고있었다.

(뭐 워싱톤에서 퇴역설까지 나돈다고? 제기랄!)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두덜거리는 하지의 머리속에는 작년 이맘때 백악관에 찾아가 트루맨대통령을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 하지는 백악관에 찾아가 트루맨에게 군정부(미군정청을 말함.)가 점령지대안에서 림시정부를 만들기 위하여 준비한 내용을 상세히 보고했었다. 트루맨은 그의 보고에 기초하여 앞으로 쏘미공동위원회를 개최(2차)하되 조선의 통일문제를 질질 끌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면서 《외교적수단(유엔을 말함.)》을 통하여 조선문제를 토의할데 대한 맥아더와 마샬의 계획을 승인했다. 하여 하지가 트루맨을 만난지 몇달후에 미국은 조선문제를 갖은 방법을 다 리용하여 유엔에 상정시키고 마침내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창조해내여 남조선에 단독정부를 만들기 위한 길로 지금까지 줄달음쳐왔었다. …

(그런데… 그 실현을 위해 불철주야 뛰여다닌 나에게 무맥무능하다구? 건달군이라구? … 에익… 허풍쟁이 맥아더.)

하지는 속이 뒤집히고 간이 찢어지는듯 한 아픔이라도 느낀듯 신음소리를 씹어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으음…)

맥아더의 수하에서 오랜 기간 복무해온 하지는 미국국민의 우상으로 되여있는 맥아더의 인격을 내심 그리 탐탁하게 여겨오지 않았었다. 하지의 개인적인 안목에 의하면 맥아더의 치명적인 약점은 지독한 자고자대와 허장성세하기 좋아하는 악습이였다.

(허풍쟁이!) 하고 하지는 원한을 품고 차안에서 속으로 그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비행장을 떠난 승용차는 어느새 서울에 도착하여 거리거리를 굽이쳐 내달리더니 미군사령부청사 현관앞에 바싹 다가가 멎어섰다. 하지는 승용차에서 내려 성급한 걸음으로 현관안에 들어섰다. 그는 좌우를 살피지 않고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가 내던지듯 가방을 책상우에 놓고 쏘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뒤따라 부관이 커피와 몇권의 문건이 든 봉투를 가지고 소리없이 들어와 탁자우에 놓고는 역시 소리없이 밖으로 나갔다.

하지가 커피를 마시고 문건이 든 봉투를 뜯는데 부관이 다시 들어와 정보고문 노불이 찾아왔다고 보고하였다.

《들여보내오.》 하고 하지는 불쾌한 낯색으로 말했다.

정보고문 노불이 문가에 나타나자 그는 노기를 띠고 느닷없이 쏘아붙였다.

《미스터 노불, 당신은 지금까지 뭘 하고있었소? 왜 이곳의 정세가 이 모양 이 꼴로 돼가오? 이래가지고 어떻게 본국에서 그토록 관심이 큰 5. 10단선을 치르겠느냐 말이요!-》

노불은 걸핏하면 성을 내며 신경질을 부리는 하지를 대할 때마다 늘쌍 야릇한 미소를 짓고 침묵하는것으로 대하군 하였다.

지금도 그러했다. 성미가 조폭한 하지사령관이 성을 낼 때면 노불은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던것이다.

《서슴지 말고 말해보시오. 최근 더욱 악화된 이곳의 정세가 어느 지경인가 말이요?》 하고 하지는 천연스레 침묵하고 앉아있는 노불을 쏘아보며 따져물었다.

노불은 별로 당황해하는 기색도 없이 이미 준비하고있던 자료들을 하지사령관에게 상세히 통보하였다.

… 한마디로 집약하면 5. 10단선을 앞둔 남조선의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의 정세는 절망적이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되는것은 이곳 남조선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민족주의자들의 거두들인 김구, 김규식과 중간파, 좌파, 기타 우익의 명망있는 인물들이 5. 10단선을 일치하게 반대해나서고있는것이다. 더우기 간과할수 없는것은 북의 공산주의자들이 들고나온 남북련석회의 발기에 그들 거의 전부가 공감해나선것이다. 이렇게 되여 극소수인 리승만일파는 극도로 고립되여있다. 시급히 강력한 비상조치가 없는 한 이 악화된 정세는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미스터 노불, 당신의 의견에는 어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하지는 뜻밖에도 자신의 분노를 누르면서 목갈린 소리로 물었다.

《사령관각하! 이제는 어루만지는 회유책으로는 사태를 수습하지 못합니다. 오직 강력한 물리적방법, 비상조치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불은 잔인해보이는 새파란 눈을 번쩍이며 력설했다.

《미스터 노불, 비상조치란 무엇을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요? 남조선 전역에 계엄령선포를 의미하는것이요?》

《사령관각하, 오늘 당장 계엄령을 선포하지는 않더라도… 지금부터 우리 미군과 남조선경찰을 총동원하여 삼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만일 그렇지 않는 경우 5.10단선 반대자들과 그에 합세한 민심을 걷잡기 어렵고 그렇게 되면 이곳에 우리 미국의 위성국가를 세우는것은 불가능할것으로 판단됩니다.》

노불은 하지를 면바로 쳐다보며 확신성있게 언명했다.

《으…음…》

하지는 자기도 모르게 나직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이발을 악물었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허공 어딘가를 쏘아보고있었다. 이윽고 하지는 악문 이발사이로 내뱉듯 차겁게 말했다.

《나 역시 당신의 견해에 공감이요. 미스터 노불, 지내 락심할것은 없소. 우리 미군이 이곳에 틀고앉아있는 한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선거는 반드시 치르게 되고 이곳에 우리 미국의 위성국가는 일어서게 될거요.》

즉단즉결하는것을 자기의 장끼로 여기는 조폭한 하지는 노란 눈섭을 바르르 떨며 두주먹을 부르쥐였다.

《…한데 김구가 북의 공산주의자들이 들고나온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할 의향을 표시했다는건 정확한 정보요 아니면 당신의 추측이요?》

하지는 격노한 목소리로 따져물었다.

《정보의 정확성은 완전히 담보됩니다. 북에서 온 특사가 경교장을 방문하였고 남북련석회의 초청장도 받았습니다. 김구 본인도 숨김없이 내놓고 그것을 말하고있습니다.》

《김구! 김구! 그는 북으로 갈 형편이 못되는데… 북에서는 지금 그를 타도하자고 웨치며 도처에 구호까지 나붙었소. 김구는 과거에뿐아니라 해방후에도 테로단을 보내여 북에 많은 죄를 지었는데… 그래도 평양에서 열리는 회의에 간다구?》

하지는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사령관각하, 옳습니다. 그런데 북에서는 분렬의 비극을 막고 자주통일정부수립을 주장하면서 김구를 비롯한 모든 민족주의자들의 과거를 묻지 않으며 현재 애국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누구와도 마주앉아 회합할 의향을 이미 표시했습니다. 북의 통일전선전략과 또 산전수전 다 겪은 김구의 인간상으로 보아 그는 회의에 참가하려고 북으로 갈것입니다.》

노불은 정보전문가의 분석력을 시위하듯 충혈된 뻘건 눈을 번쩍이며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단 말이지. 이북공산주의자들의 통일전선전략이라! 좋소. 내놓고 협박을 해서라도 우선 김구의 평양행을 막아야겠소. 내가 직접 수일내에 경교장으로 가서 김구를 만나겠소. 나쁜 놈의 늙다리두상!》 하고 자기의 결심을 몰풍스럽게 뇌이는 하지의 얼굴에는 악의와 분노가 서려있었다.

그때 하지의 부관이 성급히 방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요, 부관.》 하고 하지는 나직이 물었다.

부관은 문가에 서서 총알처럼 빠른 어조로 보고했다.

《사령관각하! 미군정청 코페닝 경찰고문이 찾아왔습니다.》

《코페닝경찰고문이?》

《그렇습니다. 급보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들여보내오.》

부관이 문밖으로 나가자 곧 배가 불룩하니 나온 미군정청 경찰고문 코페닝이 컴컴한 얼굴로 들어섰다.

《사령관각하! 방 금전에 제주도에서 긴급무전이 왔 습니다. 오늘 새벽 2시에 제주도전역에서 일시에 폭도들의 무장반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폭도들은 제주시와 모든 군, 면, 리들을 점거하고…》

《뭐요?- 무장반란이?!》

하지는 쏘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무엇인가 불시에 되게 얻어맞은듯 한 표정이였다.

미군정청 경찰고문인 코페닝은 제주도의 경찰고문 팻트릿치가 보낸 긴급전보문을 그대로 하지사령관에게 보고하였다.

… 새벽 2시, 제주도 전 지역에서 폭도들의 무장반란으로 제주시경찰서, 각 군, 면의 경찰서 및 경찰지서, 기관들이 일시 점거당함.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에 의하면 희생자는 당직근무경찰 7명, 무기고와 탄약창고들이 털리웠음…

그 다음 전보문에는 폭도들의 습격의 불의성과 조직성, 습격인원들이 밝혀져있었는데 분명 책임추궁이 두려워 피해상황은 극력 줄여서 보고하였으며 폭도들의 습격인원은 대폭 과장된것으로 판단된다고 코페닝은 자기 의견을 덧붙여 보고했다.

《코페닝!- 이게 뭐요? 감히 미군점령지역에서 무장반란을? 2차대전이후 아직 이런 반항은 없었소. 부관!》

하지는 지금껏 누르고눌렀던 분노를 터뜨리였다. 마치 화약이라도 삼킨 사람같았다.

부관이 들어오자 하지는 즉시 명령했다.

《미군정장관 띤을 긴급히 부르시오.》

부관은 바람에라도 불린듯 어느새 밖으로 나갔다. 하지는 분격을 누르지 못하고 방의 이쪽끝에서 저쪽끝으로 오락가락하였다.

조금후 미군정장관 띤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하지는 조폭한 성미그대로 거칠게 부르짖었다.

《띤!- 제주도에서 폭도들의 무장반란이 일어났소. 대전이후 우리 미군이 점령한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감히 이따위 무장반란은 아직까지 없었단 말이요. 당신이 현지에 나가 수습하시오. 미군의 무쇠주먹맛을 톡톡히 보이시오. 무자비! 무자비하게 짓뭉개놓으시오.

떠날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소?》

말이 적고 무자비한 띤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키는 그리 크지는 않으나 다부진 띤의 눈에서는 불꽃이 튕기고있었다. 노란 눈동자가 고양이 눈깔처럼 곤두섰다. 군복깃이 빠듯하여 실한 목을 꼿꼿이 세운 그는 전형적인 양키기질의 소유자였다.

《하지사령관각하! 준비는 별로 할것 없습니다. 다만 불미스러운 이 엄중한 사태앞에서 사령관각하와 몇가지 토론하고는 곧 떠나겠습니다.》 하고 띤은 노란 눈알을 사납게 번뜩이며 눈섭을 치켜들고 랭담한 어조로 단호히 말했다.

《좋소, 띤. 가까이 와앉으시오.》

하지는 감기라도 걸린듯 한 갈린 목소리로 말하며 피발이 선 눈으로 걸상을 가리켰다.

그로부터 이틀후 제주도 미군정장관의 사무실로 사용하는 관덕정의 본관에서는 제주도 군정장관 맨스필드, 경찰고문 팻트릿치, 제주도 경찰서장, 《국방경비대》 9련대장 김의렬중령을 비롯한 제주도내 군, 경찰, 행정의 거두들이 모여 4. 3봉기수습책을 토의하고있었다. 습격당한 경찰서와 지서들의 정비와 그에 따르는 인원보충 및 증강문제, 무장폭동진압에 서북청년단과 사설청년단체들의 인입문제, 포대설치와 검문검색초소들의 장소설정, 어선 및 류동인원단속문제, 서울 미군정청에 경찰무력을 증파해줄데 대한 건의안… 등을 놓고 벌써 두시간남짓 갑론을박하고있었다.

그 시각에 제주항에는 미군함이 아무런 사전통보도 없이 오만한 자태를 드러내며 들어서고있었다. 대포와 여러 종의 기관포를 싣고 온 미군함에서는 눈깜빡할 사이에 배측선에서 든든한 하선교간이 내리워졌다. 그우로 한개 소대가량의 중무장한 미군과 승용차 한대, 군용차 3대가 뭍으로 기여나왔다. 맨 마지막으로 다부진 몸매의 띤이 내리더니 급한 걸음으로 찦차로 다가갔다.

찦차는 벌써 발동을 걸고 부릉거리고있었다. 차들에는 완전무장한 미군병사들이 분승하여 올라타고 출동태세를 갖추고 대기하고있었다. 부두에서 관덕정까지의 거리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제주도상륙을 어마어마하게 시위하려고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내달려 관덕정앞마당에 도착하였다. 완전무장한 미군병사들은 차에서 껑충껑충 뛰여내려 몇걸음간격으로 관덕정주변과 입구에 부동자세로 꼿꼿이 섰다. 이 요란스러운 호위의 한복판을 띤이 좌우를 살피는 일없이 도고하게 몸을 세우고 기고만장하여 지나갔다. 지금 띤은 하지사령관으로부터 제주도 계엄사령관의 특명을 받고 이곳에 도착한것이다. 미국식오만성과 양키의 포악성을 겸비한 띤이 제주도에 발을 들여놓은것자체가 얼마나 몸서리치는 참혹한 일인가를 제주도사람들은 아직 모르고있었고 또 알수가 없었다.

띤, … 미23군단의 점령지역들에서 원주민들의 소요와 저항이 있을 때마다 그 진압의 적임자로 이자를 택하군 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알수 있을것이다. 기실 띤은 필리핀과 부르네이군도… 여러 섬들에서도 《무쇠주먹》으로서의 자기의 포악한 기질을 남김없이 보여주어 그곳 원주민들속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악명을 떨치군 하였다.

제주도 군정장관 맨스필드의 사무실앞에 당도한 띤은 눈섭 하나 까딱 않고 제잡담 문을 벌컥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순간 모여앉아 열을 올리며 론의에 열중했던 방안의 사람들은 오만무례하게 기척도 없이 들어서는 그에게 놀란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거나말거나 띤은 이곳 군정장관 맨스필드와 건성으로 눈인사를 나누고는 좌우를 보지 않고 곧바로 맨가운데 책상앞으로 다가가 섰다.

그 다음 처음으로 방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먹이를 노리는 수리개마냥 띤의 쏘는듯 한 눈에서 노란빛이 번득였다. 소장직급이 붙은 띤의 군복상의는 번번한 잔등과 핑핑한 어깨를 주름살 하나없이 감싸고있었다.

《다들 알고있으시오. 본관은 하지사령관의 특별명령으로 이곳 제주도 계엄사령관의 특명을 받고 왔소. 명심해들으시오. 이 시각부터 계엄령을 선포하오. 제주도4.3반란진압과 관련한 하지사령관의 명령을 전달하겠소.》

띤은 얼음쪼각을 내뱉듯 차거운 목소리로 표독스럽게 말했다.

《제주도의 모든 행정, 경찰, 군대는 제주도 계엄사령부의 관할하에 들어간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계엄사령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것이다.》

띤은 그 다음 즉시 속기자를 불러 자기의 명의로 된 계엄포고문을 랑독하였다. 그 포고문에는 어느 나라 계엄력사에도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조폭하고 포악하며 불법무도한 조항들로 꽉 차있었다.

《해안선으로부터 4km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적지로 선정한다.》

《섬의 중간지대, 산간지대에서 발견된자는 리유여하를 불문하고 적으로, 폭도로 간주하며 사격을 허한다.》

이것은 제주도인민들의 무장봉기를 압살하기 위해 미군사령관 하지와 미군정이 직접 나서서 연출한 광란적인 류혈극의 개시를 의미하였다.

회의장에 앉아있던 대다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해안선에서 4km 떨어진 지점에서부터 《적지》로 한다면 《해방자》로 자처하는 미군은 제주도인민들전체를 《적》으로, 《폭도》로 간주한다는것이 아닌가! 이 《적지선정》이 도대체 무엇에 근거를 두고 세운것이며 이렇게 설정해놓고 이제 집행은 어떻게 하자는것인가!

참가자들속에서 의문스러워하는 눈길들이 오고가자 띤은 멸시하는듯 한 눈길을 피끗 던지더니 곧 외면하고 즉시 사납게 쏘아붙였다.

《다시한번 상기시키지만 나는 이곳 계엄사령관이요. … 구태여 말한다면 적지설정은 나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하지사령관과 미군정의 창안이요! … 래일이면 이 섬에 대규모의 증원부대를 실은 상륙함정들이 도착하오. 미군방첩대도 이곳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게 되오! … 미스터 맨스필드, 이제는 미군사령부의 의도를 알만 하오? …》

물어뜯는듯 한 띤의 폭언에 맨스필드는 기가 죽은듯 머리를 숙이고있었으나 슬며시 머리를 들었다.

《나는 제주도 군정장관으로서 이 섬의 구체적인 실정과 민심, 봉기의 원인을 분석한데 기초하여 강경책과 함께 회유책을 동시에 쓰려고 했었소. … 그렇게 하여야만이 5.10단선을 무난히 치를수 있다고 판단…》

《그만두시오, 미스터 맨스필드!》 하고 띤은 무자비하게 맨스필드의 말을 중도에서 꺾었다.

《계엄사령관인 나는 그런 회유책이니 뭐니 하는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소. 군인인 나에게는 오직 명령을 집행할 의지뿐이요. 진압! 무자비한 강경, 진압뿐이요!-》

그날부터 제주도는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제주시의 항구와 거리는 물론 서귀포를 비롯한 여러 면들에 검문소와 포대, 화점들이 구축되고 한나산쪽을 향해 탄띠를 물린, 당장 발사상태의 중기와 경기의 검은 총구들이 입을 벌리고있었다.

다음날 남조선 각 도에서 뽑히여 미군상륙정에 실려온 2천여명의 증원경찰대가 제주항에 내리자 곧바로 각 면의 현지초소들로 떠나갔다.

그리하여 행인들과 무잠이에 나가는 해녀들, 방목지나 밭에 나가는 농민들이 샅샅이 몸뒤짐을 당하였고 경기관총들이 멀리 보이는 사람들을 향해 무시로 총탄을 쏘아댔다. 아직은 포고문이 발령된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고구마밭을 매거나 방목을 나가려다가 영문도 모를 총탄에 맞아 밭이랑과 목축지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증강된 경찰들은 대낮에 부락과 마을에 달려들어 가정의 식구들가운데서 남정이 한명이라도 없는 집은 늙은이와 녀인들에게 남편과 아들이 어디 갔는가고 문초하고 악독한 고문을 들이댔다. 산에 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는 물론이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반항할 때에는 가차없이 바다가와 들판에 끌고 나가 총살하였다.

폭압의 선풍이 온 섬을 휘몰아쳐 낮은 낮대로 한산하고 밤은 밤대로 무시무시했다. 사람들은 등잔불도 켜지 못하고 정지간구들에 모여앉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불행과 죽음의 공포속에 몸을 떨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은 한나산밖에 없었다. 그처럼 기세좋게 타오르던 봉화의 거점인 한나산, 그 첫날의 불길이 웨치던 신념과 용기, 의지… 그리고 언약을 믿고있었다. …

제주도인민유격대가 조직된 후 적《토벌군》과의 최초의 조우전은 산양지대의 산악에서 벌린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제주도인민유격대는 자기의 전투력을 발휘하여 적들을 무자비하게 격파했다. …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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