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3편 성전

1

 

제주도인민유격대는 일찌기 있어본적 없는 최대의 시련기에 들어섰다. 제주도에 방대한 무력을 끌어들인 미제와 괴뢰역도들은 륙해공군의 협동작전으로 한나산을 비롯한 산악지대에 자리잡은 유격대기지들과 중간산악지대의 민간부락(유격대의 영향밑에 있던 주민부락)에 대한 전면적인 《토벌》을 련속 끊임없이 벌렸던것이다. 해안선을 봉쇄한 18척의 군함들이 섬을 포격하였고 하늘에서는 미군전투기들이 련일 산과 주민지역을 폭격하였다.

제주도 전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놈들은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없앤다는 《삼광작전》과 토끼몰이식《투망살륙작전》, 로라식《몰살작전》 등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도살작전으로 주민지역과 산간부락들을 모조리 재더미로 만들고 사람들을 짐승사냥하듯 학살했다. 이런 야수와 같은 인간도살은 피와 눈물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수 없는짓이였다. 그러나 미제는 야수도 낯을 붉힐 이런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놈들은 80살 난 로인을 《빨갱이》자식을 키운 《죄》로 끌어내여 목을 잘라죽이고 밭일 하는 사람도, 미역따던 해녀도 《폭도》로 몰아 학살하였다. 그리하여 제주도의 산과 바다가, 마을들에는 제주도사람들의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

제주도인민유격대는 사면으로 포위하고 달려드는 적《토벌대》들과 련일 힘겨운 싸움을 벌려야 하였다. 중무장한 수많은 적들과의 치렬한 격전에서 유격대대오에는 희생자가 늘어났다. 후방이 없는 그들에게는 보급물자의 결핍으로 탄약이 부족했으며 식량과 피복, 신발 등의 난관까지 겹쳐들었다.

이러한 때 각오와 준비가 부족한 일부 대원들속에서 (그중에는 대오안에 우연히 끼여든 대원들도 있었다.) 동요가 생기고 도주자까지 발생하였다.

이 엄혹한 정세는 제주도인민유격대앞에 수많은 문제들을 시급히 해결할것을 요구했다. 시급한 때일수록 빠른 결단이 필요하였다.

성널오름고지의 유격대지휘부에서는 아침부터 지휘관들의 긴급회의가 열렸다.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지휘관회의에서는 유격대원들속에 높은 혁명적각오를 가지도록 하기 위한 각종 선전사업의 강화, 엄청난 병력으로 달려드는 적들과의 싸움에서 유격대무장대오의 신속한 분산과 집중, 이동, 불의의 기습, 지형지물을 리용한 은페와 잠복, 지리적요인과 시간적요인, 심리적요인을 정확히 타산한 습격, 《가장 기동대》의 활용, 지하조직과의 긴밀한 련계 강화, 섬이 봉쇄된 정황에서 후방보급을 위해 섬밖으로 탈출하여 보급물자를 구해올 전투조의 조직문제 등이 진지하게 토의결정되였다. 회의는 지금까지 그 어느 회의때에도 있어본적 없는 긴장과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시작하였고 또 그런 분위기속에서 끝났다. 마지막으로 유격대 대장인 리덕구가 긴급회의를 결속하려고 작전용탁자앞에서 일어났다. 그의 거동은 보통때나 다름없이 태연하고 침착하였다.

《지휘관동무들, 류례드문 시련을 겪고있는 지금처럼 자기 고향,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소용된 때는 여적 없었소. … 우리는 이미 조국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자신의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나선 제주도의 아들들이요.

때문에 여기 모인 지휘관 그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할 사람은 없을것이요!

그러나 그 누구도 자기의 생명을 함부로 쉽게 던질 권리는 없소. 명심해들으시오! 우리의 생명은 조국에, 적들과의 싸움에 필요한것이요. 죽는것이 가장 편안한 그때에도 우리는 살아서 성전을 계속해야 하오.

지휘관동무들, 우리는 자신의 생명뿐아니라 고락을 함께 나누며 싸우는 대원들의 생명도 아껴야 하오. 어려울 때일수록 대원들을 친혈육의 정으로, 사랑으로 돌봐주고 보살펴주어야 하겠소. 이것을 언제 어느때나 잊지 마시오!-》

리덕구의 목소리는 그리 높지 않았으나 마치 쇠망치에 못이 박히듯 격렬하게 긴급회의에 모인 지휘관들의 가슴에 박히였다. 그의 말 한마디한마디는 깊이와 무게가 있었다. 제주도인민유격대 대장인 리덕구의 신념의 투철성, 죽음에 대한 값높은 리해, 완강성과 근기, 태연성이 느껴지는 책임적인 발언이였다.

그때 지휘부가까이에서 문득 와하하!- 하는 대원들의 명랑한 웃음소리와 왁작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도대체 뭐요? … 질서없이…》 하고 본부의 이름있는 한 지휘관이 긴장한 얼굴을 찡그리며 문밖으로 나가려고 불쑥 일어섰다.

긴급회의에 참가한 지휘관들 역시 모두 의아한 표정이였다.

《성내지 마오, 량동무. 이 엄혹한 시련을 겪는 때에 대원들이 여유있게 웃고 떠들며 락천적으로 휴식하는건 아주 좋은 일이요! … 회의도 끝났으니 우리도 나가봅시다. 아마 무슨 즐거운 일이 있는 모양이요.》

리덕구는 의미있게 웃으며 먼저 일어나서 지휘부초막밖으로 나왔다.

맑게 개인 하늘에서는 적들의 비행기가 부르릉거리며 떠돌고 바다쪽에서는 쿵쿵 포사격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간간이 나직한 폭음이 산등성이를 굴러가다가 숲속에 갈마들어 사라져버리군 하였다.

《개자식들, … 줄곧 쏘아대는군.》 하고 밖으로 나온 젊은 지휘관이 분격하여 욕설을 퍼부으며 퉤!- 침을 내뱉았다.

그럴 때 지휘부초막앞으로 군데군데 묻은 풀검불을 털며 김로인이 웬 일인지 신바람이 나서 다가왔다.

《아, … 마침 회의도 끝난 모양이군. … 리덕구대장, 뜻이 깊은 결혼식도 끝나고 방금 <입장례>를 시작하려던 참이야. 때마침이요. … 일이 척척 맞아떨어지는군. …》 하고 김로인은 그 나이에 놀랄만큼 청청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순간 성미급한 본부의 한 이름있는 지휘관이 어디가 심히 아프기라도 한듯 불시에 얼굴을 찌프렸다. 그는 적들과의 싸움에서는 자기의 남다른 용감성과 대담성으로 대원들을 이끄는 용맹한 지휘관으로 소문난 사람이였으나 생활에서는 정서와 랑만이 부족한 지휘관이였다.

《뭐라구요? … 정신들이 쑥 나갔소. 뭐? … 결혼식 또 <입장례>라? 이 엄혹한 때에 무슨 뚱단지같은 소린가 말이요!-》 하고 그는 땅을 두드리는듯 한 격한 어조로 추궁했다.

《아, 량동무. 미안하게 됐소. 며칠전에 3. 1지대의 대원 조성철과 한미숙동무의 결혼식문제가 제기되였는데… 오늘 하기로 내가 승낙했드랬소. 량동무가 전투에 나간 사이에… 내가 그만 알려주지 못했었소. 미안하오.》 하고 리덕구가 선뜻 막아나서며 이렇게 부언했다.

《동무들, 얼마나 좋은 일이요! 이 엄혹한 시련의 시기에 진행하는 의미심장한 유격대의 결혼식말이요. … 유격대생활이라고 밤낮 싸움만 하는게 아니잖소? … 결국 우리가 놈들과 싸우는것은 제주도사람들의 행복한 래일을 위한것이요! … 자, 우리 제주도에 새로운 가정이 태여난것을 축하해줍시다!-》

그런 다음 리덕구는 기탄없이 소리내여 껄껄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어찌나 명랑하고 유쾌하였던지 지휘부초막앞에 나와 서있던 지휘관들은 부지중 마음속의 긴장이 풀리면서 무엇인가 즐거움을 느꼈다.

《자, 지휘관동무들. 준엄한 투쟁의 불길속에서 뜻깊은 인연을 맺은 신랑의 <입장례>대접을 받으려면 <웃어른>답게 옷차림도 정돈하고… <웃어른>답게 처신하는게 좋겠소!-》 하고 리덕구는 기쁨으로 눈을 번쩍거리면서 목단추를 채우고 옷차림을 단정히 했다. 제주도인민유격대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모두가 그러한 리덕구를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그에게는 용감하고 슬기로운 유격대지휘관의 훌륭한 기질과 좋은 인간적면모가 겸비되여있었다. 그는 언제나 빈 객기를 보인적이 없었으며 봄날의 호수처럼 태연하였다.

긴급회의에 참가했던 지휘관들은 지금 꾸밈없는 리덕구의 인품에 자신도 모르게 끌려드는것을 느끼며 서있었다.

《자, 그럼 <입장례>를 시작하겠소이다!-》

김로인은 류다른 기쁨으로 목소리를 떨면서 나직이 소리쳤다. 그리고는 신바람이 나서 어깨를 실룩거리며 대원들이 왁작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산아래로 내려갔다. …

제주도는 력사적, 지리적특성으로 하여 남방계통의 문화와 북방계통의 문화가 한데 어울려지고 륙지와 다른 독특한 생활문화의 풍습을 가지고있다.

또한 제주도에는 륙지에서는 볼수 없는 특이한 전통적인 오랜 민속놀이가 수없이 많은데 그중에서 특징적인것은 《해녀놀이》와 《사또놀이》, 《입장례》 등이다.

《해녀놀이》는 해녀의 고된 로동생활을 반영한 춤과 깊은 한이 스며있는 민요를 부르며 노는것이다. 《사또놀이》라는것은 상여를 메고 간 상도군들이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들가운데 덕망있는 어느 한 사람을 사또처럼 가마에 태워가지고 와서 잔치를 베풀게 하는 놀이이다.

《입장례》는 결혼직후 신랑이 어른이 되였다는 표시로서 동네어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민속놀이이다.

리덕구와 지휘관들은 유쾌한 이야기도 하고 담배도 피우면서 이제 나타날 신랑을 기다리며 지휘부앞의 작은 공지에 서있었다. 산속은 여전히 고요하였고 이따금 저아래 바다쪽에서 쏘아대는 포성이… 쿵쿵 북을 치는듯 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멀지 않은 서어나무숲속에서 딱-딱- 나무가지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쑥 《누구야, 섯!-》 하는 크고 되알진 목소리가 울렸다.

《?! …》

리덕구와 지휘관들은 일시에 빠르게 총을 틀어잡으면서 서어나무숲쪽을 주시했다.

그쪽에서 두런두런하는 격한 말소리가 들리더니 잠시후 건장한 유격대원 두명이 두눈을 검은 천으로 싸맨 누런 군복의 괴뢰군중위를 압송하고 지휘부초막앞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요? … 포로요?》 하고 한 지대장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쳐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 그런데 포로는 포로인데 참 이상스러운 포로놈입니다. 저아래 잠복초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이놈을 저희들이 체포했는데… 꼭 리덕구대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거듭거듭 간청하기에…》

키가 꺽두룩한 유격대원은 포로를 여기까지 끌고 온것이 잘한 행동인지 아니면 잘못한 일인지 확신할수 없어 어줍게 웃으며 보고했다.

《여보! 정신이 나갔소? … 그까짓 놈을 뭐라고 여기까지 끌고 온단 말이요! … 정말 신중치 못하오!-》 하고 유격대본부의 한 지휘관이 불만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엄하게 추궁했다.

《저희들이 잘못한것 같습니다. 이놈이 어찌나 애절히 간청하는지 그만…》

압송해온 대원들은 머리를 숙이고 떠듬거리며 잘못을 인정했다. 그들은 눈을 싸맨 포로놈을 이끌고 다시 산아래로 내려가려고 하였다.

《가만 좀 있소. 이 중위가 꼭 나를 만나겠다고 한단 말이지. 무슨 중대한 문제로 스스로 우리를 찾아왔나? …》 하고 리덕구는 그들의 가까이로 다가가며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싸맨 눈을 풀어주시오!-》

《알았습니다!-》

포로를 압송해온 대원들이 안도의 숨을 내그으며 즉시에 싸맸던 검은천을 중위의 눈에서 풀어주었다. 그러나 누런 군복차림의 해말쑥한 중위는 제법 담기있는 당돌한 시선으로 모여선 유격대지휘관들을 둘러보았다.

그 다음 동가슴을 불쑥 내밀며 거드름스럽게 말하였다.

《나는 제주도경비사령부의 련락장교 박광만이요. … 속히 나를 리덕구대장에게… 안내하시오!-》

괴뢰군중위의 말투며 자세가 어찌나 《당당》하고 기고만장했던지 모여선 유격대지휘관들은 너무도 역겹고 가소로워 코방귀를 뀌고 랭소하였다. 그때 돌연 한 지대장이 중위놈에게로 와락 달려나갔다.

《개자식! … 미국놈의 개노릇을 하는 주제에… 네놈을 당장 쏘아죽일테다! … 미친개처럼!-》 하고 얼마전에 3.1지대 지대장으로 임명된 그는 분노와 증오로 입술을 떨면서 사납게 소리치며 권총을 뽑아들었다. 당장 격철이 올려진 권총에서 분노의 총성이 울릴것 같았다.

리덕구가 침착하게 그를 막았다. 그 다음 그는 다름아닌 중위의 눈을 뚫어지게 마주보며 저력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리덕구요! … 중위, 무슨 일로 나를 만나자고 하오?》

그 순간 《당돌》한 중위는 자기도 모르게 남의 눈에 띄지 않을만큼 몸을 흠칫했다. 헛동작이라고는 전혀 없는 리덕구의 침착하고 태연한 언행과 지성과 높은 학식이 엿보이는 번쩍이는 눈… 유격대 대장으로 불리우는 그에게서는 함부로 범접할수 없는 높은 기품이 느껴졌던것이다. 이런 사람은 호언장담이나 허장성세나 정신적혼란 같은것을 모르며 애매하고 잔꾀를 부리면서 주저하는것과 같은 일은 없을것이라고 《총명》한 중위는 순간에 판단했다.

중위는 불시에 두 군화발을 소리나게 모으며 차렷자세를 취하면서 역시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제주도경비사령부 련락장교로서 리덕구대장님과의 단독면담을 청원하는바입니다. … 극히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여보 중위, 어서 그 <중대한 문제>를 말하오. 여기 있는 지휘관들은 내가 자신처럼 믿는 동지들이요.》 하고 리덕구는 엄하게 명령조로 말하였다.

그러나 중위는 까만 눈을 깜박거리면서 고집스럽게 침묵하고있었다.

《중위, 어서 말하오!-》 하고 리덕구는 나직이 독촉했다.

《아니, 여기서는 말할수 없습니다. 설사 여기서 총살당한다고 하여도 절대로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받은 명령은… 그렇게 집행하면 안되는것이기때문입니다. 그럴수 없습니다!-》

중위는 이상스럽게 눈을 번쩍거리면서 정신병자의 울컥하는 용기와 같은 열기로 웨쳐댔다.

문득 리덕구는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중위의 서푼짜리 객기가 가소로웠던것이다.

《아, 그런가. … 그럼 중위의 청원대로 해주지! …》 하고 뇌인 리덕구는 의미심장하게 입술부위만 웃어보이면서 탄력이 느껴지는 걸음으로 지휘부초막앞으로 걸어갔다. 흥분한 중위가 잰걸음으로 뒤따랐다.

《중위, 거기 앉으시오!-》

지휘부안으로 들어선 리덕구는 중위에게 시선으로 통나무로 만든 길다란 걸상을 가리켰다. 그러나 중위는 앉지 않고 서둘러 말을 시작했다.

《리덕구대장님, 송요찬중령님을 잘 아시지요?》

《송요찬? … 그렇소. 잘 아오. 그는 대학시절의 나의 동료였소!-》 하고 리덕구는 조금도 재는 기색이 없이 즉시에 대답하였다.

그러자 중위는 안도의 숨을 길게 토하면서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리덕구대장님, 송요찬련대장님께서는 지금 국방경비대의 토벌군 제 11, 9, 2련대들의 련합부대를 지휘하고있습니다. 송요찬중령님은 한시라도 빨리 개별적으로 리덕구대장님을 만나 이 편지를 전달할것을 저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괴뢰군중위는 군복저고리의 안을 뜯더니 그속에 깊이 간수했던 편지를 꺼내 리덕구가 마주앉은 탁자우에 놓으며 말을 계속하였다.

《리덕구대장님, 곧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리덕구는 중위의 중언부언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태연히 담배를 꺼내물고 성냥을 켜서 한모금 깊숙이 빨고나서 무표정한 얼굴로 편지를 뜯었다. 옛적버릇대로 꼭꼭 박아쓴 낯익은 송요찬의 필체였다.

 

… 덕구군!- 대학시절의 그때처럼 스스럼없이 군의 이름을 부르고보니 문득 가슴속에 뭐라고 말할수 없는 충동과 감회가 차올라 마음을 진정할수 없구만. 해방된 그해 부산항에서 우리가 기약없이 헤여진 후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네. 인생에서 3년이란 긴 세월이라고는 할수 없겠지만 또 결코 짧은것은 아니지. 덕구군! 자넨 정말 무정한 사람이야. … 난 그래도 우리들의 우정을 잊지 않고 이렇게 두번째로 긴요한 편지를 보내오. 첫번째 편지는 해방된 그해 12월말경에 서울에서 자네의 《군사영어학교》입학수속을 해놓고 빨리 제주도를 떠나오라고 써보낸것을 아마 자네도 기억하고있을거요.

덕구군! 지나간 일을 따지고 회계하자는것은 아니요. … 인생이란 허무하다고 해야 할지 불가사의한것이라고 해야 할는지… 우리가 서로 상반되는 길을 걸으며 총부리를 마주 대고 싸우게 될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소.

너무도 가혹하고 지꿎은 운명의 희롱이라고 탄식할수밖에 없는것이요!

덕구군! 이 편지를 총총히 쓰게 된 의미깊은 사연은 후에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사태가 급박하여 요점만 적겠소. 간단히 말하면 한나산은 사방 한개 전쟁을 치를만 한 미륙해공군의 막강한 무력이 2중3중으로 포위하고있는 상태요. 쥐새끼 한마리도 이 섬에서 빠져나가기는 불가능하오. 군사전문지식이 풍부하고 누구보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덕구군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판단하리라고 믿소. … 유격대의 괴멸은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두주일은 넘기지 못하오. 지금 덕구군의 몸에는 60만원의 현상금이… 래일이면 100만원으로 올라가게 되오. … 그런데 다행이랄가.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덕구군에게 행운의 손길이 닿았네. 다름아닌 이곳 남조선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미군부의 큰 인물이 덕구군의 재능과 지식을 귀중히 여기고 아껴서 귀순하면 군의 련대장, 그 이상의 직급을 약속하였소. 이것은 인생의 잊을수 없는 동료로서 우정을 걸고 하는 나 개인의 담보일뿐아니라 바로 다름아닌 미군사고문단 단장인 로버트각하의 담보이기도 하오. 오랜 군인이며 높은 안목을 가진 로버트각하는 덕구군을 인재로, 가치있는 인물로 판단한 모양이요! … 덕구군, 이 편지를 읽고 즉시 결단을 내리기 바라오. 때를 알고 시세를 아는 사람이 영걸이 아닌가. … 영웅도 시속을 따른다는 말이 있소! 로버트각하는 만일 덕구군이 련대장의 직급이나 군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1류급의 미국대학류학도 보내줄수 있다고 담보하였소! …

우리의 류다른 상봉을 기다리면서…

송요찬

 

리덕구는 빠르게 마지막까지 편지를 읽고 허리를 쭉 펴면서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의 얼굴 아래쪽에 무엇인가 꿈틀 지나갔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편지를 가지고 온 괴뢰군중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총명》해보이는 중위는 서둘러 또다시 군복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리덕구대장님! … 이건 로버트각하가 별도로 직접 저에게 준 … 리덕구대장님에게 보내는 서한입니다!-》

기실 그것은 귀순을 권고하는, 로버트의 서명이 있는 영문으로 된 공식서한이였다.

불현듯 리덕구는 무엇인가 참아내기 힘겨운 정신적구토감과 함께 가슴속에서 머리우로 피가 솟구치는것을 느꼈다.

(우리 조국에, 우리 겨레에게 이처럼 많은 슬픔과 피눈물, 불행과 재난을 들씌운 가증스러운 미제침략군놈이… 그놈들의 하수인, 개로 전락된 놈이 나에게 지금 무엇을 … 어떤 더러운짓을 바라고있는가!-)

그는 소나무로 만든 탁자우에 놓은 송요찬의 편지와 미군사고문단 단장인 로버트의 서한을 그 어떤 괴이하고 징그러운 벌레라도 보는것처럼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너무도 억이 막힌듯 한참동안 말을 못했다.

강렬한 분노와 증오가 그의 운몸에서 솟구쳤던것이다.

리덕구는 얼굴의 근육이 온통 떨리는것을 느끼면서 즉시 권총을 뽑아들고 놈들의 편지를 가지고 온 괴뢰군중위놈을 쏘아죽이고싶었다. 그러나 순간 리덕구는 자신을 다잡고 전투가방에서 백지 한장을 꺼내 탁자우에 내던지듯 놓았다.

《중위, … 그와 잘 아는 사이인가? …》

리덕구는 분노로 목이 갈린듯 석쉼한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

괴뢰군중위는 별스레 나직이 말하는 리덕구의 무표정한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며 얼떠름히 서있었다.

《리덕구대장님, 무슨… 말씀이신지요?》

《너는 너를 여기로 보낸 송요찬을 어느만큼 알고있는가 묻는거야!-》 하고 리덕구는 엄한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네. 송요찬련대장님은… 리덕구대장님을 진정으로 아끼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도우려고 성심성의로 대하고있습니다. … 이건 진실입니다요. 시방 사태는…》라고 괴뢰군중위는 자기 말을 중도에서 꺾을가 겁이라도 내는듯 련속 냅다 빠르게 말을 쏟아놓았다.

《너무도 험악합니다. 저도 군인인만큼 정황을 군사적견지에서 어느 정도 판단할수 있기때문에… 리덕구대장님, 저항은 무의미한것입니다. 유격대의 무장은 너무도 빈약하고… 병력수는 토벌군의 백분의 하나도 못됩니다. 섬은 철저히 봉쇄된 상태에서… 후방보급이 없는 상태에서 싸움을 계속한다는것은 닭알로 바위를 치는것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행위인것이지요. … 그래서 송요찬련대장님은 저를 여기로 보내면서 리덕구대장님에게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기회라는것을 알려드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리덕구는 이상한 짐승의 울음소리라도 들은것처럼 중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동문서답이다! … 나는 너를 보낸 송요찬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고 물었었다. 너도 눈을 뜨고서도 보지 못하는 머저리, 인간쓰레기가 되였으니 송요찬에 대해서 보지도 알수도 없을것이다. 내 말을 명심해들으라. 송요찬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것은 친구도 동료도 아니다. 나라와 민족에 대해서는 더욱 아니다. 송요찬이 제일 관심하고 귀중히 여기는것은 오직 자기자신의 직위와 공명뿐이다! …》 하고 리덕구는 조용히 무게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낯을 찌프린 괴뢰군중위는 군모우에 손을 올렸다내렸다 하면서 안절부절하였다.

그 어떤 불안이 중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서 곤두선 두눈섭사이에 엉키였다.

《중위, … 우리 제주도인민유격대앞에 닥쳐온 엄혹한 정세에 대해서는 네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있다. 중위, 잘 들어두라. … 나는 해방되기 전에 일본놈들에게 <학도병>으로 끌려 남방전선에 가서 서양놈들과 싸운적이 있다. 그때 적들의 압도적인 대무력에 완전포위에 든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무서운 공포로 얼이 빠져 금시 미쳐버릴번 했었다. 침략전쟁에 아무런 명분도 없이 대포밥으로 끌려 전쟁에 나갔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 중위, 내가 왜 지금 그때를 회상하고있는지 너는 알지도 못하고 또 알수도 없다. 그것을 내가 너에게 말해주겠다. 한마디로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게 나의 마음속에 아무런 공포도 없다는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자기 고향, 자기 조국, 자기의 동료들을 위해 미제침략자들, 매국역적들과 성스러운 전투를 벌리고있기때문이다. 우리 전체 유격대원들은 <개인의 죽음은 작은것이고 조국을 위한 싸움은 크다.>는것을 누구나 가슴에 새긴 제주도의 아들들이다. 중위,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 하고 말하는 리덕구의 숱진 눈섭이 꿈틀하더니 눈에서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케 하는 섬광이 번쩍- 하였다. 그 순간 뾰족한 턱을 쳐들고 리덕구를 바라보던 중위는 비칠거리는듯 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갑자기 목에 시퍼런 칼날이 닿는것 같은감을 느꼈던것이다.

《리덕구대장님… 저는… 말씀의 뜻을… 리해할수가…》

괴뢰군중위는 풀이 죽어 후줄근해서 떠듬거렸다.

《리해하지 못할거요! … 너도, 너를 보낸 송요찬도 죽을 때까지 그 뜻을 알지 못할것이다! …》 하고 혼자소리처럼 뇌인 리덕구는 탁자우의 종이장에 연필로 무엇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조금후에 그는 《자, 이것을 너를 보낸 그들에게 전달하라, 이것이 나의 대답이다!-》 하고 종이장을 중위에게 주었다.

괴뢰군중위가 리덕구에게서 받은 종이장에는 사슬을 목에 건 사냥개와 주인이 그려져있었는데 사냥개의 목에는 송요찬의 이름이, 코큰 미군주인의 면상에는 로버트의 이름이 휘갈겨 써있었다.

(?!)

이 무슨 일인가. 이 동란의 세월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지 알수 없으며 인간의 예측따위는 불가능하며 모든것은 운명인것인가… 괴뢰군중위는 입술을 깨물고 굳어진듯 서있었다.

《리덕구… 대장님, 이건 너무나도… 송요찬련대장님의 인정에 대한 지나친…》 하고 떠듬거리던 중위는 불시에 입을 다물었다. 리덕구의 불이 이글거리는 분노한 눈과 마주쳤던것이다.

《중위, 너는 나라와 민족을 팔고 외세의 앞잡이, 개노릇을 하라고 권고하는것이 인정이라고 생각하는가? 알아두라! … 예로부터 나라에 외래침략이 있을 때마다 침략자들의 앞잡이로 나선 매국노들이 있었다. 리완용이가 그랬고 지금 리승만이 그렇고 너희 무리들이 그렇다. 그러한 력대 매국노들의 종말은 언제나 비참하였고 력사의 오물장에 처박혔다! …》 하고 열기있게 웨치듯이 말하는 리덕구의 얼굴은 점차 엄격해졌다.

문득 밖에서 대원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리덕구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지는것 같았다.

《자, 이만하자. 너는 산을 내려가 너의 상전들에게 지금까지 내가 한 말들을 그대로 전하라!-》

리덕구는 단호한 어조로 언명하면서 용수철이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덕구대장님! … 송요찬련대장님은 저에게 꼭 회답편지를 받아올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저는 군인인것만큼 받은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저의 처지를 고려해주십시오! …》 하고 매달리듯 애원하는 중위의 피기없는 얼굴이 목우에서 흔들거렸다.

《이게 나의 회답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리덕구는 그림이 그려진 종이장을 중위의 발밑에 던지며 말을 덧붙이였다.

《중위,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의 <사절>로 우리를 찾아왔는데 <입장례>에 참가하고싶은 생각은 없는가?》

《<입장례>라니요?》

《우리 제주도에는 예로부터 결혼식후에 신랑이 어른이 되였다는 표시로 동네 웃어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좋은 풍속놀이가 있다. 그것이 <입장례>라는것이다.》 하고 리덕구는 평상시어조로 깨우쳐주듯 말했다.

순간 중위는 펄쩍 뛰듯이 놀랐다.

《무슨 말씀이신지… 결혼식이란? …》

《결혼식이란 말도 모르겠는가? …》 하고 리덕구는 엄하게 되물었다.

《그런게 아니라… 너무도 상상밖이여서… 포위된 이 산속에서… 결혼식이라니 무슨 말인지…》 하고 중위는 떠듬거렸다.

《놀라지 말라! … 그게 바로 우리 제주도사람들의 본때야!-》

리덕구는 선언하듯 나직이 웨치며 초막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입장례》놀이가 한창이였다. 유격대지휘관들과 나이많은 대원들이 가슴에 꽃을 단 신랑에게서 풍속대로 음식대접을 받으며 떠들썩 유쾌히 웃고있었다.

《아, 리덕구선생님!-》 하고 신랑인 조성철이 건너뛰듯 달려와 학교시절의 스승에게 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신부인 한미숙이 들고있는 참대바구니에서 구운 고구마와 산과실들을 내놓았다.

《선생님, 변변치 못한 음식이지만 저의 성의로 아시고 받아주십시오. 선생님, 언제나 옥체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신랑 조성철의 언행이 어찌나 진지하고 어른스러운지 리덕구는 돌연 가슴이 후더워지면서 눈물이 솟구쳐오르는것을 겨우 눌러 참았다.

(만일… 마을의 제 고장, 제 집에서, 평화로운 생활속에서 떠들썩 하늘땅이 좁다하게 흥성거리며 결혼식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 꽃다운 청춘들이 너무도 일찌기 시련을 겪고있구나! …)

리덕구는 포악한 미제침략자들과 그 주구들이 강요한 이 재난, 이 불행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가슴속에 말없이 쪼아박고있었다.

《성철이, 아들딸 많이 낳고 의좋게 살기 바라오! … 그런데 신랑, 우리를 찾아온 이 <손님>에게도 <입장례>대접을 해주지 않겠소?》 하고 조용히 웃으며 뇌인 리덕구는 신랄한 야유조로 이렇게 말을 보탰다.

《이 <손님>은 나에게 귀순을 권고하는 송요찬의 편지와 함께 괴뢰군의 련대장이상의 직급을 담보하는 로버트의 공식서한까지 가지고 온 <불청객>이기는 하지만… <손님>이야 <손님>이 아니겠소!-》

리덕구는 중위가 가져온 송요찬의 편지와 로버트의 공식서한을 지휘관들에게 넘겨주었다. 모여선 유격대지휘관들과 대원들은 걷잡을수 없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개자식! … 대장동지, 이놈을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 총알도 아까워 이놈을 우리부부가 개처럼 목매달아 죽여버리겠습니다!-》 하고 조성철이 분격으로 눈을 무섭게 번쩍거리며 펄펄 뛰였다.

《아니, 그러지 마오. <입장례>는 신랑이 웃사람에게 대접하는것이니 이 <손님>에게 거절하는건 신랑의 의사에 맡기지만 우리를 찾아온 이 <불청객>을 죽여서는 안되오. 그냥 돌려보내야 하오!-》

리덕구는 펄펄 뛰는 조성철을 만류하면서 정색하여 무게있게 말했다.

그때 유격대원 고창생이 자기 흥분을 시위나 하듯이 격철을 올린 권총을 틀어쥐고 리덕구앞으로 달려나오면서 목갈린 소리로 웨쳤다.

《돌려보낸다구요? … 안됩니다! 절대로… 미국놈들의 개노릇을 하는 이 짐승같은 놈을 돌려보내서는 안된단 말입니다. … 대장동무! 이놈들의 손에 얼마나 많은 우리 제주도사람들이 원한 품고 희생되였습니까! … 이놈을 우리 손으로 처단하게 맡겨주시오!-》

《그놈을 징벌합시다!-》

《삽살개놈을 처단하자!-》

《살려보내서는 안되오!-》

모여선 지휘관들과 대원들속에서 분노에 찬 웨침이 터졌다.

그러자 괴뢰군중위의 백지장처럼 질린 하얀 얼굴이 대번에 이그러지고 살찐 볼편이 실룩거렸다. 놈의 얼굴은 얼마나 창백한지 흰 가면이라도 씌워놓은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서 살아있는것처럼 보이는것은 오직 죽음의 공포로 희번득거리는 두눈뿐이였다.

《동무들, 놈들은 야수, 짐승의 무리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도 놈들처럼 처신해서는 안되오. 우리는 성스런 싸움에 나선 정의의 투사들이요. 정신도덕적으로 강자들이란 말이요! … 그런만큼 우리는 제발로 찾아온 이 <불청객>을 그대로 돌아가게 내버려둬야 하오!-》 하고 열기있게 뇌인 리덕구는 괴뢰군중위를 향해 엄한 목소리로 나직이 소리쳤다.

《중위!- 어서 떠나가오!》

괴뢰군중위는 처음의 기고만장하고 거드름스럽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머리를 푹 떨군채 무엇엔가 발을 걸채면서 얼이 빠진듯 허청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중위는 지금까지의 자기 인생에서 이처럼 특이하고 억센 사람들을 처음 보았을것이다.

유격대지휘부앞의 공지에서는 명랑하고 흥겨운 웃음속에 《입장례》풍속놀이가 계속되고있었다.

 

련재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