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3편 성전

4

 

해가 지고 날이 어둡자 한낮동안 쉴새없이 퍼붓던 비는 멎고 종적없는 지랄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하였다. 밤은 검은 안개같은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컴컴한 농가들이 드문드문 널려있는 마을의 어느 집에서도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을상공에는 방금 채로 친듯 한 올찬 별들이 노한것처럼 떨고있었다.

마을의 모든 집들처럼 조성철의 어머니가 홀로 있는 집에도 털어버릴수 없는 불안의 검은 그림자가 깃들어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방에 홀로 누워 산에서 싸우고있는 아들을 생각하며 번거로운 심경에 잠겼던 조성철의 어머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었다. 그것은 이상한 잠이였다.

생시같기도 하고 꿈같기도 하였다. 그는 잠속에서도 무엇인가 불안하고 초조하여 안타까움을 느끼고있었다.

(신랑신부의 집에서 어느 한사람도 참가 못하고… 산속에서 결혼식을 했다니 이 어수선한 세월에 다행이랄가? … 아니야,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대사인데… 어쩐지 서운하고 섭섭하단 말이야! … 아무렴.)

조성철의 어머니는 옅은 잠속에서도 아까부터 뜨락쪽에서 들려오는 무엇인가 이상한 소리를 어렴풋이 감촉하고있었다.

《꿈인가… 무슨 잠이 이렇게도 부산스러울가…》

그러다가 그는 또다시 뜨락쪽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비슷한 이상스러운 소리를 듣고 번쩍 눈을 떴다. 분명 뜨락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였다.

《누구예요?》 하고 녀인은 부스럭거리며 일어나서 불안한 목소리로 나직이 소리쳤다.

《어… 어… 멍…》

뜨락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할수 없을 정도로 가늘었다.

(성철이가?!)

녀인은 어머니의 특유한 감각으로 그것이 자기 아들의 목소리라는것을 정확히 판단하였다. 그는 불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와락 문을 열고 뜨락으로 나왔다. 어둠, 정적… 밤이 깊었는지 마을에서는 개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비물이 여기저기 고인 질척한 뜨락에는 무엇인가 거뭇한것이 느껴졌다.

《어…머…엉…어…멍…》

《성철아!-》

녀인은 건너뛰듯 달려가 아들을 안아일으켰다. 그 다음 그는 지금까지 몰랐던 솟구치는 초인간적힘으로 아들을 안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얘야! 이게 웬 일이냐? …》

《어…멍…나를…춥고…떨려서…》

얼굴이 주검처럼 질려가지고 중얼거리는 조성철의 왼쪽눈시울이 경련에 실룩거리고 악문 입술모서리에도 경련이 일었다.

《성철아! 왜 이러느냐… 엉? … 얘야!-》

녀인은 몰라보게 수척해지고 변한, 녹초가 되여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들을 억이 막혀 여겨보며 눈물을 흘렸다.

《어…멍…추워서 그러니… 이불을…》 하고 조성철은 방바닥에 쓰러져 신음소리를 냈다.

《뭐라고? … 이불을? 오냐.》

너무도 불의에 들이닥친 아들의 참상에 몇순간 꿈을 꾸는것처럼 앉아있던 녀인은 문득 일어나 이불을 꺼내 두툼히 덮어주었다.

《어멍…뭐 좀…먹을것을… 주어요.》 하고 성철은 여전히 허탈감에 빠진듯 한 가느다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 그래. 가만, 내 이제 방등불을 켜고…》

조성철의 어머니는 성냥을 찾느라고 캄캄한 방안의 이곳저곳을 어루더듬으며 부스럭거렸다.

《음, … 여기 있군.》 하고 녀인은 성냥을 찾은듯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어멍, 불을… 켜지 말아요. 어서 먹을것만 가져다 주어요!》

성철은 황급히 불을 켜려는 어머니에게 손을 내저으며 막았다.

《알겠다. 곧 가져다 주지!》

녀인은 서둘러 부엌으로 나가더니 감자 삶은것과 보리밥, 김치와 고추장을 가져다 아들의 앞에 놓았다.

《자, 물부터 마시고 먹어라!-》 하고 녀인은 자기도 모를 불안으로 목소리를 떨면서 아들에게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조성철은 보리밥에 고추장을 두고 비벼서 김치와 섞어 게눈감추듯 정신없이 다 먹고나서 곧 자리에 쓰러지듯 이불을 쓰고 누웠다.

《어멍, 내가 깨여날 때까지… 깨우지 말아줘요! …》

《그러지… 그런데, … 아이고 … 얘야, 불시에 네가 이게 웬 일이냐? 말 좀 해다고!-》 하고 녀인은 당장 통곡이라도 터칠듯 한 울음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멍…더 묻지…》

그러더니 성철은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어느새 잠속에 빠져들고말았다.

조성철은 꼬박 하루밤 하루낮을 내처 잠을 잤다. 다음날 어스름이 깃들무렵에 잠시 깨여났던 그는 또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가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깨여난것은 그 다음날 아침이였다. 성철의 온몸은 땀으로 푹 젖어있었다.

(가만… 여기가… 내가 지금 어디에 누워있는가?) 하고 잠에서 깨여나 정신이 드는 순간 그는 놀라 주위를 재빨리 살폈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밖에서 재깔거리는 참새소리가 들렸다. 뒤따라 까마귀들이 날아가며 메마르고 되알지게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내가 지금 집에 와서 누워있을가? … 어떻게 되여…) 하고 조성철은 잠자리에 누운채 놀라움을 진정하려고 애쓰면서 생각했다.

(어떻게 되여 내가 대오를 떠나 집으로 왔는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검은구름장처럼 몰려오는 불안과 초조로 눈을 깜박거리면서 억제할수 없이 떨리는 입술을 진정시키려고 해보았으나 보람이 없었다.

조성철은 자기가 열에 떠서 앓으며 산속에서 지낸 며칠간을 더듬어보았다.

계속되는 전투와 행군, 강행군과 전투… 폭우 쏟아지는 산속에서 끝내 병마로 지쳐 쓰러지던 일, 전지불 비쳐보며 힘을 주던 리덕구대장의 엄한 얼굴… 그 다음 리춘섭소대장에게 매달려 산을 내려 골짜기의 동굴로 들어가던 일… 그러나 지금 성철에게는 그 모든것이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어렴풋한 꿈속에서 있었던것처럼 생각되였다.

(그런데…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 어떻게 되여 나는 대오를 떠나 집으로 왔는가? … 과연 내가 제정신이였는가? …)

조성철은 자기가 대오를 떠나 집으로 오게 된 그 까닭을 자신으로서도 도무지 알수 없었고 설명할수도 없었다.

(따스한 집이 그리워서였던가? 대렬도피라는 생각도 하지 못할만큼 나의 심신이 나약했던가? …)

성철은 오싹 소름이 끼치는것을 느꼈다. 모든 의식을 휘갈기는 크낙한 수치감이 그를 휘감았던것이다.

(부대에서는… 모두가 나를 이미 대렬도주자, 변절자로 규탄하고있을것이다! 이제는 부대로 돌아갈수도 없다. 내가 어떻게 되여 이런 처지에 빠졌는가? …)

그는 된매를 맞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그의 두입귀는 비통하게 비틀어져있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대로도 갈수 없고… 어딘가 섬을 떠나 낯선 고장으로 떠나야 할가…)

조수로 밀려들었던 바다물이 찔 때 덤장에 걸린 물고기가 엎치락뒤치락하듯이 그의 생각은 나갈 길을 찾아 절망적으로 모대겼다.

그때 부엌에서 그의 어머니가 조용히 소리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얘야, 이제는 좀 정신이 드느냐? …》

《네.》 하고 고뇌에 잠겼던 성철은 한참후에야 건성 대답하였다.

《아이고, … 무슨 잠을 그렇게도… 얘야, 아침밥을 먹어야지?》

어머니가 수심에 갈린 목소리로 묻자 성철은 말없이 역시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성철의 어머니는 부엌으로 나가 미리 준비해놓았던 도미생선국과 닭고기를 곁들인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와 아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조성철은 고뇌에 찬 얼굴로 몇술 뜨는둥마는둥하더니 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숟가락을 놓고말았다. 밥은 모래알처럼 깔깔하고 생선국은 쑥물처럼 쓰겁게 느껴졌다.

《얘야, 왜 그러느냐? 어서 더 먹지 않고… 네 몸보신을 위해 이집저집에서 구해온것인데? …》 하고 어머니는 상심한 표정으로 거듭 간곡히 권했으나 아들은 머리를 떨구고 말이 없었다.

《얘야, 닭고기라도 좀더 먹으래두!-》

《어멍, 어쩐지 당기지 않아요. …》

《얘야,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냐? … 몸이 그렇게 수척했는데… 혹시…》 하고 어머니는 안타까이 긴 한숨을 내쉬였다.

그래도 성철은 입술을 깨물고 말없이 고뇌에 찬 눈길을 허공에 박은채 까딱않고있었다.

《아이고, 답답하구나! …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멍에게도 말못할 일이냐? …》

녀인은 괴로운듯 울먹이였다. 그러자 무거운 고뇌에 잠겼던 성철은 금시 잠에서 깨기라도 한것처럼 몸을 흠칫했다. 그리고는 묻는 말을 리해하려고 애쓰면서 엄지손가락매듭으로 툭 두드러진 이마를 문질렀다.

《어멍, 자꾸 묻지 말라구 내 말하지 않았어요! … 난 산에서 그동안 여러번 학질발작을 심하게 앓았어요. 그래서…》 하고 성철은 모호하게 머리를 흔들며 얼굴을 찌프리고 외면했다.

《학질? 그놈 병이 모질기도 하구나! 집에서도 이따금 그놈 병때문에 고생이더니… 얘야, 그럼 어서 약을 먹어야지. 내 이제 얼른 의원집에 가서 약을 사오겠다.》

《어멍, 그만두라요. 이젠 좀 나은것 같아요. 그런데 저… 계진국아저씨를 알지요?》

조성철은 수심과 불안으로 저으기 더 늙어보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가슴아픈 눈길로 쳐다보며 갈린 목소리로 물었다.

《알구말구. … 그 사람이야 우리 동네에서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사람이 아니냐? 그런데 그 사람을… 동네사람들모두가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밖에 모른다구…》

《어멍,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그를 불러다줘요! … 날이 어두운 다음에…》 하고 조성철은 무엇인가 수치감과 자기자신에 대한 짜증때문에 입술을 깨물면서 부탁하였다.

《무슨 일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을 꼭 만나야 한다면… 만나야지.》

그날 저녁 날이 어둡자 녀인은 아들의 부탁대로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얼마후에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녀인의 뒤에는 멀끔하게 잘 생긴 중년의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아이고, 이거 성철이 아닌가?》 하고 희멀쑥하게 잘 생긴 남자는 펄쩍 놀라는 시늉을 하며 말을 보탰다.

《어쩌면 그렇게도 몰라볼 지경으로 얼굴이 축갔소?》

《계아저씨, 좀 신중히 상론할 일이 있어서 오시라고 했는데… 참, 미안하게 됐습니다.》

조성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컴컴한 얼굴로 미안해하였다.

《괜한 소리말라구! 이 어수선한 란리통에 한동네에서 오랜 세월 인정을 맺고 함께 살아온 우리야 서로 도와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무슨 일인데? 산에서 아주 내려왔나? … 그건 썩 잘한 일이야!》 하고 중년의 계진국은 과장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쑤알거렸다.

조성철의 어머니는 남정네들이 무엇인가 심상치 않는 일을 의논하는데 턱쳐들고 앉아 간참하는것이 별스럽게 생각되여 슬며시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어멍, … 누가 오지 않는가 좀 살펴주어요!》 하고 조성철이 불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조성철의 어머니는 부엌문가에 서서 착잡한 생각에 잠겨 서성거리며 어둠에 잠긴 뜨락을 내다보고있었다. 사위는 밤의 장막속에 잠겨있었다.

방안에서 두런두런하는 말소리가 부엌에까지 들려왔다.

《이 사람… 성철이… 지금 형편에서… 다 죽네. … 제주도를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게 상책이야… 자네… 배값만 내면… 내 주선해…주…》

토막토막 끊어지는 계진국의 열띤 목소리.

《그런데… 정작 떠나자니… 함께 피흘리며 싸우던 사람들을 버리고… 차마 떠나가기가… 무슨 큰죄를 짓는것만… 같아서…》

한숨섞인 아들의 비통한 말소리.

《하, 이 사람… 지금 어디 그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인가. 아무튼… 용단을… 내려서…》

그 다음 말소리는 끊어져 들려오지 않았다. 방안에서는 무엇이라고 련속 수군수군하는 말소리…

(아니?! 그럼 아들녀석이 한나산에서 도망쳐 내려왔단 말인가?) 하고 조성철의 어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뭐, 제주도를 떠나 멀리 어디로 간다구? … 아이고, … 살아오다가 이런 일이 생길줄이야! …)

녀인은 참을수 없는 노여움과 실망으로 심장이 세차게 뛰는것을 느꼈다.

모진 가난속에서 홀몸으로 손톱발톱에 피멍이 들도록 아득바득 세상의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으며 애지중지 키워온 외아들, 총명하고 대바르고 공부 잘하여 동네사람들속에서 남의 집 열 아들 못지 않게 아들 하나 잘 두었다고 늘쌍 인사를 받아오며 기둥처럼 믿었던 아들, 한나산에서 싸우는 대바르고 정직한 사람들속에 떳떳이 서있는것이 커다란 자랑이고 긍지였던 아들, 그런데…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

녀인은 갑자기 딛고 선 발밑이 뭉청 꺼져내리는것만 같아 몸을 비청거렸다.

그때 계진국이 방에서 나오며 성철에게 다짐을 주듯 쑤알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철이, 신중히 생각해서 결단을 내리라구! … 배삯이 마련되고 임자가 결심이 확고해지면… 래일 날밝기 전에 련락해주게! … 지금 더 주저하고 이것저것 재고있을 때가 아니란것을 명심하라구. 죽느냐 사느냐 하는 험악한 시절이야!》

밖으로 나온 계진국은 조성철의 어머니에게 건성 머리를 끄덕여보이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어둠속으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조성철의 어머니는 온몸이 떨리고 쑤시고 머리는 불타는것 같았다. 그는 급히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녀석… 너… 유격대에서… 도망쳐 내려왔느냐?》

녀인은 가슴이 활랑거려 말을 떠듬거리며 따지듯이 아들에게 물었다.

《어멍! 내 일을 자꾸 묻지 말라구 몇번이나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걸 어멍은 몰라도 된다니까요! 어멍은 내가 속이 타서 죽는걸 보자고 자꾸 캐물어요? … 나를 좀 가만 놔둬요!》

조성철의 눈섭밑에서 두눈이 빛을 잃은채 안개라도 낀것처럼 부옇게 번득이였다. 고뇌와 피곤, 무엇인가 자신에 대한 혐오, 시진함에 그의 눈길은 무뚝뚝하고 어두웠다.

《?! …》

녀인은 그런 표정을 짓고 그런 투로 말하는 아들을 일찌기 본적이 없었다. 험난한 세월의 고생속에서 정들고 낯익고 사랑하던 아들,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던 아들!- 그애이면서도 지금은 전혀 다른 애같았다. 몇순간 녀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마치 깊고 험한 바다에 뛰여들려는 해녀마냥 마음을 다잡았다.

《이녀석! 그래 어멍을 뭘루 아느냐? … 내가 그런것도 너에게 묻지 못할 사람이란 말이냐? … 나는 … 이 어멍은 지금까지 너를 그런 아들로 생각한적은 없었다!》

녀인은 바라던것보다 더 조용히 아들을 향해 말했다.

《참, 어멍. 제발 부탁해요. 지금 저를 조용히 있도록 해주어요!-》

여느때없이 비통하게 울리는 고뇌에 찬 조성철의 목소리는 절반 울음이였다.

컴컴한 그의 얼굴에 경련이 갈지자로 지나갔다.

녀인은 심한 마음속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아들을 쳐다보고 문득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답답하고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였다.

퍼렇게 그늘이 진 눈시울을 내려깐채 무겁게 앉아있던 조성철은 말없이 자리에 누웠다. 그는 줄곧 마음속의 괴로움과 불안, 고통스러운 깡치를 걷어버리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 고향 제주도를 떠나려고 하고있다! 왜? 무엇때문에? … 제자신이 저지른 수치를 잊으려고? …)

조성철은 돌연 참아내기 어려운 정신적구토감을 느꼈다. 방금전에 만났던 계진국의 뻔뻔스러운 웃음과 속물적인 타산, 다른 사람의 불행에서도 서슴없이 자기 리익을 짜내려는 더러운 속심, 그에게서 풍겨오던 썩은 냄새 비슷한 역스러운것이 지금 성철의 뇌리속으로 파고들었던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그런 류의 사람들과 상종해본적이 없었다.

(아니… 아니다. 내가 누구를 탓하랴! … 일은 내가 저지른것이 아닌가!) 하고 조성철은 자기를 통절하게 비웃었다.

(내가 진정 불길속에 잠긴 나서자란 고향을 버리고 낯선 고장으로 떠나야 하는가? 수치를 잊으려고… 어멍과 안해, 생사를 판가리하는 싸움의 나날에… 공동의 고귀한 목적을 위해 함께 피흘리며 싸우던 사람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려는가!)

성철의 눈에서는 자신도 지금껏 몰랐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눈물이 솟아올랐다.

(저기 한나산에서는 이 시각에도 피흘리며 쓰러지는 고향 제주도사람들의 운명을 걸고 힘겨운 격전을 벌리고있는데… 나는 지금 집에서 무엇을 하며 무슨짓을 하려고 하는가! 어째서 내가 이렇게 됐으며 이 지경에 빠졌는가? …)

조성철은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깊고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한나산에서의 유격대생활을 회상하였다. 리덕구유격대장, 안해 한미숙, 친구 고병호, 지대장과 중대장, 리춘섭소대장, 전우들… 잊을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성철의 가슴을 쳤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몸이 되여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함께 피흘리며 싸워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런데… 나는 무슨 허튼 생각을 하며 그들에게서 떠나려 하는가! … 이 벅찬 시절에…) 하고 그는 흠칫 놀라며 감고있던 눈을 번쩍 떴다.

(아니다. 나는 이제 다시 대오로 돌아가야 한다! 극도의 피곤과 병마와의 고통에 못이겨 일시 정신적으로 동요했던 자신을… 모든것을 털어놓고 용서를 빌자! 그리고 계속되는 싸움속에서 자신을 강철로 벼리고 또 벼리자!)

그는 좀전까지의 허튼 생각을 금강석으로 유리를 자르듯이 잘라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성철의 의식속에서는 또 다른 생각이 속삭였다.

(대렬에서 도주했던 나를 유격대오에 다시 받아주겠는가? … 용서를 받을수 있겠는가? …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나는 일단 대오에서 리탈하지 않았는가!)

성철은 오싹 소름이 끼쳤다. 뒤따라 누를길 없는 수치감이 등골을 후려갈겼다.

(음…) 하고 그는 신음소리를 냈다.

불안과 고민, 초조,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마음속 고통은 그의 몸을 말리웠다.

성철은 그러다가 긴장되고 괴로운 기색을 띠운채 잠이 들고말았다.

컴컴한 방안에 꼼짝않고 줄곧 아들의 동정을 살피던 어머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어둠속에 잠긴 밖에서는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고 번쩍-번쩍- 번개가 일고 우뢰가 울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방문앞에 서있던 그 녀인은 무슨 결심에서인지 불시에 뜨락을 나서 돌담장밖으로 나왔다. 그는 늘쌍 괴로운 일이 생기면 마음놓고 털어놓아 도움을 받군 하던 건너동네의 김삼봉을 생각하고 그를 찾아가려 나선것이다. … 바로 이런 때 그의 도움을 받고 조언을 들어야 한다. 항상 어느때 무슨 문제에서나 공명정대하고 시원시원하며 사심을 모르는 그에게 나의 근심과 괴로움을 속시원히 털어놓자! 하고 성철의 어머니는 김삼봉을 찾아 밤길을 걸어갔다.

비내리는 밤길은 어둡고 질척질척하였다. 정적에 잠긴 컴컴한 마을은 마치 검은 상복을 입은것 같았다. 밤새들도 울지 않았다. 길가에 듬성듬성 서있는 나무들은 어렴풋한 하늘을 배경으로 무엇인가 괴이한 검은 흔적처럼 보였다.

(그녀석은 제가 얼마나 이 어멍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고 상심케 했는지 전혀 모르고있을테지… 그래, 그애는 그럴 경황마저 없는것 같아!) 하고 그 녀인은 아들에 대한 애타는 생각으로 언제 김삼봉의 집앞까지 왔는지 몰랐다.

문득 김삼봉의 집 돌담장에 도착하고보니 캄캄한 집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리 멀지 않는 바다쪽에서 파도소리만 소연하게 들려오고있었다.

(그렇지, 밤이 퍼그나 깊었으니까! 모두 잠이 들었을텐데 이를 어떻게 한다? … 랑패로군.)

모두가 깊이 잠든 집안으로 갑작스레 뛰여드는것도 인사불성이고 그렇다고 마음먹고 허우적거리며 예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서기도 아쉬워서 그 녀인은 주춤거리며 뜨락에 서있었다. 그때 마침 집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밖에 누가 왔소?》

의젓한 김삼봉의 목소리였다.

《형님, 제가 왔어요!》

《아니, 저 건너동네 동생이 이 밤중에 어떻게? … 어서 들어오라구!》 하고 김삼봉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것을 감촉한듯 방문을 열며 반기였다.

조성철의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기탄없이 찾아온 사연을 쏟아놓았다.

그러는 그의 얼굴은 들먹들먹 떨었다. 김삼봉은 말 한마디 없이 마지막까지 다 듣고나서 신중한 기색으로 한동안 침묵하고있었다.

《형님! 이런 때 어떻게 해야 하우? … 어서 말 좀 해줘요!》 하고 그 녀인은 한숨도 꺾어쉬면서 락심한 어조로 말했다.

《동생, 너무 락심하지는 말라구. 집의 아들은 사람이 총명하고 사려깊은 사람이니 터무니없는노릇은 하지 않을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김삼봉은 신중한 얼굴로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한바를 그대로 피력하였다.

《형님, 그러면 오죽이나 좋겠어요. 지금 산에서 내려온 그녀석은 번민속에… 그러다가 엉뚱한짓이라도 하면 어찌겠어요!-》

조성철의 어머니는 살이 내리고 뼈가 깎이는듯 한 아픔을 느끼며 나직이 웨치듯이 호소했다.

《동생, 그 사람이 산속에서 심하게 앓았다니까 괴롭고 지쳐서 일시로 심신이 나약해질수도 있었겠지. 본바탕이 깨끗하고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니 설마 제 사람들을 배반이야 하겠소. 난 그렇게 생각지 않네!》

김삼봉은 역시 의젓하게 자신있는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 잠잠히 머리를 숙이고 듣고있던 조성철의 어머니는 번쩍 머리를 들었다.

《형님, 그렇게만 생각할게 못되나봐요. 계진국이라는 속이 시꺼먼 사람과 여기 제주도를 떠날 상론을 하는걸 봐서는… 아무래도 그녀석이 잘못 변한것만 같아 겁이 나요! 형님, 부탁이예요. 함께 저의 집에 가서 녀석을 만나주면 고맙겠어요!》 하고 성철의 어머니는 눈물겹게 애절히 호소했다.

《허, 지나친 상심같은데… 할수 없지. 동생이 그처럼 간곡히 부탁하니 함께 가보자구! … 어멍의 옳은 말을 막무가내로 듣지 않는 아들은 세상에 많지 않아. 그런 아들은 사람축에 못 드는 바보가 아니면 악귀이지!》

김삼봉은 조성철의 어머니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내리다말다 하면서 보슬비가 내리고있었다. 두 녀인은 캄캄한 밤의 비속을 아무말없이 걸어갔다.

그들이 성철의 집에 당도하여 방안으로 들어서니 아들은 잠들어있었다.

보매 끝없는 번민과 마음속 고통에 시달리던 그는 괴로운 현실을 잊고 잠들고만것 같았다.

김삼봉은 소리없이 그에게로 다가가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잠든 조성철의 흰 속옷깃밑으로 순박한 젊은이다운 가무스레한 목이 정겹게 드러나보였다.

《성철아!》 하고 그의 어머니가 가볍게 흔들어 깨웠다.

《어멍, 무슨 일이예요? …》

잠에서 깨여난 성철은 두리번거리다가 방안에 뜻밖에도 김삼봉이 와서 머리맡에 앉아있는것을 보고 깜짝 놀라 벌떡 솟구치듯 일어났다.

(?! …)

그의 입술은 호된 추위라도 만난것처럼 바르르 떨렸다. 성철은 대바르고 의젓한 김삼봉을 마주보지 못하고 머리를 떨구었다.

《이 사람, 심하게 앓는 몸으로 산에서 싸우느라 퍽 고생이 많았겠구만!》 하고 김삼봉은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하며 성철의 손을 잡고 쓸어만졌다.

《아니, 이 깊은 밤에 어떻게?! …》

조성철은 내심 놀라며 묻고는 떨리는 속눈섭을 내려감았다.

《산에서 별별 고생을 겪으며 놈들과 싸우던중에 병을 만나 심히 앓다가… 그만 잠시 집에 내려왔다기에 만나보러 왔으니 놀라지 말라구!》 하고 김삼봉은 진정으로 사려깊게 말했다. 그리고는 마주앉은 조성철의 수척하고 코만 우뚝 솟은, 병과 고열에 시달린 얼굴을 가슴아픈듯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비오고 바람세찬 산중에서 잠잘 곳도, 먹을것도, 입을것도 변변치 못해 세상의 고생이란 고생을 겪으며 놈들과 싸우는 임자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아! 그건 다 이 땅에 기여든 미국양놈들과 그 앞잡이놈들때문에 생긴 고생이지. 천하에 모질고 몹쓸 악귀들이야. 그놈들과는 죽어도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지.》

김삼봉은 열기있게 뇌이며 싸들고 온 보꾸레미에서 학질에 좋은 약과 음식들을 내놓았다.

《어서 이 약을 먹고 병을 털어버리라구! 학질에는 그중 좋은 특효약이야!-》

《큰어멍…》 하고 성철은 목메인 소리로 불렀다. 그 다음 말을 잊지 못했다.

《이 사람, 나를 큰어멍이라고 진정으로 불렀으니… 이 큰어멍의 진정의 말을 들어보라구. 이 사람아, 함께 고락을 나누며 산에서 싸우던 제사람들, 안해와 친구들, 정을 나눈 가까운 사람들을 버리는건 사람으로서 못할짓이야! 사람이 천년을 사는것도 아닌데… 의리와 도리를 버리고 어디에 가든 마음속은 그냥 괴로울건 뻔한 리치야. 사람이란 마음이 편해야 사는것 같은 법이네!》 하고 김삼봉은 자기의 친혈육을 대하듯 절절하게 말했다.

《큰어멍! … 우리 집에 정말 때마침 오셨어요. 그런데 저는…》

조성철은 무엇인가 애매하게 주밋거렸다.

《이 사람아, 그런데구 저런데구 할것 없네. 하루빨리 유격대로 되돌아가야 해! 물론 그러리라고 믿지만.》 하고 김삼봉은 무엇인가 주저하는 그에게 찌르듯이 말했다.

《그런데… 큰어멍, 저도 그렇게 줄곧 생각하고있었지만… 유격대원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겠는지, 또다시 받아주겠는지 자신이 없어서 망설였어요!》

조성철은 드디여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이 사람아, 일시 잘못을 저지르고… 그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온 자기 사람을 그들이 아무렴 영영 배척하겠나? 이 큰어멍은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구만. 하지만 그들에게서 호된 모욕과 질책을 받을 마음의 준비는 있어야지. 이 사람아, 사람의 생활에서는 때로 가까운 사람들의 엄한 질책과 가슴아픈 모욕을 이겨내는것도 용감성이고 슬기가 아닐가?》

김삼봉의 목소리는 봄날의 호수처럼 온화하고 잔잔하였다.

《큰어멍! 어멍!》 하고 조성철은 뻐근할 정도로 허리를 쭉 펴면서 김삼봉과 어머니를 향해 열렬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저는 오늘 다시 산으로 올라가겠어요!》

성철의 내면에서 무엇인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것 같았다. 그의 시선은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았으며 초점이 집중되여있었다.

《큰어멍! 어멍! 걱정을 끼쳐서 정말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이 내 일생에 없을것입니다!》

《얘야!-》 하고 성철의 어머니는 아들을 그러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장하다! 얘야. 그래야지, 그래야 하구말구!》

성철의 어머니는 아들을 쓸어만지며 련속 눈물겹게 뇌이였다.

《이 사람, 난 벌써 임자가 그러리라고 믿고있었네. 왜냐하면 산에서 싸우는 임자들은 모두가 꿋꿋하고 용감하며 슬기로운 제주도의 아들들이니까!》 하고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김삼봉의 얼굴에는 마음속의 따뜻한 애정이 떠올라있었다.

《고맙습니다. 큰어멍! 어멍, 저는 지체않고 이제 떠나렵니다!》

총기있는 조성철의 눈이 번득이였다. 그는 두 녀인에게 절을 하고 뜨락으로 나갔다.

그날 오후 늦어서 부대에 도착한 조성철은 곧바로 리덕구대장이 거처하는 본부의 초막으로 들어갔다. 초막안에서는 리덕구대장이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있었다.

《대장동지! 대원 조성철 다시 대오로 돌아왔습니다!》 하고 그는 이미 결심했던대로 스스럼없이 힘차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눈이 떼꾼하니 패이고 긴장으로 깜박거리는 눈시울은 성철의 고뇌의 번뜩임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초막안은 조성철의 긴장한 숨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하였다.

리덕구는 성철의 말소리를 듣지 못한듯 쳐다보지도 않았고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성철은 입술을 깨물고 얼마동안 말없이 서있었다. 병색짙은 광대뼈가 두드러진 그의 두볼은 따귀라도 얻어맞은것처럼 활활 달았다.

《제주도인민유격대 대장동지! 조성철이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하고 다시 큰소리로 웨치듯이 말하는 조성철의 눈동자는 새까만 숯불처럼 번쩍거렸다. 그래도 리덕구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마치도 아무도 없는 초막에 홀로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겨 독서에 파묻힌듯 했다.

조성철은 총명해보이는 이마가 두드러져나온 머리를 숙이고 서있었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여 흙빛으로 시커매지고 목과 관자노리에서는 부풀어오른 피줄에 맥박이 맹렬하게 뛰놀았다.

초막안에는 괴롭고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였다. 드디여 조성철의 병색짙은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참다못해 울부짖듯이 소리쳤다.

《선생님! 차라리 속시원히 저의 뺨을 후려치고 욕설이라도 퍼부어주십시오! 저에게 엄한 벌을 내려달란 말입니다! 저는 그 어떤 가혹한 처벌도 받을 각오가 되여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절대로… 절대로 용서나 받자고 먼저 선생님을 찾아온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

《성철이!》

이윽고 엄한 어조로 말을 뗀 리덕구의 얼굴에는 엄격한 표정이 어려있었지만 뜻밖에도 눈빛은 온화하였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매란 자신이 때릴 때가 가장 아픈거요. 성철이는 앞으로 두고두고 자신에게 가혹한 매질을 해야 하겠소!》 하고 리덕구는 특별이 엄격한 어조로 꾸짖듯이 말했다.

《선생님! 저는 이번에 유격대오를 떠나… 며칠간을 괴롭게 지냈습니다. 마치 달도 없는 야밤에 낯설고 생소한 고장을 홀로 헤매는 나그네 심정이였습니다. 선생님! 저는 제가 저지른 잘못으로 동지들의 손에 처형을 당하더라도… 싸우는 참된 유격대오에서 죽을 각오로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조성철의 목소리는 열기를 띠고 당장이라도 쌓이고쌓인 자기자신의 울분의 감정을 터뜨릴듯 한 기색이 엿보였다. 옛 스승이며 유격대 대장인 리덕구앞에서 웨쳐대고 눈물을 쏟으며 무엇인가 호소하고 애원하지는 않을가 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조성철은 여전히 두발을 모으고 유격대원답게 꿋꿋이 서있었다.

그러자 리덕구의 이마우에 그때까지 모여있던 주름살은 마음속 기쁨으로 쫙 펴졌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제자에 대한 평소의 믿음이 헛된 믿음이 아니였음을 다시한번 기쁘게 확신했던것이다.

리덕구는 까딱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뜻이 깊은 표정을 띠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철이, 난 이미 성철이가 돌아오리라고 믿었고… 용서해주기로 결심하였소. 그러나 사랑하는 안해 그리고 함께 생사를 같이하는 친구들과 동지들이 용서해주겠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소!》

《선생님!》 하고 조성철은 끝내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흘리며 소리없이 울었다.

(성철이! 울거라. 실컷 울어라! 그 눈물속에 일시라도 잘못 생각했던 그 어지러운 생각들을 흘러보내여라. 그러면 마음속이 한결 깨끗해지고 시원해질거다!)

리덕구의 크게 뜬 눈동자의 가운데가 불이 붙는것처럼 번쩍이였다.

저녁노을이 비낀 밖의 한나산상공에는 쌍을 이룬 두마리의 수리개가 날개를 쭉 펴고 빙빙 원을 그리며 날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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