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3편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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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지구 계엄사령관 로버트는 해빛이 잘 비쳐드는 관덕정의 자기 방에서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손바닥으로 엇비듬히 탁자를 짚은채 송요찬을 쏘아보고있었다. 그 눈길은 송요찬의 얼굴을 면도칼로 베는듯이 날카로웠다.

《… 미스터 송, 시방 나는 미군사고문단 단장, 이곳 계엄사령관으로뿐 아니라 오랜 군인으로서 군인인 당신에게 언명하는거요! … 당신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던 나의 실망은 그만큼 크단 말이요!-》

송요찬은 지금 위험이 닥쳐오면 숨쉬는것마저 잊은듯이 죽은체 하는 곤충처럼 숨소리조차 죽이고 벌받는 소학생같은 연기를 하며 꼼짝않고 꼿꼿이 서있었다.

《우리는…》 하고 로버트는 길다란 허리를 곧추 세우면서 련속 독살스러운 욕설을 내뱉았다.

《당신의 군사전문지식과 재능, 학력을 귀중히 여겨 군사영어학교를 제1기로 졸업시켰을뿐아니라 한국군의 련대장으로 승진시켰소. 오늘은 9련대, 11련대, 2련대의 혼성부대 토벌대장으로까지 내세워주었단 말이요. … 당신에게 우리 미군은 군복과 돈까지 고스란히 대주고 입혀주고있소. 그런데… 중요사명을 띠고 여기 제주도에 도착한 이후 당신이 한 일이 뭐요? … 불쾌하기 짝이 없소! … 방대한 무력인 우리 미군군함들과 비행기들까지 당신들을 강력히 지원하고있소. 그런데두 고립된 제주도의 폭도들을 진압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빨갱이폭도들이 제멋대로 날치게 하고있단 말인가? … 어제는 조천, 함덕… 그리고 표선과 남원일대가 만신창이 되도록 얻어맞았소. … 이게 무슨 꼴이요? … 수치요!-》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송요찬은 극도로 분격한 로버트의 뒤틀린 기분을 되도록 억양으로라도 완화시키려는듯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응대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로버트는 살진 볼편을 푸들푸를 떨며 독기서린 목소리로 고함쳤다.

《그만두시오! … 듣기 역겹소. 송요찬중령! … 군인에게는 그런 참회식사죄가 어울리지 않소! … 군인은 오직 명령을 실행했는가, 못했는가 하는것뿐이요.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군인은 군법앞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혹시 송요찬중령은 모르는게 아니요?》

그러고도 성차지 않는지 로버트는 살기어린 눈을 송요찬의 얼굴에 쏘아박으며 이렇게 말을 덧붙이였다.

《만일 모르거나 망각했다면 우리가 곧 행동으로 깨닫게 해주겠소!-》

송요찬은 순간 무엇인가 섬찍한것이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듯 한 느낌으로 몸을 흠칫했다.

《계엄사령관각하! 저에게 죄를 씻을 기회를 주십시오! … 앞으로 필사의 각오로… 분골쇄신하겠습니다!-》 하고 송요찬은 번쩍 정신을 차린듯 숙였던 머리를 들고 류창한 영어로 청원했다.

문득 로버트의 멀쑥한 얼굴에 야릇하고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가 곧 사라졌다. 그는 얼마간 동안을 두었다가 이번에는 어루만지듯 나직하게 그러나 꾸짖듯이 엄하게 말했다.

《물론 군인은 전투에서 때로 실패하는 경우도 있는거요. 그러나 한나산속에 몰려있는 얼마 되지 않는 빨갱이폭도를 제압하지 못한다는건 너무하단 말이요! … 빨갱이폭도들에게는 후방도 보급기지도 없소. 또 그들은 군사전문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이요. 그런데… 현대적인 군함들과 비행기의 지원까지 받으면서도 패전을 거듭하는 당신들을 보면서 나는 참을수 없는 수치를 느꼈소. 오랜 군인인 나는 아직 이런 모욕과 수치를 당해본적은 없었소! … 송요찬련대장, 당신은 리덕구귀순공작에서도 비참하게 실패하였소. 물론 나는 거기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댔소. 골수 빨갱이로 이름난 리덕구는 절대로 투항, 귀순할 인물이 아니요!-》

방안에는 숨막힐듯 한 살기어린 정적이 꽉 누르고있었다.

《미스터 송, 내 물음에 정확히 대답해보시오. 당신은 혹시 여기 제주도의 빨갱이폭도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동정이라도 하는건 아니요? … 정보에 의하면 당신들속에 그런 군인들도 있다고 하오!-》

로버트는 물어뜯는듯 한 어조로 독살스럽게 말했다.

《사령관각하! 저는 그런 군인이 절대로 아닙니다. 빨갱이폭도들은 동족으로 동정할것들이 아닌 원쑤로 여길뿐입니다!-》 하고 송요찬은 펄쩍 뛰듯이 놀라며 열기있게 대꾸하였다.

《무자비해야 하오. 우리에게는 이곳 섬주민이 필요한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군사적으로 제주도땅, 섬이 필요할뿐이요! … 내 말을 알아듣겠소, 송중령! …》

《네, 로버트각하께서는 저희들에게 이미 여러차례 언명하신바 있습니다!-》 하고 송요찬은 즉시 발라맞추듯이 큰소리로 공감을 표시하였다.

귀박죽이 뾰족한 그의 얼굴에서 짧은 살눈섭이 초조하게 떨고있었다.

《미스터 송, 좋소. 나는 반공사상이 투철한 당신에게 앞으로도 특별한 기대를 가지겠소! … 나의 기대가 헛된 기대가 아님을 실천으로 보여주기 바라오. 미스터 송, 다시말하지만 무자비하게 진압하시오. 설사 지나치다는 여론이 있다 해도 무시하시오. 모든것을 내가 막아주겠소. 자, 이제는 가보오. 내가 하려던 훈시의 말은 다했소. 나는 송요찬련대장이 한나산의 폭도들과의 싸움에서 완전승리했다는 보고를 기다리겠소!-》

미군사고문단 단장이며 이곳 제주도계엄사령관인 엘 로버트의 희멀쑥한 얼굴에는, 그 번들거리는 분홍색입술과 이글거리는 노란 눈에는 그 어떤 광포한 집념이 깃들어있는것 같았다.

《계엄사령관각하! 그토록 믿어주어 감사합니다!-》 하고 송요찬은 너무 엄숙하여 성이라도 난것 같은 표정으로 례를 표하고 돌아서서 방을 나왔다.

관덕정의 복도로 나선 그는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였다. 우선 코앞의 벼락은 면했던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는 한없이 싹싹하고 자기의 살점이라도 베여줄듯 하다가도 순식간에 포악하고 광포해지군 하는 로버트의 모습이 련속 떠오르고있었다.

《… 나의 기대가 헛된 기대가 아님을 실천으로, 행동으로 증명하기 바라오. …무자비하시오!》 하고 얼음쪼각을 내뱉듯 차겁게 쏘아붙이던 로버트의 독기서린 목소리가 그냥 귀전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송요찬은 가슴속이 줄곧 떨리는것을 진정할수 없었다. 막강한 권력을 거머쥔 로버트의 랭대를 받고 눈밖에 나면 자기의 운명은 끝장이며 승진의 길은 영영 막히고만다는것을 남달리 촉기빠른 송요찬은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실지로 로버트는 《한국》군의 군부에서 생사여탈권을 거머쥐고있었다.

(어째서… 어떻게 되여 내가 이런 험악한 지경에 이르렀는가? …) 하고 관덕정을 나선 송요찬은 대기하고있는 군용찌프차쪽으로 걸어가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부산에서 미군군함을 타고 제주도로 떠나올 때 그는 모든것이 순조롭게 되리라고 믿었었고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가슴이 부풀어있었다.

방대한 미군의 현대적인 해공군무력의 지원, 거기에 군사전문훈련을 받은 수천명의 정규무력의 투입앞에 빈약한 무장의 오합지졸들인 제주도인민유격대는 홍수앞에 썩은 울바자처럼 순식간에 무너지리라고 확신했던 송요찬이였었다. 그것은 초보적인 군사상식으로도 명명백백한것이였다. 늦어도 한주일, 빠르면 2~3일내로 제주도《빨갱이》들의 《란동》을 평정시킬것으로 송요찬은 확신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확신》이 여지없이 깨져버린것이다. 송요찬은 지금 자기의 《총명》한 판단과 타산이 무참히 깨졌다는것을 괴롭지만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빨갱이폭도들에게는 어떤 정신이 지배하는가? … 무엇이 그들을 저토록 완강히 싸우게 하는가? 폭도들의 두목인 리덕구는 어떤 신념에 사로잡혀있는가? …)

《빨갱이폭도》들에게는 무지니, 공산주의에 대한 광신이니 하는것만으로는 단정할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것 같았다. 바로 그 알수 없는 그것이 송요찬을 더욱 괴롭게 하였고 누를길 없는 악과 분노를 느끼게 하고있었다.

(리덕구! … 개자식. 나는 그래도 동료로서 《의리》로, 《진정》으로 호의를 보였는데… 그런 나를 모진 야유와 모욕으로 타매한단 말이지? …)

송요찬은 자기 가슴속에 풀길 없는 앙심이 꿈틀거리는것을 느끼며 사납게 돋은 잔이발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는 창창한 자기의 승진의 앞길을 검은 장벽처럼 막아나선 리덕구를 철천지원쑤로 가슴에 새겨두고있었다. 그에게는 지금처럼 격렬한 증오와 원한에 사로잡혀본적은 별로 없었을것이다. 그만큼 리덕구에 대한 송요찬의 증오와 원한은 깊었다.

지금 그는 속에서 뿜어오르는 독가스처럼 독한 증오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어디 두고보자, 개자식. … 네놈을 산채로 잡아 내 손으로 탕을 쳐 죽일테다!-)

누를길 없는 원한에 사무쳐서 제정신이 아닌듯 한 송요찬에게로 누군가 마주 걸어왔다.

《련대장님, 련대는 현재 북제주군 함덕계선에서 출동준비를 갖추고 대기상태에 있습니다!-》 하고 군용찌프차곁에 서있던 부관이 할끔할끔 송요찬의 기분상태를 탐색이나 하듯 살피며 보고하였다.

그 순간 불시에 뒤틀린 얼굴의 송요찬이 뾰족한 귀박죽을 쭈빗하면서 소리쳤다.

《함덕계선에서 대기상태라는건 뭐야? … 어제 대대장급이상 작전토의에서 내가 이미 명령하지 않았는가! 오늘 오전중에 구좌면 동복리계선을 차지하고 거기서 한나산으로 공격할 최종명령을 기다리라고 말이요! …》

칼날처럼 번뜩이는 사나운 눈으로 부관을 쏘아보는 송요찬의 드러난 뾰족한 이발에 침이 자개빛으로 아른거렸다.

《련대장님, … 오늘 아침일찍 련대장님이 로버트계엄사령관각하의 긴급호출을 받고 관덕정으로 갔기때문에 작전이 변경될수도 있다는것을 고려하여… 련대지휘장교들이 창발적으로 련대의 행군을 함덕계선에서 중지시키고 거기서 차후명령을 기다리며 대기상태에 있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약삭바른 부관은 되도록 련대장이 불쾌하지 않게 하려고… 애쓰면서 정황을 설명하였다.

《부관, 무슨 주둥아리질이야! … 밥통들, 모두 쓸모없는 밥통들이야! … 가자!》

노발대발한 송요찬은 밸이 꼴리는듯 쌍욕질을 하면서 껑충 찌프차에 뛰여올랐다.

뒤따라 차에 올라탄 부관은 운전수에게 말없이 눈을 찡긋해보였다. 그것은 일체 침묵하고 차를 최속으로 몰라는 의미의 약속된 신호였다. 련대장이 시퍼렇게 성이 났을 때에는 일체 침묵하는것이 상책이고 최대속도로 내달려야 한다는것을 그들은 이미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찌프차는 미친듯이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자주 내리는 비에 씻기고 패인 도로는 울퉁불퉁하여 최속으로 내달리는 찌프차는 마치 파도사나운 바다우에 뜬 쪽배처럼 솟구쳐오르기도 하고 잦아들기도 하면서 어느새 련대가 대기하고있는 함덕계선에 도착하였다.

송요찬련대장이 탄 찌프차가 멎어서자 이미 대기하고있던 련대참모부의 장교들과 대대장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송요찬은 멎어선 차안에서 얼굴을 험상궂게 이그러뜨리고 당장 잡아먹을듯이 그들을 쏘아보았다.

《왜 아직도 토벌에 진입할 계선을 차지하지 못하고 여기서 어물거리고있는가!?》

송요찬은 찌프차에서 행길로 내려서며 독살스럽게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뭐라고 응답하는 장교가 없었다. 표독스러운 송요찬이 지금처럼 고함을 지르며 역증을 낼 때는 침묵이 상책임을 그들도 알고있었기때문이다. 서뿔리 대답질하는자는 봉변을 당하기가 일쑤인것이다. 일단 머리끝까지 미친것처럼 성이 나면 어떻게 나올지, 무슨짓을 할지 누구도 예측할수 없는 송요찬이였다.

《밥통들! …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밥통들이란 말이야!-》 하고 쌍스럽게 내뱉은 송요찬은 군용가방에서 군용지도를 꺼내 행길우에 와락 펼쳐놓았다.

《여기를 보라! … 1대대는 이제 즉시 속보로 행군하여 구좌면 동북리의 여기 이 지점을 차지하고 토벌개시 명령을 기다리라!-》

송요찬은 다가온 1대대장을 쏘아보고나서 군용지도에 푸른 점으로 표시된 지점을 찌르듯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다음 2대대와 3대대는 30분후에 행군을 개시하여 어제 이미 명령한바 있는 계선을 각각 차지하고 토벌작전 개시신호를 기다리라! … 토벌작전개시는 정각 12시다. 대대장들은 나의 시계에 시간을 맞추라! 지금 10시 25분이다. …》

송요찬은 서슬푸른 눈으로 련대장교들을 둘러보며 동안을 두었다가 계속 표독스럽게 소리쳤다.

《빨갱이폭도들을 무자비하게 타격소멸하는것이 제군들의 사명임을 가슴에 새겨주라! … 폭도들의 우두머리인 리덕구를 생포 혹은 죽은 시체라도 끌고 오는자에게는 60만원이상의 상금이 차례진다는것을 모든 장교, 사병들에게 또다시 선포하라!-》

송요찬의 목구멍으로 갑자기 빽빽한 경련이 치밀어올랐다. 사납게 이그러진 그의 입에서는 악에 받친 말들이 가까스로 튀여나왔다.

《행군을 시작하라! … 여기 함덕에서 북촌까지는 도로아래의 바다쪽에서 20리 모래불이다. 한나산쪽의 산기슭과 야산들은 항시 특별히 경계하며 행군하라!-》

여느때에 볼수 없었던 모진 증오와 원한에 사로잡힌 송요찬의 눈에는 보는 사람들의 등골에 소름이 끼칠만큼 피발이 서있었다.

도로주변에서는 불시에 정렬명령이 내리고 여기저기서 욕설을 퍼붓는 장교들의 고함소리로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이윽고 먼저 행군을 시작한 1대대의 대렬이 마지못해 움직이듯 굼뜨게 앞으로 나갔다. 얼마후 2, 3대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역시 굼뜨게 움직이며 떠나갔다. 머지않아 죽음이 닥쳐오리라는 날카로운 느낌이 그들을 서슴거리게 하고있는것 같았다. 행길의 먼지이는 갈색의 마른 땅을 밟으며 누런 복장의 무리들이 죽음을 마중하여 나가고있었다.

《토벌작전》을 위한 계선으로 대렬을 출발시킨 후 송요찬은 찌프차에 뛰여올라 부관이 가져온 위스키를 몇모금 크게 마셨다. 그는 전투를 앞둔 시각에 늘 얼마간의 술을 마시군 하였다. 그런 습관을 잘 알고있는 촉기빠른 부관은 항상 위스키를 준비해놓군 하였다.

송요찬은 알콜기운이 온몸에 퍼지자 기분이 앙양되면서 무엇인가 《왕성》한 행동의 충동을 느꼈다.

(이제 산속의 폭도들은 황급히 꽁무니를 돌려대고 또다시 그물에서 빠져나가려고 서두를것이다. 아니, … 이번에는 끝까지 추격하여 송두리채 섬멸할것이다!-)

송요찬은 패주하여 황황히 도망치는 리덕구와 그의 《무리》들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찌프차우에서 상상으로 기분좋게 그려보고있었다.

(리덕구! … 선택할줄 아는것이 진짜 지혜있는 사람이야! … 인간의 선택이 자기 운명을 완전히 뒤바뀌게 하는것을 나는 수없이 보았고 경험했어! … 리덕구, 너의 운명은 비참한 파멸이야. 어쩔수 없는 일이지… 이제는 후회해도 늦었어! …)

송요찬은 기분이 좋아 군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것은 그가 좋아하는 미국담배였다.

《부관, 20분후에는 우리도 대대들이 차지한 작전계선으로 떠나자!-》 하고 송요찬은 기분좋게 파아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부관에게 명령하였다.

《알겠습니다, 련대장님!》

부관은 좋아진 상관의 기분에 감염된듯 덩달아 소리없이 웃으면서 운전수를 쳐다보았다. 키가 껑충한 운전수도 빙그레 웃으며 습관처럼 한숨을 내그었다.

정확히 20분이 지나자 송요찬은 피우던 담배를 길가에 내던지며 부관에게 명령했다.

《부관! … 출발!》

송요찬이 탄 찌프차는 갈색먼지를 꽁무니에 달고 작전개시계선으로 질주해갔다.

길게 늘어선 뒤대렬을 앞서고 그 다음 얼마간 대렬이 끊어진 공간의 도로를 질주하는 찌프차에서 송요찬은 돌연 와지끈 퉁탕거리는 일제사격소리를 들었다.

자지러진 총성과 꽝!- 꽝!- 수류탄 작렬하는 소리는 행군하는 앞대렬쪽에서 들려오고있었다. 보총의 일제사격소리는 더욱 기승스러워졌다.

송요찬은 총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무슨 일인가? … 아직 토벌작전개시시간이 안되였는데… 토벌작전은 일시에, 신호에 따라 개시하게 되여있지 않는가!-》 하고 송요찬은 도로에 멎어선 찌프차에서 솟구치듯 일어서며 소리쳤다.

《련대장님! 이건… 폭도들이 쏘아대는 총소리가 분명합니다!-》

부관이 당황한 목소리로 웨쳤다.

《뭐야? … 그럼 매복한 폭도들의 기습이란 말인가? … 차를 앞으로 전진시키라!-》 하고 송요찬은 발작이라도 일으킨것처럼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광적으로 번쩍거렸다.

《련대장님! 위험합니다. 폭도들의 매복기습은… 잘 준비된 작전으로 판단되는데… 앞으로 나가면 안됩니다! …》

부관은 얼이 빠진듯 새하얗게 질려서 떠듬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총성은 더욱 자지러지고 핑핑… 이따금 찌프차쪽으로 날아왔다.

핑- 하고 날아가는 탄알이 길가의 느티나무에 박히고 탄알에 끊어진 나무가지가 송요찬의 머리우에서 맴돌며 기울기울 떨어졌다.

땅! 땅! 픽- 픽- 총탄의 쑤시는듯 한 날카로운 휘파람소리는 멎어선 찌프차의 앞도로와 뒤도로에서도 울리고있었다. 유격대는 선두의 《토벌대》대렬이 지나간 다음 앞과 뒤를 완전히 차단한것 같았다.

송요찬은 얼굴의 근육이 온통 떨리는것을 느꼈다. 《토벌》작전은 시작되기도 전에 비참하게 파탄되였다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그는 피발이 선 눈을 이상하게 희번득거리며 권총을 뽑아들고 찌프차에서 뛰여내렸다.

걷잡을수 없는 악과 분노로 제정신을 잃은듯 송요찬은 조준도 없이 허공에 권총을 쏘아대며 총성이 콩볶듯 하는 앞쪽으로 달려나갔다.

《련대장님! 어디로 갑니까요? … 거기로 가면 안됩니다요!》 하고 부관이 비명같은 소리를 질러대며 내달려와서 송요찬의 군복앞자락을 틀어잡으며 막아섰다.

《비켜라! … 물러서지 않으면… 네놈을 쏴죽이겠다!》

송요찬은 피발이 선 눈을 광적으로 희번득거리며 사람의 목소리같지 않는 괴상한 소리로 고함을 질러댔다.

《련대장님! … 좌중하시고… 이제 정황이 명백해진 다음에…》 하고 부관은 뾰족한 아래턱을 잘게 떨며 만류하였다.

그럴 때 불시에 땅!- 땅-꽝꽝- 총성과 수류탄터지는 소리로 귀가 멍멍하던 소음은 시작될 때처럼 갑자기 뚝 멎었다.

송요찬은 찌프차로 돌아와 부관에게 명령했다.

《앞으로 나가보자!》

찌프차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팔굽처럼 구붓이 휘여든 굽인돌이를 돌아서자 눈앞에는 언뜻 오른편에 다박솔밭이 나타났다. 바로 그 다박솔밭의 앞의 메마른 행길에는 죽거나 부상당한 장교들과 사병들이 처참하게 쓰러져있었다. 송요찬은 급정거한 찌프차에서 행길로 내려섰다.

그는 금시 잠에서 깨기라도 한것처럼 몸을 흠칫했다. 유격대의 매복전에 부딪쳐 되게 두들겨맞은 전투장은 처참하였다. 한쪽팔을 쭉 내뻗고 행길에 코를 박고 죽은 장교, 행길가의 도랑창에 죽어자빠진 사병, 군모가 벗겨져 날아나고 머리카락이 산산이 흩어진 사병의 머리를 송요찬은 으스스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란장판을 이룬 도로에는 아직도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꼼짝않고 엎드려있는 얼혼이 나간 사병들도 있었다.

송요찬은 이발을 악물고 험상궂은 얼굴로 망두석처럼 행길우에 서있었다.

그는 목표를 향해 힘껏 달리다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부딪친때처럼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먼지로 얼룩진 이마에 피가 흐르는 2대대장이 눈에 뜨일만큼 다리를 절며 어딘가에 짓쫗아 타박받은 어깨를 꿈틀거리면서 가까이로 다가왔다.

송요찬은 북받쳐오르는 동물적인 분노와 그 분노를 어디고 털어놓고싶은 충동에 몸을 불태우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돌진하듯 마주 걸어나갔다. 그는 마주선 2대대장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기라도 하는듯 말없이 찬찬히 여겨보았다. 그 다음 발작적으로 입술을 푸들푸들 떨면서 악에 받쳐 미처 말을 못하고 숨을 헐떡거렸다.

《2대대장! … 도대체… 어떻게 된 날벼락인가?》 하고 송요찬은 가슴이 빠개지기라도 하는것 같은 소리를 질렀다.

얼이 빠진듯 한 2대대장은 땅에 오른 붕어처럼 입만 벙긋벙긋하며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라, 2대대장!》 하고 분노로 하여 얼굴이 뒤틀리고 시꺼매진 송요찬은 불이 번쩍나게 힘껏 2대대장의 관자노리를 때렸다.

2대대장은 비칠거리더니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듯 그러나 분명치 않은 소리로 중얼중얼 보고했다.

《그… 그것은 이미전에 제주도인민유격대본부에서… 우리의 토벌작전과 집결장소에 대해 알고있었던것으로 판단되는데… 너무도 뜻밖의 매복기습이여서… 이건 전투가 아니라 무슨 마술에 걸린것 같아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하고… 된타격을 받았습니다!》

2대대장은 이발을 떡떡 울리면서 떠듬떠듬 비통하게 말을 맺었다.

《무슨 얼빠진 소리야! … 뭐, 마술이라구? … 너따위가 무슨 대대장이고 군인이야!》

송요찬은 너무도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발을 구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가 서있는 도로주변에는 죽었거나 부상당한 장교들과 사병들이 처참하게 쓰러져있었는데 거기에는 유격대의 시체는 하나도 없었다.

행길가의 오른쪽 다박솔밭에 매복하였던 유격대는 불의의 기습으로 맹렬히 타격하고 바람처럼 사라진것이다. 매복, 불의의 기습과 신속한 기동은 제주도인민유격대의 기본전법으로 알려져있었다.

총성이 멎은 행길주변에는 귀가 멍멍할 정도로 갑자기 정적이 깃들고 풀벌레 우는 소리만이 들려오고있었다. 《토벌》에 내몰려 나왔던 괴뢰군의 장교들과 사병들은 모두가 대낮에 무슨 꿈을 꾸고있는것만 같았다.

송요찬은 어쩔수없이 전 련대에 철수를 명령하였다. 《토벌》작전을 개시하지도 못하고 된타격을 받은 대렬을 다시 수습해야 하였던것이다.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전부 후송하고… 전장을 깨끗이 치우라!》

송요찬이 지휘하는 련대의 장교와 사병들은 아무것도 없는 다박솔밭에다가 화풀이로 한참동안 일제사격을 퍼붓고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비참한 철수였다.

부상자와 시체들을 실은 마차들이 함덕에 도착했을 때 송요찬이 찌프차우에서 소리쳤다.

《저기 보이는것이 함덕국민학교다! 거기에 림시로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들여놓으라!-》

련대장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한 장교가 행길에서 멀지 않는 학교쪽으로 나는듯이 달려갔다. 잠시후 학교로 들어갔던 괴뢰군장교는 상심한 기색으로 허청거리며 행길의 찌프차쪽으로 다시 나왔다.

《련대장님! 학교에서는 지금 수업중이기때문에 누구도 들여놓을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괴뢰군장교는 숨을 헐떡거리며 풀이 죽어 보고하였다.

《뭐야? … 수업이 뭐 말라빠진거야! … 어느 놈이 그따위 개방귀같은 아가리질이야!》

송요찬의 바투 다가붙은 살기띤 두눈이 무섭게 번쩍거렸다. 그는 권총을 빼들고 찌프차에서 불시에 뛰여내렸다. 그 다음 껑충껑충 뛰는 걸음으로 학교로 들어갔다. 그는 무작정 군화발로 문짝을 걷어차서 열어제끼고 수업중의 교실로 돌입했다.

그때 교실에서 소학생들을 가르치던 새파랗게 젊은 교사가 엄하게 소리쳤다.

《이건 무슨 무례한짓이요? … 수업중에는 누구도 신성불가침이라고 방금 말하지 않았소. 당장 밖으로 나가시오! … 용무는 수업이 끝난 다음에!》

《뭐…뭐야? … 신성…불가침? … 이 새끼 죽고싶어 개수작질이야! …》 하고 송요찬은 피발이 선 눈을 흡떴다.

이래저래 악이 머리끝까지 오른 송요찬은 별스레 말을 더듬으며 교단에 선 새파랗게 젊은 교사에게로 뚜걱뚜걱 군화발소리를 울리면서 다가갔다.

《이 새끼, 너 제주도빨갱이지?》

송요찬은 천진란만한 까까머리 소학교학생들의 눈앞에서 선생의 얼굴에 권총을 들이댔다. 그러자 으앙- 아이들이 울고 비명소리가 울렸다.

《학생들, 놀라지 말고… 울지들 마시오! 아무 일없습니다. 자, 수업을 계속하겠습니다. … 따라읽겠습니다. 제주도! 바다! 한나산! 백록담! …》

젊은 교사는 눈섭 하나 까딱않고 침착하게 정확한 목소리로 학생들을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이 새끼, … 이제 보니 보통 빨갱이가 아니구나! … 당장 수업을 그만두라!》 하고 송요찬은 권총의 뒤등으로 꽝- 교탁을 내리쳤다.

《여보시오, 뉘신지는 모르겠소만 이런 무례한짓이 세상에 어디 있소? 난 항의하오! 나가시오. 거듭 말하지만 지금은 수업중이요!》

새파랗게 젊은 교사는 당당하면서도 점잖게 대응했다.

《아직도 아가리질이야? … 계엄령하에 군의 명령에 불복종하는건 폭도야!》 하고 송요찬은 버럭 고함을 지르며 격철을 올린 권총을 쳐들었다. 사무친 악의와 분노로 제정신이 아닌 송요찬은 즉석에서 젊은 교사에게 총탄을 퍼부으려는것이다.

그 순간 담차고 순박한 젊은 교사는 오른발로 날파람있게 권총을 쳐든 송요찬의 손을 올려찼다. 동시에 주먹으로 송요찬의 면상을 후려갈겼다.

눈깜빡할 사이에 송요찬은 쿵- 교실의 마루바닥에 머리를 쪼으며 나자빠졌다.

《학생들, 오늘은 수업을 그만하겠습니다. 학생들, 오늘 우리들이 본 이 모든것을 두고두고 잊지 마시오! … 누가 폭도들인가를 잘 보았겠지요. 학생들, 집으로 조심히들 돌아가시오!》

젊은 교사는 보통때처럼 부드럽고 애정깊게 조용히 타이르고나서 뚜걱뚜걱 교실밖으로 걸어나갔다.

교탁앞에 모재비로 나떨어졌던 송요찬은 조금후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 권총을 집어들고 어방대고 쏘아대면서 뒤따라 달려나갔다.

《저놈을 체포하라! 빨갱이폭도놈이다!》

함덕국민학교에서 뒤쪽으로 돌아 조금 나가면 무성한 새초밭이 펼쳐져있었다.

여기서부터 함덕을 넘어서 곡산초까지 키를 넘는 새초밭이 근 60리에 걸쳐 펼쳐져있다. 바로 이 새초밭에 들어선 젊은 교사는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빨리 추격하라! 빨리!》 하고 송요찬은 목갈린 소리로 앙칼지게 소리쳤다.

악에 받친 놈들은 마구 총을 쏘아대며 무리지어 젊은 교사를 추격했다. 끝내 《토벌군》놈들은 젊은 교사가 달려가는 앞과 량옆의 근방을 사면으로 포위했다.

《투항하라! 손들고 나오면 목숨은 살려준다!》

《나오라! 항거는 무모한짓이다!》

《목숨을 건지려거든 어서 나오라!》

놈들은 넓은 새초밭의 여기저기서 포위환을 좁히면서 투항하라고 고함쳤다.

그러나 포위환속의 젊은 교사는 일체 무언으로 항거하였다.

《새초밭에 불을 지르라!》 하고 송요찬이 얻어맞아 퉁퉁 부어오른 볼을 실룩거리며 독살스럽게 명령했다.

그러자 몇놈이 일시에 새초밭에 불을 질렀다. 새초밭에는 순식간에 주홍색연기가 깔리고 타번진 재가 번들거렸다. 바다바람은 무섭게 윽윽 소리를 내며 불길을 이쪽저쪽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젊은 교사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20살 꽃나이의 젊은 교사는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불에 타서 죽었다.

제주도인민유격대의 매복전에 만신창이 된 괴뢰군놈들은 이날 적수공권의 선량하고 순박한 애젊은 교사에게 분풀이를 했던것이다.

아무런 죄도 없이 야수와 같은 놈들에게 불타죽은 제주도의 꿈많던 젊은 교사의 시신주위에는 불에 그슬린 새초꽃이 만발하였다. 이 고장 사람들은 새초꽃을 어욱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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