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2편 서해에서 남해에로

9

 

어둠이 칠흑같이 드리운 바다우에 비발이 쉬임없이 뿌려치고있었다.

힘을 주어 노를 젓는 해병들의 온몸은 화락하니 젖었고 입안에 스며드는것은 어느것이 비물이고 어느것이 바다물인지 알수 없었다. 슴슴하기도 하고 쩝쩔하기도 한 물을 연신 내뱉았다.

채정보대좌가 직접 지휘하는 4척의 목선은 기뢰를 2개씩 싣고 은밀히 1렬종대로 전진하고있었다. 비상시에는 기관을 시동하여 쾌속으로 항해하게 개조한 배였다.

목포항에서 그렇게도 밤낮으로 함포단련을 받고 귀먼 욕질을 해대던 해병들이 드디여 적함을 찾아 떠난것이였다.

적함선들은 기뢰밭으로는 들어서려 하지 않고 그 바깥쪽에서 미친듯이 함포를 쏘아대고있었다.

이놈들에게 된맛을 보이자는것이였다.

얼마전에 군산에 있을 때에도 채정보대좌의 지휘밑에 이렇게 야밤에 기뢰밭 바깥으로 대담하게 나가서 적함들가까이에 기뢰들을 부설해놓았었다. 하명찬중사의 기발한 안을 부대장이 받아들였던것이다. 물론 주인공이라고 할수 있는 하명찬자신은 처벌을 받는 몸이라 그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하고말았다. 그날 밤 해병들은 채정보부대장의 지휘에 따라 적함들 주변에 기뢰를 부설했었다. 물론 당장 눈앞에서 적함들이 폭발하여 수장되는 광경은 펼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그뒤에 군산항에 대한 함포사격은 뜸해졌고 명중률도 높지 못했다. 적함근처에 부설한 기뢰때문에 적들이 당황망조하여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것이 분명했다.

해병들은 적극적인 기뢰전으로 적함들을 피동에 몰아넣었다고 기뻐하면서도 더 큰 효과- 꽝! 하는 폭발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것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해병들은 여기 목포에서는 더욱 대담하게 적함에로 바싹 접근하여 기뢰전을 벌리자고 채정보에게 제기했다. 당장 기뢰를 싣고 놈들을 찾아 떠나자고 윽윽하는것이였다.

참모장 윤지환중좌도 채정보에게 제의를 했다.

그는 은밀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해군함정들과 기관선들은 기뢰를 실은 노요선들을 끌어주다가 중도에서 떨어져 대기하고 그다음부터는 노요선들만 노를 저어 적함들이 있는 수역으로 접근하면 될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채정보대좌는 인차 수긍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적들에게 발견되면 어떻게 한다?!》

적함들이 포사격을 하게 되면 바다가 온통 죽가마끓듯 할것이였다. 노를 젓는 배로 적의 탐조등이 비치는 거리를 쉽사리 벗어날수 있겠는가?

윤지환은 그런 경우도 물론 생각해본 모양이였다.

《기뢰를 떨구고 돌아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적들은 기뢰를 꺼려서 집요하게 추격하지는 못할것입니다.》

《그런 타산만 가지고는 부족하오.》

채정보가 머리를 젓자 윤지환은 더 열을 올렸다.

《전투가 아닙니까. 위험이야 늘 우리 일에 동반되는거지요.》

《우리는 지휘관이요. 사색을 앞세워야지. 령활한 전술과 지휘로 전투승리와 전사들의 생명을 담보해야 한단 말이요.》

채정보는 윤지환과 함께 하명찬이네들을 찾아가 《전사참모회의》를 열었다. 좋은 안들이 나왔다. 해병들은 이번 접근전에서 승리의 열쇠가 바로 은밀성과 기동성을 보장하는것이라는 요점을 제꺽 리해하였다. 노요선들에 자동차기관을 올려놓자는데로 의견이 모아졌다. 멀지 않은 무안군의 대도로에 패주하던 적들이 내버리고 달아난 고장난 군차들을 보았는데 그 기관들을 뜯어오면 될것이라고 방도까지 내놓는 해병들도 있었다.

배수리를 도와주던 림종훈이도 찬동하였다. 그는 빠른 시일안에 노요선들을 쾌속정으로 개조하겠다고 장담하였다.

이렇게 집체적지혜를 발동하여 4척의 쾌속정을 만들어낸것이다.…

《이놈들은 오늘 밤에 제 코밑에 기뢰를 매달아놓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할거야.》

《아마 지금쯤 지옥으로 가는 꿈을 꾸고있을지도 몰라.》

이제 불바다로 될 통쾌한 장면을 그려보며 수군거리는 해병들의 목소를 들으며 채정보는 자기도 흥분으로 가슴벅차옴을 느꼈다. 그러나 전방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되였다.

노를 저어가던 해병들은 어둠속에서 산같이 우뚝 솟아있는 거밋한 형체들을 보았다. 적함들이였다. 갑판과 창구들에 뻐젓이 불까지 켜놓았다. 여기가 기뢰밭의 바깥이라고 안심하고 오늘 밤도 함포를 쏘아댈 차비를 하고있는것 같았다.

해병들의 눈에서 불이 일었다.

노를 젓는 배들이 소리없이 미끄러져 적함에로 점점 다가들었다.

채정보가 직접 전투를 지휘했다.

역시 로장의 솜씨가 달랐다. 다른 지휘관들이라면 수심을 재고 적함선의 흘수에 맞게 닻줄을 조절하고 기뢰부설위치를 확정하고 기뢰를 투하하는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했다. 그것도 조련치 않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에, 전선에 나가서 놈들과 맞서 꽝꽝 총을 쏘든가 해야지 이거야 어디 답답해서…》 하며 툴툴거리던 축들도 평소에 있었다. 여느 지휘관들이 한참 머리를 짜내고 모지름을 써야 할 일을 지금 채정보는 순간에 척척 해제끼고있다.

《닻줄들을 맞추시오! 이 해역의 수심은 한 35메터쯤 될거요.》

해병들은 긴장해졌다. 다시 한메터간격으로 끈을 매서 표시하고 끝에 무거운 납덩이를 매단 측심줄을 물속에 넣었다 꺼내여 살펴본다. 채정보가 기뢰닻줄을 맞추라고 한 깊이와 일치했다.

《귀신같군.》

하명찬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튀여나온 말이다. 그는 군산에서 목포로 이동할 때 처벌근무-식당일에서 벗어난것이였다.

텀벙, 텀벙… 기뢰를 투하하는 소리들이 가슴조이게 들려왔다.

채정보는 긴장으로 손바닥에 땀이 돋는것을 느꼈다. 이왕이면 바싹 접근하여 단단히 수족을 얽어매자고 이렇게 적의 코앞에 기뢰들을 떨구는것이였다. 이제 적함은 움쩍하기만 하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바다속깊이 수장될것이였다.

긴장한 시간이 흘러갔다.

8개의 기뢰들을 부설하고 우리 배들이 노를 저어 미끄러지듯 철수하기 시작하여 적함들의 정박구역을 거의 벗어났는데 갑자기 주변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탐조등의 백광이 눈부시게 바다우를 비치고 귀청을 째는 싸이렌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총성이 터졌다. 적감시병이 사격하는 모양이였다. 무슨 낌새를 챈것 같았다.

부채살처럼 엇갈리는 탐조등 불줄기가 캄캄한 하늘을 썰었고 포물선을 그으며 오르는 조명탄과 신호탄들이 펑펑 터져 주위를 대낮처럼 밝혔다.

4척의 우리 기관선들은 눈부신 빛에 로출되는 순간 일제히 발동을 걸었다. 선미에서 푸른 배기가스가 뿜어나고 물이 끓어오르더니 쏜살같이 동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량쪽배전으로 흰 물갈기가 휙휙 날린다.

앙칼진 고동을 울리며 선두에서 추격해오던 적의 고속정에서 눈부신 화광이 치솟으며 폭발이 일어났다.

하늘과 바다가 굉음속에서 온통 불도가니마냥 끓었다.

뒤미처 적의 산같은 구축함이 움씰거리며 이쪽으로 기동하다가 기뢰에 걸려 폭발했다.

《만세!》

《저것 봐, 구축함이 깨진다!》

해병들은 다급히 철수하는 가운데도 너무 가슴이 벅차 부둥켜안고 환성을 올렸다.

기뢰가 여기저기 부설되여있다는것을 깨달았는지 적함선들은 더이상 기동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돌면서 함포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쉬익- 쾅, 쾅, 쾅- 함포탄이 날아왔다. 흰 물기둥이 우리 배들 주변에서 솟구쳤다. 폭음과 함께 산같이 일어나는 파도에 우리 배들은 금시 뒤집힐듯 요동을 쳤다. 바다를 화끈 달아오르게 하는 열풍과 사나와진 파도가 들씌워질 때마다 입안으로는 짜고 씁쓸한 바다물이 숨이 꽉 막히도록 쓸어들었다.

누군가가 퉤퉤 물과 침을 뱉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자식들, 암만 그래봐야 행차뒤 나발이지. 우리 바다에 기여들어 맘 편히 지낼줄 알았더냐?》

우리 배들이 바삐 노를 저어 불바다를 뚫고나와 려수쪽으로 항로를 잡을 때까지 적함들은 기뢰가 무서워 더 따라오지 못하고 눈먼 포사격만 해댔다.

《기뢰전이 제일이야! 봤지, 얼마나 멋진가!》

《하하, 이 친구 언제는 어뢰정이 부럽다더니 그새 마음이 변했나?》

《아, 그게 언제적 얘기라구 자꾸 입에 올리나. 좋은 소리두 세번 하면 듣기 싫은데…》

《자자, 그만들 두라구. 이 기쁜 날에 다투긴, 대성공이야! 전투란 이 맛에 하는게 아니겠나!》

자기들이 하는 이 기뢰부설전투의 중요성이 새삼스레 느껴져서인지 후련하게 웃고 떠들었다.

채정보는 비물과 짠물이 들씌워지는 얼굴을 손으로 연신 훔치며 해병들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쾌속정들은 일렬종대를 짓고 물갈기를 날리며 기세좋게 물우를 미끄러져나갔다.

어느덧 적의 함포사격이 뜸해졌다.

해병들은 긴장을 풀며 저마끔 자리를 잡고앉아 롱소리를 주고받았다. 비가 오지 않고 파도만 높지 않다면 그리고 평화시기였다면 만선기를 날리며 포구로 돌아가는 즐거운 배길이였을것이다.

《야, 밤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운줄은 몰랐구만.》

《이 친구 사방이 온통 캄캄칠야인데 뭐가 보인다구 그래?》

《감정이 고조에 오르면 다 보인다구. 상상속에 떠오른단 말이야!》

《뭐가 떠오른다구?》

《다도해풍경이지.》

《아하, 그러고보니 여기가 정말 다도해수역이구만!》

《그렇다니까! 뭐니뭐니해도 조선의 해안경치를 다 돌아볼수 있는건 우리 해병들한테만 차례지는 특전이야. 그렇지 않나?》

《암, 그렇다마다.》

제멋에 겨워 떠드는 별치않은 소리였지만 지휘관인 채정보에게는 너무도 가슴이 설레이게 하는 소리였다,

채정보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이 다도해에서 윤지문이 놀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목포앞바다는 남해에서 서해로 들어오는 관문이라고 할수 있었다. 목포는 전라남도 남서부 무안반도에 자리잡고있는 도시인데 륙지로는 무안군과 잇닿아있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령암군과 해남군, 신암군과 마주하고있다. 목포항으로부터 제주도, 려수, 부산, 군산 등으로 가는 주요배길이 있다.

다도해의 수백개 섬과 주변의 숱한 암초를 끼고있는 목포항은 적들의 배길을 제어함에 있어서 요충지로 되는 곳이였다. 이 일대를 미리 손금보듯 알고있다는것은 그만큼 수로정찰에 소비되는 시간을 단축하는것으로 되는것이였다.

채정보도 10여년전에 이 아근에서 배를 부려 지형을 대체로 알고있지만 지금은 영산강을 비롯한 강하천들이 날라온 흙무지들이 쌓여 수로가 변경되였을수 있으므로 얼마전까지 여기서 배를 탄 윤지문이에게 어차피 조언을 받아야 할것이였다.

채정보는 생각되는것이 있었다. 윤지환과 윤지문형제로 하여금 조국의 자유독립을 위한 싸움에서 공훈을 세우게 하여 외적의 칼에 맞아 한을 품고 돌아간 부모님들의 묘소앞에 어엿하게 설수 있게 하는것이 그가 바라는것이였다.

채정보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그들형제를 아니, 부대의 전체 해병들의 운명을 책임질수 있는가. 지휘관으로서 귀중한 전우들을 맡았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무거운 짐이 자기의 어깨에 실려옴을 새삼스레 절감했다. 매 전사들의 위훈과 혹은 수치에 대해서도 지휘관은 책임을 져야 하는것이다.

사람의 생은 길수도 있고 한순간에 펑끗 빛났다 사라지듯 짧을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삶의 길이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하는것보다도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얼마나 오래 남아있는가 하는것으로 계산해야 할것이다.

바다우에는 여전히 폭풍우가 휩쓸고있었지만 그에는 아랑곳없이 채정보는 깊은 생각에 잠겨 어둠속을 응시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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