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3편 성전

3

 

제주도인민유격대의 기본대오는 며칠째 련일 적들과 피어린 전투를 치르면서 비쏟아지는 한나산속을 행군하고있었다. 적들은 엄청난 압도적인 병력과 무력을 동원하여 한나산을 사면으로 포위하고 악랄한 《참빗전술》로 유격대를 괴멸시키려고 발악하고있었다. 가렬한 전투는 아침부터 날이 어두울 때까지 계속되였다. 제주도의 지형과 지세, 한나산의 곳곳을 잘 알고있는 유격대는 신속한 기동과 은페, 잠복, 불의의 기습으로 압도적인 병력으로 달려드는 적들에게 강한 타격을 안기군 하였다.

날이 어둡자 검질기게 추격하던 적들의 총성은 뜸해졌으나 유격대원들의 행군은 계속되였다. 신속한 기동으로 적들이 예견치 못했던 곳으로 불의에 진출하여야 했던것이다.

행군하는 대렬의 선두에서 련속 《행군속도를 늦추지 말것!》 하는 명령이 전달되였다. … 오늘 낮에 유격대지휘부에서는 적들의 악랄한 《참빗토벌전》에 대처하여 기본대오를 남제주군의 바다가쪽으로 기동시켰었다. 그곳 바다가의 수많은 천연동굴에 일시 은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쏟아지는 비속을 행군하여 그 계선에 도착하여보니 동굴들에 물이 차서 들어가 은페할수가 없었다. 하여 포위한 적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리면서 다른 계선으로 강행군해가고있었다.

한나산은 쏟아져내리는 비와 밤의 캄캄한 장막에 뒤덮여있었다. 하늘에서는 우뢰가 자주 울고 번개불이 행군하는 산길에 갑자기 타올랐다가는 사라지군 하였다.

우뢰소리는 쏟아져내리는 비소리를 누르며 꽈르릉- 캄캄한 산속으로 울려퍼져갔다. 뒤따라 한차례 폭우가 쏟아졌다. 콩알만 한 비방울들이 지치고 허기진 행군하는 대오를 후려갈겼다. 산골짜기로 쏟아져 흘러내리는 물은 끓는 가마속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유격대원들은 코앞도 가려보기 힘든 이밤의 산속에서 길을 잃고 대오에서 떨어질가봐 앞사람의 뒤에 바싹 붙어서서 뒤꿈치를 밟듯이 뒤따르며 미끄러운 산길을 전진해갔다. 누군가 올리막산길에서 비물이 즐펀한 땅에 철썩-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는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종시 일어서지 못했다.

《누구요? … 일어나시오!》

행군대오에서 누군가 나직이 소리치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내 리덕구요! 어서 일어나시오.》

《대… 장동지… 전… 조… 성철입니다.》 하고 말하는 성철의 목소리는 신음소리로 간간이 끊어졌다.

《성철이, 일어서라구! … 주저앉으면 일어서지 못해!》

리덕구의 목소리가 어둠속에서 엄하게 울렸으나 성철은 온몸에 경련이라도 인듯 와들와들 떨면서 그냥 쓰러져있었다. 리덕구는 그를 덥석 안아 일으켰다.

《성철이! 기운을 내라구!-》

《…》

리덕구는 조성철이 며칠전부터 학질로 앓으면서 고통스러워한다는것을 이미 알고있었다. 그는 성철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리덕구는 비물에 젖은 바지주머니에서 전지를 꺼내 번쩍 비쳤다. 전지불에 비친 성철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은 몰라볼 지경이였다. 눈은 우묵하게 들어가고 두볼이 훌쭉 꺼지고 턱은 뾰족했으며 핼쑥한 얼굴에 코만 우뚝 솟아있었다. 뿌옇고 광택이 없는 광대뼈가 률동적으로 살아 푸들거렸다.

병마와 계속되는 전투와 행군, 허기증으로 그는 딴 사람처럼 몰라보게 되였던것이다. 기실 어느 하루도 전투가 없는 날이 없었다. 하여 대원들은 하나둘 쓰러지고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리덕구는 불덩이같은 조성철의 손을 잡은채 너무도 가슴이 아파 쳐다보지 못하고 머리를 돌렸다. 그는 갈린 목소리로 나직이 물었다.

《성철이, 걷지 못하겠소?》

《…》

성철은 말을 못하고 이발을 떡떡 마주치며 와들와들 떨면서 극심한 번열로 애처롭게 신음소리를 냈다. 잠시 침묵한 리덕구는 무거운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지금의 이 엄혹한 정세는 죽음속에서 삶을 찾고… 아무리 험악한 정황이라도 부대의 출로를 찾아 싸움을 계속해야 할 결정적인 때이다! 그런데…)

리덕구는 나직이 한숨을 쉬고 견결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철이, 몹시 아프지. 그러나 견디여내자구, 좀 쉬고 따라오시오. 가만, 동무 누구요?》 하고 리덕구는 옆으로 지나가는 대렬속에서 가까이의 사람을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대장동지,… 전 3. 1지대 1중대 2소대장 리춘섭입니다!》

키가 크고 몸이 듬직한 사람이 행군대렬에서 멈춰서며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아, 마침이군. 춘섭동무, 여기 조성철동무가 며칠째 학질을 앓아 지금 행군하기 힘겨워하니… 동무가 떨어져 함께 잠시 휴식하고 따라오시오!》

《알겠습니다!》 하고 몸이 듬직하고 마음씨 무던하기로 소문난 리춘섭소대장은 어둠속에서 이번에도 힘차게 응답했다.

리덕구는 조성철을 다시한번 뒤돌아보고 행군하는 대렬의 앞으로 달려나갔다. 유격대원들의 대렬은 비에 젖은 나무덤불을 짓이기고 넘어뜨리고 어딘가에 총탁을 부딪치면서 앞으로 줄달음치듯 행군해갔다.

조성철은 일어서지 못하고 줄곧 신음소리를 내고있었다. 그는 일어설 맥도 없고 어디라도 그저 눕고만싶었다. 온몸은 와들와들 떨리고 차거운 비물이 목과 가슴으로 흘러들 때마다 오싹오싹 뼈마디가 못견디게 쑤시였다. 게다가 허기증까지 겹쳐들어 그는 눈을 뜰 힘마저 사라지는것 같았다.

《성철동무, 이제는 떠나볼가? … 내가 부축할테니까… 천천히라도 걸어야겠소. 주저앉으면 몸이 더 노그라지오!》 하고 잠시 그 자리에서 휴식하고난 리춘섭소대장이 성철을 부축해 일으키며 힘을 주듯 열기있게 말했다.

성철은 무섭게 몸을 떨면서 말할 기운도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리춘섭소대장에게 매달리다싶이하며 일어섰다.

《자, 성철동무. 기운을 내서 대렬을 따라가자구!》

리춘섭은 든든한 팔로 성철을 걷어안다싶이하고 걸음을 떼였다. 그동안 즘즘하던 폭우가 쏴-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비물이 어찌나 세찬지 그들은 눈을 뜰수가 없었고 걷기도 힘겨웠다. 조성철은 몸의 어딘가에 치명상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비청거리며 미끄럽고 캄캄한 산길을 걸어갔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눈섭은 꺾여서 모가 나있었다.

두사람은 바싹 다가붙어 폭우 쏟아지는 어둠을 더듬더듬 소경걸음으로 한발자국한발자국 전진해갔다. 문득 허연 번개불이 눈앞으로 지나갔다. 일순간 은색의 꼬불꼬불한 빛살이 검은 하늘을 수놓고는 창끝처럼 번쩍하고 떨어졌다. 바람은 내리는 비를 누르면서 허연 물결을 몰아가듯이 맞은켠 컴컴한 산봉우리를 향해 들씌웠다.

얼마후 폭우는 즘즘해졌다.

날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조성철과 소대장 리춘섭은 좁고 우불구불한 산길을 비청거리며 내려가고있었다. 내려갈수록 산길은 바위투성이와 자욱한 숲으로 이어져 길은 점점 험했다. 곳곳에 어렴풋이 보이는것은 물에 씻기운 바위들과 거뭇한 나무들뿐이였고 들리는것은 산우에서 쏟아져내리는 물소리뿐이였다.

《물… 물을 좀… 마시고…》 하고 심한 번열로 갈증에 시달리던 성철은 신음소리를 내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물을 마시고싶소? … 가만, 저기 물흐르는 소리가 나오!》

리춘섭소대장은 비물과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두손바닥으로 훔치며 헐떡거렸다.

그는 금시 쓰러질듯 허청거리는 성철을 부축하고 물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곳 한나산속 골짜기들의 밑바닥에는 여느때면 물이 말라 거무스름한 조약돌이 반짝거리다가도 비가 쏟아지면 비물들이 한데 합수되여 골짜기로 쏜살같이 모여든다.

합수된 물은 돌들을 씻어내고 굴리면서 담벽이 무너지듯 아래의 바다쪽으로 소연하게 빠져나간다.

조성철은 억제할수 없이 타오르는 갈증을 끄지 못할가 저어하며 해묵은 풀잎들과 이끼, 검불들이 뒤섞인 어지러운 물을 탐욕스럽게 들이켰다.

그러다가 그는 울컥 치미는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을 느꼈다.

《아… 아…》

조성철은 머리를 들지 못하고 쓰러졌다. 여기까지 이발을 악물고 오느라 온몸의 기운이 깡그리 빠져버리고만것이다.

《성철동무! 성철이!》 하고 소대장 리춘섭은 놀라 그를 안아 일으켰다.

조성철은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낼뿐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성철동무! 정신을 차리오!-》 하고 리춘섭은 성철의 몸을 흔들며 나직이 소리쳤다.

《으음…》

성철은 얼마후 정신을 차린듯 가늘게 눈을 떴다. 그의 얼굴로 꿈틀하고 경련이 지나갔다.

《소… 대장… 동무, … 나를… 여기에 놔두고… 혼자서라도 부대를 따라가시…》 하고 조성철은 신음소리를 씹으며 겨우 알아들을가말가한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성철동무! 무슨 소리를 해! …》

소대장 리춘섭의 목소리에는 가벼운 나무람이 비껴있었다.

《나는… 이제… 더는 걷지 못하겠… 습니다.》 하고 조성철은 악문 이발사이로 짜내듯이 말했다. 평소에는 강기있고 총명하던 조성철이였지만 지금은 심한 병마로 심신이 퍽 나약해진것 같았다. 그는 이발을 악물고 견딜수 없는 번열로 신음소리를 내며 우들우들 떨고있었다.

《가만, 성철동무. 그럼…》

불안한 시선으로 성철을 여겨보던 소대장 리춘섭은 문득 나직이 소리쳤다.

《성철동무, 저기 조그마한 자연동굴이 있소! 저기 들어가 좀 쉬자구!-》

그들이 있는 계곡에서 산길로 오르는 오른쪽에 풀덤불에 가리워진 크지 않은 동굴이 있었다. 거기에 들어가면 비도 맞지 않고 우들우들 떠는 성철의 몸을 얼마간이라도 진정시킬수 있을것 같았다. 리춘섭소대장은 힘겹게 끙끙거리며 조성철을 동굴로 이끌어갔다.

동굴안에는 오랜 세월 바람에 날려와 쌓인 해묵은 나무잎들과 검불이 두텁게 깔려있었다. 조성철은 동굴에 들어오자 풀썩 밑잘린 나무처럼 쓰러지더니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중얼중얼하였다.

《조… 급해 말… 싸움은… 계속되… 고… 탄알을… 아껴…》

조성철은 의식을 잃고 그 어떤 환각속에 빠져있는것 같았다.

《허, … 이거 야단났군!》 하고 리춘섭소대장은 컴컴한 얼굴로 안절부절 못했다.

그는 정신잃고 뭐라고 련속 중얼거리는 조성철을 흔들었다.

《성철동무! 왜 이러오. 정신을 차리오!-》

그러나 조성철은 아무런 응대도 못하고 불시에 기침을 깇더니 숨이 막힌듯 두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였다. 그 다음 조성철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목구멍에서가 아니라 배속 어디에서 나오는것처럼 딸꾹질을 하던 그는 이상스런 무거운 신음소리를 냈다.

리춘섭소대장은 조성철의 무거운 신음소리가 점점 악화되는 병마의 신음소리라는것을 깨달았다.

《성철동무! 성철동무!》 하고 당황한 리춘섭소대장은 어쩔바를 몰라하며 그를 흔들었다.

《으으음… 음…》

그는 마치 지금 고통과 싸우고있는 사람같았다.

이윽고 무거운 신음소리를 내던 조성철은 힘들게 눈을 떴다.

《소대장동무, … 왜 아직… 나를 여기 두고… 먼저 가라는데…》

《성철동무, 좀 정신이 드오?》

《그저… 눈앞이 흐려지고… 웬 일인지… 잠이 몰려와서…》 하고 조성철은 가까스로 말을 짜내는듯이 하면서 또다시 눈을 감았다.

《성철동무! 맥을 놓고 잠들면 안되오! …》

소대장 리춘섭은 눈감은 조성철을 자꾸 흔들었다.

《왜 자꾸 흔들어요? … 나를 좀… 가만 놔두란 말이요!-》

조성철은 몸을 떨면서 마뜩지 않은듯이 버럭 짜증을 냈다.

《성철동무, 여기서 맥을 놓고 잠들면 병이 더 악화될수도 있고 나중에는…》 하고 리춘섭소대장은 성철의 병자다운 노여움이 하도 어이없고 당치않아서 조용히 웃었다.

《이제는 제발 좀 흔들지 말라는데… 그까짓 병이 악화되면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난 지금 잠시라도 편히 잠들고… 싶단 말입니다.》

조성철은 성을 내듯 대꾸하고 이렇게 덧붙이였다.

《차라리 지금… 죽는게 편할것 같단 말입니다.》

《성철동무!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요? … 아무리 괴롭더라도 그러지 마오!-》

마음씨 무던한 리춘섭소대장은 어이없는듯 부드럽게 성철을 타일렀다.

《성철동무, 그건 유격대원답지 않은 나약한 소리야! … 다시 그런 말을 하면 난 성을 내겠소. …》

《아무렇게 말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발 사정하는데… 나를 가만 놔두고… 먼저 떠나가…》 하고 조성철은 제 목소리가 아닌 열에 뜬 목소리로 말을 맺지 못하고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그의 얼굴로 꿈틀꿈틀 경련이 지나갔다. 두눈의 푸르스름한 흰자위에는 점점 피독이 오르고있었다.

《성철동무! 성철이!-》 하고 소대장 리춘섭은 다급히 소리쳐불렀다.

《으음… 으흑…》

조성철은 무거운 신음소리만 낼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동굴안은 그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똑똑히 들릴만큼 조용하였다.

《아, … 이거 야단났군! 병세가 점점… 심해지는 모양인데…》 하고 리춘섭소대장은 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성철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마치 화끈 달아오른 철판처럼 뜨거웠다.

《이걸 어쩐다? … 여기 이러구 속수무책으로 있으면 안되겠는데…》 하고 당황한 소대장 리춘섭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마치 그 무엇을 찾기라도 하는듯 주위를 살펴보았다. 텅 빈 동굴안은 여전히 무거운 정적속에 잠겨있었다.

그는 불현듯 얼굴에 질벅히 배여나온 땀을 소매자락으로 훔쳤다.

《내가 빨리 갔다가 와야겠어!-》 하고 혼자소리로 뇌인 리춘섭소대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무슨 단호한 결심을 했는지 성철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소리쳤다.

《성철동무! 내 말을 알아듣겠소? …》

조성철은 자기의 의식이 가물가물하는것을 감각하고있었다. 그는 리춘섭소대장의 말소리를 멀리서 울려오는 소리처럼 들으면서 충혈된 눈을 뒤룩거리고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아 의식을 지탱했다.

《소… 대장… 동무, …말… 하는… 소리를 듣고있소.》 하고 조성철은 여전히 괴롭게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가 감았다.

《내가 급히 부대집결지점으로 가서 약을 가지고 오겠소! … 담가도 가져오고… 그때까지 기운을 내서 기다리란 말이요! 성철동무, 들었소?》

리춘섭소대장은 화끈 달아오른 성철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소리쳤다.

《되돌아… 오지 말고… 그건… 부질없는…》 하고 성철은 눈을 감은채 부정하듯 머리를 흔들어보였다.

《무슨 나약한 소리요? 기운을 내서 기다려야 하오! …》

소대장 리춘섭은 짐짓 성난 목소리로 엄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성철은 눈을 감은채 아무 대꾸도 없이 잠잠했다. 그의 몸은 걷잡을수 없이 못견디게 떨리기만 하여 그자신으로도 도저히 억제할 힘이 없는것 같았다.

동굴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던 소대장 리춘섭은 돌아와서 성철의 몸우에 가랑잎을 두툼하게 덮었다. 그리고는 자기의 비에 젖은 웃옷을 벗어 비틀어짜서 그우에 반듯이 덮어주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 그는 성철의 몸곁에 기대놓은 일본제보총을 쳐들고 안전장치를 풀었다.

《성철동무! 만약 내가 없는 사이에 위급한 정황이 생기면 즉시 사격할수 있게 보총의 안전장치를 풀어놓았소! 난 될수록 빨리 되돌아서겠소!-》 하고 리춘섭소대장은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그 순간 신음소리를 내며 잠잠하던 조성철이 번쩍- 눈을 떴다. 그는 애원하듯 고열로 충혈된 눈길을 들어 리춘섭소대장을 쳐다보며 알릴듯말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눈길은 마치도 《돌아올 필요는 없습니다! … 오히려 막심한 고생만 할테니까요!》 하고 절망적으로 말하는것 같았다.

소대장 리춘섭은 몇순간 생각에 잠겨 잠자코 있었다.

(평소에 그렇게도 명랑하고 총명하던 저 사람이 왜 저렇게 서글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있는가? … 그럴수도 있을것이다. 심한 병마와 허기증, 힘겨운 행군으로 지칠대로 지치면 그 누군들 일시 나약한 생각에 빠지지 않겠는가!) 하고 리춘섭소대장은 성철에 대한 노여움과 불안한 마음을 다잡았다.

《성철동무! 내가 올 때까지 힘을 내여 이겨내야 해!-》 하고 다시한번 당부한 그는 굴밖으로 나와 산길을 달음박질쳐 오르기 시작하였다.

소대장 리춘섭은 부대의 집결장소를 향해 험한 산을 넘고 골짜기들을 지나 잠시도 멈추어서지 않고 줄곧 달려갔다. 나무가지들에 긁히운 그의 얼굴에서는 군데군데 피가 흐르고 온몸은 땀과 비물로 물참봉이 되였다.

얼마후 소대장 리춘섭은 마침내 부대의 집결지점에 도착했다. 그는 유격대본부에 모든 사연을 보고한 다음 구급약을 지참하고 담가를 든 대원 한사람과 함께 급히 되돌아섰다. 유격대본부에서는 극도로 피로한 그를 만류하고 다른 지휘관을 앓는 조성철에게로 보낼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소대장 리춘섭은 강경히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앓는 조성철을 부대집결지점까지 데리고 오는것은 리덕구대장동지에게서 내가 직접 받은 명령입니다! 뿐만아니라 지금 조성철이 홀로 떨어져있는 장소로 가는 길도 제가 제일 잘 압니다!》

그리하여 소대장 리춘섭은 담가를 든 건장한 대원과 함께 온 길을 되짚어 강행군하였다. 그들이 조성철이 홀로 누워있는 골짜기의 동굴앞에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도 지궂게 내리던 비는 이미 멎었다.

《성철동무! 성철이!-》 하고 나직이 소리치며 굴안으로 들어선 소대장 리춘섭은 불시에 흠칫 놀랬다.

동굴안에는 그가 없었던것이다.

《?! …》

텅 빈 동굴안에는 조성철의 일본제보총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성철이!》

《성철동무!》

소대장 리춘섭과 담가를 들고 온 건장한 대원은 동굴밖으로 나와 주위를 샅샅이 뒤지며 찾았으나 종적이 없었다.

《소대장동무! 어떻게 된 일일가요? 혹시 놈들에게 체포라도…》 하고 리춘섭과 함께 온 대원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런것 같지는 않소. 동굴안에 조성철동무의 무기가 그대로 있지 않소! 그런데 참 이상하구만…》

소대장 리춘섭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헤여질 때 보았던 조성철의 이상한 눈길을 문득 상기했다. 서글픈 조성철의 눈길은 그때 《… 돌아와선 뭘 해요. … 돌아오지 말아요!》 하고 절망적으로 호소하는듯 하였었다.

《소대장동무! 그렇다면 혹시… 모든 징후로 보아 조성철이 대렬…》 하고 건장한 대원은 《도피》란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얼굴을 찌프렸다.

그 순간 놀라듯 소대장 리춘섭은 눈섭을 치켜들었다. 그 다음 그의 엄한 시선이 함께 담가를 들고 온 대원의 눈에 집중되였다.

《함부로… 쉽게 단정해서는 안돼! 책임적으로 좀더 찾아봐야겠소!》 하고 소대장 리춘섭은 갈린 목소리로 꾸짖듯이 말했다.

그들은 두시간나마 산주변과 골짜기들을 오르고 내리면서 찾아보았으나 아무런 보람이 없었다. 하는수없이 그들은 조성철이 놓고 간 일본제보총만을 가지고 돌아와 유격대본부에 그대로 보고하였다.

조성철이 유격대오에서 스스로 떠나갔다는 소식은 수많은 유격대원들과 지휘관들을 놀라게 했다. 그렇게도 총명하고 그처럼 다정다감하고 한나산속 유격대에서 전례없는 결혼식까지 하며 전체 부대에 소문을 낸 조성철이가 스스로 유격대오를 떠나갔다는것을 도저히 믿기 어려웠던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였다. 인간생활에는 때로 믿어지지 않는 진실도 있는것이다.

대렬도피인가? 아니면 적들에게 투항한것인가? … 어쨌든 불명예스럽고 타매할 행위였다. 모두가 격분했다. 그중에서도 펄펄 뛰며 격노한것은 조성철의 중학동창이며 딱친구인 고병호와 조성철의 안해 한미숙이였다. 그들은 끝내 치솟아오르는 격정을 참지 못하고 몇명의 젊은 대원들과 함께 유격대본부로 몰려와 리덕구대장을 만났다.

《대장동지! 그 너절한 변절자, 도주자를 따라가서 즉시 처단하고 오겠습니다! 가슴속에 불이 일어 도저히 참고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처럼 믿었던것이 분통이 터지도록 분합니다. 내 손으로 도주자를 처단하게 승낙하여주십시오!》

고병호는 험악하게 얼굴을 이그러뜨리고 가슴속에 맺힌 분노와 증오심을 거침없이 터뜨렸다.

《대장동지! 저도 고병호동무와 함께 가도록 해주십시오!-》

조성철의 젊은 안해 한미숙은 너무도 억이 막힌듯 눈물을 머금고있었다.

유격대장 리덕구는 림시로 서둘러 지은 지휘부초막의 벽에 등을 기댄채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꿈쩍않는 거목처럼 서있었다.

(어쩌면 이럴수가 있는가? 물론 아무런 말도 없이 대렬을 떠난 조성철의 행위는 응당 타매되고 증오를 받아야 한다. 욕설을 퍼붓고 뺨을 치고 분풀이를 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오래동안 함께 싸우며 고난속에서 믿음과 정을 맺고 생활해온 전우, 벗을 어떻게 그처럼 처단해야 할 변절자로 단정하는가! 이러지 말아야 한다. 심사숙고해야 할 전우에 대한 신중한 문제이다. 서둘러 속단하는것은 무서운 일이다! 동무들, 정세가 아무리 어려울 때라 하여도… 아니,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전우들을 더욱 믿고 아껴야 한다.

우리는 함께 생사를 같이하는 전우들이 아닌가!)

그러나 리덕구는 자기의 이러한 생각을 입밖에 내여 말하지 않았다.

《한미숙동무! 흥분하지 말고 동무가 말해보오. 동무도 우리가 그를 처단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리덕구는 나직이 말했다.

《선생님! 전 너무도 억이 막혀 뭐라고 말을 못하겠어요! …》

《동무들, 너무 쉽게 속단하지들 마오. 난 그가 이제 반드시 대오로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고싶구만. … 병으로 일시 나약해져서 잘못 생각했을거요. 그러니 그는 자기를 검토하고 돌아올 사람이요! …》

그는 사려깊은 시선으로 대원들을 여겨보며 주저없이 반복했다.

《그는 돌아올 사람이요. 나는 그를 잘 아오!》

리덕구의 목소리가 얼마나 진정에 찼던지 고병호와 한미숙, 함께 찾아왔던 젊은 대원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잠잠히 서있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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