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3편 성전

6

 

카키색군용반외투를 어깨우에 걸친 계엄사령관 로버트는 제주시 관덕정의 크지 않은 방안 책상우에 군용지도를 펼쳐놓고 특별히 빨간색으로 표시한 한나산을 쏘아보고있었다. 무엇인가 불쾌하고 참을수 없는 혐오감으로 갑작스레 머리를 쳐든 그는 좁고 어스레한 방안을 휘둘러 살펴보았다.

파아란 담배연기가 구름처럼 까딱 움직이지 않고 천정밑에 서려있었다.

로버트는 여기 제주도에 온 첫날부터 느끼는 불만, 천정이 낮고 숨막힐듯이 방이 협소한데서 오는 불쾌감을 내심 또 느꼈다. 패망한 왜놈들이 사용하던 제주도 관덕정이라는 이름도 부르기 까다로운 이 왜소한 건물과 비둘기장안처럼 작은 방들과 창문들은 로버트에게 무엇인가 경멸감을 자아냈다.

서울에서는 그런대로 어느 정도 참을수 있었지만 이곳 외진 섬인 제주도에서는 왜 그런지 참아내기가 괴로운 지경이였다.

체구가 큰 로버트는 이 자그마하고 《렬등한》 나라에서, 더구나 《폭도》들의 소요가 휩쓸고있는 이 섬의 특수상황에서의 림시거처지인만큼 어쩔수없이 참아야 한다고 늘 자기를 위안해왔었다. 지금도 그렇게 자기를 위안했다.

발을 거의나 들지 않고 군화밑바닥으로 방바닥을 스르륵 쓸면서 방안을 오락가락 거닐던 그는 문서들과 자료들이 놓인 책상앞으로 다가가 걸상에 앉았다. 부어오른듯 한 흰 목덜미는 군복의 깃우로 확연히 드러나고 몸에서는 향수내가 풍겼다. 전형적인 양키기질인 로버트는 낯짝이 기다랗고 어깨가 버그러졌으며 몸은 육중하였다. 활등처럼 휘여진 누르스름한 숱진 눈섭, 눈확은 깊숙하고 눈알은 충혈되였으며 입술은 류달리 두툼하였다. 로버트는 포악한 전형적인 양키기질의 살인마였다. 실지에 있어서 조선에 기여든 미제침략군 매 병사놈들은 교형리이고 인간백정들이였다. 그러나 로버트는 광신적이고 야수적이며 교활한,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 뒤에서 조종지휘하는 특등살인마중의 한놈이다. 로버트는 행복을 바로 강점한 나라 타민족의 생명을 좌지우지할수 있는 무제한한 권력에서 그리고 그 어떤 보물과도 바꿀수 없는 백, 천, 만의 사람들을 단번에 사형하고 목매달고 찔러죽이는 권한에서 찾았다. 총탄을 미친듯이 퍼부어 사람들을 죽이고 죽이는 인간《사냥》이 로버트의 취미이고 기쁨이라는것은 그를 아는 모두에게 잘 알려져있었다.

총성, 아우성, 비명, 방화, 불길, 연기는 실지로 그를 흥분시켰고 기분을 앙양케 하였다. 남의 나라 땅에서 그 주민들, 유색인종들을 좌지우지하는 지배자가 되였다고 생각할 때 그는 커다란 희열을 느끼군 했던것이다.

방안으로 부관이 소리없이 들어와 제주도의 군과 면들의 경찰서장들과 군대의 련대장, 대대장들이 모여 대기상태에 있다고 보고하였다. 그러자 로버트는 자기가 회의소집을 명령했었다는것을 문득 생각했다. 부관에게 알고있다는 뜻으로 머리를 끄덕인 그는 버그러진 어깨를 으쓱- 눈에 띄게 떨었다.

부관은 로버트의 낯익은 이 동작을 보면서 빨리 물러가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였다. 기분이 대단히 불쾌할 때에 로버트는 어깨를 떨군 했는데 그럴 때면 그는 울화를 터뜨리며 아무에게나 트집을 잡고 행패를 하는것이 상례였다.

이런 때는 될수록 로버트의 눈앞에서 멀리 피해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은 약삭바른 부관이였다. 잘못 걸려들면 이런 때에 별치않은 일로 로버트에게 봉변을 당할수 있는것이다.

《돌아가겠습니다! …》 하고 부관은 얼핏 로버트의 거동을 살피며 입재게 쑤알거렸다.

《나도… 곧 회의실로 가겠소!》

로버트는 련속 어깨를 발작적으로 떨면서 내뱉듯이 말했다.

부관이 바람에 불린듯 어느새 문밖으로 나가자 로버트는 책상 한쪽의 위스키병을 쳐들고 크게 몇모금 마셨다. 그는 어깨가 떨리는 증세(우울증)를 늘 알콜기운으로 앙양시키군 했다. 로버트는 위스키를 마신 다음 서류함쪽으로 다가가 서류장문을 열어제꼈다. 육중한 강철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리고 보이지 않는 아구리에서 나오듯 검은 문건철이 저절로 미끄러지듯 나왔다. 제주도인민유격대의 인원구성, 무장상태, 그들이 습격한 지명 및 그 회수, 체포구금한 유격대원들의 가족명단, 빨갱이 및 그 동조자 등이 장악된 문건이였다. 로버트는 그것을 손에 거머쥐고 퉁탕거리며 2층 목조계단을 내려 아래층의 회의실로 으쓱 어깨를 떨면서 걸어갔다.

회의실에서는 제주도 계엄사령부관하의 괴뢰군 11, 9, 2련대의 련대장, 대대장들과 제주시와 각 군, 면들에서 모여온 경찰서장, 지서장들, 서북청년단 우두머리들이 걸상에 비스듬히 앉거나 벽에 기대서서 시시껄렁한 상스런 소리들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떠들어대고있었다. 그들은 계엄사령관 로버트가 불쑥 회의실로 들어서자 깜짝 놀라 벌떡벌떡 일어나서 꼿꼿이 섰다. 로버트는 큰 키에 멀쑥하고 길다란 얼굴과 버그러진 어깨를 날짐승모양으로 오만하게 쳐들고 좌우를 보는 일없이 곧바로 회의실앞으로 군화발소리를 울리며 걸어나갔다. 회의실연탁에 나서자마자 로버트의 입에서는 무서운 욕설이 터져나왔다.

《당신들은 어째서 폭도완전소탕을 질질 끌고있는가! … 왜 아직도 폭도들이 소란을 피우며 날치게 하고있는가 말이요. 우리 미국의 강력한 지원으로 현대식무장을 갖춘 당신들은… 하늘과 바다에서 막강한 우리 미군의 직접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뭘 하고있는가! … 사방으로 뛰여다니며 법적 고아대나 아무 일도 못 추는 오리새끼들처럼 그게 뭔가 말이요? … 이 불미스러운 사태를 당신들은 책임져야 하오!》

계엄사령관 로버트는 핑핑하고 영양이 좋은 몸뚱아리전체를 연탁우에 다 내실은채 험악한 욕설을 마구 퍼부어댔다. 누런 복장의 괴뢰군장교들과 검은 복장의 경찰서장들속에서 수군거리는 가벼운 소음이 잔물결처럼 지나갔다. 그러나 누구 하나 감히 일어나지 못하고 죄수들처럼 겁에 질려 죽을상을 하고 앉아서 우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북제주군 조천면지구에 주둔한 대대의 대대장은 누구요?》 하고 로버트는 어둡고 침침한 시선으로 회의장에 앉은 사람들을 흘겨보았다.

그때 회의실 앞쪽에서 고수머리에 감때사납게 생긴 딱 바라진 괴뢰군 장교가 발딱 일어났다.

《계엄사령관님, 제가 그곳 주둔 대대장인데요.》

《어제 밤 당신의 대대는 뭘 하고 자빠져있었소?》 하고 로버트는 일어선 딱 바라진 장교에게 독기서린 눈총을 쏘아박으며 독살스럽게 물었다.

《이실직고하면요. … 사실 폭도들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시간에, 예상치 않은 기습으로… 치고 달리는 전법을 활용하기때문에 꼬리를 잡을수가 없어서…》

《그만 지껄이시오.》

로버트는 매몰차게 그의 말을 중도에서 꺾었다. 길다랗고 멀쑥한 로버트의 얼굴이 푸르딩딩하게 부어올랐다.

《말부터가 군인답지 않소. 당신이 어떻게 대대장에까지 기여올랐는지 모르겠단 말이요! … 어제 밤 당신네 대대는 폭도들의 기습에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처참하게 얻어맞았소. 당신은 처참한 패전의 책임을 져야 하오. 오늘부터 당신은 중대장으로 강급이요! … 중대나 지휘하겠는지 그나마도 믿음이 가지 않는 무능한 장교요.》

즉석에서 강급처벌을 선언한 로버트의 시커먼 코구멍이 분노로 벌름거렸다.

잠시후 그는 검은 복장의 군경찰서장, 면경찰지서장들과 서북청년단의 우두머리들쪽에 분노한 눈총을 쏘아박으며 소리쳤다.

《당신들도 마찬가지요! … 왜 폭도놈들의 가족과 동조자들에 대한 숙청조차 지지부진인가 말이요. 통탄할 일이요! … 혹시 당신들은 그것들을 동정하면서 감싸주고있는게 아니요? … 그런 경찰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군법으로 엄격한 처벌을 면치 못할것이요.》

《계엄사령관님! … 모든것은 저희들의 능력부족이지 폭도들의 가족과 빨갱이동조자들에 대한 동정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제 곧 모조리 척결하겠습니다.》 하고 오랜 경찰경력을 가진 제주도 경찰서장이 일어나서 허리를 절반 꺾듯이 구부리고 빌듯이 설명하였다.

로버트는 광기어린 노란 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고 마치 말장사군이 말을 들여다보듯이 주의깊게 그를 살펴보고있었다.

《제주도 경찰서장, 그건 서푼짜리 변명이요! … 나는 이미 여러번 언명한바 있소. 우리에게는 제주라는 땅덩어리가 필요한것이지 무엄하게 반항하고 소란스러운, 빨갱이물이 든 이곳 주민들은 필요없다고 말이요! 마을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주민들을 깨끗이 없애치워야 하오. 하루빨리 우리는 제주도를 확보해야 한단 말이요! … 누가 조천면 경찰지서장인가?》

《네, 제가 면경찰지서 지서장이올시다.》 하고 키가 껑충하고 여드름투성이의 얼굴이 시커먼자가 까닭모를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당신은 어째서, 무엇때문에 나의 명령을 집행하지 않고있는가? … 통보에 의하면…》

로버트는 연탁에 놓았던 비밀문건을 들었다가 던지듯이 놓고는 동안을 두지 않고 입걸게 욕설을 계속 퍼부었다.

《북제주군 조천면은 오래전부터 제주도에서 제일 골수빨갱이가 많고 따라서 그에 물젖은 불온한 곳이라고 하오. 그런데 왜 아직도 그 모양, 그 꼴로 놔두고있는가? … 당신은 혹시 빨갱이들이 박아놓은 지하조직원이 아니요?》

어깨를 으쓱 떨면서 웨쳐대는 로버트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들이 오싹 소름이 끼칠만큼 무서운 악의가 느껴졌다.

《원,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요. 제가 빨갱이들의 공작원이라니요? … 아니올시다! … 사실은 오늘래일간… 곧 모조리 마을들을 불태울 준비를 해놓고있습니다요! …》

북제주군 조천면 경찰지서장은 버릇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미소를 떠올리며 반박이라도 하듯 펄쩍 뛰면서 대꾸하였다.

조천면 경찰지서장의 반박조와 의미 모를 미소가 로버트의 비위를 거슬렸다.

그는 무엇에 갑자기 찔리웠을 때와 같이 얼굴을 험상궂게 찌프리면서 례의 버그러진 어깨를 으쓱… 눈에 띄게 떨었다.

《아니요! 당신은 지금까지 명령을 집행하지 않은데 대해서 응당 책임져야 하오. 목숨으로 말이요! … 전시상태와 같은 계엄령하에서 명령불복종죄는 마땅히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하오.》 하고 로버트는 목대의 피줄이 부풀어올라 고함쳤다.

《계엄사령관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곧… 집행하겠으니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불시에 넝마로 만든 사람처럼 후줄근해진 북제주군 조천면 경찰지서장은 온몸을 와들와들 떨기 시작하였다.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면… 미국에 대한 저의 마음속 충실성을 보여드리고… 행동으로 증명하겠습니다요.》

조천면 경찰지서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로버트를 쳐다보았다.

《때늦은 눅거리맹세요! 우리는 지금 여기서 폭도들과 목숨걸고 싸우고있소. 이런 때 명령불복종죄는 마땅히 군법으로 처리해야 한단 말이요. … 이자를 즉시 끌어갓.》

로버트는 저도 알수 없는 동물적인 분노와 그 분노를 어디고 쏟아놓고싶은 충동에 몸을 불태우면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즉시에 미군하사관 두명이 우당탕거리며 달려들어 조천면 경찰지서장을 두들겨패면서 밖으로 끌고 나갔다.

회의실안은 삽시에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침묵이 꽉 눌렀다.

《나는 오늘 당신들에게 명백히 언명하오. 빨갱이폭도들과의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태공하는자는 그가 누구든 저렇게 가차없이 처벌하리라는것을 말이요!》

로버트는 자기 말을 잘 새겨둘 시간을 주려는듯 동안을 두었다가 거쉰소리로 명령했다.

《이제부터 토벌군의 각 련대는 토벌준비를 갖추고 담당작전지역에 진입하여 차후 명령을 기다릴것. 미해공군의 지원하에 진행될 이번 토벌작전은 총체적으로 현지에서 내가 직접 지휘할것이다. 곧 작전지역으로 떠날것.》

로버트의 명령이 떨어지자 누런 군복의 장교들은 음울한 기분으로 묵묵히 회의실밖으로 나갔다.

로버트는 회의실에 남아있는 경찰책임자들과 서북청년단 우두머리들을 향해 역시 엄격한 명령조로 언명하였다.

《이제부터 로라식<몰살작전>, 토끼몰이식<투망살륙작전>의 시범을 보여주겠다. 전체 경찰들과 서북청년단은 무장을 갖추고 북제주군 구좌면과 이웃한 조천면 북촌리로 나가라.》

계엄사령관 로버트는 두손을 카키색군용반외투주머니에 찔러넣고 널마루방바닥우를 퉁탕거리며 먼저 회의실을 나섰다.

그로부터 얼마후 로버트는 미군용찦차를 타고 현지로 나갔다. 이미 미군용차로 실어나른 완전무장한 경찰, 서북청년단깡패들은 마치 적구나 되는듯이 조천면 북촌리를 물샐틈없이 포위하고있었다.

마을에서 얼마간 떨어진 도로에는 계엄사령관 로버트가 타고 온 미군용찦차가 서있었다. 그는 현장에는 얼굴을 나타내지 않고 거기서 모든것을 지휘하였다.

《경찰과 서북청년단은 1선으로.》 하고 로버트의 부관이 앞으로 나서며 명령했다.

경찰들과 서북청년단놈들이 껑충거리며 앞으로 달려오자 미군병사 몇놈이 휘발유가 가득찬 도람통을 가져다가 불뭉치를 만들어 나누어주었다.

《이제부터 모든 가옥과 건물들에 불을 지르라.》 하고 질근질근 껌을 씹으면서 로버트의 부관은 마치 들놀이에라도 나온것처럼 신바람이나서 소리쳤다.

명령이 내리자 경찰들과 서북청년단놈들은 우르르 달려나가며 마을의 집들에 불뭉치를 던졌다. 바싹 마른 새초이영의 집들은 순식간에 화염에 싸이고 사람들의 아우성소리가 터져 온 마을은 삽시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고말았다.

이날 놈들은 조천면 북촌리의 400여채의 살림집들을 재더미로 만들고 수백명의 무고한 주민들을 북촌국민학교주변의 밭으로 끌고가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 새들이 깃들 한그루 나무조차 없이 불타버린 마을은 문자그대로 초토화되고말았다.

며칠후 놈들은 섯달오름에 패망을 앞둔 일제가 지하탄약창고를 폭파해버려 생긴 큰 웅뎅이에 주민들을 잡아넣고 집체같은 바위들을 처넣어 130여명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때 학살된 사람들을 안장한 묘지의 상석에는 《백조 일손 지지》라는 글이 새겨져 수십년세월이 지난 지금도 놈들의 야수적인 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

《백조 일손 지지》라는 글의 뜻은 백명도 넘는 많은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학살당해 누구의 시신인지도 모르고 무덤도 같고 제사도 같이 치르니 한 자손이 백명의 조상을 모시는것과 같다는것이다.

새벽, … 감방안은 어둡고 고요하였다. 김삼봉은 놈들에게 매를 맞고 무지한 악행을 당해 온몸이 쑤시고 퉁퉁 부어올라 잠들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잠간 잠들었으나 곧 깨여났다. 아마 감방안의 모두가 깨여났을것이다.

그것은 긴장된 잦은 한숨소리와 철없는 애들의 칭얼대는 소리,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들로 미루어보아 알수 있는것이다.

《할멍, … 이제는 아프지 않나? 응? …》

《할멍! …》

손자들이 할머니곁에서 깨여나 울먹거리며 하는 소리였다.

《응, 난 일없다. … 너희들 배고프지?》

김삼봉은 손자애들을 끌어당겨 품에 안으며 측은한 눈길로 여겨보았다.

신촌마을사람들과 함께 《폭도》가족이라고 체포되여 감방에 끌려온 후 2일째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한 그들이였다. 그래도 좌구의 큰아들녀석은 아무말없이 참아내는데 5살짜리 둘째놈은 배고프다고 연방 앙탈질을 하였다.

《응, 너 착한 애지. … 조금만 참아라. 이제 집에 돌아가서 맛있는걸 실컷 먹게 해주지.》 하고 김삼봉은 퉁퉁 붓고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른 몸을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할멍! … 나 오좀 싸야겠어.》

둘째손자놈이 또 칭얼댔다.

《야, 좀 참아. … 왜 자꾸 성화야.》 하고 좌구의 큰아들녀석이 제법 철든 소리로 동생을 욱박질렀다.

《씨… 자꾸 나오려는걸 어떻게 참아. … 할멍, 나… 나… 못 참겠어.》

둘째손자녀석은 바지춤을 잡고 울먹거렸다.

김삼봉은 힘겹게 끙끙거리며 가까스로 일어나 어물창고(감방으로 전환되였다.)앞을 어슬렁거리는 《토벌대》보초놈에게 소리쳤다.

《여보시오, 문을 좀 열어주시오.》

《뭐야? … 왜 또 고함을 질러대며 소동이야. 빨리 죽지 못해 몸살인가.》 하고 얼굴에 온통 흠집투성이인 보초놈이 경상도억양으로 소리를 질러대면서 저벅저벅 다가왔다.

《우리 둘째손자애가 변소엘 가겠다니 문을 열어주시오.》

김삼봉은 보초놈의 눈을 면바로 마주보며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임없이 침착하게 말했다.

《아무데나 싸버리면 될게 아니야! … 너희들도 뭐 사람이라고 이것저것 가리며 지랄이야.》 하고 보초놈은 무섭게 이그러뜨린 흠집투성이의 낯짝을 철창에 대고 으르릉댔다.

《말을 삼가하라… 아무 말이나 함부로 내뱉는게 아니다.》

김삼봉의 목소리는 크지 않으나 마치 쇠망치로 모루를 두드리듯 무게있게 울렸다.

약이 오른 무지막지한 보초놈은 상통을 험악하게 이그러뜨리고 철창사이로 총을 들이밀고 김삼봉을 후려치면서 짐승같은 소리를 질렀다.

《뭐야? … 다 지껄였어, … 이 쌍년의 할망구야.》

《이놈아, 너도 사람이냐? … 네놈에게는 부모도 없느냐! …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 하고 김삼봉은 총탁에 맞아 명치끝이 쑤시고 눈앞이 가물거렸으나 숙어들지 않고 맞받아 소리쳤다.

《야, 빨갱이폭도두목의 에미도 사람이라고 부모타령이야? … 뭐, 천벌? 너희들 빨갱이족속은 이제 곧 저기 바다속이 아니면 땅속에 처박히게 될게다. 이봐 빨갱이할망구, 그게 천벌이야!》

보초놈은 악이 받칠대로 받쳐 허연 이발을 드러내고 쌍욕을 퍼부으며 총대로 김삼봉을 마구 후려쳤다.

《인간백정놈들!》

김삼봉은 분격하여 이발을 악물고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 끝까지 강잉히 버티였다.

그러다가 그는 기진맥진하여 끝내 쓰러지고말았다. 정신이 흐릿해지면서 눈앞에 별찌같은것들이 날아다니더니 그마저 없어지고 컴컴해졌다.

《할멍!-》

《할멍! … 나 배고픈것두… 참구, 오좀두 참을테니 어서 눈을 떠! … 할멍!-》

손자애들은 의식잃고 쓰러진 할머니를 흔들며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처절한 광경이였다.

《형님… 형님, 정신을 차리오! … 형님!-》 하고 옆집에서 사는 마음씨 무던한 녀인이 통곡을 눌러 참으며 김삼봉의 몸을 조심히 흔들었다.

얼마후에 김삼봉은 정신이 가물가물 살아나는것을 느끼고있었지만 아직 완전한 의식은 돌아오지 않은것 같았다. 어인 일인지 몸을 전혀 움직일수도 없었고 눈을 뜰 기운마저 사라진것 같았다.

(이건 죽음인가? … 죽음이란것이 이런 어둠인가…)

김삼봉은 돌덩이처럼 무거운 자기의 몸을 움직여보려고 모지름을 썼다.

그러나 희미하게 살아나기 시작한 의식과는 무관계한듯 몸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차츰 의식이 명료해지자 그는 불시에 참기 어려운 온몸의 아픔을 느꼈다. 이 순간까지는 아픔을 몰랐고 자기자신을 몽롱하게 의식했을뿐이였다.

(내가 살아있었구나! … 그런데 손자애들은? …)

가슴을 섬찍하게 하는 불안이 김삼봉의 의식속에 불길한 새의 그림자처럼 스쳐지나갔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강한 의지의 힘으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여지없이 파괴된 늙은 그의 육체에 아직 완강한 정신적긴장이 남아있었다.

문득 가까이에서 귀에 익은 손자애들의 울음소리와 다정히 지내던 옆집의 무던한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 정신이 드시우? 세상에 살다살다 이런 참혹한 일이 있을줄이야!》 하고 옆집녀인은 눈물을 쏟으며 탄식했다.

《할멍!》

《할멍, 나 배고프지 않아.》

나어린 천진한 손자애들이 애처롭게 울부짖고있었다.

(음, … 이 무슨… 가혹한 악몽같은…) 하고 김삼봉은 자기앞에 닥친 현실에 부지중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그는 지금 자기의 운명에서 무엇인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있음을 절감하고있었다. 이제 자기 신변에서뿐아니라 철없는 두 손자애들에게도 무슨 참변이 떨어질지 예측할수 없었다. 김삼봉은 어딘가 가까이에서 감도는듯 한 무서운 불행에 대한 예감을 털어버리려고 애썼다.

(온 가족이 놈들에게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 남은건 저 두 손자뿐인데… 어떻게 해서라도 저애들만은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

김삼봉은 참아내기 힘든 육체적아픔과 정신적고통으로 다시 의식이 몽롱해지는것을 느꼈다.

《형님! … 정신을 차려요. 형님!-》 하고 옆집녀인은 그냥 울먹이며 뇌이고있었다.

《음, … 동생인가…》

김삼봉은 신음소리를 강잉히 씹어삼키며 의지의 힘을 모아 눈을 번쩍 떴다.

《동생, 한가지… 부탁할 일이 있는데…》 하고 김삼봉은 말하는것조차 힘겨워 한동안 괴로운 숨을 내쉬고나서 말을 이었다.

《동생! … 우리는 오랜 세월 이웃하고 사이좋게 정을 맺고 살아왔지. …이보라구, 동생. 혹시 내가 평소에 무슨 노엽힌 일이 있더라도… 다 너그럽게 용서해달라구! … 동생은… 그러리라고 믿지만…》

《형님, 그런 말씀마시우… 형님이야 젊었을 때부터 무슨 일에서나 공정하고 대범했어요. …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누구나 형님을 좋아했고. 형님말이라면 누구나 믿고 따르지 않았나요. 형님, 어서 서슴지 말고 부탁해요!-》

거침없이 뇌이는 마음씨 무던한 옆집녀인의 목소리는 구슬프면서도 절절하게 울렸다.

《고맙네. 동생, 부탁할 일이란…》

김삼봉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가슴이 빠개지고 온몸이 찢기는것만 같았으며 당장 숨이 넘어가는것처럼 아팠다.

《형님, 어서 말씀하시우. 내 평생 형님의 신세를 얼마나 지고 살았어요. 형님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그대로 해드리겠어요!》

《아니… 아니… 그런게 아니라 지금 저놈들이 우리 일가족은 물론이고 유격대가족들을 모두 처형하려고 하고있어. 벌써 유격대 대장인 셋째아들네 온 가족은 무참히 학살당했어. … 저놈들은 남은 가족인 우리들을 곧 처형하려는것 같은데…》 하고 김삼봉은 숨이 찬듯 하던 말을 중도에서 끊었다.

(아, … 내 일생에 이렇게 말하는것조차 힘든 때가 있을줄은 차마 몰랐는데…)

《형님, 괴로우면 내 무릎을 베고 잠시 쉬세요!》

《아니, 일없어. … 그래서 동생에게 부탁할것은… 둘째네 저애들만이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야 하겠기에…》 하고 김삼봉은 둘째 좌구의 두 아들을 가리키며 눈물겹게 뇌였다.

《형님, 그런데… 어떻게 하면 저애들을 살려낼수 있겠는지? …》

옆집녀인은 소리없이 눈물을 쏟으며 안타까워하였다.

《동생, 그래서 말이요. … 내 생각에는… 동생이 입고있는 넓은 치마폭밑에 저애들을 숨겼다가… 동생이 석방되면 함께 데리고 나가주오. 동생네는 유격대가족이 아니니 석방될테니까.》 하고 김삼봉은 웬 일인지 말을 잘 듣지 않는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이며 부탁하였다.

《형님! 알겠어요. 내 힘껏 해보리다. 형님의 마지막부탁인데…》

옆집녀인은 김삼봉의 손을 꽉 틀어잡고 자기의 비장한 결심을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토로하였다.

날이 밝자 밖에서 갑자기 숱한 놈들이 큰소리로 떠들어대며 총들을 철컥거리는 삼엄한 소리가 감방으로 들려왔다.

김삼봉은 최후를 각오한듯 마지막 의지의 힘을 모아 눈을 번쩍이며 손자들에게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은 꼭 살아서 원쑤를 갚아야 한다! … 모든것을 잘 보고 기억해두거라. 알겠느냐.》

《할멍!-》

큰손자가 무엇인가 불길한것을 감촉한듯 눈물을 흘리며 소리쳐 불렀다.

《쉬- 조용해라!》

김삼봉은 마지막말을 남기듯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손자들에게 지금 제주도인민유격대는 놈들과 영용하게 싸우고있으며 악착한 미국놈들과 주구들은 종당에 인민들의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것을 차근차근 침착하게 알려주었다.

마치 자기자신과 말하듯이 조용조용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뜻밖에도 미소가, 의미심장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때 밖에서 돌연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숱한 놈들이 우르르 감방문앞으로 몰려왔다.

《얘들아, 얼른 숨어라! … 동생, 부탁하네!》 하고 김삼봉은 손자애들을 녀인의 풍덩한 넓은 치마속으로 떠밀었다.

치마밑에 애들을 감싸넣은 옆집녀인은 햇병아리들을 품은 어미닭처럼 조심조심 감방의 어스레한 구석쪽으로 옮겨가 앉았다.

철커덩!- 감방문이 열리더니 환히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시꺼먼 놈들의 그림자가 먹그림처럼 떠올랐다. 감방문앞에 총을 철컥거리며 무시무시하게 늘어선 놈들가운데서 한놈이 껑충거리며 들어와 감방사람들을 하나하나 중얼거리며 세여보았다.

《왜 두놈이 모자라는가! 어디로 도망쳤어.》

감방안으로 들어온 놈이 총창을 찌를듯이 휘둘러대며 악청으로 미친듯이 고함을 내질렀다.

분노의 침묵이 서린 감방안은 고요했다.

《말하지 않겠다? … 그럼 여기다 콱 불을 질러 몰살시킬테다.》

그럴 때 침묵이 서린 고요한 감방에 낮으나 힘찬 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내 손자 두 애를 빼돌렸다.》

김삼봉의 너무도 태연하고 침착한, 적의에 찬 목소리와 정신력에 압도된 모양 감방안에 들어온 놈은 잠시 주춤거렸다.

《뭐야? … 네년이? … 어디로 빼돌렸는가.》

놈은 악의에 찬 눈을 흉기처럼 번뜩이며 례의 보기 드문 악청으로 고함을 질렀다. 밖의 감방문에 주런이 섰던 몇놈이 우당탕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며 먼저 들어온 동료놈에게 다급히 물었다.

《무슨 일인가? …》

《저 늙다리가 손자 두놈을 빼돌렸다고 자백했소! … 어디로 해서 빠져나갔는가? …》 하고 놈은 김삼봉의 가슴에 총창을 가져다 대며 사납게 물었다.

《저기 보이지 않느냐! … 너희놈들은 눈마저 뜨고도 못 보는 해태눈이냐?》

김삼봉은 감방의 바람벽 맨우의 철창문을 가리키며 준절히 꾸짖었다.

《폭도대장의 에미년이 못하는짓이 없구나! … 이 지독한 빨갱이늙다리에미야.》

《이놈, 말을 삼가해. … 네놈을 낳은 네 어멍이 가련하구나.》 하고 김삼봉은 구역질이 나는듯 탁 침을 뱉아주었다.

《이 늙다리년이?!》

놈은 시뻘건 눈을 미친것처럼 희번뜩거리며 총창으로 김삼봉의 가슴을 찔렀다.

《으음… 인두겁을 쓴… 백정… 놈들…》 하고 김삼봉은 엄하게 놈을 쏘아보며 쓰러졌다. 제주도의 슬기롭고 소박하고 근면한 녀인, 남에게 악한 일이란 일생동안 한적 없는 선량하고 풍파속에 살아온 김삼봉은 그렇게 운명했다.

제주도 섬전체는 《피의 섬》으로 전변되고 사람들의 원한은 구천에 사무쳤다.

… 한나산 굽이굽이마다 피맺힌 통곡이 오늘도 숨죽어있음을 누가 짐작하랴! …

 

련재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7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