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1편 인천에서

10

 

바다에 또다시 어둠이 깃들었다.

부두에서 기뢰를 실은 배들이 출항하였다. 수리된 기관선 두척이 또 보충되였다. 기뢰를 실은 노요선들은 많이 싣지 못하는 조건에서 여러차례에 걸쳐 왕복하면서 바다연안에 부설하기로 하고 채정보와 윤지환과 현준, 하명찬이 각기 타고있는 네척의 기계배들은 작은 부선들을 끌고 보다 먼 해구로 항로를 잡았다.

멀리에서 포성이 쿵, 쿠궁 울려왔다.

이따금 섬들의 거밋한 형체가 옆으로 흘러갔다.

전쟁은 이미 남쪽섬들의 등대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채정보는 대낮에 제 집 찾아가듯 거침없이 배를 몰아갔다. 이미전에 다녀본 배길이기도 하거니와 해도작업을 면밀히 하여 눈감고도 찾을수 있는 항로였다.

게다가 윤지문이도 있지 않은가. 그는 지금 하명찬이 탄 맨앞의 기관선을 몰고있다. 오늘 기관선들이 기뢰를 부설해야 할 해역은 덕적도 바깥쪽의 배길이였다. 오늘도 영종도와 룡유도사이의 배길은 여전히 기뢰를 한개씩 실은 노요선들이 맡기로 하였다. 그 기뢰망은 이제 해안방어를 맡게 될 해안포들이 믿음직하게 보호할것이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적함선들을 명중사격으로 때릴것이다.

그는 이제 도착하게 될 해안포중대가 기다려졌다.

배가 목적한 해구에 거의 이르자 채정보는 기뢰를 부설할 준비를 하였다. 배들은 나란히 간격을 유지하며 달리였다. 채정보는 전지불빛이 새여나가지 않게 옷섶으로 가리우고 초시계를 보았다. 시계의 뚜껑을 열 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리해철에게 전지에 쓸 건전지약을 사정하여 얻어냈다는 련락병의 말이 생각나서였다.

바다에 못 나가 볼이 잔뜩 부어난 무전수 리해철은 이전부터 기태서련락병에게서 단단히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다음번 전투에는 꼭 참가시켜야 한다고 부대장동지에게 다짐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그래, 아무러면 부대장 련락병인 내가 신용이 없이 놀겠어?》

하지만 련락병의 말을 들은 채정보는 윤지환을 비롯한 부대지휘관들에게 강조하였다.

《해철동무를 아낍시다. 영종도전투때에는 전투에 참가시켰더랬는데 내 생각이 짧았소. 통신은 부대의 신경이요. 언젠가도 말했지만 우리의 모든 행동은 해군사령부, 나아가서는 최고사령부의 명령과 잇닿아있다는걸 명심하시오.》

그래서 이번 기뢰부설전투에서도 해철은 제명된것이였다.

이번에 리해철에게서 전지에 끼울 건전지를 얻으려고 찾아갔던 련락병 기태서의 로심초사가 말이 아니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내가 부대장동지를 절반은 설복한셈이야. 이제 좀더 뜸을 들이면 해철일 전투에 무조건 인입시킬거야. 너무 조급해말라구. 이제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르어야 하는지 알기나 해?! 그러지 말고 다 쓴 건전지 하나를 까자구.》

리해철은 련락병이 구슬리는 바람에 더 우기지는 못했지만 다짐받는것만은 잊지 않았다.

《정말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기태서동지, 그러면 부대장동지의 전지약은 전적으로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아, 그럼 한입으로 두마디 하겠나?》

지금 부대장은 그 전지약을 끼운 전지를 비옷으로 가리우고 초시계를 들여다보며 간격을 맞춰 투하구령을 내렸다. 텀벙, 철썩…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다물속에 들어가는 기뢰 떨어지는 소리가 련이어 울리였다. 배에 실었던 기뢰가 다 부설되자 배들은 귀로에 올랐다.

《이거 너무 싱겁지 않아?》

《이왕이면 놈들과 한바탕 붙어봐야 속이 씨원하겠는데.》

갑판에서 사방으로 어둠속을 살피며 경계근무를 서는 해병들의 주고받는 말이다.

채정보의 곁에 있던 갑판장이 그들에게 말했다.

《동무들은 이 기뢰부설이 하찮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여기에 걸려 소멸되는 적들의 손실은 막대한거요. 이제 그게 어떤것인가 하는것은 동무들이 체험하게 될거요.》

그들이 한동안 달리는데 앞에서 담배불빛 같은것이 번쩍했다. 한순간에 포착한 정황이였다. 선수에서 감시하던 대원도 낮은 소리로 보고를 해왔다.

《전방에서 불빛 발견!》

《나도 보았소.》

누군가가 채정보의 곁에 다가서며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혹시 밤고기 잡으러 나온 사람들이 아닐가요?》

《글쎄, 이 전쟁통에 누가 이 살벌한 바다로 나오겠소.》

《그래도 압니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부설한 기뢰구역을 알려줘야 하겠소. 그쪽으로 갔다간 돌이킬수 없는 참화를 빚어낼수 있으니까.》

채정보는 그쪽으로 배머리를 돌리게 했다.

어느새 보았는지 그들보다 앞선 윤지환의 배와 하명찬이 탄 배가 수상한 그 배쪽으로 다가갔다.

배들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와져 이젠 형체가 거뭇하게 보였다.

그런데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오이, 솟찌노호와 모오엣다까? (오이, 거기선 벌써 끝냈나?)》

그 목소리는 채정보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뜻밖에 왜말을 듣는 순간 채정보는 말할것도 없고 모두들 어리둥절해졌다.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겠는데 입들이 얼어붙었다.

(저건 왜놈의 배다. 어떻게 해서든지 잡아치우던가 나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간 우리가 해놓은 일이 허사로 될수 있다. 접근하면서 저놈들이 안심하도록 림기웅변해야 하는데…)

채정보는 일본말에 방언까지 통달한터여서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하명찬이 탄 배에서 먼저 소리쳤다.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보니 어느 일본인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청소부노릇을 했다는 몸이 실한 해병이였다.

《야, 오마에라와 쇼꼬데 도로보노 요니 나니오셋떼 이르까? (야, 너희들은 거기서 도적놈처럼 뭘해?)》

총소리가 터졌다. 자기들의 배가 아님을 안 적들이 먼저 불질을 한것이였다. 적들의 배에서 쏘아대는 불줄기와 총소리를 봐선 기관포와 대구경기관총이였다.

민간선박에 기뢰부설장치를 한 우리 배들과의 화력차이는 엄청난것이였다.

우리측에서는 12. 7미리고사기관총이 용을 썼다. 기관단총같은것은 별로 효력이 없었다.

채정보는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가 탄 배를 우회시켜 적선으로 접근하며 사격을 가하여 전투를 유리하게 전환시켰지만 이전에 실책을 범했다는것을 깨달았다.

(배를 수리하며 기뢰부설장치에만 신경을 썼지 총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구나.)

놈들은 부랴부랴 도망쳤지만 채정보는 심한 자책을 느끼였다.

놈들을 놓쳐버린 아군배들은 소리없이 입항하였다. 배가 부두에 닿았지만 모두들 배전에 기대여앉은채 침묵을 지켰다.

채정보가 먼저 부두에 뛰여올랐다. 그제야 해병들은 그앞에 정렬하였다. 모두들 일본놈의 배를 놓쳐 아쉬운 표정이였다.

《첫술에 배부를수야 없지.》

그는 해병들 한명한명을 둘러보다가 개인용붕대로 대충 감은 하명찬의 손을 조심히 잡았다.

《이건 뭐요?》

하명찬이 상한 손을 뽑으며 큰숨을 몰아쉬는게 알렸다.

《덤벼치다나니 기관총에 좀 뎄습니다. 비명소릴 봐선 몇놈 잘 죽었을겁니다. 아까 왜놈말로 대답한 신철동무를 한바탕 추궁했지만 왜놈 미워하는 그의 마음은 리해됩니다. 그런데 그 왜놈의 새끼들이 어떻게 거기에 나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보고 제놈들의 배인줄 알았을 땐 한척이 아니였겠는데… 하여간 신철이 그 친구 기왕이면 왜말로 놈들을 좀 속여넘겼더라면 다 잡아치우는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놈들을 놓친것이 속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모양이다.

채정보가 말했다.

《그 배가 소해정같더군.》

《글쎄 아무래도 전투선박같았습니다. 놈들의 배가 어찌나 빠른지 우리 배로 추격한다는건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야…》

그렇지 않다면 다 잡았다는 소리다.

《우리도 배가 빨라야 놈들을 제압할수 있겠는데…》

채정보는 배가 빨라야 한다는 하명찬의 말을 한쪽귀로 들으면서도 머리속을 지꿎게 파고드는 한가지 생각을 털어버릴수가 없었다.

미제가 이 전쟁에 패전국인 일본까지 가담시킨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조선강점 40년간에 일제가 작성한 지도와 해도가 미국놈들의 손에 넘어가고 그걸 작성한 놈들까지 전쟁에 인입시켰을수도 있었다. 우리가 해방직후 처음으로 기뢰를 해제할 때 해도가 없어서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그런데 미국놈들이 이제는 그 해도를 가지고 상륙지점을 확인하여 진격하는 인민군련합부대에 대한 포위망을 형성하려고 기도할수도 있었다.

채정보의 눈가에 서늘한 빛이 돌았다. 뒤짐을 진 손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이제부턴 미국놈들뿐아니라 일본놈들과도 맞붙어 싸워야 할것 같소. 자, 이젠 그만하고 어서 들어가 푹 쉬오.》

해병들을 병실로 들여보낸 채정보는 전선사령부에 오늘 소해정으로 보이는 일본놈들의 배와 조우했던 일을 보고하였다.

밤이 깊어갔다.

이윽토록 해도를 들여다보며 사색에 잠겼던 그는 머리를 식힐겸 바다가로 나갔다.

안심치 않아서인지 련락병 기태서가 총을 잡고 뒤따라왔다. 손을 들어 어서 들어가 쉬라고 손짓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더 그런댔자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된 채정보는 개의치 않고 돌아서서 바다기슭을 거닐기 시작하였다.

우웅- 지심을 흔드는 웅글은 소리를 치며 밀려왔던 파도가 솨- 소리를 내며 뒤로 움츠러들자 미처 빠지지 못한 바다물이 잦아들며 유리판같은 백사장을 펼쳐놓았다. 야백수라는 말처럼 기슭은 물을 먹어 하얗고 번들번들했다. 그 기슭에 찍힌 채정보의 발자국을 메우며 또다시 밀려들었다가는 떠나기 싫은듯 뒤채이다가 쓸어나가는 파도, 파도…

저 멀리 수평선너머에서 번개불같은 섬광이 련이어 번뜩이자 바람을 감아잡고 날아가는 휘파람소리가 머리우를 지나간다. 뒤이어 꾸릉, 꾸릉 울려오는 폭음, 폭음… 이어 어딘가 먼 산뒤에서 화광이 치솟는다. 적들의 함포사격이 시작된것이다.

채정보는 그에 개의치 않고 바다가를 거닐다가 해병들이 잠들었는가를 보려고 병실에 들려보았다. 병실이래야 부두에서 유축진 나지막한 둔덕뒤면을 파낸 다음 그우에 통나무들을 건너지르고 천정흙을 얹은것이였다.

그때까지 자지 않고있던 하명찬이 병실옆에 박혀있는 긴의자에서 일어섰다.

《왜 아직 쉬지 않소? 몹시 아픈게구만.》

거수경례를 하는 붕대감은 손을 다정히 잡아내리우며 근심스레 물었다. 언제나 쾌활하고 락천적이던 그가 주눅이 든 모양을 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명찬이 대답대신 시무룩해서 사죄했다.

《아깐 제가 잘못했습니다.》

《뭘 말이요?》

채정보는 무엇때문에 그런다는 가늠이 가면서도 짐짓 모르는체 하고 물었다.

《우리 배가 빠르지 못하다고 불평한것 말입니다. 자기가 대원들앞에서 조건타발을 앞세웠다고 생각하니 괴로웠습니다.》

채정보는 거기에 대해 지적하면 지나친 추궁으로 될것 같아 말머리를 돌렸다.

《그래 어떻게 되여 손이 그렇게 됐소?》

채정보의 물음에 하명찬은 자기자신에게 화를 내듯 말했다.

《50발짜리 탄띠를 문 우리 기관총이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곁에서 기관단총사격을 하다가 중지하고말았습니다. 사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고사총 부사수격이 되였습니다. 그런데 갑판에 고정되지 않은 고사총의 다리가 배가 기울어지는통에 넘어졌습니다. 젠장, 힘은 뒀다 장가 밑천 대겠나? 나는 우격다짐으로 총신을 부여안고 어깨에 메려고 했는데 달대로 단 기관실이 내 손바닥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좀 비칠거리지 말라는 총수의 고함소리에 안깐힘을 쓰며 두다리를 벗디디고 서니 놈들의 배는 이미 사거리를 벗어난 뒤였습니다. 그제야 내 손이 이렇게 된걸 알았습니다. 급한김에 중뿔나게 나서서 덤벼치며 사격을 지연시켜 적들을 놓치게 했습니다. 제 잘못이 큽니다.》

하명찬의 말을 들으며 채정보는 다시금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기관총의 탄도가 제대로 그어지지 않은것은 바로 총가때문이였다. 그것은 나에 대한 말없는 비판이 아닌가.

오늘일은 지휘관의 부주의가 자그마한것이라 할지라도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가져온다는 뼈저린 교훈을 주고있다. 원래 고기배였다고 해서 사격좌지에 관심을 돌리지 못한 자기의 실책이 컸다.

래일중으로 배에 고사기관총을 고정시킬수 있는 총가를 만들어야 하였다.

그는 하회를 기다리듯 묵묵히 서있는 하명찬을 불렀다.

《명찬동무, 래일 새벽에 우리 소해정에 찾아가보오. 오늘 입항한 소해정 말이요. 거기 총포수들가운데서 강의술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오오. 그들을 보고 우리 기뢰부설조 해병들에게 병기학강의를 좀 해달란다고 하시오. 실지 무기들의 구조작용과 전투시 총포수들의 위치와 동작을 배우고 훈련을 반복해야 하겠소. 함정에 가서 나의 명령을 전하고 총포수들을 데려오시오.》

《알았습니다!》

《그 화상처엔 바다가에 밀려나온 미역즙이나 총기름같은걸 바르오. 군의가 발라주는 약보다 나을거요.》

지휘관은 매 전사들의 전투행동은 물론 그들의 신변안전까지도 책임져야 하였다.

다음날은 개인 날씨였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안침진 골안에 해병들이 모여앉았다.

《어, 실컷 잤군.》

《이게 통잠이라는거야.》

《매일 밤 전투에 나갔으면 좋겠구만. 이렇게 통잠을 자게.》

늦게 기상한지라 모두 거뜬해진 해병들이 웃몸을 놀리는 가벼운 운동을 하는데 밤새 자지 못해 눈이 충혈지고 얼굴이 부석부석해진 채정보가 현준이와 말을 주고받으며 그들 있는데로 다가왔다.

《일어섯!》

구령에 따라 모두 일어서려는것을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함포가 무섭지 않소?》

채정보의 물음에 주위가 설렁이였다.

《무섭지 않습니다, 그까짓 눈먼 포탄.…》

가벼운 웃음이 일었다.

채정보는 그 웃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평소의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너무 자고자대하면 그 눈먼 포탄이 따라다니며 터지는 법이요. 그건 그렇고… 모두 앉은자리에서 복장과 장구류를 정돈하며 내 말을 듣소. 동무들도 어제 전투에서 느꼈겠지만 지금 우리앞에 부닥친 정세는 매우 긴박하고 엄중하오. 일본놈들의 조선전쟁개입이 기정사실화되고 놈들의 수로안내와 소해작업이 시작된것 같소. 이런 정황에서 나는 다읍과 같이 결심했소.

당면하게는 오늘 밤 어제 기뢰를 부설한 해역에 우리 배들이 항행하여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가 놈들을 때려야겠소. 우리가 이 해역에서 무엇인가 했다는것을 알아차린 이상 놈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러 꼭 다시 나타날것이요. 이놈들을 잡아치워야겠소. 그래야 기뢰망을 보존할수 있소. 다음은…》

웬일인지 그는 말을 끊고 언덕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때마침 저아래에서 하명찬이 철갑모와 등어리에 위장망을 얹고 풀과 나무가지를 꽂은 두명의 해병을 데리고오고있었다.

해병들은 목을 빼고 그들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한마디씩 하였다.

《저 친구들 새 철갑모를 썼구만!》

《우리도 여기 처음 왔을 땐 함포사격때문에 철갑모를 늘 쓰고있었지.》

《무겁고 답답하기만 해.》

채정보는 자리에 앉아 말꼭지를 뗐다.

《동무들, 내 짧은 이야기를 하나 할가?》

《예! 좋습니다.》

기대와 호기심에 찬 눈길들이 빛났다. 이런 장소에서 이야기란 들놀이 못잖게 흥겨운것이였다. 누군가가 그에게 제꺽 담배 한가치를 물려주었다.

채정보는 함정의 해병들이 여기까지 당도하려면 시간이 좀 있다고 생각하고 인차 말꼭지를 뗐다.

《이건 철갑모가 갓 생겨났을 때에 있은 일이요. 프랑스군의 한개 부대가 적들의 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고 낮과 밤이 따로없이 강행군을 했소. 고지밑에 당도하여 점검을 해보니 행군도중에 중량을 더느라 태반이 철갑모를 비롯한 무거운 장구류들을 벗어던졌더라는거요.

천으로 만든 군모만 쓴 병사들에게 장교가 물었소.

전투에선 어쩌자는건가?

병사들은 적들만 쓸어눕히면 그만이 아니냐는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소.

시간이 더 없다는것을 아는 장교는 곧 돌격구령을 내렸소. 포탄이 튀고 총탄이 우박쳤소. 희생은 있었지만 고지는 탈환했소.

고지정점에서 다시 인원을 점검해보니 숱한 병사들이 죽고 여라문명의 병사만이 정렬해있었소. 그런데 살아있는 병사들속에서 철갑모를 버렸던 병사들이 하나같이 죽어넘어진 적군병사들의 철갑모를 쓰고있었다는거요.

(호기롭던 위세는 어디로 가고…)

입이 쓰거워난 장교는 누구에게라없이 비양조로 물었소.

그래도 죽진 않겠다고… 죽음이 두려웠던게지?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흰 목을 빼던 병사들은 적들의 철갑모를 쓰고있다는 수치감으로 얼굴이 시뻘개서 서있는데 그래도 한 애된 병사가 용기를 내여 말하더라나.

살아서 병사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썼습니다.

장교는 어이없어 웃고말았소. 그러나 돌아서며 입속으로 뇌이였지.

그래, 살아야지. 전투는 앞으로도 계속되니까.

이야기는 이게 다요.》

다른 때 같으면 제나름의 해석을 달며 떠들어댔을 해병들이 이번에는 슬며시 자신들을 돌이켜보는지 말이 없었다.

이때 하명찬이 다가와 도착보고를 했다.

《대좌동지, 명령대로 소해정 전투인원 두명을 데리고 도착했습니다!》

채정보는 보고하는 소해정해병들의 손을 끌어 곁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주위에 둘러앉은 해병들을 둘러보았다.

《동무들, 소개한것처럼 이 동무들은 소해정 37미리고사포장과 12. 7미리고사총장들이요, 오늘은 동무들의 교관이요. 우리가 전투를 해봐서 느꼈겠지만 모르고서는 적들을 잡을수 없소. 어제경우를 좀 보오, 무기에 대한 파악이 없다나니 손바닥에 화상까지 당하지 않았는가. 오늘부터 전투행동이 없는 낮시간엔 모두 병기학상학을 해야겠소. 각종 포와 총, 필요하다면 적군무기에도 정통해야겠소. 그래서 모두 자기 전투임무뿐만아니라 무기도 능숙하게 다를수 있게 준비해야겠소. 이것도 전투요. 자신있소?》

《자신있습니다!》

우렁찬 대답이였다.

채정보는 랑만에 넘치는 씩씩한 이 해병들을 보느라니 마음이 거뜬해졌다. 상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해병들은 설레였다.

채정보는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소해정의 두 해병에게 내주었다.

《자, 함포탄이 터지고 불편하지만 어쩌겠소. 놈들이 제놈들 잡는걸 배우라고 암전하게 앉아있을린 없는거고. 소해정동무들, 좀 잘 배워주오. 어떤 동무들은 해군모의 댕기를 멋스레 날리면 그것으로 해병이 다되는것처럼 생각하는데 이번 기회에 화약내가 몸에 푹 배게 만들어주기를 바라오.》

채정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느라 롱 절반, 진담 절반을 해가며 자리를 정돈시켰다. 이어 골안의 따스한 잔디밭에서 상학이 시작되였다.

《오늘은 우리 전투함선들에 설치되여있는 37미리고사기관포와 12. 7미리고사기관총에 대한 병기학리론에 대해 배우겠습니다.…》

소해함포장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으며 채정보는 언덕을 내리였다.

그가 부두로 나가는 길에 접어드는데 다급히 찾는 해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언덕밑에 은페되여있는 무전실에서 해철이 뛰여나오며 소리쳤다. 그의 손에서 하얀 전보용지가 흔들렸다.

《부대장동지! 무전입니다-》

숨이 턱에 닿아 달려온 그는 채정보에게 무전문을 내밀었다.

《해군사령부에서 보낸 무전문입니다.》

채정보는 전문 한자한자를 빨아들이듯 읽어내려갔다.

《음- 해철동무, 빨리 지휘관들에게 지휘부에 모이라고 알리오!》

《알았습니다!》

리해철은 나는듯이 달려갔다.

채정보는 숙연한 표정으로 잠시 그 자리에 서있었다.

(전선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그이께서 우리가 맡은 기뢰부설문제에 대해서까지 친히 관심하셨구나. 얼마나 중요하게 보셨으면…)

지휘관들이 지휘부에 모였다.

채정보는 긴장하게 서있는 지휘관들앞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전달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ㅇㅇㅇㅇ호. 기뢰부설에 관하여.

미제침략군의 조선해안상륙을 저지함에 있어서 함정들의 기동에 강유력한 차단물로 되는 기뢰망부설을 다음과 같이 실시할것을 명령한다. …》

계속하여 조선인민군해군 ㅇㅇ함대에서 주요항로들과 항구들에 기뢰를 부설함에 요구되는 새 기술기재들을 준비하며 기뢰부설계획에 근거하여 적상륙대가 상륙할수 있는 방향들에 ㅇ월 ㅇ일까지 기뢰망을 부설하며 기뢰부설을 완성한 후 그 위치를 정확히 판정하여 최고사령부에 직접 보고할데 대한 명령내용을 전달하였다.

끝으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하고 랑독하자 지휘관들의 어깨가 감격과 흥분으로 들먹이였다.

전쟁 초기에 동해연선을 장악하기 위해 기동타격대로 돌아치던 미제의 큰 함선집단이 우리 어뢰정대의 타격으로 전투능력을 상실하자 적들은 제놈들과 추종국가들의 숱한 함선집단을 동원하여 동서해안에 대한 상륙작전을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놈들의 상륙을 막기 위하여 전격적인 기뢰부설전을 벌릴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신 후 그 집행을 위한 전투가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갔다.

여기에 새로운 장비들과 병력이 투입되였다. 서해함대의 경비정과 기뢰부설정, 수송선으로 보강된 채정보부대는 기뢰부설을 전문하는 전투부대의 면모를 갖추고 서해와 남해에서의 기뢰부설을 맡게 되였다.

윤지환소좌는 부대참모장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였다.

고기배였던 크고작은 기관선들도 기뢰를 부설할수 있게 레루를 깔고 인양기를 설치하였는데 여러명의 하사관들이 선장으로 임명되였다.

한편 동해안의 주요수역들에도 기뢰부설을 위해 해군부대들이 출동하게 되였는데 이미 경험을 쌓은 채정보가 당분간 거기에 파견되여 기술적지도를 하게 되였다. 그는 하명찬을 조수격으로 데리고 떠나기로 하였다.

그동안 부대지휘는 참모장 윤지환이 맡게 되였다. 증강된 부대는 인천앞바다에 대한 기뢰부설을 마무리하고 아군지상련합부대들이 해방한 서해안을 따라내려가면서 부설전투를 벌리게 될것이였다.

채정보를 따라 동해안에 다녀오게 된 하명찬은 금시 하늘로 날아오를듯 한 기세였다.

함포탄이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서 작렬하였다. 솟구치는 불기둥, 귀청을 째며 철화가 날아다녔다. 여기저기에서 죽음을 읊조리는 불의 파편들…

해병들은 지금 죽음에 대해 생각지 않았다.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아안은것으로 하여 영예롭고 무거운 책임감만이 가슴을 꽉 채우고있었던것이다.

모두들 은페호에서 모자와 어깨에 부슬부슬 떨어지는 흙먼지를 털며 놈들의 함선에 귀먼 욕을 퍼붓는데 그속에서도 동해안으로 가게 된 하명찬은 싱글벙글 웃었다.

《이럴줄 알고 우리 대좌동지가 해방직후에 청진항에 기뢰를 적지 않게 마련해놓은셈이지. 이통에 잘 써먹게 됐어. 적들의 기뢰로 적들을 족치게 됐다니까.》

하명찬은 부대장과 자기와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락을 같이해온 막역한 사이라는것을 은근히 암시하고있는것이였다. 그는 자기 혼자 전투임무를 받아안은것처럼 기분이 떴다.

그통에 입이 삐죽이 나온것은 늘 그가 하는 일에 쌍지팽이 짚고 나서는 해철이였다.

《헹, 꽤나 좋아하네. 기뢰부설을 도와주러 가는것때문에 그러는것 같지는 않은데? 아하, 알만 해. 이전 주둔지역에 가면 윤옥누이 만나게 될테니까 아마 좋기도 하겠지.》

하명찬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해철에게 면박주는것만은 잊지 않았다.

《왜, 따라가지 못해 섭섭하지? 해철이가 말하는 그 처년 이미 군대에 입대했을거야. 괜히 억측하지 말라구. 군대라는게 사와 공을 구분 못하면 되겠어? 생각하는게 꼭 제멋대로라니까. 그러게 아무리 봐야 해철인 안돼.》

《암만 둘러대야 통하지 않아요-》

경테 있던 현준이 역시 해철의 말이 그른데 없다고 생각했다.

현준은 하명찬의 기쁨속에는 《뽕도 따고 님도 본다》는, 다시말하여 저들이 보초를 서던 주둔지역의 리민청위원장 장윤옥을 만나게 될수도 있다는 기대가 깔려있음을 잘 알고있었다.

 

련재
[장편소설]파도 (제1회)
[장편소설]파도 (제2회)
[장편소설]파도 (제3회)
[장편소설]파도 (제4회)
[장편소설]파도 (제5회)
[장편소설]파도 (제6회)
[장편소설]파도 (제7회)
[장편소설]파도 (제8회)
[장편소설]파도 (제9회)
[장편소설]파도 (제11회)
[장편소설]파도 (제12회)
[장편소설]파도 (제13회)
[장편소설]파도 (제14회)
[장편소설]파도 (제15회)
[장편소설]파도 (제16회)
[장편소설]파도 (제17회)
[장편소설]파도 (제18회)
[장편소설]파도 (제19회)
[장편소설]파도 (제20회)
[장편소설]파도 (제21회)
[장편소설]파도 (제22회)
[장편소설]파도 (제23회)
[장편소설]파도 (제24회)
[장편소설]파도 (28)

댓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7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