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2편 봉화

7

 

지대장 리덕구는 탄탄하고 그쯘한 어깨를 곧추 펴고 지휘부초막에서 밖으로 나왔다. 단정한 옷차림에 권총을 허리에 찬 그의 두팔과 다리는 용수철처럼 탄력있어보였다.

4월말의 태양이 흰구름장들사이로 헤염쳐가고있었다. 날씨는 좋았다. 한나산의 중간지대인 이곳에는 서어나무, 가둑나무, 벗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활엽수가 울창한데 새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가까이의 나무우에서 우짖고있었다.

리덕구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속을 뚫고 백금화살처럼 비쳐드는 해살에 눈이 부신듯 눈을 쪼프리고 누군가를 찾았다.

《련락병!-》

고병호는 초막앞의 작은 공지에서 지휘부의 석유등잔을 지휘부초막앞에 놓고 1중대가 있는 계곡쪽으로 눈에 띄게 다리를 절름거리며 내려갔다.

《련락병! 돌아와!-》

지대장 리덕구는 빽빽한 나무들사이로 얼핏얼핏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그의 등뒤에 대고 나직이 소리쳤다. 고병호는 다리를 절름거리며 춤을 추는듯 한 걸음으로 되돌아와 리덕구앞에 섰다.

《지대장동지, 왜 그러십니까?》

《다리는 왜 절름거려? 어디 다친게 아니요?》

《아닙니다. 그저… 좀… 어제 밤 2중대에 갔다오다가 요앞 돌투성이 언덕에서 싱겁게 발목을 좀 삐였습니다.》 하고 고병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빙그레 웃었다.

《앉소. 어디 좀 보자구.》

리덕구는 고병호를 푹신푹신한 락엽무지에 앉히고 그의 오른쪽발목을 휘둘러보았다.

《아… 아… 지대장동지, 가만계…십시오. … 아이구…》

고병호는 참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가만있소! 그대로 놔두면 안되겠군. 자, 좀 아프더라도 참으라구. 이제 말이요, 발목을 삐인것은 이렇게…》 하고 리덕구는 고병호의 발목을 휘두르다가 사정없이 잡아뽑듯이 갑자기 와락 당겼다. 순간 고병호의 발목에서 으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아이구… 지-대장…동지, 어쩌자구… 이러십니까! … 아… 아이구!》

고병호는 금시 숨넘어가는 시늉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병호! 중학시절에는 학급에서 제일 용감하고… 날아가는 꿩도 맨손으로 잡았다고 뽐내던 그 기백은 어디 갔어? 그쯤한 아픔에 아녀자들처럼 아우성이야. 부끄럽지도 않은가?》 하고 리덕구는 애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꾸짖었다.

《야, 선생님! 용감성과 육체적아픔은 다른 개념이 아닙니까.》

고병호는 자기도 모르게 응석조로 변명했다.

《무슨 소리를 하오? 진정으로 강자인, 용감한 사람은 그 어떤 육체적고통에도 신음소리를 내는 법이 없어.》 하고 리덕구는 정색해서 말을 덧붙였다.

《병호, 일어나 걸어보라구.》

락엽무지에 퍼더버리고 주저앉았던 고병호는 슬며시 일어나 조심조심 발을 짚어보았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힘을 주어 발을 쿵쿵 굴렀다. 그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올랐다.

《야! 지대장동지, 정말 신통합니다. 쿡쿡 쑤시고 저리던 발목이 이제는 편안합니다.》

고병호는 마치 올림픽경기의 우승자처럼 손을 추켜들고 환성을 질렀다.

《됐소. 병호, 하지만 당분간은 많이 다니지 말고 쉬여야겠소.》

리덕구는 지휘부초막앞을 지나가는 다른 대원에게 1중대장을 지대지휘부로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그 대원이 지대장의 명령을 집행하려고 급히 계곡쪽으로 내려가자 리덕구는 고병호의 축간듯 한 얼굴을 말없이 한동안 유심히 바라보았다.

《병호, 유격대생활이 고생스럽고 힘들지?》 하고 리덕구는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지대장동지, 별로 힘든줄 모르겠습니다. 전… 오히려 즐겁기도 하고 보람도 느끼고 배우는것도 아주 많습니다.》

고병호는 옛 스승이며 지휘관인 리덕구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그래… 한데 짬짬이 책도 읽고 공부를 하라구. 그리고 산속생활에서는 발을 주의해야 해. 자주 걷고 행군하는 유격대생활에서 발이 아주 중요하다는걸 항상 명심하오.》 하고 리덕구는 정색한 어조로 깨우쳐주듯 뇌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지대장동지!》

고병호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이번에도 힘있게 대답했다.

그때 산밑의 계곡쪽에서 군데군데 찢어진 바지가랭이를 너풀거리며 1중대장인 김영찬이 지대지휘부초막앞에 나타났다.

《지대장동지, 저를 불렀습니까?》 하고 중대장 김영찬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중대장동무, 정찰조가 도착했소?》

《녜, 아직…》 하고 말하는 중대장의 얼굴에 얼핏 어두운 그림자가 지나갔다.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요? … 돌아올 시간이 지나지 않았소?》

《지대장동지, 걱정마십시오.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고 꼭 돌아옵니다. 그들은 우리 중대에서 난다긴다하는 동무들을 추려서 선발한 정찰조이니까요.》 하고 김영찬은 지대장뿐아니라 자기자신도 고무하면서 큰소리로 힘차게 말하고는 껄껄 웃었다. 그 어떤 어려운 정황에서나 늘쌍 락천적이고 웃음으로 넘기는 대범한 중대장이였다.

《좋소. 정찰조가 도착하면 즉시 나에게로 보내시오.》

《알겠습니다. 지대장동지!》 하고 김영찬중대장은 못뽑이같은 탄탄한 팔을 올려 례를 표하고는 돌아서서 걸어갔다.

《1중대장, 가지 마시오.》

지대장 리덕구는 불시에 엄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대장동지, 왜 그러십니까?》 하고 김영찬중대장은 눈을 섬뻑거리며 돌아섰다.

《가까이 오시오.》

지대장 리덕구의 목소리는 여전히 엄했다. 김영찬중대장은 영문을 알수 없어 그냥 눈을 섬뻑거리며 가까이로 다가왔다.

리덕구는 말없이 중대장의 옷차림을 여겨보고있다가 련락병이 석유등잔을 들고 지휘부초막안으로 들어가자 큰소리로 엄하게 추궁했다.

《영찬중대장, 동무는 왜 아직도 나의 명령을 집행하지 않고있소?》

《녜? … 아니, 무슨 명령을? … 전 아직 그런 일은 없었는데요.》 하고 김영찬은 펄쩍 놀랐다.

《아직도 모르겠소? 내 기억에는 그 찢어진 바지를 기워입으라고 동무에게 벌써 두번 명령했소.》

지대장 리덕구는 다름아닌 그의 눈을 뚫어지게 마주보았다. 그랬으나 중대장 김영찬은 끄떡않고 반죽좋게 빙그레 웃었다.

《녜- 난 또 무슨 큰일인가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이 인적없는 산속의 생활에서 옷차림이…》

《그만두시오.》

리덕구는 그의 말을 중도에서 꺾었다. 격한 그는 잠시 침묵하고있었다.

언제나 유격대원들은 모두가 자기들의 지휘관인 지대장 리덕구를 사랑하였고 존경했다. 그에게는 지휘관의 훌륭한 기질과 좋은 인간적면모가 겸비되여있었다. 보통키의 그는 지휘관답게 언제나 옷차림이 단정하였다.

자동총과 권총, 야전가방을 혁띠로 바싹 졸라매고 다니는 그는 마치 열병식에라도 참가한것 같았다. 산속의 야영생활조건에서 항상 그처럼 단정한 모습을 유지한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는 대원들의 옷차림에 대해서도 자주 추궁하군 하였다. 바로 지금이 그러했다.

《우리는 인민유격대이고 동무는 중대장이요! 대원들의 모범이 되여야 할 동무가 그게 뭐요? 외모단장은 우리 유격대원들의 풍모에서 아주 중요한것이요. 좋소! 당장 내앞에서 기워입으시오.》 하고 지대장 리덕구는 엄격한 명령조로 말했다.

《지대장동지, 중대에 내려가서 곧 집행하겠습니다.》

《아니요, 여기 내앞에서… 오늘은 양보 않겠소. 자, 지휘부초막으로 들어가시오.》 하고 리덕구는 몸을 곧게 편 자세로 김영찬중대장을 앞세우고 지휘부초막으로 들어갔다.

풀냄새가 물씬 풍기는 초막안에서는 련락병 고병호가 탁상과 구석구석을 정리하고있었다. 그는 리덕구지대장과 김영찬중대장이 들어오자 소리없이 밖으로 나갔다.

《영찬중대장, 바지를 벗소.》 하고 리덕구는 즉시에 명령했다.

그러자 영찬중대장은 허둥지둥 어쩔바를 몰라하며 떠듬거렸다.

《지대장동지! … 이…번…에는 꼭… 집행할테니… 용서해…》

《명령이요! 즉시 바지를 벗을것.》

격한 리덕구의 목소리는 내려치듯이 강하게 울렸다.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엄격해졌으며 숱진 눈섭은 미간에 쏠려있었다.

중대장 김영찬은 두말 못하고 혈색이라고는 전혀 없이 새하얗게 질려서 바지를 벗었다.

《이제는 일체 침묵하고 거기에 앉아서 마음속으로 자기비판을 하오.》 하고 여전히 엄격한 기색을 풀지 않은 지대장 리덕구는 자신의 전투가방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여 중대장의 찢어진 바지를 꿰매기 시작하였다.

김영찬중대장은 괴로움을 견디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통나무걸상에서 벌떡 일어나 지대장 리덕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지대장동지! 제가 깁겠습니다. 제발 이번까지 용서해주십시오.》

《움직이지 말고 침묵하고 앉아 마음속으로 자기비판을 하라고 내가 명령하지 않았소. 명령을 집행하시오.》 하고 리덕구는 사소한 동정이나 여유도 주지 않고 나직이 소리쳤다.

김영찬중대장은 하는수없이 꼼짝 못하고 앉아 리덕구지대장이 군데군데 찢어진 자기 바지를 깁는것을 보고있었다. 그러는 그의 이마에는 진땀이 내돋기 시작하고 눈에는 눈물이, 자책의 눈물이 솟아오르고있었다.

지휘부초막안에는 바스락소리 하나없이 무거운 침묵이 서려있었다. 밖에서는 멀리, 가까이에서 우짖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얼마후 침묵속에 바느질을 끝낸 리덕구는 조용히 일어섰다.

《자, 중대장동무. 바지를 입으시오.》 하고 리덕구는 짙은 눈섭을 쭝긋했다.

중대장 김영찬은 두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여 발을 바지가랭이에 제대로 밀어넣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바지를 입고나서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서있었다.

《걸상에 앉소.》

나직이 뇌인 리덕구는 그가 걸상에 앉자 마주앉으며 비로소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마음속으로 자기비판을 했소?》

《심각히 자책했습니다. 지대장동지! 저에게 왜 좀더 된매를 치지 않습니까?》

《매란 자신이 내릴 때가 가장 아픈거요. 영찬동무, 다시 상기시키지만… 우리는 인민유격대요. 유격대원의 외모는 그의 정신과 품격의 반영으로 되오. 제주도인민들이 우리의 일거일동을 보고있단 말이요. 적들은 우리들을 폭도, 비적이라고 악의에 차서 비방하고있소. 이제는 내 말뜻을 알만 하오?》 하고 리덕구는 상대의 가슴이 선뜩할만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조용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대장동지, 잘 알겠습니다. … 오늘… 영 버릇이 뚝 떨어졌습니다.》

김영찬중대장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바닥으로 씻으며 어줍게 웃었다.

《됐소. 난 다시는 동무가 그러지 않으리라고 믿겠소! 중대장동무, 이제는 우리 함께 정찰조가 돌아올 지점으로 마중나가보자구.》 하고 리덕구는 김영찬의 어깨를 친근감이 나게 툭- 치면서 일어섰다. 김영찬중대장도 거뜬한 기분으로 따라 일어났다.

《지대장동지, 제가 대원들 몇명을 인솔하고 정찰조가 돌아올 지점으로 나가보겠습니다. 정찰조가 돌아오면 곧장 여기 지대지휘부로 보내겠으니 지대장동지는 그냥 계십시오.》

《아니요. 나도 마중나가겠소. 약속한 시간보다 퍽 늦어지는걸 보니 그들에게 분명 무슨 일이 생긴것 같소.》 하고 리덕구는 불안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지대장동지, 그럼 제가 먼저 중대로 내려가 대원 몇명을 선발하고 출발준비를 해놓겠으니 천천히 내려오십시오.》

김영찬은 지대장 리덕구에게 례를 표하고 먼저 지휘부초막에서 나와 서둘러 계곡쪽으로 내려갔다. 리덕구는 무엇인가 불안한 생각에 잠겨 잠시 서있다가 모자를 집어쓰고 초막을 나섰다.

지휘부초막앞의 가둑나무가 총총히 늘어선 숲속에서 고병호와 한미숙이 마주서서 무엇인가 수선수선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리덕구지대장이 초막앞에서 그들쪽으로 몇걸음 걷자 웬 일인지 한미숙은 슬며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동시에 고병호가 그늘진 얼굴로 다가오는 리덕구지대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심중한 이야기를 나눈것 같구만.》 하고 말하는 리덕구의 얼굴에는 얼핏 마음속의 따뜻한 애정이 비꼈다가 곧 보다 중요한 다른것에 의해 밀려난듯 인차 꺼졌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실…》

고병호는 우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어물어물 대꾸하였다.

《왜? 내가 알면 안되는 문제요?》 하고 리덕구는 정확한 직감력으로 동창생들인 그들에게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것을 판단하면서 일부러 평온한 어조로 조용히 물었다.

《뭐, 사실은… 아닙니다. 조성철과 한미숙사이의 일인데… 지대장동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들은 남다른 사이인데…》

《병호, 그거야 우리 3. 1지대의 유격대원들은 누구나가 다 알고있는 문제가 아니요? 그런걸 뭘 숨길게 있소.》 하고 리덕구는 소리없이 웃었다.

《숨기는게 아니라… 그들사이에 요새 <랭전>이 시작되였는데 제가 아무리 설복해도 두사람사이가 풀리지 않습니다. 어제는 내가 조성철을 만났고 오늘은 한미숙을 만났는데 자존심들이 어찌나 센지… 영 화해시키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그래서 <외교사절>임무를 수행 못했다는 하소연이요?》 하고 리덕구는 애정깊은 눈길로 고병호를 바라보았다.

《저 같은 서투른 <외교관>능력으로는 도저히… 그래서 실은 선생님, 아니 지대장동지에게 부탁할 생각을 하던중이였습니다.》

고병호는 괴로운 한숨을 쉬였다. 순간 리덕구는 나직이 소리내여 웃었다.

《병호, 그런 문제는 제3자가 필요없어. 그리고 남녀사랑은 명령이나 지시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야.》

《그래두 지대장동지가 그들을 한번 만나줬으면… 사실 그들은 다 마음씨 곱고 좋은 동무들인데… 생활에서도 전투에서도 모범이고…》 하고 병호는 구원의 마음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병호, 상심말라구. 이제 스스로 풀리게 될거요.》

리덕구는 정색하여 진정이 느껴지는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병호, 내 정찰조가 돌아오는 지점에 나가보고 오겠소.》

초조해하는 고병호를 진정시킨 리덕구가 돌아서서 1중대쪽으로 내려가려는데 바위투성이의 언덕길로 김영찬중대장이 숨이 턱에 닿아 뛰여올라왔다.

《지대장동지!-》

《영찬동무, 내 동무네 중대로 가던 길이요. 함께 그 지점으로 나가보기요.》

《지대장동지! 정찰조가… 방금 도착했습니다.》 하고 떠듬거리며 보고하는 김영찬중대장의 얼굴은 컴컴하였다.

《그들이 지금 어디 있소? 다들 무사하오?》

리덕구는 갑자기 자기도 알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는것을 느끼며 성급히 물었다.

《지대장동지, 정찰조장인 우리 중대 2소대장이… 그만… 희생되고 부조장과 정찰조원 3명은 돌아왔…》 하고 김영찬중대장은 울음이 터져나와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쌓이고 맺힌 오열에 사나이의 울음을 터뜨릴것만 같았다.

《돌아온 정찰조동무들이 지금 어디 있소?》

리덕구가 격한 어조로 물을 때 정찰조 부조장과 3명의 조원들이 가둑나무숲속에서 지휘부초막으로 내려왔다. 그들을 띄여본 지대장 리덕구는 성큼성큼 마주나갔다.

《동무들, 고생 많았겠소! 그런데 조장동무가 어떻게 희생됐소?》 하고 묻는 리덕구의 목소리는 비감으로 석쉼하게 울렸다.

한참동안 아무런 말도 못하고 머리를 떨구고 서있는 정찰조의 부조장과 대원들의 온몸에는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력력했다. 그들의 옷은 다 볼품없이 찢어지고 이마와 머리, 팔에는 붕대가 감겨져있었다.

《지대장동지, 저희들이 각기 정찰임무를 끝내고 약속된 지점에 모여 돌아오는 도중 적들의 매복에…》

거의 말이라고는 할수 없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통절히 뇌이는 부조장의 얼굴에는 두줄기 눈물이 고요히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는 떠듬떠듬 말을 계속했다.

…소리없이 마을을 벗어나 신작로를 재빨리 건너선 정찰조는 드디여 무사히 산기슭에 들어섰다. 훤히 동이 트고있었다. 한나산의 3. 1지대지휘부가 자리잡은 방향으로 곧장 전진하는데 불시에 앞에서 《너희들은 포위되였다. 투항하라!-》 하는 적들의 앙칼진 고함소리가 새벽공기를 째며 들려왔다. 정찰조는 뜻밖에 적들의 매복에 걸려든것이다.

정찰조는 일제사격으로 앞을 막아선 놈들을 소멸해치웠다. 그러자 여기저기에 매복하고있던 놈들이 퉁탕거리며 총을 쏘아대기 시작하였다. 나무들과 수풀사이로 군복입은 적들이 사방에서 얼씬거렸다.

적들과 불의에 조우한 정찰조는 사방에서 자지러지게 울리는 놈들의 총성을 들으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럴 때 그들이 달려가는 앞의 자그마한 산등성이에서 기다리고있은듯 불쑥 적기관총련발사격이 터지고 탄알들이 머리우로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며 지나갔다. 적들이 끝내 정찰조의 앞길을 차단한것이다.

정찰조는 즉시 전진을 멈추고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들이 차지한 곳은 다박솔과 단풍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나지막한 등성이밑의 말라버린 개울이였다. 한나산 산속에는 이런 개울이 수없이 많았다.

지금의 정황에서 중요하고 긴급한것은 적기관총이 쉴새없이 련발로 불을 내뿜는 등성이를 신속히 넘어서는것이였다. 산등성이를 돌파하고 넘어서면 울창한 나무숲의 높고 가파로운 산악지대가 시작되는데 거기는 아직 적들이 장악하지 못하고있었다.

《동무들, 일제사격과 수류탄으로 놈들의 화력을 제압하면서 정면돌파하는 길밖에 빠져나갈 다른 방도는 없소. 일제사격과 함께 일시에 수류탄을 던질것.》 하고 고철민조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적기관총의 사격이 잠시 뜸해진 기회에 고철민조장이 먼저 벌떡 일어나고 조원들도 따라 일어나서 일제사격과 수류탄을 던지면서 달려나갔다. 적기관총이 련발로 내뿜는 산등성이를 제압하는데 성공하는 찰나에 적의 총알이 앞장에서 달려나가던 고철민조장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갔다. 고철민조장은 등성이아래쪽으로 굴러떨어져 말라버린 개울가에 쓰러졌다.

《조장동무!-》

산등성이를 제압한 정찰조원들이 그를 소리쳐 부르며 달려가려는 바로 그 순간 아래쪽과 량측면에서 비자루로 쓸듯이 적기관총과 보총이 울부짖었다.

정찰조원들은 도저히 조장이 쓰러진 개울쪽으로 접근할수 없었다.

《동무들, 빨리 산으로 오르라!-》 하고 콩볶듯 하는 총성사이로 개울가에 쓰러진 고철민조장이 힘겹게 소리쳤다.

《조장동무! 이제 곧… 그쪽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산등성이를 장악한 정찰조원들이 맞받아 소리쳤다.

《안돼! … 난… 중상…이요. … 빨리 철수하라… 임무…수행을 잊었…는가!》 하고 고철민조장은 신음소리를 씹어삼키며 산등성이의 조원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는 사이에 조장이 쓰러진 개울쪽 가까이와 량측면에서 점차 강해진 적들의 총소리가 쉴새없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그러자 정찰조의 맞총질이 무섭게 터졌다.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고 불시에 귀가 멍멍해지면서 화약내가 코를 찔렀다. 화력이 어찌나 세찬지 쓰러진 조장에게로 접근할수 없었다. 적들과의 거리는 불과 150메터정도였다. 하여 조장에게로 접근하려던 부조장과 한 대원이 이마와 팔에 부상을 입고 피를 흘렸으나 다행히도 경상이였다.

정찰조원들이 장악한 산등성이와 적들과의 사이- 바로 그 중간지대의 개울에 중상당한 고철민조장이 쓰러져있었다. 적들도 쉽사리 그에게 다가들지 못했다.

《동무들, 내 명령을… 들으시오. 정찰자료를 빨리… 동무들, 철수하라! 나는… 이미… 적들이 다가… 온다… 잘 싸워주…》

불로 지지는듯 한 고통을 참으며 마지막으로 소리친 고철민조장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요란한 폭음이 울렸다.

고철민조장은 적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수류탄을 터쳐 자폭한것이였다.

《조장동무!-》

《형…님…》

일순 부조장 고철영의 얼굴과 온몸에 경련이 일어난듯 전률이 지나갔다. …

《지대장…동지, 저… 고철영부조장은… 고철민조장의… 우리 2소대장의 친동생입니…다. …》 하고 김영찬중대장은 충격이 너무 커서 얼이 빠진듯 울음섞인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순간 지대장 리덕구는 불시에 나직이 소리쳤다.

《뭐요? …》

《기막힌… 일이지만… 어쩔수 없는…》 하고 김영찬중대장은 굳어진듯 서서 여전히 떠듬거렸다. 부조장 고철영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쏟으며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사위는 고요하였다. 참으로 납덩이처럼 무거운 정적이였다.

리덕구는 울음이 터져나오려는것을 참으며 말없이 뚜걱뚜걱 다가가 무기를 벗어바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소리없이 통곡하는 고철영부조장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는 역시 아무런 말도 없이 괴로워하는 고철영을 꽉 끌어안았다.

《지…대…장동지!》 하고 고철영은 리덕구의 가슴에 눈물에 젖은 얼굴을 묻고 드디여 소리내여 울음을 터뜨렸다.

리덕구는 부조장 고철영의 사나이울음소리를 들으며 고통으로 몸을 떨고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고철영에게 귀속말로 침착하게 말했다.

《괴로움을 우리 함께 이겨내자구! 그리고 희생된 동무의 형님이 바라던대로 고향땅 제주도를 우리가 지켜내자구.》

《지대장동지!》

조금후에 지대장 리덕구는 김영찬중대장에게서 정찰자료를 받고 그들을 중대로 내려가 휴식하라고 조용히 지시했다.

그들이 떠나갔으나 지대장 리덕구는 지휘부초막앞의 커다란 느티나무에 기댄채 줄곧 말없이 생각에 잠겨 서있었다.

흐린 하늘에서는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하고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리덕구는 까딱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이 땅에 기여든 미제는 우리 조국, 우리 고향땅에 얼마나 무서운 재난을 들씌우고있는가. 얼마나 많은 가지가지 불행을 강요하고있는가! …)

그날 리덕구는 온종일 말없이 혼자 있었다. 사랑하는 제자들인 조성철과 한미숙이 찾아왔으나 후일로 약속하고 돌려보냈다. 그는 줄곧 마음이 아프고 쓰리고 괴로웠다. 노예로 살기를 강요하는 미제침략자들로 하여 수천년 면면히 이어온 나라가 두동강이 나고있는 이 땅, 우리 민족, 고향사람들속에 어떤 가슴아픈 일들이 벌어지고있는가! …

그날 온밤 한나산일대에서는 광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져내렸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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