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2편 봉화

6

 

제주도의 전 지역에서 계엄령을 선포한 적들은 마을과 거리, 바다가와 들판, 도처에서 련일 인민들을 박해하고 처형하는 몸서리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리유와 근거란 따로 없었다. 제주도민의 전부가 《빨갱이》가 아니면 그의 철저한 지지자, 동조자라는것이다. 그리하여 온 제주도의 거리와 마을, 집들에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검은 그림자가 뒤덮고있었다.

사람들은 제 집에서도 낯선 발자국소리만 들려와도 몸을 흠칫흠칫 떨었다. 이제는 법이란 말조차 없어졌다. 재판도 법률도 질서도 없었다.

다만 명령이 있을뿐인데 곳곳에 붙어있는 계엄군의 포고문에는 모두 총살이란 문구로 위협하고있었다. 계엄군에게는 그보다 가벼운 형벌은 없는것이다. 그것도 총을 쥔 어떤 놈이든지 즉석에서 제멋대로 내릴수 있고 집행할수 있는 총살이였다. 총쥔 놈이 《저놈 죽이라!-》, 《저 새끼를 잡아라!-》 하고 웨치기만 하면 즉석에서 총살되고 체포되는것이다.

하고싶은것은 뭐든지 마음대로 다할수 있는것이 계엄군의 《권리》인것이다.

하여 제주도인민들의 원성은 하늘에 닿았다. 이곳 인민들은 한나산의 유격대밖에 더는 구원의 손길, 희망을 걸데라고는 없었으며 어디다 호소할데도 없었다. 련일 무고한 주민희생의 비참한 통보가 인민유격대에 들어왔다.

드디여 제주도인민유격대본부에서는 계엄령을 선포한 적들의 야수적인 폭압공세, 선거공세를 짓부시기 위한 본격적인 강력한 첫 타격전을 벌리기로 하였다.

유격대본부에서는 그러한 본격적인 첫 타격전을 적들이 모범선거구로 만든다고 벅적 고아대면서 경찰국장까지 와서 틀고앉아있는 북제주군 한림일대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지금까지 이미 이런저런 형태의 중소규모의 습격전은 여러차례 벌렸었다. 애월면 광화령부락에서의 매복전투, 산양리전투 등 적들을 처단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기동적인 습격전투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한림지대에 대한 공격은 대규모의 전투로서 기고만장하여 날치는 적들을 기절초풍케 하고 인민들에게 신심과 희망을 안겨주는 한편 놈들의 선거공세를 여지없이 분쇄해버리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유격대본부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놈들은 유격대 대장, 지대장급의 인물들에 대한 현상금까지 걸어놓고 발광하는 한편 북제주군 한림면을 모범선거구로 만든다고 떠들어대면서 경찰인원을 대폭 늘이고 선거포스타, 공시문, 축대문을 세워놓고 대대적인 공세를 벌리고있었다. 이곳에는 계엄사령관 띤과 한짝인 조병옥놈이 내려와 틀고앉아 지휘하고있었다.

유격대본부는 바로 이곳을 기습타격하여 띤놈과 조병옥의 모범선거구 구상을 뒤집어엎고 반선거전의 보루, 해방구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마침내 제주도인민유격대 대장 김달삼이 인솔하는 200여명의 유격대원들은 한림을 향해 한나산의 기지를 출발하였다. …

제주도인민유격대는 한림면습격전투를 대담하게 낮 1시에 개시했다.

한발의 신호탄이 오르자 서쪽계선에 매복해있던 2. 7지대 백여명의 대원들과 동쪽계선에 진출하였던 김달삼대장이 이끈 백여명의 유격대가 멸적의 총성과 함성을 울리며 일시에 공격해 들어갔다. 화점과 보초소, 경찰지서와 숙소들에 대한 집중타격을 들씌웠다. 불의의 기습에 극도로 당황망조한 적들은 반항도 못해보고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드디여 습격전은 추격전으로 변했다.

추격의 총성이 채 멎기도 전에 한림면거리에는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며 떨쳐나왔다. 그러자 살벌하고 침침하던 거리는 불시에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이곳저곳에서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읍거리에는 삐라들이 눈처럼 날리고 사람들은 담벽들과 전보대에 나붙은 격문들을 읽으며 흥분하여 떠들썩하였다.

《망국단선 절대반대한다!》

《미군 물러가고 류혈탄압 중지하라!》

《전민족의 의사에 의한 통일정부 세우자!》

김일성장군 만세!》

제주도인민유격대에 의해 한림의 거리는 유격대원들과 집집에서 뛰여나온 어른, 아이, 녀자, 남자들로 명절처럼 흥성거렸다. …

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날 한림면에 틀고앉아 모범선거구로 만드는것을 현지에서 지휘하던 조병옥놈은 혼비백산하여 바다로 통한 면의 뒤개울에 숨겨두었던 나루배를 타고 비양도쪽으로 도망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한림해방전투가 있은 후 각 지대들에서도 각기 이와 같은 성격의 해방전투를 벌리기로 하였다. 3. 1지대는 조천면을, 4. 3지대는 표선면을 공격하여 해방할 작전을 준비하고있었다. …

3. 1지대 지대장 리덕구는 조천면해방전투를 하루 앞두고 각 중대들에서 슬기롭고 용감하며 기지있는 대원들을 선발하여 정찰조를 조직하도록 지시했다. 정찰조의 임무는 이미 료해장악한 적정을 재확인하는것이였다.

선발된 정찰조원들이 출발에 앞서 리덕구지대장앞에 나타났다. 그들속에는 조성철, 고병호, 한미숙도 있었다.

리덕구는 선발된 정찰조원들에게 정찰임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적들의 숙소, 포대, 면경찰지서의 증강된 인원수 등에 변동이 없는가를 정확히 확인, 재확인하도록 명령하였다.

리덕구지대장은 정찰조가 떠나기 전에 조성철과 고병호, 한미숙을 불러 잠시 림시지휘부에서 따로 만났다.

《그래 정찰임무수행에 자신들이 있소?》 하고 리덕구는 엄하면서도 애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세 청년은 전혀 긴장감없이 리덕구앞에 서있었다.

《선생님, 아니 지대장동지, 우리들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이제는 당당한 유격대원으로서 실력으로 정찰조에 선발되였습니다.》

조성철이 정색해서 대답하였다.

《그래…》 하고 리덕구는 소리없이 웃었다. 아닌게아니라 그들은 그동안 유격대생활에서 몰라보게 변한것 같았다. 해볕에 고동색으로 탄 그들의 얼굴에는 애숭이청년이 아니라 단련되고 성장한 모습이 비껴있었다.

(음…)

리덕구는 이들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2중적인 감정을 어쩔수없이 다시금 느꼈다. 준엄한 생활속에서 단련되고 벼려지며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이 한편 기쁘기도 하고 한편 가슴속 밑바닥에서 날카롭고 뾰족한것이 쿡쿡 찌르는듯 한 아픔을 느끼기도 하였다. 학교의 조용한 교실에서 배움에 열중해야 할 나어린 학생들까지 총잡고 싸움에 나서게 만든 미제와 매국노들의 가증스러운 폭압에 새삼스러운 증오감을 치솟게 했던것이다.

《좋소. 침착하고 또 침착해야 하오. 고병호동무는 이전처럼 남들에게 용감성을 시위하는 버릇이 나타나서는 안되겠소.》 하고 리덕구는 교원과 학생사이의 말투를 버리고 유격대규정대로 엄격한 명령조로 말하였다.

《선생님! 저…》

고병호가 말하려는데 옆에서 조성철이 그의 잔등을 쿡 찔렀다. 말을 중둥무이한 고병호는 영문을 몰라 친구인 조성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즉시에 그는 조성철의 찌르는듯 한 눈총을 받고 얼굴을 붉혔다. 자기의 말투가 유격대원답지 않았다는것을 깨달았던것이였다. 고병호는 벌쭉 웃었다.

《지대장동지, 제가 그 버릇을 싹 버린지 언젠데… 아직까지 그 결함을 또 끄집어냅니까.》 하고 고병호는 응석을 부리듯 불평조로 대꾸했다.

《그렇다면 좋구. 자, 이제는 떠나시오.》

세 청년은 일제히 유격대식경례를 하고 지휘부초막을 떠나갔다. …

북제주군 조천면일대에 나갔던 정찰조원들이 돌아온 다음날 한낮때, 구좌면쪽에서 조천면으로 통하는 신작로에 완전무장한 경찰들을 가득 태운 마차 3대가 기세좋게 굴러가고있었다. 마차바퀴밑에서는 한낮의 해볕에 달아오른 갈색먼지가 바람에 타래쳐오르고있었다.

마차에 탄 경찰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신라의 밤》따위의 류행가를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희희덕거리고있었다. 그러면서도 줄곧 예리하게 주위를 살피는 긴장한 눈빛이였다. 그들은 경찰로 가장한 3. 1지대 유격대원들의 척후였다.

신촌리를 지나 조천면으로 들어서는 근방에서 선두마차가 멎어서고 뒤따르던 마차들도 멈추어섰다. 한낮때여서 인적드문 길가의 주변은 고요하였다. 멎어선 선두마차에서 경찰복을 입은 지대장 리덕구가 성큼 신작로에 내려섰다. 뒤따르던 마차에서 지휘관 두명이 뛰는 걸음으로 선두마차곁의 리덕구지대장에게로 다가갔다.

《명심해들으시오. 제2조는 조천면 경찰지서앞 신작로에 떨어지시오. 1조와 3조는 조천면 경찰지서앞을 그대로 통과하여 지정된 장소로 가겠소. 정각 낮 1시 점심시간에 총성이 울리면 일제히 기습할것.》 하고 리덕구는 낮으나 잘 울리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두사람은 다시 빠르게 뒤마차로 돌아갔다.

《경찰》들을 태운 3대의 마차대렬은 다시 기세좋게 앞으로 굴러갔다.

마차들우에서는 또다시 롱담소리, 웃음소리, 흥얼거리는 류행가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선두마차가 경찰지서앞의 큰길가에 이르렀다. 거기에서는 두팔이 무릎에 닿을만큼 길다란 경찰놈이 뻗치고 서서 버성긴 이발사이로 연기를 내보내면서 담배를 피우며 보초를 서고있었다.

《한데 이봐유, 거긴 어디 경찰이유?》

조천면 경찰지서앞에서 보초를 서며 통행을 단속하던 경찰놈이 피우던 담배불을 신바닥에 눌러대고 끄면서 소리쳐물었다.

《임마, 뭘 소리치며 지랄이야? 우린 경상도야. 너흰 어디냐?》 하고 리덕구가 무섭게 쏘아보며 맞받아 소리쳤다.

《아유, 묻지도 못해유? … 우리는 충청도에서 왔어유. … 참, 경상도는 모두가 저렇게 사람을 잡아먹을듯이 성을 내유?》

보초놈이 상통을 찌프리며 게두덜거렸다.

《자식, 이마에 사꾸라꽃이 피기 전에 입다물어. 우린 토벌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야.》

리덕구는 서리발이 날리리만큼 매섭게 꽥- 소리치며 두말 못하게 놈을 눌러놓았다.

그는 조천면습격전투를 앞두고 이미 이런것을 타산했었다. 즉 각지에서 증강해온 경찰놈들은 아직 서로의 련계가 엉성한 상태이다. 이것을 대담하게 리용해야 한다. 그 다음 놈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모여들어 긴장이 풀린 시각을 습격시간으로 택하기로 하자! … 그리하여 지금 리덕구는 충청도에서 증강되여온 경찰놈에게 경상도경찰의 행세를 한것이다.

《임마, 뒤마차의 한쪽바퀴가 고장나 여기서 수리해야겠는데… 또 소리치며 지랄하면 네놈을 쥐잡듯 해치우겠어.》 하고 리덕구는 보초놈의 목에서 울뚝거리는 울대뼈를 쏘아보며 욕설했다.

그런 다음 리덕구는 선두마차에 올라타고 증강된 경찰놈들의 숙소인 조천국민학교쪽으로 마차를 몰아갔다. 뒤따르던 다음 마차도 떠나가고 맨뒤의 세번째 마차만이 면경찰서앞의 길가에 서있었다. 그 마차에서 사람들이 내려서 고장난 바퀴를 수리하느라 분주탕을 피우며 뚝딱거리고있었다.

잠시후 정각 낮 1시에 탕!- 신호탄이 고요한 한낮의 대기를 흔들며 울려퍼졌다. 뒤따라 사방에서 자지러진 총성이 울리고 수류탄이 작렬하는 소리가 터졌다. 조천면 경찰지서앞에 서있던 마차주위에서 5명의 유격대원들이 일시에 총을 쏘며 비호처럼 경찰지서로 달려들었다. 순간에 면경찰지서 보초놈은 총에 맞고 비명을 지르며 먼지투성이의 땅바닥에 곤두박혔다. 뒤따라 근처에 잠복해있던 50여명의 유격대원들이 달려나와 면경찰지서를 순간에 제압하고 놈들의 숙소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적들의 화점들과 보초소들, 숙소들에 집중화력을 들이댔다.

3. 1지대의 선두척후와 주변에 잠복해있던 유격대원들은 행길과 골목길들을 따라 쏜살같이 기동하면서 불의에 기관총과 보총사격, 수류탄으로 적들의 기본력량을 타격하였다. 그날 사람들의 주목을 끈것은 제주읍과 바다가쪽으로 도망치는 적들을 말을 잡아타고 추격하며 족치는 조성철과 고병호의 용감하고 슬기로운 모습이였다.

조천면해방전투가 일단 끝나고 대원들이 모였을 때 사람들은 지대장 리덕구의 웃옷과 바지에 세개의 총알구멍이 뚫어져있는것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몸에는 이상할 정도로 긁힌 자리 하나 없었다. 신기할 정도였다.

《오늘 지대장동지는 두번다시 태여난 날입니다.》 하고 익살군인 한 중대장이 총알구멍을 세여보면서 롱조로 말했다.

그럴 때 누군가 대렬속에서 껄껄 웃으며 중대장의 말에 말깃을 달았다.

《총알이란것이 정말 용감한 사람은 피하는구만요!》

전투로 흥분하고 긴장했던 대원들은 와!- 유쾌히 웃으며 떠들썩하였다.

리덕구도 자기 옷에 난 총알구멍을 눈여겨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그는 아직 젊어 생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처럼 귀중히 여기는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할 필요가 있다면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여있었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항상 이렇게 웨치고있었다.

(조국땅에 기여든 미제침략자들과 매국노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조선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하리라! … 우리가 싸우다 죽는다 해도 우리들은… 제주도사람들, 우리 인민의 기억속에 영원하리라!)

조천면일대를 해방한 3. 1지대의 유격대원들은 놈들이 단행하려는 이번 선거가 조국과 민족분렬의 선거이며 망국의 선거라는것, 이 땅에 통일조선을 세우려면 놈들의 이번 선거에 빠지거나 반대투표를 해야 한다는 맹렬한 선전공세를 벌리였다.

한림에 이어 조천, 표선이 해방되자 놈들은 극도로 당황했다. 선거당일이 하루하루 코앞에 다가오는데 선거준비는커녕 중요지구들이 제주도인민유격대들에 의해 장악되여 딴세상으로 들끓고있었던것이다. 하여 제주도 계엄사령관 띤과 조병옥은 빼앗긴 지구들을 되찾으려고 발악하였다.

놈들은 수많은 무력을 들이밀었으나 쉽게 탈환할수 없었다. 그것은 드세찬 저항이 인민유격대뿐아니라 그 지구의 청년들과 남녀로소주민들 지어는 일부 경찰과 《국방경비대》까지 합세하여 막강한 력량으로 맞섰기때문이였다.

그러다가 그 지구를 부득불 내여줄 때는 유격대에 합세했던 모든 사람들까지도 유격대에 편입되여 엄청나게 늘어난 대오로 기세당당하게 철수해갔다.

그들이 떠나가는 숲속 산길의 하늘가로는 노래가 힘차게 울리였다.

 

    일어나 싸우자 짓밟힌 제주도여

    싸워서 우리가 지키자 고향땅을

    우리가 싸우는 길은 영광의 길

    우리는 죽음보다 억센사람들

    제주도의 사람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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